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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96화 (96/109)

가장은 만능 빌런 96화 - 리디북스

진우의 개인 훈련실.

지은이의 종이접기, 그림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터라 훈련실, 이라고 하기보다는 지은이의 작품 전시실이 더 어울리는 장소에서.

“......”

진우가 바닥에 앉아 홀로 고민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무진의 말대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족의 안위보다는 구원교, 그리고 가디언이 눈에 거슬린다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었어.’

심각할 정도로 굳은 표정을 유지하며 생각을 이어갔다.

‘이미 G.K는 회생이 불가할 정도로 몰락했고, 가디언 총본부를 비롯한 타국의 가디언은 이제 조금 있으면 미국과 충돌하겠지. 아니, 미국이 생각이 있다면 각국의 정부를 끌어들일 테니 이제 가디언은 쉽게 움직이지 못해.’

얼마 전, 미국의 연금술사 찰리 로버트가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 왔다.

진우의 [만능]을 연구하여 만들어낸 인공 초능력자 배양 기술. 그것의 발표가 머지않았다는 소리였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는 이쪽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적당히 조율하기만 하면 돼.’

‘구원교가 걸리는 것은 맞지만,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각국의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굳이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어.’

생각을 이어가던 진우가 갑자기 크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왜 나는...’

구원교는 그 태생이 국제적 초능력자 테러 단체 SOE에서 시작된 만큼 굳이 진우가 구원교를 박살 낼 필요는 없다.

그것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여전히 구원교를 없애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치 누군가가 계속해서 나를 떠미는 듯한...’

거기까지 생각한 진우가 천천히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내 [만능]은 처음부터 이상한 점이 많았지.’

하나로 묶어 [만능(萬能)]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무수히 많은 종류의 초능력 인자에 의한 다수의 초능력.

결코 하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각성했다고는 할 수 없는 기형적인 능력.’

‘[만능]은 SOE의 인체 실험을 빼앗은 가디언의 초능력 추출, 이식의 결과와 너무나 닮아 있어.’

‘마치...’

진우가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초능력 추출, 이식 기술이 [만능]을 따라 하려다 나온 부산물인 것처럼.”

살짝 한숨을 쉬고 다시 눈을 감은 진우가 정신을 집중했다.

‘열쇠는 꿈에 나오는 박사라는 인물.’

‘정확하게는 봉인됐다는 내 기억.’

언제, 어디서 기억이 봉인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진우는 자신이 [만능]을 가지게 된 이유가 분명히 기억 속에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만능]에 익숙해지고 강해질수록 봉인이 약해지고 기억이 새어 나올 거라 했지.’

스으으으...

진우의 전신에서 유형화된 마력이 넘실거렸다.

허공에 흩어지고 다시 유형화되고를 반복하며 마력이 진우의 육체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나는 마력 코어를 만들 수 없어.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냥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드드득!

다리, 쇄골, 팔, 손가락, 등등, 진우의 뼈에 금이 갔다.

방출되지 않고 쌓여 가는 마력이 오히려 진우의 몸을 상처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심장, 그리고 단전이 아닌, 다른 곳에 이미 코어가 있는 것이라면?’

뼈에 금이 가고 근육이 상하는 격통에도 진우는 신음을 흘리지도 않으며 마력을 통제해 계속해 쌓아 갔다.

‘가능성이 있는 곳은 딱 하나지.’

그리고 죽지 않을 만큼의, 육체의 한계까지 마력을 쌓은 진우가 그것을 움직여 한 번에 머리를 향해 내질렀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슬슬 네가 뭔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라.’

콰아아아-!

거대한 댐에서 대량의 물이 한 번에 방류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진우가 정신을 잃었다.

* * *

“■■■■■■■!”

육신이 없이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기분.

“■■■■■■■■■?”

언제 한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 ■■■■! ■■!”

죽었을 때. 그래. 죽었을 때, 이런 기분을 느꼈었다.

“미련■ 놈■! ■장 ■■나■ ■할■!”

그나저나 아까부터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이것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데...

“야 이 미련한 놈아!! 당장 일어나라!!!”

따아아악!

“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긴...?”

“여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정신 안 차려?”

“당신은...?”

동그란 안경에 지팡이를 짚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백발의 노인.

“박... 사?”

“그래 이 미련한 놈아.”

꿈에서 본 정체불명의 박사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이고, 뇌에 무식하게 마력을 때려 처박는 미련한 놈이 어딨누. 아니 미친놈인가?”

“......”

박사의 말에 내가 뭘 하다가 정신을 잃었는지 기억이 났다.

[만능]의 코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장소, ‘뇌’에 마력을 때려 박았지. 어떻게든 반응이 있으리라 확신하고 말이다.

“세이프티가 막지 않고 이런 식으로 작동한 걸 보면 죽으려고 한 건 아닌가 보지?”

“...어떤 식으로든 내가 죽는 건 막으려고 해놨을 테니까.”

“확신했던 건가? 머리가 좋은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만, 머리가 좋은 미친놈이라는 건 몰랐네.”

확실히, 박사의 말처럼 뇌에 마력을 때려 박는 행동은 좋게 끝나면 백치, 최악의 경우에는 죽는 게 보통이긴 했다.

“근데 여기는?”

“수백 종의 초능력 인자와 몇십 종류의 마법, 그리고 과학을 결합해 만든 생체 마도 컴퓨터랄까? 그 내부다.”

“...?”

“뭐 간단히 말하자면 정신세계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연구실 정도로 보였지만, 일단은 수긍하며 몸을 일으켰다.

“후우.”

왠지 모르게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은 뒤 박사를 바라봤다.

“그래서, 당신은 내 머릿속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당연한 질문을 했을 뿐인데 박사가 ‘엥? 지금 뭐 라는겨?’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왜 네놈 머릿속이누?”

“...? 내 정신세계라고 하지 않았나.”

“니놈 정신세계라고 한 적은 없다. 여기는 ‘내’ 정신세계야.”

가볍게 대답한 박사가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기는 코어 속의 공간이지, 뭐 물리적인 위치만 보면 네놈 머릿속이라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게야.”

생각보다 큰 연구실의 규모에 잠시 어이가 없어질 때쯤, 박사가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지? 생체 마도 컴퓨터 같은 거라고.”

“...그래.”

“여긴 네놈 몸속에 자리 잡은 초능력 인자들을 조율하는 곳이다. 다른 목적도 있긴 하지만. 뭐 그건 나중 일이고.”

“다른 목적?”

“도착했구만.”

“대답을 좀...?”

본인 할 말만 하는 박사에게 제대로 대답하라 말하려는 찰나.

“이건...”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유리의 관, 그리고 그 속을 유영하는 수많은 별무리가 보였다.

“이게 네놈이 [만능]이라 부르는 능력의 결정체다. 실체는 아니고, 뭐 알기 쉽게 만들어 놓은 모형 같은 것이지만.”

“...”

마력도 느껴지지 않고, 능력을 발산하는 것도 아닌, 그저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무리가 유영하는 유리관이지만, 왠지 모르게 눈을 땔 수가 없었다.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하면 좋을까...”

박사는 그런 나를 슬쩍 쳐다보고는 유리관 옆에 있는 의자에 기대앉았다.

“일단 자기소개부터겠군.”

기억이 나지 않을 테니 말이야. 라고 중얼거린 박사가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나는 이능 연구자, 알마 밸러드네.”

“알마 밸러드...?”

“끌끌, 모르겠지.”

박사의 말대로, 이름을 들었으나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이 봉인된 상태라서 당신을 모르는 건가?”

“애초에 나는 세상에 나간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네. 뭐, 자네가 나를 모르는 건 기억이 봉인된 것 때문이 맞긴 하지만.”

박사가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을 보며 물었다.

“봉인을 풀어줄 수는 없나?”

“자연스럽게 풀리게 만들어놓은 걸 억지로 뚫고 온 걸 어쩌겠나.”

안 된다는 소리였기에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자네에게 [만능]을 이식한 이유 말이네만.”

“...”

답답한 기분도 잠시, 다시 설명을 시작하는 알마 박사의 말에 다시 집중했다.

“과거, 나는 내 스승과 함께 한 가지 연구를 하고 있었네.”

“스승...”

스승의 이름을 물으려던 찰나 박사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기에 일단은 경청하기로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에게 생겨난 이능. 초능력과 마력. 그것에 대한 연구였지. 자세한 건 시간이 너무 걸릴 테니 넘어가고,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초능력을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생겨난 자연적인 현상이라 판단했고”

박사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스승은 질병으로 판단했지.”

“질병...?”

“그래. 마력이라는 영양분을 에너지 삼아 성장하는 질병.”

지팡이를 만지작거리며 잠시 입을 다문 박사가 이내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스승은 초능력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과는 반대로 초능력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연구했네. 시간이 지나 나이가 많던 스승이 죽고, 그 이후에도 나는 연구를 계속했고.”

통, 통.

박사가 지팡이를 들어 옆에 있는 유리관을 두드렸다.

“이렇게 연구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

“그걸 왜 내 몸에...”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만능]은 오로지 자네의 유전자와 반응했네.”

자신의 피를 이용해 연구하던 꿈속의 박사가 떠올라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나를 찾은 거지?”

“틀리네.”

“뭐?”

“내가 자네를 찾은 게 아니라 자네가 나를 찾아왔었네.”

“...내가?”

정체도 모르는 박사를 찾아갔다는 것은 둘째 치고 그의 연구에 자신이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소리였다.

“당시 자네는 가디언 내부를 조사하던 중, SOE의 잔재를 발견했고, 그 잔재에서 발견한 스승의 흔적을 찾다가 나를 찾아냈다고 했었지.”

“잠깐. 박사의 스승이 SOE와 연관되었었다고?”

“그렇네.”

박사는 짧게 숨을 뱉고는 말을 이었다.

“그냥 연관된 게 아니라, 내 스승이 SOE를 만들었지.”

“...스승의 이름은?”

“로어스 라일리.”

스승의 이름을 들은 나는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능 연구의 선구자.”

로어스 라일리.

16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고작 3년 만에 현존하는 초능력에 관한 모든 이론을 홀로 밝혀낸 선구자.

세계 최고의 마법사, 윌리엄 블로섬과 더불어 세기의 천재로 불리며 한 시대를 평정했던 이능 연구자.

“그는... SOE가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그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90에 가까운 노인이었고, 3년 동안의 찬란한 활동을 이어간 뒤, 노환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죽었지.”

“그럼 대체...”

“하지만 죽지 않았네.”

“...설마...”

나는 반사적으로 한 달 전 나를 찾아왔던 괴물, 구원자를 떠올렸다.

“그래. 자네가 만났던 그 검은 그림자, 스스로를 구원자라 칭하던 괴물. 그것이 내 스승, 로어스 라일리네.”

씁쓸한 표정으로 피식 미소를 지은 알마 박사가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에게 기생하는 기생충, 스승은 형태조차 갖춰지지 않은 그림자. 참 웃기는 사제지간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제대로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서글픈 질문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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