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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95화 (95/109)

가장은 만능 빌런 95화 - 리디북스

진우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답은 했으니, 그럼 인형을 데리고 가겠네. 부디 다른 자들이 막지 않았으면 하는군.>

이라 말하고 스르륵 사라져 버린 그림자.

진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독방을 감시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전부 감시는 그만두고 올라오라 말한 뒤 복도에 멀뚱히 서서 생각에 빠졌다.

‘두 명의 후보. 누가 교주가 될지는 모른다. 머지않아 생긴다...’

결국 교주가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구원교가 교주를 선정, 혹은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왜 교주를 선정하는데 외부에 사건을 일으키느냐인데...’

단순히 생각하면 교주의 선정에 약물을 만들고 그것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킬 이유는 없다.

‘후우... 알 수가 없군.’

결국 진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일단 송조운이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구원교에 대해 파보라고 시켜야겠어. 뭔가를 알아내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진우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은이랑 은선이가 보고 싶네.”

고작 몇 시간 안 봤을 뿐인데 격렬하게 딸과 아내가 보고 싶은 진우였다.

* * *

신성하다. 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신전의 내부.

“으...”

이마를 신전 바닥에 댄 이렐라인이 몸을 떨었다.

<이렐라인. 이번에는 위험했더구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하하하. 탓하려는 게 아니란다. 위로하려는 게지.>

“허나 멍청한 저 때문에 구원자께서 직접 나서야 하셨던...”

<그만하거라. 뒷방 늙은이는 나서지 말라고 하는 게냐?>

“헉! 절대! 절대로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렐라인의 반응에 껄껄거리며 웃던 그림자가 이내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덕분에 유쾌한 시간이었으니 내가 직접 움직인 것에 대해서는 너를 벌하지는 않겠다.>

황송하다는 듯이 이렐라인이 바닥에 이마를 비볐다.

<허나, 네 조심성 없는 행동으로 인해 유자혁을 처리할 기회가 없어진 것은 확실한 실책. 그에 대해서는 벌해야겠구나.>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죄를 씻어내겠나이다!”

본래 정인태가 힘을 뺴놓으면 이렐라인이 마무리를 짓는 것이 본계획. 허나 이렐라인이 흥분하여 은신을 대충 하였고, 진우와 마주친 이후, 곧장 도주를 시도한 것이 아니라 전투를 벌였고, 게다가 붙잡히기까지 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당분간 제1 주교의 지휘를 박탈하고, 일반 사제로서 행동하거라. 네가 맡았던 일들은 제2 주교, 제이든과 제3 주교, 아메 유이치에게 맡기겠다.>

“명 받들겠나이다! 구원자이시여!”

쿵! 쿵! 쿵!

바닥에 세 번 이마를 찧은 이렐라인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정중히 인사를 하고 구원자의 방을 나갔다.

<하아... 피곤하구나.>

방에 홀로 남은 그림자, 구원자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육체가 없이 사는 것도 벌써 십 년이 넘었군...>

구원자가 그림자로서 움직이는 것은 초능력이나 마법, 무공과 같은 이능의 효과가 아니다.

그저 영혼만이 남아있기에 그것을 붙잡기 위한 그릇의 모양이 검게 일렁거리는 그림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뿐.

<산다... 크큭.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상태지.>

영혼을 잡아놓는 그릇. 말이야 쉽지만 단 1초를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마력이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그것을 무려 10년이 넘도록 유지하고 있는 구원자는 그야말로 괴물, 그 이상의 무언가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빨리 교주가 나와야 내가 쉴 텐데...>

이렐라인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힘없이 약한 소리를 뱉은 구원자가 몸, 아니 그릇을 일으켜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그그긍!

그리고 구원자의 마력을 감지한 마법 술식이 기동해 벽을 움직여 길을 열었다.

사악. 사악.

기묘한 소리를 내며 걷던 구원자의 앞에 하나의 심플한 관이 보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얼마 안 남았어...>

스으윽.

구원자가 무릎을 꿇고 관 위에 손을 올렸다.

<오늘 그를 만났단다.>

그리고 관에게 말을 걸 듯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네가 선택한 자랄까. 유능한 자더구나. 두뇌도 명석하고 능력, 마력을 사용하는 센스도 특출나.>

몸을 돌려 바닥에 주저앉으며 관에 등을 기댄 구원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런 걸 준비했으면 나에게 알릴 것이지, 제자 주제에 먼저 죽기나 하고 말이야. 아. 물론 나도 살아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말이다. 하하하.>

과거를 추억하는 구원자의 목소리가 관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석실에 울려퍼졌다.

<내가 준비한 것과 네가 준비한 것. 뭐가 더 뛰어난 물건이 되어 교주가 될지, 흥미진진하구나.>

이 말을 끝으로 잠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던 구원자가, 이내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구나. 다음에 또 찾아오도록 하마.>

사악. 사악.

그리고 다시 기묘한 발소리를 내며 구원자가 석실을 나가고. 석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

* * *

구원자가 진우와 대화를 하고 벌써 한 달.

“슬슬 이클립스를 수면 위로 올릴 생각이다.”

“예?”

“그게 무슨 소린가?”

천예성과 천무진이 진우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말 그대로다. 정부와 템페스트가 생각보다 일을 잘해줘서 지금 한국은 일반인과 초능력자 사이의 간극이 많이 사라졌지.”

“음. 그렇긴 하지.”

“저번에 정보수집 겸 대전에 갔을 때 놀라긴 했죠.”

천예성은 얼마 전 자신이 정보수집 겸 휴식 겸 대전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초능력을 사용해 고기를 굽던 사람.”

화염의 능력으로 신들린 듯 불 조절을 하며 불쇼를 보이고 요리하던 자.

“소방관으로서 활약하는 사람.”

물 계열 능력을 사용해 소방관으로서 동료들에게 믿음을 얻고 있던 자.

“초능력과는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던 사람 등등.”

서류상으로는 분명 환각 계열 초능력자임에도 평범한 무역 회사에서의 생활을 성실히 하던 자.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전에 모였습니다. 반대로 정부와 템페스트의 집중 보호를 받고 있어서 빌런은 전부 대전을 떠났고요.”

“그래. 지금의 대전은 일반인과 초능력자가 함께 생활하며 공존하는 곳이더구나.”

천무진이 천예성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네만.”

천예성 또한 아버지의 말에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과 정부가 있는 서울, 템페스트가 있는 경기도. 이렇게 셋을 제외하면 다른 곳들은 굉장히 미묘한 상태지.”

“음... 그런가?”

“글쎄요. 저도 잘...”

진우의 말에 두 사람이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우는 역시 송조운이 돌아오고 나서 일을 진행할 걸 그랬나 잠시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수도권과 대전에서 정부와 템페스트가 힘을 합치고 있으니 빌런 조직들은 대부분 숨은 상태지. 그럼 이들이 어디에 숨어있을까.”

“아! 그래서 서울, 경기도, 대전을 제외한 다른 곳이군.”

“확실히. 저희가 수집한 정보에도 웬만한 빌런 조직들은 전부 강원도나 전라도에, 일부는 제주도까지 피신한 상태네요.”

본인이 지휘하여 정보를 수집하였음에도 떠올리는 것이 늦었다고 생각한 천예성이 창피함에 슬쩍 얼굴을 붉혔다.

“경험이 쌓이면 좀 괜찮을 거다.”

“네, 죄송합니다.”

그런 천예성을 가볍게 위로한 진우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프로젝트가 대전에 한정되어 있으니 빌런들이 가만히 있는 거지. 그럼 이후에 프로젝트가 전국으로 확산되면?”

“빌런들이 움직이겠군요.”

“그래.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된 자들이 아니라. 설 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할 진짜 빌런들이 움직이겠지.”

그동안은 일반인과 초능력자, 양쪽의 간극이 선명했기에 가디언 코리아만 조심하면 초능력자를 두려워하는 일반인 따위는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가디언 코리아가 몰락하고 정부가 본격적으로 초능력자들에 대한 법안을 만들고, 대응을 시작하며 가디언 코리아에 눌려 조용히 지내던 온건파 빌런들이 빌런의 탈을 벗고 정부와 손을 잡았다.

“초조해진 빌런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모르겠다만, 아마 정부의 요직에 있는 자를 습격하거나.”

“템페스트의 간부를 습격하겠군요.”

“그래.”

결국 수적으로 밀리는 진짜 빌런들은 더욱 음지로 숨어들어 더욱 독해질 게 뻔했다.

“그건 너무 비약이 아닌가.”

천무진이 이클립스가 수면 위로 올라간다는 말에 부정적인지 걱정스레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진우는 그런 천무진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빌런들이 정부와 템페스트를 두려워하는 것도 맞다. 때문에 프로젝트가 전국적인 규모로 진행되고 성공한다 해도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

“그럼...”

“하지만, 결국 빌런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

진우는 천무진의 말을 끊고 계속해서 말했다.

“마음 가는 대로 힘을 사용하고 적당히 숨으면 가디언 코리아는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지는 않았지.”

“음... 결국은 빌런이 있어야 돈이 되니...”

“맞다. 하지만, 정부는 빌런들을 끝까지 추적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결국 법이라는 굴레에 다시 묶이는 처지가 되는 건데 빌런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고 수긍할까?”

“...아니겠지.”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가볍게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불만을 가지는 것 자체는 괜찮다. 진짜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해가 될 건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불만을, 욕망을 자극하는 놈들이 있는 게 문제지.”

“...구원교.”

“그래. 그놈들이 음지에 숨은 빌런들을 이용할 거다. 그때가 되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하던 늦겠지.”

구원교의 규모, 전력, 아는 것은 거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놈들의 사상은 위험해.”

사상.

세상 모든 이들이 구원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얼핏 들으면 나쁠 것 하나 없는 사상이지만,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법이다.

“타인이 자신을 죽임으로써 완성되는 구원. 그딴 사상을 가진 미친놈들이 사회에 불만을 가득 가진 빌런들을 손에 넣으면 어떤 짓을 할지 생각하기도 싫다.”

약물을 통해 이성을 지우고 능력을 강화해 타인이 자신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로 인해 자신은 타인을, 타인은 자신을 죽여 모두의 구원을 이룩한다.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구원교 놈들이 빌런들에게 손을 대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게 베스트다.”

진우의 말에 천무진이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보스의 말은 우리가 수면 위로 올라가 진짜 빌런들의 구심점이 되어 구원교의 접근을 차단하자는 건가?”

“정확해.”

진우의 대답에 천무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처음으로 진우에게 소리를 쳤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

진심으로 화를 내는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순간 말을 잃었다.

“보스, 아니 자네는 대체 뭘 어디까지 혼자 짊어질 셈인가!”

“...”

“왜 자네가 빌런과 구원교를 막아야 하는 건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네. 미리 얘기하지만, 내 복수를 위함이라 말하지 말게. 자네는 이미 내 딸을 구했고, 아들을 구했네. 이미 자네는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이 이상 바란다면 내가 나중에 아내와 장남에게 혼나네.”

천무진은 자신의 복수를 핑계 삼을 것이 뻔한 진우의 대답을 사전에 차단하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 요즘 자네가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네. 유나 양이 돌아와도 똑같이 생각했겠지.”

“무리...?”

“G.K가 몰락하고 나서도 한순간도 쉬지 않았잖나.”

“그건...”

“그리고, 자네 지은이와 아내를 만나는 횟수도 줄었지?”

“!?”

생각해보니 그랬다. 가족을 우선으로, 가족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터였는데, 진우는 어느새 가족과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빌런과 구원교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네.”

천무진이 몸을 돌려 회의실을 나가며 말했다.

“이번 일은 못 들은 걸로 하지. 한번 잘 생각해보게.”

그 말을 끝으로 천무진이 회의실을 나갔지만, 진우는 인상을 찡그리며 목석처럼 굳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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