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93화 - 리디북스
푸화아아악-!
이렐라인이 발산하는 바람과 천무진이 사용하는 [광휘]의 열기가 만나 마치 용오름처럼 거센 소용돌이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보스! 보고만 있을 건가! 좀 도와주게!!”
혼자의 힘으로는 이렐라인의 방어를 뚫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겠다는 판단을 한 천무진이 진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좀 더 능력을 사용하게 둬.”
진우는 전투에 참여하는 대신 오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며 그렇게 말했다.
“시간이... 아니, 보스가 그리 말한다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알겠네!”
다행히 천무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이렐라인을 향해 [광휘]를 쏘아댔다.
“꺄하하하! 물러물러! 조금 따끈따끈한 정도잖아!”
“네년의 바람은 살랑바람이 따로 없구나!!”
“어? 어떻게 알았지? 히히! 이제 칼날바람 간다!!”
“어딜!!”
콰드득! 서걱! 콰아아아-!!
아무리 봐도 이 바람의 능력은 이렐라인이 사용하고 있는 게 맞았다.
애초에 주변은 사람들이 다 도망가서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해석안]은 저 여자가 일반인이라 판단하고 있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초능력 이식 시술을 받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혹은 강해진 초능력자도 [해석안]은 그들을 초능력자로 분류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적인 초능력자와는 차이점이 보이지만, 아무튼 일반인으로 분류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저 여자는 완전한 일반인... 무능력자라고...’
진우는 [해석안]에 더더욱 마력을 끌어모았다.
진우의 가면 속 양 눈이 이제는 레이저라도 쏠 것처럼 찬란한 황금빛을 띠었지만.
‘아무리 마력을 많이 써도 똑같군.’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 이상은 낭비.’
초토화되는 거리는 어떻게 되든 딱히 상관없었으나 이제 정부의 인원이나 경찰 등이 도착할 시간이 되었기에 일단 이렐라인을 제압하기로 마음먹었다.
“천무진. 틈을 만들겠다. 가서 한 방 먹이도록.”
“좋지!!”
“하!? 대놓고 말하네? 내가 만만해!?”
진우의 말을 들은 이렐라인이 양손을 모아 머리 위로 올리고 어마어마한 바람을 응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너는 대놓고 큰 기술을 쓰는군.”
“뚫고 올 수 있으면 오던지!”
이렐라인의 자신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그녀의 주변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바람의 칼날이 소용돌이치고 있었기에 쉽게 다가갈 수는 없어 보였다.
“뭐 직접 뚫고 갈 필요는 없지.”
진우는 마력을 끌어올리며 이렐라인에게 검지손가락을 향했다.
“손가락질은 나쁜 거라고 안 배웠어?”
“뒤에서 일을 꾸미는 너희보다 나쁠까.”
우우웅-!!!
바람을 상쇄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바람이 가장 효과적.
[공기 조작]+[풍인]+[돌개바람]+[회전]+[증폭]
쿠구구구-!!
진우의 손가락 끝에 작은 바람의 소용돌이가 회전하며 주변의 바람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난 언제든 오케이네 보스.”
천무진이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죽이지 마. 알아야 할 게 많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누구 마음대로 죽이라 마라야!?”
진우의 손끝에 소용돌이가 완성되기 전, 이렐라인의 준비가 먼저 끝났다.
“[스톰 오브]!!”
콰아아아-!!!
터지면 그냥 날아가는 것이 아닌, 풍압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 분명한 폭풍이 담긴 오브가 진우와 천무진을 향해 날아오고.
“[바람길]”
진우의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손끝을 떠난 소용돌이가 오브의 중앙을 파고들어.
우웅-! 파아아아앙-!!!
이렐라인의 [스톰 오브]를 잡아먹고 그 덩치를 키워 바람으로 이루어진 통로를 만들어냈다.
“꺄아아악!!!”
뿐만 아니라 이렐라인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그녀를 감싸 가둬놓았다.
“천무진!”
“가네!!”
콰앙-!!!
진우의 외침에 천무진이 땅을 박차 총신 안을 질주하는 탄환처럼 이렐라인을 향해 쇄도하고.
“오지 마!!!”
그것을 본 이렐라인이 다시 바람의 능력을 사용해 천무진을 막으려 했지만.
“어?”
후우웅...
이렐라인의 바람은 진우가 사용한 [바람길]에 흡수되어 자신을 가두고 있는 감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뿐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제어력이 나보다 위라고!!?”
이렐라인은 그분이 주신 힘이 흡수되는 끔찍한 느낌에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능력은 강대하지만 사용하는 법이 조잡하구나!!”
“닥쳐!!”
그나마 완전히 근접해온 천무진에게 반항할 정도로는 제어가 가능했기에 순식간에 몇 번의 공방을 치렀지만.
퍼억!!
“끄윽...”
그것도 잠시. 근접전이 전문인 천무진을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녀의 복부에 천무진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씨이...”
풀썩.
이렐라인이 천무진에게 눈으로 욕을 하며 정신을 잃었다.
후우우우~! 파앙!
그와 동시에 진우가 [바람길]의 제어를 풀었고, [바람길]이 풍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쪽이다!)
(씨X! 오늘 무슨 마가 꼈나!)
“아슬아슬했군.”
“그러게 말일세.”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들의 목소리에 진우와 천무진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는 어떻게 할 텐가?”
“본부에 우석훈 대통령에게 받은 구속구가 있을 거다.”
“음.”
콰아앙! 콰득! 퍼어엉!!!
천무진이 이렐라인을 어깨에 걸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인태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
진우 또한 그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은 유자혁에게 맡기지. 우리가 돕는다고 해도 유자혁이 우리를 가만히 둘 것 같지도 않고.”
“그도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는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다중 비행]을 사용하여 자신과 천무진을 띄우고, [투명화]를 사용하여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그 직후, 경찰들과 길드의 사람으로 보이는 자들이 도착했다.
“아무도 없어?”
“방금 전까지 소리가 계속 울렸었다! 아직 근처에 있을 거야! 일단 결계부터 쳐라!”
“넵!”
이미 하늘 높이 뜬 진우와 천무진의 바로 발아래에 공간 차단 결계가 쳐졌다.
“휴, 진짜 아슬아슬했구만.”
“...”
진우는 잠시 정인태와 유자혁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를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렸다.
“간다.”
“알겠네.”
후우우웅!!
* * *
“대지의 갑주, 부스트 변형!”
우웅!! 푸화아악!!!
바위의 갑주가 변형하며 유자혁의 오른팔에 로켓의 그것과 같은 추진기가 생겨나고 마력을 발산하며 가속한다.
“[거완격]!”
“크아아아-!!!”
콰아아아앙-!!!
정인태의 염동 방어막이 그것을 정면에서 막았지만, 발산되는 충격파만으로 거리의 아스팔트가 갈라졌다.
크오오오오-!!!
바로 다음 일격으로 방어막을 부수고 정인태를 공격하려던 찰나, [염동력]을 에너지 삼아 움직이는 콘크리트의 용이 입을 벌리며 유자혁을 물어뜯고자 달려들었다.
“쯧. 방해된다!!”
콰아아앙-!!!
그에 유자혁이 후속타를 포기하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용의 턱을 올려찼다.
“죽어!! 죽어버려어어!!!”
“그 말밖에는 못 하게 됐나 정인태!!”
그리고 곧장 사방에서 죄여오는 [염동력]을 피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 다리의 갑주를 변형시켜 다시 추진기를 만들어냈다.
“섬세함을 자랑하던 네 [염동력]이 이딴 조잡한 공격밖에 못 하지 않나!”
“죽어어어!!!”
“제어력 하나만은 나도 인정하고 있었거늘!!”
콰아앙!!!
추진기에서 마력을 발산해 순식간에 정인태의 옆으로 돌아간 유자혁이 왼팔의 갑주를 변형시켜 하나의 창을 만들어냈다.
“대지의 창, [빛살]!”
퍼어엉-!!
창의 뒤쪽에 달린 추진기에서 마찬가지로 마력이 발산되며 가속하고, 한 줄기 빛살이 되어 정인태에게 쇄도했다.
“크아아아-!!!”
콰지직!
늦지 않게 정인태의 염동 방어막이 그것을 막았지만.
“아직 멀었다!! [빛살]!!”
콰지직!
또 한 발.
“흐아압!!”
콰지직!
또 한 발.
계속해서 염동 방어막에 추진기가 꺼지지 않은 창이 꽂히고.
“마지막!!!”
콰지직!!!
이내 정인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염동 방어막은 밤송이 같은 모습이 되었다.
“크흐흐흐...”
“웃어?”
완전히 막아냈다는 기쁨일까, 이성을 잃고 날뛰기만 하던 정인태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뭘 좋아해 인마. 이제 시작인데.”
“크흐?”
“[충전]”
그리고 그런 정인태를 보며 유자혁이 손을 올린 그때.
우우웅-!
염동 방어막에 박힌 수십 개의 창이 일제히 주변의 마력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내 마지막 초능력이다 인마.”
“크아아아-!!!”
유자혁이 보유한 4개의 초능력, [강인], [대지신의 육체], [전지], 그리고 [충전].
우웅-! 콰아아아아-!!!
[충전]으로 인해 마력을 흡수한 수십 개의 창이 일제히 재추진을 시작하며 정인태의 염동 방어막을 밀어붙였다.
“크으으윽!!”
사방에서 짓눌러오는 압력에 반구체를 유지하던 염동 방어막이 이리저리 찌그러지고.
쩌적!
이내 창의 끝부분이 염동 방어막을 뚫고 박히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위험을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인태가 콘크리트 용을 유지하던 염동력까지 끌어와 방어막을 강화했지만.
“막으려면 벌써 했어야지! 늦었어!”
콰앙!!
어느새 근처로 다가온 유자혁이 몸을 비틀며 창 하나의 뒷부분을 돌려찼다.
“커어억...!”
그 충격에 염동 방어막을 완전히 관통한 바위의 창이 정인태의 복부에 박히고.
쩌어엉-!!!
염동 방어막 전체가 깨져나가며.
콰아아-!
푸욱! 퍽! 퍼버벅!!
바위의 창, 수십 개가 그대로 날아와 정인태의 전신에 박혔다.
“......”
주륵...
팔, 다리까지 창에 관통되어 쓰러지지조차 못하고 피를 흘리는 정인태를 바라보던 유자혁이 작게 한숨을 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일부러 심장, 머리와 같은 즉사할 만한 곳은 피했기에 아직은 살아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정인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정인태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선 유자혁을 바라봤다.
다행히 이성이 돌아온 것 같았기에 안도한 유자혁이 말을 이었다.
“하아...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쎄엑... 쎄엑...”
“너한테 그 약을 준 게 누구냐.”
유자혁의 물음에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정인태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좆... 까...”
“...억울하지도 않냐?”
“억울...? 크, 크큭... 억울... 하지...”
“그럼 말해. 그딴 더러운 약을 준 게 누구냐고.”
아시아 최강자라고 불리는 유자혁조차 약에 의해 강화된 정인태를 전력을 다해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그것도 겨우 즉사시키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조금만 더 강해졌다면 이렇게 대화를 나눌 기회도 없었으리라.
그렇기에 유자혁은 정인태가 복용한 약의 출처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억울... 하다... 크크큭... 억울... 해...!”
“뭐?”
하지만 정인태는 약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힘... 더... 강한... 힘을... 가지... 지... 못한... 것이... 억울하... 다...”
“정인태!”
“널... 죽... 이지 못한... 것이... 억울... 쿨럭!!”
정인태가 왈칵 피를 토하며 눈빛이 죽어갔다.
“더... 높이 올라... 가고... 아아... 구... 원을... 쿨럭! 쿨럭! 마음의... 평화를... 구원... 을...”
스륵...
결국 약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숨을 거둔 정인태가 고개를 떨궜다.
“...빌어먹을 자식.”
그에 자신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린 유자혁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전지]를 사용하고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피곤한 적은 처음이네.”
유자혁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찜찜한 기분 그대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