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90화 - 리디북스
전부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왜 유자혁이 여기 있는 거지?’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
‘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신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안 것인지.
‘지사장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왜?’
왜 자신이 지사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인지.
“거 시간 겁나 끄네.”
그때, 유자혁이 굉장히 나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에휴, 그래 차라리 한 번에 하자 한 번에. 지금 우리 애들이 G.K 이사들 족치고 있을 거거든?”
“이사들을...?”
유자혁의 말에 번뜩 정신을 차린 정인태가 유자혁을 바라봤다.
“어디 보자... 2분? 정도 지났으니까. 슬슬 오려나...? 아닌가? 좀 더 걸리려나?”
2분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유자혁의 말대로 그의 부하들이 G.K 이사들을 조사하고 있다면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내가 멍청이냐? 당연히 알고 있지.”
“그럼 정식으로 감사 허가를 받고 온 거라는 겁니까?”
만약 그렇다면 총본부에서 자신을 버렸다는 말이 된다.
그에 정인태는 순식간에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지만.
“...”
“...?”
자신의 말에 슬쩍 눈을 돌리는 유자혁의 모습에 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설마 정식 허가를 안 받...”
“흠흠, 뭐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찌 됐든 니가 약쟁이라는...”
“증거는 있습니까?”
총본부에서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정인태가 평정심을 되찾고 물었다.
“증거?”
“설마 증거도 없이 가디언 코리아의 지사장을 이렇게 핍박하는 겁니까!? 이건 명백한 월권입니다!”
이리저리 수를 쓰고 증거를 확보하고, 그런 게 너무나 귀찮았던지라 그냥 직진, 물리적인 최단 거리로 뚫고 온 유자혁이었기에 증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하. 월권?”
하지만 유자혁은 당당했다.
“그딴 증거는 털면 나와.”
“지금 그게 아시아 총대장이 할...”
“왜? 네가 하던 짓에 당하려니 구역질이 나?”
“......”
“아 쏘리쏘리. 그냥 털면 나오는 게 아니었지? 안 나와도 나오게 만드는 게 포인트였지?”
“당신...”
유자혁은 반쯤 뜨고 있던 눈을 완전히 뜨며 정인태를 바라봤다.
“근데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이를 악물고 있는 정인태의 눈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내 딸이 착각했을 리는 없거든.”
“...딸?”
유자혁의 말에 정인태가 눈을 크게 떴다.
“유자혁... 유... 차빈?”
“오,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나 보네?”
“씨X...”
“아무리 그래도 윗사람한테 씨X이 뭐냐 씨X이.”
똑똑.
그때, 누군가가 정인태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
“어, 들어와.”
정인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자혁은 마치 자신의 사무실인 것처럼 들어오라 말했고.
덜컥.
밖에 있는 사람도 유자혁의 목소리에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은 레나를 비롯한 다섯의 무력대원.
그리고 그들의 옆구리에 끼어있는 일곱의 G.K 이사들이었다.
“생각보다 늦었네?”
“...그야 바닥을 뚫고 올라오는 것보다는 늦죠...”
사무실 중앙에 뚫려있는 구멍을 본 레나가 낮게 한숨을 쉬며 자신의 옆구리에 끼어있는 이사 하나를 바닥에 던졌다.
“어흑!”
기절해 있던 이사가 바닥을 뒹구는 충격에 정신을 차렸다.
“여, 여긴...?”
그리고 그걸 본 다른 무력대원들도 자신들이 들고 있던 이사들을 하나씩 던졌다.
“으억!?”
깬 사람도 안 깬 사람도 있지만, 아무튼 지사장실에 G.K의 지사장과 7명의 이사. 즉 G.K의 권력의 핵심이 모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비켜봐요!!”
“응? 아 총대장 따님분.”
“맞으니까 좀 비켜욧!”
“넵!”
문을 막고 있는 무력대원들을 뚫고 서류를 한 아름 안고 있는 유차빈이 지사장실에 들어왔다.
“오~ 딸~ 왔어?”
“이게 지금...!?”
바닥에 뚫린 구멍, 널브러져 있는 일곱의 이사들, 그리고 화를 참고 있는 듯한 정인태의 일그러진 표정을 본 유차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아버지! 제가 어제 분명 계획을...”
“에이, 결과 올롸잇!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면 되는...”
“귀찮아서 그런 거잖아요!!”
“여윽시 내 딸이야. 나를 너무 잘 알아.”
“설마 이렇게까지... 하아...”
이마에 손을 대고 한숨을 푹푹 쉬던 유차빈이 어차피 일어난 일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고개를 들어 정인태를 바라봤다.
“유 실장...”
“지사장님. 웬만하면 얌전히 자리에서 내려와 주셨으면 해요.”
“정식으로 허가받지도 않은 일을 내가 왜 따라야 하지?”
“그게 조금이나마 명예롭게 퇴직할 유일한 기회니까요.”
“명예?”
유차빈은 자신이 들고 있는 수많은 서류를 바라봤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그리 쓸모 있는 것들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바닥에 흩뿌렸다.
“전부 그동안 당신이 지시한 횡령, 정보 조작, 기술 유출, 뇌물 수주, 범죄 은폐 등등에 관한 정보예요.”
“...네년이 감히...!”
“아, 참고로 아주 꽁꽁 숨겨져 있던 것들을 취합한 것뿐이지, 제가 모은 정보들은 아니에요.”
“...”
유차빈이 이것을 찾은 것은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G.K 본사의 각종 정보 데이터에 알아보기도 힘들게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있던 정인태의,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가디언 코리아의 치부에 대한 증거들.
비서들이 모아온 각종 정보들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 사람이 유차빈이 아니었다면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급하게 숨겨놓은 듯한 아주 약간의 어색함이 없었다면 그저 더미 정보라고 치부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아마 서진우. 그 사람이겠죠.”
몇 년이 걸려 모은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나서 누군가가 이것을 발견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숨겨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의 원념이 나를...’
유차빈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서진우의 영혼이 자신을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
정인태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바닥에 흩뿌려진 서류들을 바라봤다.
‘7년 전, 일반인을 죽인 것.’
‘6년 전, 빌런의 뇌물을 받은 것.’
‘6년 전, G.K 기술 연구소의 신기술을 중국에 넘긴 것.’
‘5년 전,’
‘4년.’
‘3년.’
‘3년.’
.
.
.
‘1년 전, 계속해서 거슬리는 무능력자 하나를 죽인 것.’
“하...”
자신 이외에도 일곱 명의 이사들의 치부가 잔뜩이었지만, 오로지 자신의 치부만을 순식간에 읽어낸 정인태가 어이없는 한탄을 내뱉었다.
“그 버러지가 이런... 미쳐버리겠군.”
가장 오래된 것이 7년 전. 마침 자신이 지사장직에 올랐을 때.
‘그때부터 내 치부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정인태도 머리는 있었기에 당연히 자신의 치부가 될 만한 증거를 남긴 적은 없다.
‘그때면 서진우는 정보 총괄도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이렇게 명확한 증거들이 있는 것은 자신이 증거 인멸을 하기 전에 미리 정보를 수집했다는 뜻.
서진우는 자신이 지사장직에 오를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자신이 선을 넘을 것을 예상하고 자신을 몰락시킬 정보를 꾸준히 모아왔다는 것이다.
‘이럴 낌새가 보여 신명하 그놈이 서진우를 처리할 때 묵인한 건데...’
처리하고 난 이후에도 서진우가 관여했던 모든 것을 직접 살펴보기까지 했던 터라 더더욱 충격이 컸다.
“여윽시 내 딸, 이거 내 도움도 필요 없던 거 아니야?”
유차빈도 그렇다. 혼자 자신을 끌어내고자 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힘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꽁꽁 숨겨놨던 혈연, 즉 아시아 통괄 무력대 총대장인 유자혁을 끌어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무력대의 대원들까지 있다.
“......”
이 정도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 정도는 그냥 알 수 있었다.
“음? 너 뭐 먹냐?”
그것을 깨달은 정인태가 뭔가에 홀린 듯이 품속의 작은 상자에서 붉은색의 알약을 꺼내 입에 넣고 삼켰다.
설마 보는 앞에서 당당히 약을 먹으리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터라 유자혁과 유차빈 둘 다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쿠궁!
“어어? 이 새끼 마력 끌어올리는 것 봐라!?”
평소와는 다르게 마음의 평화는커녕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쿠구궁!
“어...?”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거늘. 자신이 가디언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쌓아왔거늘.
“차빈아! 뒤로 빠, 아니 건물 밖으로 나가라! 너희들도 빠져!”
“알았어요!”
““넵!””
“아니 망설이는 것 정도는 해주지?!”
고작 이딴 ‘작은’ 일 때문에 지사장 자리에서 내려가야 한단 말인가?
“아시아 통괄 무력, 에이씨 겁나 기네! 아무튼 나를 공격한다는 건 혐의를 인정한다는...”
쿠구구궁!!!
“들어라 좀!”
인정할 수 없다.
“귀찮게 이러지 말고 얌전히 갑시다? 응?”
이딴 일로 버려질 수 없다.
“대체 뭘 집어 처먹었길래, 염동력 수준이 이딴...!”
자신은 버리는 쪽이지, 버림받는 쪽일 수는 없다.
“아놔! 이제 나도 몰라! 정인태! 널 배신자로 규정하고 제압...”
이제는 분노를 참는 것조차 질렸다. 왜 굳이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자신은 선택받은 자. 이대로 끝나기에는 아까운 자.
쿠구구구궁!!!
“어, 어어!?”
괜찮다.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발산하고 나면 평소처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겠지. 그럼 천천히 정리하면 될 것이다.
“야, 야. 이 밑에 니 부하들 많다? 이러다 무너져 인마...!”
아니, 그녀의 말처럼 이 분노를 마음껏 발산하고 나면 그저 평화가 아닌.
“구원이... 올 것이다.”
콰르르르르릉!!!
정인태의 말을 끝으로 가디언 코리아의 본사 건물이 굉음을 울리며 무너졌다.
* * *
“꺄하하하핳, 그래그래! 구원은 본인이 이루는 거지!”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서울의 한복판.
그곳을 바라보며 이렐라인이 화사한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이야~ 사도 친구의 피로 만든 구원의 약이 효과는 참 좋아~”
그리고 품속에서 정인태가 먹은 것과 똑같은 붉은 알약을 꺼내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그분은 아직 계량할 게 많은 물건이라고 했지만~”
그리고 다시 먼지구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도 우리 G.K 지사장 친구의 생각을 이 정도로 제한할 수 있다니~ 역시 그분은 굉장해!”
콰아아앙!
그때, 거대한 폭음이 터져나오며 무너진 G.K 본사 건물의 잔해가 폭발했다.
“오! 역시 아시아 총대장! 고작 건물이 무너진 정도로 죽진 않겠지~”
그에 이렐라인은 눈을 반짝거리며 심각함과 귀찮음이 공존하는 묘한 표정의 남자, 유자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유자혁의 앞, 핏빛으로 물든 마력을 뿜어대는 정인태를 바라봤다.
“약효는 완전히 돈 것 같고~”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고 실실 웃는 이렐라인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자~ 우리 지사장 친구가 얼마나 해줄 수 있을까~? 적어도 팔다리 정도는 분질러 줬으면 하는데~? 아니 약이 잘 맞으면 어쩌면 죽일 수도!? 제발 나한테 처절하고 아름다운 싸움을 보여줘!! 꺄하하하”
그리고 그런 이렐라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콰가가가가각!!!!
정인태의 [염동력]이 땅을 부수고, 건물의 잔해를 분쇄하며 유자혁을 향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