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장은 만능 빌런-88화 (88/109)

가장은 만능 빌런 88화 - 리디북스

“스으읍~ 하아아... 이 텁텁한 공기. 확실히 한국이구만.”

인천 공항, 가디언 아시아 전용 비행장에 내린 유자혁이 크게 숨을 들이켜며 웃음을 지었다.

“총대장, 저희는 아직도 한국에 왜 왔는지 못 들었는데요?”

“음?”

그런 유자혁의 뒤에 있던 다섯의 남녀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 안 했나?”

“네.”

“우리 딸내미 도우러 온 건데?”

“...네?”

능글맞은 말투로 말하는 유자혁의 모습에 다섯의 무력대 대원들이 요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훈련장에서 소리친 그거요?”

“오. 그러고 보니 너는 제4 무력대였지? 맞아.”

“...미친... 개인적인 일에 대원을 하나하나 고르시길래 뭔가 했더니...”

“아 그거?”

유자혁은 자신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냥 너희가 한국어 할 줄 알아서 고른 건데?”

“...대장 한 대 쳐도 됩니까?”

“되겠냐?”

어차피 무력대의 대장급이 아니면 대원들은 다 거기서 거기인 실력이었기에 정말로 대충 고른 유자혁이었다.

“뭐 겸사겸사 G.K 감사도 하고.”

“...감사? 딸을 도우러 온 게 왜 감사를 하게 되는 거죠?”

“우리 딸이 G.K 총비서실장이거든.”

“...? 딸을 감사하겠다는 건가요?”

“설마~ 딸의 상사를 감사해야지.”

“총비서실장의 상사? 지사장 말입니까?”

“엉.”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유자혁의 말에 다섯의 대원 유일한 여성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부의 지사장을 감사하기 위해서는 총본부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엥? 그래?”

“...설마 진짜로 그냥 온 건...”

“설마가 아니라 진짜로 그냥 왔는데... 문제가 생기려나?”

“생기려나? 가 아니라 생깁니다!”

이마에 핏줄을 세운 여성 대원이 소리치자 찔끔한 유자혁이 손을 내둘렀다.

“워워 그렇게 화내면 주름살 생긴다?”

“...”

“야! 레나! 참아!! 아무리 그래도 총대장이라고!”

“야 놔봐! 내가 진짜로 한 대라도 치고 말 거야!!”

레나라는 여성 대원이 진짜로 한 대 후려칠 것처럼 성을 내자 다른 네 명의 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렸다.

“놔!! 이거 안 놔?!”

“어이쿠. 딸내미가 기다리겠구만~”

슬쩍 그들을 외면한 유자혁이 공항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놔아아!! 한 대!! 딱 한 대만 치자아아!!”

“악! 머리끄댕이 잡지 마!!”

“왜 우리한테 화풀이야!?!”

솔직히 저기에 끼는 건 귀찮기도 했고 말이다.

* * *

“이거이거, 생각보다 거물이 걸렸네~”

인천 공항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하늘 위. 구원교의 주교, 이렐라인이 허공에서 엎드려 턱을 괸 자세로 인천 공항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장이나 그 언저리가 걸리면 참 좋겠다 생각했는데~”

이렐라인은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총대장이 낚일 줄이야!!”

그리고 갑자기 볼이 붉어지며 사랑에 빠진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총대장 정도면 그분께서도 만족하시겠지? 칭찬해 주실 거야! 음음! 틀림없어!”

싱글벙글 다리를 동동거리며 신나 하던 이렐라인이 갑자기 순식간에 움직여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엇차차...”

그리고 구름 아래로 쏙 하고 얼굴만을 내밀어 몰래 인천 공항을 살폈다.

“설마 이 거리에서 들킬 뻔하다니...”

개미... 아니, 그보다 월등히 작게 보이는 인천 공항의 외부.

이렐라인의 눈에는 그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유자혁이 보였다.

“천리안 계통의 능력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감인가? 뭐가 됐든 대단하네~ 으엑! 축축해!”

다시 쏙 하고 구름 속으로 들어간 이렐라인이 적당히 구름을 치워 축축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내고는 구멍을 뽕뽕 뚫어 인천 공항이 보이는 창문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냈다.

“바로 가려나~? 아니면 어딜 들렀다 가려나~?”

그렇게 잠시 유자혁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이렐라인이 아차! 하며 한 장의 종이와 펜을 꺼내 들었다.

“제이든한테도 움직이라고 해놔야지. 까먹을 뻔했네.”

사각, 사각.

그리고 이렐라인이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잠시 후.

스슥, 스슥.

종이의 빈 공간에 저절로 글씨가 적혀가기 시작했다.

“됐고.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네~”

글씨를 확인한 이렐라인이 종이를 허공에 적당히 버리자.

화르륵!

종이는 순식간에 불타올라 이내 사라졌다.

“흥흥흥~ 부디 그분이 즐거우시도록 격렬한 춤을 추길 바라~”

유자혁이 차에 타고 인천 공항을 빠져나가는 것을 본 이렐라인이 그렇게 말하며 히히 웃음을 지었다.

* * *

치이이익! 화르륵! 덜그럭! 덜그럭!

“3번 테이블 메인 디쉬 아직인가요!?”

“플레이팅만 하면 끝!”

“기다릴게요!”

수많은 소리가 한 번에 울리는 한 레스토랑의 주방.

“신입!! 설거지 다 했으면 여기 좀 닦아줘!”

“넵! 갑니다!!”

이전 신명하가 미쳐 날뛸 당시, 홀로 그를 막다 중상을 입고 쓰러졌던 대성 길드의 A급 능력자, 이광진.

촤르르륵!

“오오, 역시 이건 참 편하단 말이지.”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야채가 좀 부족하겠군, 가서 손질하자.”

“넵!”

정부가 초능력자 사회 융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100인의 초능력자를 뽑는다 공지했을 때, 부상 때문에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신청한 이광진은 지금 자신의 꿈.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어어!! 능력을 쓰는 건 좋은데 파에 손상 안 가게 조심해서 해!”

“네, 넵!”

비록 지금은 [수분 조작]을 사용해 설거지를 하고 야채를 손질하는 등 잡일 담당이지만 말이다.

딸랑~

“후우, 마지막 손님 가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다들 수고하셨어요!”

“자자, 얼른 정리하고 퇴근합시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고. 문을 닫은 레스토랑에서 다 같이 뒷정리를 할 때.

“이야. 초능력자는 다 치고받고만 할 줄 아는 줄 알았더니 아주 식기세척기가 따로 없어?”

“야채 손질은 또 어떻고요? 야채에서 광이 나더만!”

성격에 모난 곳도 없고, 성실하게 일하는 이광진이 다들 마음에 들었는지 다들 바닥 청소를 하고 있는 이광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에 이광진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숙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 모습을 살펴보던 홀 매니저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다 맞다. 그러고 보니 내일 누가 온다고 했는데?”

“누구요?”

“잠시만... 꽤 중요한 사람이었던 거 같은데...”

예약 일정표를 살피던 홀 매니저가 이내 눈이 커지며 고개를 들었다.

“대성 그룹 회장님이랑 그 아내분!”

“헉!”

“헐... 저희 레스토랑에 대기업 회장은 처음 오는 거 아니에요!?”

“점장님이 부담 갖지 말라고 말을 안 하신 모양이네.”

홀 매니저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놀라는 것과는 별개로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자, 실수하지 말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

그 사이에서 이광진은 홀로 안색이 어두웠다.

‘대성...’

이광진이 바로 얼마 전까지 몸담고 있던 길드가 바로 대성 길드.

이름부터 티가 잔뜩 나듯이 대성 길드는 대성 그룹에서 만든 기업형 길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광진은 대성을 나오게 되었고, 솔직히 이제는 이광진과 상관없는 곳이었지만.

‘여기는 좋은 곳이지만... 대기업 회장이 오기에는 솔직히 애매한 곳인데...’

이광진은 왠지 대성의 회장이 자신이 이곳에 있기에 오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

분위기를 깨기는 싫었기에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이광진이 슬쩍 뒤로 빠져 묵묵히 청소를 이어갔다.

‘별일 없어야 할 텐데...’

지금의 생활이 좋았기에, 진심으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이광진이었다.

“그래, 전에는 우리 길드에 있었다지.”

“...”

그 생각은 다음 날 바로 부숴졌지만 말이다.

* * *

“나는 말일세. 길드 하나하나가 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단체라고 생각한다네.”

“예...”

“그런데 그 신... 신명하? 그놈은 쓰레기통이라고 하질 않나. 우리가 정부의 손을 들자마자 G.K에서는 협박이란 협박은 다 해오질 않나.”

“...”

분명 아내랑 함께 온다고 한 것 같은데 왜 자신의 앞에는 오로지 대성의 회장, 박남호만 있는 것일까.

“실제로 빌런을 퇴치하는 실적은 가디언보다는 길드가 두 배는 더 많네. 그런데도...”

아니, 애초에 자신은 왜 박남호 회장의 푸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회장님.”

“음?”

“실례지만 그... 오늘 아내분과 함께 오신다고...”

“아아, 아내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해서 말이네. 뭐 이제 늙은이랑은 같이 밥을 먹기도 싫은 것인지 원...”

“...”

혼자 찾아와 예약해놓은 코스 요리를 취소시키지 않고 전부 내달라 하고.

남는 것은 아까우니 같이 먹으면서 말 상대를 해줄 만한 사람을 부탁한다는 박남호 회장의 말은 명백한 갑질이었지만, 감히 이 작은 레스토랑의 점장이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최근 초능력자에 대해 흥미가 많아서 말이네. 혹시 식당에 초능력자가 있으면 부탁하지.)

라는. 누가 들어도 이광진을 지목한 박남호 회장의 ‘부탁’.

가족에게 갑자기 일이 생겼다는 얘기는 100% 거짓말이라는 것 정도는 딱히 독심술이나 뭐가 없어도 알 수 있었다.

“...”

“하하하! 자네 생각하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는 스타일이구만.”

“아...”

이런 생각들이 어느새 얼굴에 드러났는지 이광진을 본 박남호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 실없는 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지. 음식도 대충 다 먹었고.”

그래도 음식들은 나쁘지 않았는지 전부 먹긴 한 박남호 회장이었다.

“사실 자네를 찾아온 건 그리 복잡한 이유 때문은 아니네.”

“...”

역시나 자신을 콕 짚어서 찾아온 게 맞았다는 생각에 이광진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꾹 참아냈다.

“얼마 전에 비사가 꽤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더군.”

“영상... 말입니까?”

“그래. 어디 보자...”

식탁에 올라와 있는 스마트폰을 든 박남호 회장이 뭔가를 재생하고는 이광진을 향해 보여줬다.

“이건...”

(씨X! 나는 내가 원해서 길드에 들어갔는 줄 알아!?)

(씨X! 내가 원해서 능력을 각성했는 줄 아냐고!!)

(나도 씨X 꿈이 있었어!! 원해서 능력자가 된 게 아니라고!!)

“...”

한순간에 세 번의 욕설이 나오는 영상.

처절하게 외치며 물의 칼날을 휘두르는 자신의 영상.

“이, 이게...?”

“그래. 내가 본 영상이네.”

“이, 이게 왜...”

자신이 신명하에게 털리기 직전의 모습과 음성이 담긴 영상이었다.

“아직은 그리 널리 퍼져있지는 않지만, 비서의 말로는 꽤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하더군.”

“제, 제 영상이 말입니까? 아, 아니 대체 이걸 누가...”

(살려주마. 대신 네가 나오는 영상을 사용...)

“아.”

흐릿한 기억 속에서 악마의 가면을 쓴 누군가가 영상을 사용한다 어쩐다 말했던 것이 떠오른 이광진이 멍청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짚이는 구석이 있나 보군.”

“그... 있긴... 합니다만...”

“내가 자네를 찾아온 용건이 그 짚이는 구석 때문이네.”

“네?”

박남호 회장은 목이 탔는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영상을 봤을 때 가장 먼저 생각했던 건 자네를 우리 회사의 간판으로 세우는 것이었네.”

“간판... 말입니까?”

“자신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초능력을 각성하여 억지로 길드에 들어와 빌런과 싸우던 남자. A급이니 나름 능력도 뛰어나고 얼굴도 남자답고 좋지. 지금은 또 길드를 나와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고.”

“어...”

얼굴은 잘 모르겠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긴 했기에 이광진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강력한 빌런을 상대로 유일하게 물러나지 않은 사람이니 정의감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대성 출신이니 이만큼 간판에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생각했지.”

박남호 회장은 멋쩍어하는 이광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이네.”

“다른 생각...?”

“이 영상을 퍼뜨리고 있는 사람. 그자를 만나보고 싶네.”

“...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