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87화 - 리디북스
신서하는 내가 왜 여기 있나.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머어머 피부 봐. 완전 애기 피부가 따로 없네!”
“가, 감사합니다...?”
“피부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애기 피부래요~? 완전 꿀피부!”
“아하하...”
“뭘로 관리해요?”
“그... 딱히 관리는...”
“어머머 타고난 거예요? 부러워 죽겠다~”
‘그냥 온몸에 불 한번 붙이면 피부의 불순물들이 다 타버려서 그런 건데...’
[화신] 같은 유니크 능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능력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신서하였기에 그녀의 [화염 조종]은 피부의 불순물을 태워버릴 정도로 컨트롤이 좋았다.
“본판이 워낙에 좋아서 그냥 꾸안꾸로 화장하면 될 것 같아요~”
“꾸안...?”
“꾸민 듯, 안 꾸민 듯!”
“아...”
아까부터 쉬지 않고 계속 떠드는 사람은 박진권이 고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 밖에도 뒤쪽에서 수많은 옷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 스타일리스트.
자신을 인터뷰, 광고 현장까지 픽업해줄 운전 기사.
이런저런 잡일을 맡아서 해줄 매니저에 안전을 책임진다는 경호원까지.
‘내가 뭔데에에...?!’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 터라 특히 경호원이라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 방 안이 선선함에도 식은땀이 나는 신서하의 이마를 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 좀 더운가? 땀이 나네?”
“아하하... 조금 더, 덥네요...”
삑.
말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에어컨을 켠 매니저가 신서하를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 합니다...”
“아닙니다!”
“...”
그냥 지금이라도 인터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호텔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이 드는 신서하였다.
* * *
“짜쟌~!”
“오! 호랑이야? 잘 만들었네 우리 지은이!”
“호랑이 아닌데! 루빈데!”
“어...? 어! 루비! 그래 루비!”
벌써 4번이나 지은이가 뭘 만들었는지 틀려버린 진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근데 지은아, 루비는 검은색에 하얀색...”
“불붙은 루빈데?”
“염왕묘 상태였구나! 역시 우리 지은이! 상상력이 아주!”
천지인이 종이 생명체. [식신 창조]의 능력을 각성하고 지은이는 종이접기에 푹 빠져들었다.
나중에 지인이 언니처럼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힝... 이번에도 안 움직여...”
“그...”
물론 천지인의 [식신 창조]는 매우 희귀, 까딱하면 유니크 능력일 것 같기에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뭐라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진우는 이은선이 오늘 케이크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아, 아아! 지은아 엄마가 오늘 케이크 해준다고 했는데?”
“케이크!?”
다행히 시무룩했던 지은이가 순식간에 회복했다.
“슬슬 다 만들었을 것 같은데 가서...”
“케이크으으~!”
“어...?”
그 효과가 너무 뛰어났던 것인지 지은이는 진우를 뒤로하고 순식간에 뛰쳐나갔다.
“...이건 좀 서러운데...”
잠시 지은이가 나간 문을 바라보던 진우가 고개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우웅!
“음?”
그때, 진우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드디어 움직였나.”
문자의 내용은 굉장히 짧았지만, 그 내용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G.K 각 지부. 1급 요원 소집.)
다 죽어가는 G.K에서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하아, 케이크는 나중에 먹어야겠군.”
진우 또한 이은선이 만든 케이크를 나름대로 기대하고 있었기에 아쉬움의 한숨을 뱉은 진우가 이은선에게 문자를 남기며 걸음을 옮겼다.
* * *
“몇 명?”
“89명입니다.”
“...”
담담하게 말하는 유차빈의 말에 정인태가 인상을 구기며 미간을 주물렀다.
“1급 요원은 분명 150명 정도 있었을 텐데?”
“...정부의 초능력자 사회 융화 프로젝트를 미끼로 꽤 많은 인원이...”
쾅!!!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정인태가 자신의 책상을 강하게 내리쳤다.
“씨X! 그게 뭐라고!! 초능력자 사회 융화? 공존? 씨X!! 그딴 게 가능할 것 같아!? 우리는 괴물이야! 포식자라고!!”
“...”
“하아... 씨X. 아니. 아니지. 이렇게 화를 낼 게 아니라... 아...”
그때, 정인태가 부서진 책상에서 튀어나온 작은 상자를 보며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그 상자를 주워 들어 품에 넣었다.
“...?”
그것을 본 유차빈이 순간 눈가를 움찔거리며 의문을 가졌지만, 딱히 물어보진 않았다.
“아무튼 지금 있는 인원이라도 단단히 붙잡아놔.”
“...알겠습니다.”
유차빈의 세 번째 초능력, [육감]이 본능적으로 그 상자에 대한 것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왔기 때문이었다.
“나가.”
“...네.”
그리고 정인태의 축객령에 살짝 고개를 숙인 유차빈이 아무 말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동안 그 상자 때문에 책상은 건드리지 않은 건가?”
정인태의 사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던 유차빈이 손바닥만 한 작은 상자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하아.”
그리고 걸음을 멈추고 잠시 뭔가를 고민하다 한숨을 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인정하긴 싫지만... 혼자서는 안 돼. 도움이 필요하겠네...”
그리고 자신의 사무실에 도착한 유차빈이 의자에 앉으며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어 정말 싫다는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음? 차빈이냐?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전화를 받은 사람은 현 가디언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이자, 그녀의 아버지, 유자혁이었다.
-그놈의 아버지 소리는...
“...아빠.”
-어...? 어. 그래. 웬일로 순순하네...? 안 봐도 표정은 구겨져 있겠지만.
“...그럴 리가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유차빈의 얼굴은 정말 종이 구겨지듯이 구겨져 있었다.
-그래서?
“...”
-우리 독립심이 철철 흘러넘치는 딸이 이 위대한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건 이유가 뭘까?
이 능글맞은 말투에 열받는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도움을 요청하고자 전화를 건 것은 자신이었기에 유차빈은 차오르는 화를 필사적으로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도... 움이... 필요합... 니다.”
비록 제대로 말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음? 통화 상태가 이상한데? 방금 살면서 딸한테 처음 들어보는 말을 들어본 것 같은데... 한 번만 더 말해주겠니?
“......”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이 무언가를 다시 한번 참아낸 유차빈이 이번에는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리고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후우우웁! (전 부대원 집합!!!)
“...? 지금 무슨...?”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하고 짜증이 날 것 같던 유차빈이 뜬금없이 영어로 부대원들을 부르는 유자혁의 말소리에 의문을 표했다.
-(충성! 제 1 2, 3, 4. 무력대 집합 완료했습니다!)
뭘 하고 있었는지 1분도 안 되어서 집합을 완료했는지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내 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엑!?”
-(...잘못들었습니다?)
-(세상에!! 믿어지질 않는군!! 7살 이후부터는 나에게 뭘 집어 달라고 하지도 않았던 딸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말이다아아아!!!)
“아빠아아아!!!?”
대체 아시아 통괄 무력대라는 정예 집단을 집합시켜두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경악한 유차빈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뭐 할 말은 이게 다다! 해산!!)
-(...옙...)
“...”
유차빈은 자신이 총본부에 올라간다고 해도 자신이 유자혁의 딸인 걸 숨기든지, 아시아 본부에는 얼씬도 하지 않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딸.
“...왜요.”
그사이, 안 봐도 싱글벙글한 표정일 게 뻔한 유자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긴? 도와달라는 내용 정도는 알려줘야 움직이지 않겠니?
“...”
그 말대로였기에 유차빈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G.K의 상황은 아세요?”
-그리 좋지 못하다는 정도는?
“그 정도가 아니에요. 지금 G.K는 가만히 두면 해체될 상황까지 몰렸어요.”
-...그건 좀 심하네.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정인태가 G.K에 남은 1급 요원을 긁어모으고 무슨 짓을 할지를 생각해보면 머지않아 해체의 수순을 밟을 게 뻔했다.
-지금 G.K 지사장이 정인태 그놈이었지?
“맞아요. 그리고 지금 정인태가 뭔가 이상한 거에 손을 댄 것 같아요.”
-이상한 거?
유차빈은 부서진 책상에서 떨어졌던 작은 상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최근 이상할 정도로 초능력이 강해지고 예전보다 더더욱 난폭해진 정인태의 상태를 연결시켰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 무슨 약물 같은 것 같아요. 초능력이 강해지는 대신 판단력이나 성격에 문제가 생기는 그런.”
-...
“제가 움직이면 좋겠지만, 솔직히 혼자서 해결할 자신이 없어요.”
-솔직하구나.
정인태는 개인의 능력이 강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는 총본부에 뒷배가 있다.
쓰잘데없이 강한 자존심 때문에 아직 그 끈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차빈이 내부 고발을 행하여 끝까지 몰리게 되면 반드시 정인태는 총본부의 뒷배를 사용할 터.
그렇게 되면 자신 혼자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는 것 정도는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음... 딸아. 하나만 물어보자.
“네? 네.”
평소의 능글맞은 말투가 아닌 극히 진지한 유자혁의 말투에 유차빈은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버지... 네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가 요즘 한국에서 명성이 자자한 그 빌런 때문이니?
“...”
-맞나 보구나.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
대단한 직위지만 사실상 아시아 지역에 한 나라가 제어할 수 없는 큰일이 일어났을 때만 움직이는 통괄 무력대다.
즉,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 자리는 이른바 꿀 빠는 자리.
-하아... 이거 솔직히 귀찮구나.
때문에 통괄 무력대 총대장의 자리는 모국의 지부, 지사장 자리와 함께해도 아무런 문제 없는 자리다.
-정말... 정말로 귀찮아.
하지만, 한량 근성이 가득한 자신의 아버지는 G.K 지사장직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자리를 정인태가 뒷배를 사용해 꿰찬 것이고 말이다.
‘이 사람은 항상...’
때문에 근면 성실을 신념으로 움직이는 유차빈에게 그런 아버지는 정말 생각만 해도 화가 나는 존재였다.
“...싫으면 관두세요. 위험부담이 있어도 할아버님께 도움을 요청할 테니까요.”
이마에 핏줄이 선 유차빈이 그렇게 말하자.
-푸훗. 딸. 삐졌니?
“...”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유자혁이 능글맞은 말투로 말했다.
-걱정 말거라 거절하는 것은 아니니.
“...그냥 거절하지.”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시 피식 웃은 유자혁이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한국 정부가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해서 흥미가 가는 차였다.
“재밌는...? 아, 사회 융화요?”
-그래. 뭐 직접 가서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귀찮음이 팍팍 느껴지는 말투에 다시 유차빈의 이마에 핏줄이 오르려는 찰나.
-그래도 사랑하는 딸이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한 건데 외면할 수는 없지. 귀찮지만.
“...”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는 유차빈이었다.
-아무튼, 할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말고. 내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 또 난리를 칠 테니.
“...그러게 왜 지사장 자리를.”
-흠흠! 아빠는 준비하러 간다! 한국에서 보자 딸~!
그 말을 끝으로 뚝 하고 끊어진 전화를 잠시 바라보던 유차빈이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엎드렸다.
“하아... 갑자기 피곤하네...”
그렇게 잠시 있다 일어난 유차빈이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그럼 다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