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84화 - 리디북스
“(저것들은 또 무슨...)”
보리스는 양팔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대강연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자들을 바라봤다.
“(...원로?)”
그리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자의 양 옆구리에 끼어있는 노인들을 발견했다.
“(마침 잘 왔네.)”
최유나는 강대호와 류천혁, 그리고 윤이진에게 내려오라 손짓하고 다시 보리스를 바라봤다.
“(이제 네 뒤에 있다는 원로들까지 우리 손에 있네?)”
“(......)”
최유나의 손짓에 신나서 달려오는 세 사람, 그리고 다섯의 원로를 바라보던 보리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감히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여?)”
“(너한테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은데?)”
“(...)”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최유나의 말투와 표정에 보리스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유나 님! 여기 노인네들 대령입니다!”
“(어이쿠! 늙은이 잡는다!)”
“(이런 대머리 자식! 상냥하게 다루지 못할까!)”
“(...)”
“(저저 삼원로 여인네 품에 있다가 떨어졌다고 실망하는 것 보소!?)”
“(아이고! 저놈의 뿔 달린 놈 때문에 옆구리 뚫릴 뻔했네.)”
각자 한마디씩 던지며 최유나의 앞에 널브러진 원로들이 고개를 들어 최유나를 바라봤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에엑!? 최유나 아니여!?)”
“(엉!? 이바노프의 둘째 제자!?)”
“(네가 왜 여깄어!?)”
그리고 그녀를 알아본 원로들이 경악하며 엉덩이를 끌어 뒤로 물러났다.
“(늙은이들. 오랜만이네.)”
그런 원로들을 보며 최유나가 눈을 빛냈다.
“(G.K에 나 팔아먹고. 참 좋았겠어?)”
“(그, 그럴 리가!)”
“(헛소리! 우리는 그런... 그런 적 없다!)”
“(암암! 우리가 얼마나 깨끗하게 돈을 버는데!)”
-최유나 씨, 지금 떠드는 세 사람만 정리한다고 생각하십시오. 다른 둘까지 정리하면 청색은 진짜로 위험해집니다.
루비의 [염화]를 경유해 들려오는 송조운의 말에 최유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다섯의 원로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보리스를 지지하는 것은 세 명.
다른 두 명은 그저 대세에 따라 움직인 것일 뿐, 딱히 적극적으로 뭔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뭣들 하는 거냐!! 외부인이 침입하여 원로들을 핍박하고 있지 않느냐!!)”
그때, 정신을 차린 보리스가 주변의 마법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것에 맞추듯, 사샤노프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소리쳤다.
“(이분들은 청색의 수석 술식 연구자로서 제가 초청한 분들입니다! 청색 마탑의 규율을 일그러뜨린 보리스와 세 명의 원로를 처단하기 위해 말입니다!)”
사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말이었다.
보리스가 사실상 전투 불능에 빠지고, 원로 다섯을 한꺼번에 잡아놨으니 마법사들이 안 움직이는 것이지, 사샤노프의 말에 설득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
(하긴. 청색의 동료를 소중히 하고 그 어느 때라도 지키라고 이바노프 님도 말씀하셨으니...)
(동료를 팔아먹은 자들은 더 이상 동료가 아니겠지...)
(사샤노프 님이 저렇게 말씀하신다면...)
(보리스 님... 아니 보리스가 선을 넘긴 했지.)
(벌을 받는 거야.)
(추하게 질투하고 열등감에 찌들었으니...)
(솔직히 보리스가 마탑주가 된 다음부터 불안하긴 했어.)
아예 설득이 안 통한 건 또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빌어먹을... 개 같은 것들이...!)”
그리고 흔들리는 마법사들의 대화를 듣던 보리스가 이를 갈며 사샤노프와 최유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네년들...!!)”
“(보리스. 넌 완벽하게 졌어. 얌전히 처분을 기다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최유나는 차가운 눈으로 보리스의 살기 가득한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큭, 크크큭...)”
“(...미쳤나?)”
그에 보리스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했다.
“(크큭... 그래, 애초부터 그냥 다 죽이고 시작해야 했어.)”
“(뭐?)”
“(극빙 따위에 신경 쓰고 있을 게 아니었거늘...)”
“(지금 무슨 헛소리...)”
쨍그랑!!!
보리스의 주변을 떠다니며 탁한 푸른색을 흩뿌리던 빙정이 빛을 잃고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커어억!!”
그리고 보리스가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피를 토했다.
“(뭔...)”
“(보리스가 빙정과의 연결을 억지로 끊어버린 거야. 그래서 내상을 입은 거고.)”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크큭거리며 웃는 보리스가 제정신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극빙이나 빙정의 공통점은 한번 연결하면 쉽게 연결을 끊을 수 없다는 거지. 억지로 끊으면 내상을 입고. 뭐 이바노프 님의 극빙은 그냥 살짝 내상을 입고 끝나지만...)”
그리고 사샤노프가 그런 보리스를 보며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
“(창피한 얘기기는 한데 내가 만든 빙정은 극빙처럼 상냥하지 않아.)”
사실대로 말하면 ‘뛰어나지 않아.’라고 말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자존심도 챙길 겸 돌려 말하는 사샤노프였다.
“(죽을 것 같지? 안 그래도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빙결의 마력이 역류했으니 죽을 것 같을 거야.)”
“(크, 큭크그극...)”
보리스는 계속해서 피를 토하며 웃기만 하고 있었다.
“(...유나야 얘 완전히 맛이 갔나봐.)”
“(그건 좀 곤란한데...)”
그에 보리스가 완전히 정신을 놨다 판단한 사샤노프와 최유나가 어째야 할까를 고민하는 그때.
“(가질 수 없다면... 부수는 게... 맞겠지...)”
오싹!
“(사샤!! 물러나!!)”
“(어? 꺄아악!)”
쿠화아아아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대며 엎어져 있던 보리스의 전신에서 끔찍할 정도의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미, 미친!! 죽는 줄 알았네!)”
마법도 아닌 마력의 방출에 밀려난 사샤노프가 망가진 빙정처럼 정제되지 않은 탁한 빙결의 마력을 뿜어내는 보리스를 보며 경악했다.
“(마법... 은 아니야, 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최유나는 마력을 뿜어내는 보리스를 바라보며 침착하게 그가 무슨 짓을 하려 하는지를 알아내려 했지만, 술식도, 마력 응집도, 그 무슨 마법적 징조가 보이질 않는 그저 단순한 마력 방출인 것을 확인했을 뿐, 알아낸 것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최유... 나아아아--!!!)”
스으으, 콰앙!!!
단순히 일어나기 위해 발을 디뎠을 뿐인 보리스를 중심으로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신체 강화?)”
어느새 보리스의 전신에 올라온 힘줄과 핏줄. 그리고 실핏줄이 터져 붉어진 눈을 보며 최유나가 중얼거렸다.
“(마법사라고 신체 강화를 못 하는 건 아니니까, 불가능하진 않지만...)”
“(크아아아아-!!!)”
“(으윽! 이건 정도가 심하잖아..!)”
크게 소리를 지르는 단순한 행동에 최유나가 귀를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빙정!!)”
“(뭐?)”
“(빙정에서 역류한 마력을 전부 신체 강화로 돌린 거야!!)”
사샤노프의 말에 그렇다 답하기라도 하는 듯이 보리스의 전신에서 미약한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 죽겠지만... 아마 그 전까지는 이 상태가 계속...!)”
“(죽어어어어-!!!)”
사샤노프가 말하는 도중, 보리스가 대강연실의 땅을 박차며 최유나에게 돌격했고.
“어딜 감히!”
“근육덩어리 자식이!”
최유나의 앞을 류천혁과 강대호가 막아섰다.
“크롸아아아!!”
류천혁은 완전 용인화를 사용해 완벽한 용인(龍人)의 모습으로.
“으랴아압!”
강대호는 양다리를 독수리의 것으로, 양손을 사자의 그것으로 바꿨다.
“(비루한 아인 새끼들이!!)”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거든!!”
“크롸아아아!!”
콰아아앙!!!
“크윽!!”
“크롸악!?”
보리스가 무인은 아니었기에 그저 막 휘두른 주먹일 뿐이었지만, 생명을 태우며 사용하는 신체 강화와 그의 주먹에 담긴 막대한 마력은 두 사람을 당황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콰드드득!
강대호가 왼손, 류천혁이 오른손. 각자 한 손씩 막아냈음에도 둘은 땅을 긁으며 밀려났다.
“뭐, 뭔데! 마법사라며!”
“크롸아! 콰라! 크로아!”
“용인화하고 말하면 모른다고 임마!”
그 모습에 두 사람의 뒤에 있던 최유나가 급하게 극빙에 마력을 주입하고, 다시 받아들이며 마법을 준비했다.
‘어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아이스 니들!”
최유나의 주문과 함께 얇은 얼음의 바늘 수십 개가 허공에 나타나고, 류천혁, 강대호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보리스의 모든 관절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푸스스스...
“뭣!?”
공간을 잠식하는 보리스의 마력 때문인지 최유나가 사용한 아이스 니들은 보리스에게 닿지도 못하고 부스러져 사라졌다.
드드득!!
“어윽!! 겁나...! 무겁... 네!!”
“크르르륵!!”
그사이, 이제는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까지 밀린 두 사람이 슬쩍 빠져있는 윤이진을 바라봤다.
“이진아! 뭐라도 해봐!”
“크롸!”
“알았어!”
후우웅!!!
그에 윤이진은 하체를 뱀의 그것으로 바꿔 보리스의 머리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지만.
까아앙!!
“엑!?”
마치 강철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보리스의 머리를 후려친 윤이진의 꼬리가 튕겨나왔다.
“악! 아파!”
“아프냐! 우린 뒤질 것 같은데...!?”
“크로오오악!”
“얘 봐! 우는 소리 이상해졌잖아!”
그야말로 무적이 되어 버린 듯한 보리스의 모습에 모두가 초조해질 때쯤.
“냐아아~.”
-나왔어~
루비가 최유나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루비야!”
“냐앙?”
-이건 무슨 개판이래?
“설명은 나중에 해줄게! 아무래도 지금 보리스 저놈이 빙결계 마력을 전부 무효화하는 것 같거든? 도와줄 수 있어?”
마법이 부스러지듯 사라진 직후, 순식간에 마력을 투사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낸 최유나였기에 확신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루비의 공격은 통할 거야. 다만 신체 강화 때문에 위험하니까 철저하게 원거리에서...”
“냐앙.”
-빙결계 마력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야?
“응? 그렇긴 한데...”
-그럼 내가 마력을 공급해줄게. 그걸로 마법을 사용하면 되잖아.
“어?”
얼핏 들으면 간단한 일이지만, 사실 지금 루비가 하는 말은 얼음덩어리에 불을 붙이라는 소리와 같았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냥 불가능에 가깝다는 소리다.
“그냥 루비가 제압해주...”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주인이 G... R? 거기가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 웬만하면 힘을 쓰지 말라고 했어.
“아...”
진우의 지시라는 말에 할 말을 잃은 최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럼 어쩌지...?”
-어쩌긴,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되잖아?
“그게 말이 쉽지...”
“꾸에엑! 짜부! 짜부된다!!”
“크롹! 크에엑!”
“둘을 놔줘 괴물아!!”
용인, 독수리 다리에 사자의 손을 가진 남자, 뱀녀. 그리고 마력에 의해 강화된 인간.
누가 괴물인지는 좀 애매하나 아무튼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빙결 마력 무효화 때문에 마법사들도 도움이 안 될 거고...”
최유나는 슬쩍 구석에 박혀있는 송조운을 바라봤지만.
‘...전 전투원이 아닙니다?’라는 입모양을 보고는 그냥 다시 보리스를 바라봤다.
“야! 손 안 치워!? 나도 완전 그리핀화한다!? 한다!?”
“크롸롸롸!”
“할 거면 빨리해요!!”
“미안! 사실 못 해!”
“그럼 말을 하질 말던가!!!”
“하아... 어쩔 수 없지.”
아직은 나름 유쾌한 세 사람이긴 하나 진짜로 큰일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최유나는 루비에게 말했다.
“마력 넘겨줘.”
“냐아앙~”
-알았어~
화염의 마력을 넘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