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83화 - 리디북스
시간, 공간, 그리고 감정조차 얼어붙어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
“......”
최유나의 손 위에 찬란히 빛나는 극빙을 보며 모두가 말을 잃었다.
“(말도... 말도 안 된다!!)”
정적을 깬 것은 역시나 보리스.
반사적으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보리스가 소리를 치며 고요함이 깨졌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하지만 담담하게 말하는 최유나의 말에 반문할 거리도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보리스는 표정을 구기며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보리스. 네 손에 있는 그 어설픈 극빙, 그리고 내가 가진 극빙. 뭐가 진짜인지는 그냥 보기만 해도 알 거고, 눈이 없어도 느껴지는 마력만으로도 알겠지.)”
그에 최유나가 보리스가 서있는 단상 위로 오르며 입을 열었다.
아직도 최유나의 극빙을 보며 입을 벌리고 있던 마법사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최유나의 손에 있는 극빙은 보리스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도 압도적인 빙결의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후우...”
어느새 단상 위로 완전히 올라간 최유나가 짧게 심호흡을 하며 대강연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청색의 마법사들을 바라봤다.
“(저는 이 자리에서 그간 보리스가 행했던 모든 악행에 대한 처벌을 논하고자 합니다!)”
“(뭣!? 그게 무슨 헛소...!)”
최유나는 보리스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마탑주의 자리를 욕심내어 전대 마탑주이자 그의 스승... 그리고 저의 스승! 알렉산드로 아드릭 이바노프 님을 함정에 빠뜨린 죄 또한!)”
“(최유나아아아!!!)”
보리스가 분노하든 마법을 준비하든 최유나는 그저 앞만 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비노프 님이 청색을 세울 당시 세우신 다섯의 규율을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보리스의 손에 들린 극빙, 아니 빙정이 마력을 뿜어내며 보리스의 마법을 보조한다.
“(청색의 규율 그 세 번째!)”
“(죽어어어!! 블리자드 데스 봄!!)”
이내 순식간에 완성된 보리스의 마법이 최유나의 뒤를 향해 쏘아지고.
“(배신자는 영원한 얼음 속에 갇히리라!)”
콰앙!! 쩌저저저저적!!!
최유나의 등에 직격해 폭발하며 동시에 얼어붙었다.
(유, 유나 님!!!)
(이, 이런!)
(보리스 저 미친 작자가!!)
“(크, 크하하!!! 결국 저년이 가지고 있던 극빙은 가짜라는 소리다! 진짜였으면 막았겠지!! 안 그런가!? 크하하하!)”
최유나는 폭발이 얼어붙으며 생겨난 수증기에 완전히 가려졌지만 자신의 블리자드 데스 봄에 맞은 이상 죽었으리라 판단한 보리스가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맞는 말이야. 이게 가짜라면 난 죽었겠지.)”
“(뭣?!)”
수증기 속에서 들려오는 최유나의 목소리에 그의 웃음은 그대로 멈춰 버렸다.
“(가짜라면 말이야.)”
츠즈즈즉!
허공을 맴돌던 수증기가 얼어붙어 수십 개의 얼음 송곳으로 변했다.
“아이시클 버스터.”
“(감히!)”
쩌저저정!
최유나의 영창과 함께 허공에 떠있던 고드름들이 가속하며 보리스에게 날아갔지만, 보리스는 순식간에 방어 마법을 펼치며 아무런 피해도 없이 막아냈다.
“(...)”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보리스의 모습에 최유나는 사샤노프의 말을 떠올렸다.
‘빙정은 미완성이야. 보리스는 빙정을 통해 대마법사가 되고자 하는 것 같지만,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 빙정을 완성할 수 없다고 하는 게 맞아.’
“(프로스트 임팩트!)”
“아이스 윌!”
콰과과광!!
“(아이스 불릿!)”
“잭 프로스트!”
퍼버버벙!
‘그는 강해. 빙정을 가졌으니 더 강해졌겠지.’
“(블레이즈 노바 스톰!)”
“대마법!?”
“(크하하하! 가짜라도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것은 진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정정당당하게 싸우려고 하지 마. 네 승리 조건은...’
드득...
최유나의 눈에 미약하긴 하지만 빙정에 금이 간 것이 보였다.
‘보리스가 자신의 역량 이상의 마법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
“빙화의 숨결! 빙룡의 비늘!”
그리고 보리스가 사용한 대마법을 방어하고자 극빙의 힘을 빌려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마법을 사용했지만.
“꺄아악!”
‘그로 인해 미완성의 빙정을 폭주시키는 것.’
얼음 칼날의 일부가 최유나의 마법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몸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드드득!
하지만 균열이 더 심해진 빙정을 본 최유나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더더욱 마력을 끌어올릴 뿐이었다.
츠즈즉!
“(...미쳤군.)”
자신의 상처를 얼려 지혈한 최유나를 보며 보리스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보리스. 너는 할배... 스승님이 내가 아니라 너에게 마탑주의 자리를 내주려고 했던 걸 알고 있었잖아!)”
“(하! 그 거짓말을 믿고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펑! 펑!
보리스는 계속해서 얼음의 탄환을 쏘아내고, 최유나는 그것을 막아냈다.
“(언제나 그랬다! 네년의 재능을 숨기고자 나에게 하는 말들은 언제나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스승님은 진심이었어! 진심으로 내가 아닌 너에게 마탑주의 자리를 넘기려 했다고! 비열한 욕심과 악행으로 스승님의 마음을 바꾸게 만든 건 너야!)”
“(닥쳐라!!)”
균열이 생긴 빙정의 마력은 불안정해지고, 그 불안정한 마력이 보리스에게 흘러 들어가며 그는 점점 이성을 잃고 있었다.
“(무려 20년이 넘게 그를 따랐다! 네년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찬란히 빛나고 있었단 말이다!!)”
콰아아앙!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헉! 마법이 날아온다!!)
(보리스 님이 이성을 잃었다!)
(막아!! 힘을 합쳐!)
눈먼 보리스의 마법들이 최유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모두 네년이 문제다!! 전부!! 네년이!!)”
하지만, 보리스는 마법을 제어할 생각을 하지 않고 더 강하고, 많은 마법만을 쏘아낼 뿐이었다.
“(누구보다 찬란히 빛나던 내가!! 네년 때문에 빛을 잃었단 말이다!!)”
“끄으으...”
그에 방어만 하던 최유나가 내상을 입었는지 입가에서 피를 흘렸다.
“(이바노프 그 늙은이를 없앤 이상!! 너만 없으면!! 죽어라!! 블레이즈 노바 스톰!!!)”
그리고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쩌어엉-!
“(어?)”
연속된 대마법에 의한 부담이 쌓인 빙정이 마침내 완전히 망가졌다.
“(이게 왜...)”
보리스는 마법을 쏘아내던 모습 그대로 시퍼렇게 질려 완전히 얼어버린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아아...”
그리고 드디어 숨을 돌릴 수 있게 된 최유나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보리스에게 다가갔다.
“(무슨 짓을 한 거냐!! 프로스트 임팩트!!)”
보리스는 그런 최유나를 향해 왼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쩌어엉-!!!
“(끄아아아악!!!)”
대마법이 아님에도 그가 사용한 프로스트 임팩트는 불발하고, 그의 왼손이 얼어붙을 뿐이었다.
“(내... 손!! 내 손이!!!)”
겉으로는 그저 시퍼렇게 변했을 뿐이지만, 평생을 빙결 마법만을 사용해온 보리스는 자신의 양손이 완벽하게 얼어버렸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대체...! 빙정...! 그래 빙정이라면...!?)”
그리고 그제야 빙정의 상태를 확인한 보리스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이, 이게... 이게 대체...)”
탁한 색은 거의 사라지고 온전히 푸르게 변했을 터인 빙정은 어느새 처음보다 더욱 탁해져 푸른빛을 잃은 상황.
거기에 빙정의 전체에 흉측하게 생겨난 균열은 더 이상 회생 불가능한 상태라 말하는 듯했다.
“(극빙과는 다르게 빙정은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마력만을 정제하고 공급해.)”
“(사샤노프... 사샤노프 네녀어어언!!!)”
어디에 숨어있다 나온 건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사샤노프가 단상 위로 올라오며 말하는 것에 보리스가 괴성을 질러댔다.
“(네년들이 감히 이러고 무사할 것 같으냐?!! 내 뒤에는 원로원이 있다! 나를 지지하는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원로원...)”
말끝을 흐리는 사샤노프의 모습에 협박이 통하고 있다고 판단한 보리스가 입가를 올리며 말을 이으려는 그때.
쾅! 덜컹!!
“유나 님!! 저희 왔습니다~!”
대강연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 * *
최유나와 보리스가 맞붙기 직전.
“이게 마탑의 원로...?”
“세상에나...”
“말도 안 돼...”
“냐아아...”
대강연실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모여있었고, 사샤노프가 몰래 방범 술식을 만져놨기에 손쉽게 마탑 안으로 잠입 할 수 있었던 세 아인과 루비가 마탑의 최상층, 그 바로 아래에 머무는 다섯의 청색 원로원들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감히 이곳에 그 더러운 발을 들이다니!!)”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놈들!!)”
“(아인! 아인이 아닌가!)”
“(아인!? 아인이잖아! 에잉! 더러운 것들이 감히!)”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약하잖아...”
“그냥 노인을 공격하는 것 같아서 양심에 찔려...”
“활약... 활약해야 하는데...”
명색이 4대 마탑 중 하나, 청색의 원로원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아무런 힘도 없는 그냥 노인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스 볼!)”
파강!
“...?”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마법을 조금 배운 노인들이라 해야 할까?
가장 앞에 나온 원로가 쏘아낸 얼음 공이 강대호의 가슴팍에 맞고 그대로 터져 사라졌다.
“(흐어억! 내 아이스 볼이!? 괴물! 괴물이구나아아!)”
“...아니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마치 힘없는 노인을 핍박하는 듯한 기분에 강대호는 멋쩍게 자신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루비를 바라봤다.
“저... 루비? 이거 어째?”
“냐앙.”
-어쩌긴 뭘 어째. 일단 제압해서 최유나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지.
“그렇... 지?”
단호하기 그지없는 루비의 말에 어색하게 웃은 강대호가 다시 원로들을 바라봤다.
“(뭐! 뭐 이놈아! 뭘 쳐다봐!?)”
“(이런 쉬부럴 놈이!? 눈 안 깔아!? 우리가 바로 이 청색의 원로들이란 말이다!!)”
“하아...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일단 끌고 가자.”
“그래야지.”
“응.”
강대호의 말에 류천혁과 윤이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원로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 뭐시여! 이거 안 놔!? 악! 뿔! 뿔 아프다 이놈아!!)”
“(어딜 더러운 아인이 손을 대는 것이냐!!)”
“(......)”
“(아이고 삼원로! 예쁘장한 아인한테 잡혔다고 가만히 있는 것 좀 보소!? 나도 차라리 여인네가 잡아줘라!! 대머리 놈 말고!!)”
“(으아악!! 대머리가 늙은이 잡는다아아!!)”
“...뭔가 기분이 나쁜데...”
강대호는 발버둥 치는 원로 두 명을 짊어지고 다시 루비를 바라봤다.
“전부 확보했어. 어디로 가면 돼?”
“냥.”
-잠시만.
루비는 곧장 송조운에게 염화를 걸었다.
-여기 끝났어.
-벌써? 사샤노프 님이 원로들은 별거 없을 거라고 했으니까 경비만 뚫으면 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그걸 감안해도 꽤 빨랐네?
-경비도 없었는데? 다 거기로 몰려갔나 봐. 아니 그보다 이 노인네들 왜 이렇게 약해? 여기의 대장 바로 아래에 있는 사람들 아니야?
-원로들은 이바노프와 마찬가지로 청색 마탑의 설립자들이지만, 마법사라고 하기보다는 사업가들이거든.
-사업가?
-뭐... 마탑의 자금줄을 맡은 자들인 거야. 그래서 권력도 손에 쥐고 있는 늙은이들... 아니 고양이한테 이런 걸 말해서 뭐 하냐. 아무튼 데리고 오면 돼.
-음... 알았어.
루비도 머리가 아파지는 대화는 사양이었기에 더 묻지 않고 염화를 끊었다.
-가자.
“예이~”
“뭐 한 것 같은 기분도 안 드네...”
“대강연실에 가면 전투가 있지 않을까?”
“오!? 그런가?”
“...냐앙...”
-전투광들이냐고...
그리고 빠르게 걸어 마탑을 내려온 세 아인들은 대강연실의 문을 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용한데...”
“헉!? 위기이신 거 아니야!?”
“아니면 벌써 끝났다거나...?”
“헉!? 그러면 안 되는데!?”
그리고 초조해진 강대호가 대강연실의 문을 발로 차 열었다.
쾅! 덜컹!!
“유나 님!! 저희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