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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80화 (80/109)

가장은 만능 빌런 80화 - 리디북스

“하아...”

최유나는 자신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듯 다가오는 사샤노프를 바라봤다.

“(유나야!!)”

“으응.”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결국 최유나는 팔을 벌리고 자신을 끌어안는 사샤노프를 마주 껴안지 못하고 팔을 들었다 내렸다만을 반복했다.

“(잘 지냈어? 아니, 이럼 안 되지. 잘 지냈을 리가 없지!)”

“(괜찮아. 잘 지냈어.)”

사샤노프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기에 최유나는 반사적으로 살포시 미소를 지어줬다.

“(이바노프 님도 참! 이런 가련한 아이한테 극빙을 맡겨서 어쩌시려고!)”

이미 송조운을 통해 자신의 몸에 극빙이 깃들었다는 것, 그로 인해 이바노프가 죽었다는 것까지 모두 알렸기에 최유나는 사샤노프가 왜 이렇게 자신을 반기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샤는 나 때문에 할배... 아니, 이바노프 님이...)”

그에 최유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고 그것에 대해 물으려 하자.

“(그만.)”

“(웁!?)”

사샤노프가 최유나의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잡으며 질문을 막았다.

“(이바노프 님이 너를 손녀, 아니. 딸처럼 생각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맨날 나한테 와서 오늘은 유나가 뭘 해냈느니, 뭘 배웠느니 말해줬는데 그걸 모를 리가 있나.)”

“(...그랬어...?)”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기에 최유나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

“(그럼~! 무려 그렇게 10년 가까이 손녀 자랑을 들었는데 모를 리가 있나!)”

“(...할배도 참...)”

“(아무튼,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나야.)”

사샤노프는 최유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할배는 너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널 위해서 죽은 거라고.)”

“(...)”

“(그리고 따지자면 네가 아니라 보리스 그 개자식 때문이지!)”

주먹을 불끈 쥐며 보리스에 대한 적의를 끌어올리는 사샤노프를 보며 최유나가 걱정스레 말했다.

“(사샤는 할배를 사랑하고 있었잖아. 괜찮은 거야...?)”

“(사랑...? 아하하하! 너 아직도 내가 남자로서의 이바노프 님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어...? 아니었어?)”

사샤노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이바노프 님을 사랑하냐 사랑하지 않느냐. 라고 따지면 사랑하지. 근데 그건 음... 아버지를 향한 사랑 같은 느낌이려나?)”

“(아...)”

생각해보니 사샤노프가 이바노프에게 직접적으로 대시하는 것은 본 적이 없는 최유나였다.

한창 사춘기 때 들은 사랑 얘기라 그냥 남녀 간의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응?)”

그때, 사샤노프가 최유나의 뒤쪽에 줄지어 서있는 세 사람. 류천혁, 윤이진, 강대호를 발견했다.

“(저 아인들은?)”

“아.”

러시아어를 알아듣지 못해 눈만 때굴때굴 굴리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본 최유나가 한국어로 대답했다.

“보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있는 이클립스라는 조직의 보스가 붙여준 사람들이야.”

“헤에~? 아인을? 특이한 사람이네.”

자신들을 소개하는 것을 들은 세 사람이 급하게 차렷 자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용의 아인! 류천혁입니다!”

“뱀의 아인! 윤이진입니다!”

“그리핀의 아인! 강대호입니다!”

세 사람의 말을 들은 사샤노프가 눈이 커지며 말했다.

“환상종 계열이 둘이나 있어?”

“이진이도 환상종이야.”

“어? 뱀이라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뱀이라고 하는 것뿐이야. 굳이 따지자면... 뱀의 여왕? 뭐 그런 느낌.”

“와아... 그럼 환상종만 세 명이라고?”

진심으로 놀라며 세 사람의 앞으로 다가온 사샤노프가 천천히 그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사샤노프가 최유나와 친밀해 보이는 사이였기에 세 사람은 따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사샤, 실례야.”

“앗! 미안미안!”

“““아닙니다!”””

환상종 아인,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의 아인을 말하는 것으로 용, 주작, 유니콘 등등이 있고,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하나같이 강하다는 것이 있다.

“그나저나 사샤.”

“응?”

“일은 어떻게 되고 있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는 송조운이 보내는 정기연락을 통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는 연락이 따로 없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음~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응. 멍청한 보리스가 내가 내민 미끼를 호로록! 하고 물어버렸거든. 이제 낚기만 하면 돼.”

“미끼?”

씨익 미소를 짓는 사샤노프를 보며 최유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 보리스한테 가장 중요한 건 청색 마탑주의 증표라고 할 수 있는 극빙이야.”

“응. 그건 지금 내 몸속에 있고.”

“응. 그래서 내가 만든 빙정으로 낚시를 하는 중이고.”

“빙정...?”

“간단히 말하면 가짜 극빙. 음... 조잡한 모조품? 그런 느낌이려나?”

“그걸로 낚였어...?”

“내가 상황을 조금 급박하게 만들기도 했고, 빙정도 일단 극빙스러운 느낌은 나거든.”

극빙스러운 느낌이 난다는 것은 마력적인 구조가 비슷한 느낌이 난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보리스가 빙정을 이용해서 강해지는 건...”

그에 최유나가 걱정스레 말했지만.

“아아, 그건 아니야.”

사샤노프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아니라 일축했다.

“빙정도 일단 얼음계 마법사를 보조하고 빙결계 마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하지만...?”

“완벽한 미완성품이라서 말이지.”

“...?”

완벽한 미완성품이라는 모순적인 단어에 최유나가 의문을 표했다.

“쉽게 말하자면 폭탄이야.”

“아...”

“일정 수준 이상의 마력을 투사해서 마법을 연달아 3개를 사용하면 펑~! 빙정이 보조하는 빙결계 마력이 한꺼번에 폭주해서 사용자를 몸속부터 얼려버릴 거야.”

그렇게 말한 사샤노프가 자신의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사실 빙정은 유나, 너한테 주려고 연구하기 시작한 건데. 어쩌다 보니 보리스한테 먼저 넘겨버렸네.”

“...나 암살당할 뻔한 거야?”

“아니아니! 완성된 빙정 말이야!”

“아.”

자신을 뭘로 생각하냐는 듯이 볼을 부풀린 사샤노프가 말을 이었다.

“원래 이바노프 님은 보리스한테 마탑주를 넘기려고 했거든.”

“어?”

“일단은 보리스 그놈이 첫 번째 제자이기도 하고, 실력도 있으니까.”

처음 들어보는 이바노프의 속사정에 최유나가 표정을 굳혔다.

“근데 네가 두각을 드러내고, 보리스는 위기감을 느낀 거야. 아! 이대로 가면 마탑주의 자리를 빼앗기겠구나! 해서.”

“...”

“뭐... 이바노프 님도 말은 했지. 너한테 마탑주를 넘길 거다. 괜한 걱정하지 말고 이대로 정진해라. 같이.”

“근데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엇나갔는지는 나도 몰라. 그건 이바노프 님도 모르시겠지.”

“...”

“아무튼, 그래서 극빙도 원래라면 네가 아니라 보리스한테 물려줬을 거고, 그럼 너한테는 남는 게 없으니까 내가 빙정을 완성해서 주려고 했던 거야.”

“그랬... 구나...”

그런데 극빙은 최유나에게, 빙정은 미완성인 상태로 보리스에게 넘어갔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아...”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최유나가 깊은 한숨을 쉬자 하얀 입김이 흘러나와 허공에 흩어졌다.

“사샤. 차 가지고 왔어?”

“응? 어, 일단은 가지고 왔지?”

“그럼 나 좀 어디에 데려다줘.”

“응? 여기서 조운 씨를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게 약속이 되어있었기에 사샤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했다.

“마탑에 가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

“해야 할 거?”

최유나는 자신의 손목에 있는 아공간 팔찌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배... 묻어줘야지.”

“아...”

최유나의 말에 지금 있는 위치 근처에 극빙이 만들어진 이바노프의 고향.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샤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자.”

그리고 두 사람은 호위 격인 세 아인과 함께 사샤노프의 차를 타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약 5분 후.

“아이고 늦었습니다! 준비할 게... 많아서...”

텅 빈 약속 장소에 송조운과 루비가 도착했다.

“냐앙...?”

“그러게... 왜 아무도 없지...?”

* * *

스으으으...

청색 마탑 최상층, 마탑주 전용 연공실.

중앙에 앉은 보리스가 전신에서 새하얀 김을 내뿜으며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하아아...”

그리고 이내 입에서 김을 내뿜으며 눈을 떴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군.)”

보리스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앞에 둥둥 떠있는 빙정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그 여자는 무슨 생각이지?)”

극빙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빙정을 만들어낸 사샤노프. 그녀의 능력이라면 이런 제안을 하지 않고도 보리스를 견제하는 것은 충분했다. 운이 좋다면 어렵게나마 보리스를 마탑주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보리스를 밀어내는 것보다는 그와 거래하는 것을 택했다.

“(덕분에 마법사들도 내 쪽으로 돌아서고 있는 자들이 많아서 나쁠 건 없지만...)”

아무래도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탈옥했다는 최유나도 걸리적거리고... 쯧, 어쩔 수 없군.)”

자리에서 일어난 보리스가 빙정을 챙겨 품속에 넣고 자신의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연공실의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있는 수정구를 바라봤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툭.

보리스가 지팡이로 수정구를 건드리니 수정구가 빠르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처럼 구시더니?)

“(이죽거리지 마라, 나도 싫다.)”

남자의 가슴에 보이는 작은 은색의 방패가 거슬렸다.

-(하하하, 그건 서러운 말씀이군요. 그래서? 무슨 용건으로 연락하셨는지?)

“(스타챠 사샤노프의 감시.)”

-(스타챠... 아아, 얼마 전에 활동을 다시 시작한 청색의 두뇌 말씀이신가요?)

“(청색의 두뇌라...쯧.)”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혀를 찬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죠? 단순한 감시라면 그쪽에서 움직여도 될 텐데요?)

“(그 여자도 일단은 청색의 일원이다. 내 쪽에서 사람을 움직이면 눈에 띄겠지.)”

-(흐음~? 뭐 알겠습니다. 한 시간 안에 스타챠 사샤노프에게 감시자를 붙여놓죠.)

씨익 웃음을 지은 남자가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많이 늦긴 했지만, 청색의 마탑주가 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리겠습니다.)

“(...그 여자의 감시나 똑바로 해라.)”

-(하하하! 저희 일 처리가 확실한 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으십니까!)

“(...끊겠다.)”

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보리스가 그대로 마법 통신을 끊었다.

“(짜증 나는군...)”

이름 높은 청색의 마탑주가 되었음에도 답답한 기분에 보리스가 인상을 구겼다.

“(대마법사만 되면...)”

그렇게 중얼거린 보리스가 다시 연공실 중앙에 앉아 마력 연공을 시작했다.

* * *

“(미하일 님. 대가를 받지 않으셔도 괜찮겠습니까?)”

“(음? 아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보리스 씨는 저희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통신 마법이 끊겨 빛을 잃은 수정구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미하일이 부하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스타챠 사샤노프의 감시라...)”

가디언 러시아의 수장 미하일. 그런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치고는 질이 낮은 의뢰에 미하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우리 보리스 씨가 많이 초조한 모양이네요.)”

“(그래도 마탑주까지 된 사람이 말입니까?)”

“(뭐 마탑주라고는 하지만 반쪽짜리니까요.)”

미하일은 수정구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힘을 빌려 올라간 자리이니 스스로 느끼기에 더더욱 초조한 거겠죠. 그래봤자 제 손에서 벗어나진 못하겠지만요.)”

그럼에도 보리스는 다시 자신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보리스의 모든 기반은 가디언 러시아가 협력하여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미하일은 책상 한쪽에 수정구를 치워놓고 부하를 바라봤다.

“(자, 그럼 청색이 손에 들어올 날도 얼마 안 남았겠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우리 보리스 씨의 마지막 의뢰는 확실하게 처리해 드려야겠죠. 고스트를 움직이세요.)”

“(알겠습니다. 몇이나 움직일까요?)”

“(음~ 그래도 청색의 두뇌라고 불리는 여자이니 5명이면 되겠죠.)”

“(알겠습니다.)”

부드러운 표정과는 다르게 미하일의 눈은 먹잇감을 노리는 설원의 늑대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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