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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78화 (78/109)

가장은 만능 빌런 78화 - 리디북스

“거... 진짜 해야겠나?”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보려면 해야죠. 제가 요즘 시간이 없어서 말입니다.”

“끄응...”

진우의 말에 이마를 짚으며 신음을 내뱉은 우석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네. 제압대에는 미리 말해놓지.”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해하네. 너무 심하게만 하지 말게.”

“네. 뒤처리는 맡기겠습니다. 그럼.”

“그러...”

우석훈이 고개를 돌리니 이미 창문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게.. 거 바쁘긴 한가 보구만.”

가볍게 고개를 저은 우석훈이 중얼거렸다.

“재난이겠구만... 부디 힘내게.”

우석훈의 책상에는 금관 호텔이라 적힌 한 장의 서류와 한 여성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 * *

“서하 씨! 7층 식당에 감자랑 파가 부족하대!”

“지금 갑니다!”

“규성 씨랑 같이 가면 될 거야!”

“네엡!”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이 여유롭고 편안한 하루를 보내는 것에 비교해 직원들의 하루는 어마어마하게 바쁘기만 하다.

“막내. 식자재 창고는 어디 있는지 외웠어?”

“넵!”

“든든하네. 가자.”

“넵!”

신서하가 한국 제일의 호텔, 금관 호텔에 채용되어 일하게 된 지 벌써 4일째.

첫날, 오너 박진권의 부탁 아닌 부탁 덕분에 직원들은 별다른 차별 없이 신서하를 대하고 있었고, 신서하 또한 박진권과 직원들의 배려 덕에 나름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아까 뭐가 부족하다고 했지?”

“감자랑... 파라고 하신 것 같아요.”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순식간에 5층에 있는 식자재 창고에 도착한 두 사람이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감자랑 파... 여깄네.”

“와아...”

위치는 외워뒀지만, 딱히 들어올 일은 없었기에 처음으로 식자재 창고에 들어와 본 신서하가 감탄했다.

“하하하, 크지?”

“네에...”

금관 호텔은 그 시설, 서비스만으로도 5성급에 어울리는 호텔이지만, 무엇보다 음식이 유명했다.

때문에 숙박하지 않더라도 금관 호텔 내부의 4개의 식당은 언제나 만석이었고 그 4개의 식당에서 사용되는 식자재를 보관하고 있는 창고는 클 수밖에 없었다.

“저 이렇게 재료가 쌓여 있는 건 처음 봐요.”

“뭐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놀랐었지.”

5층의 절반을 개조해 육류, 채소, 과일, 기타. 이렇게 4개의 창고로 나눠놓은 거대한 식자재 창고.

신서하는 산처럼 쌓여있는 감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디 보자... 파 세 박스에... 감자는 두 박스 정도 챙기면 되겠지.”

“넵!”

감탄도 잠시, 선배인 이규성이 식자재용 플라스틱 상자에 파를 상하지 않게 하나하나 집어넣는 것을 본 신서하가 정신을 차리고 상자를 집어 들어 감자의 앞으로 가 하나하나 담기 시작했다.

이내 파 세 박스, 감자 두 박스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난 이규성 구석에서 핸드카를 가져왔다.

“파는 그렇다 치고 감자는 무거우니까 여기에...?”

“네?”

그리고 하나에 20kg은 될 감자 박스를 그대로 들어 올린 신서하를 발견했다.

“아...”

그동안 신서하가 단 한 번도 초능력을 사용한 적이 없어 살짝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육체 강화]와 [화염 조종]의 듀얼 능력자, 합쳐서 고작 40kg의 박스를 들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어, 어라? 이거 어떻게 나가야...”

상자가 본인의 얼굴을 가려 앞이 안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응. 힘센 건 알았으니까 일단 핸드카로 가자? 고객님들 놀랄라.”

“앗! 넵!”

희한한 곳에서 신서하가 초능력자라는 것을 실감한 이규성이 고개를 저으며 파가 담긴 상자를 핸드카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 * *

“끄아앙...”

저녁 7시.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직원용 숙소로 돌아온 신서하가 침대에 뛰어들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히히히.”

육체적으로는 그리 크게 힘들지는 않다.

누가 자신을 공격하지는 않을지, 다른 조직이 공격해오진 않을지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기에 정신적으로도 힘들지 않다.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재밌어...”

어릴 적의 꿈, 호텔리어.

일반적인 직원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일을 배우는 중이기에 조리, 시설, 연회 등등 각종 부서를 돌아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이었지만, 너무나 재밌었다.

“핫!?”

기분 좋은 피로감에 눈이 감겨오던 신서하가 번뜩 고개를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은 지우고 자야지.”

템페스트의 산하 조직에 있을 때는 화장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기에 같은 조직의 어느 언니에게 화장법을 배웠었다.

“음~ 음음~”

신서하가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방 내부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하려는 그때.

오싹!

“어?”

다른 조직과 사생결단을 낼 때,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할 때, 그럴 때나 느꼈던 무거운 기운.

쿠구구...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섬뜩한 기운에 신서하가 눈을 크게 뜨며 본능적으로 전투 자세를 취했다.

“...!?”

그리고 자신을 특정하여 마력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신서하가 경악했다.

“호텔 전체에...?”

금관 호텔은 한국 제일의 호텔. 특히 대전의 본점은 그 명성만큼이나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총 49층. 객실 수 375개의 그야말로 거대한 건물.

“미, 미친...!”

그런 건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마력을 내뿜어 협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 설마 나를... 부르는 거야...?”

그 누구도 아닌 신서하에게 말이다.

“아, 아니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겠지... 응. 그럴 거야...”

신서하는 떨리는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말했다.

“대, 대전에는 진압대도 많이 들어와있다고 했어... 곧... 곧 사그라들 거야...”

하지만, 그런 신서하의 바람과는 달리 호텔 전체를 뒤덮은 마력은 시간이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고 괴물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는지.

콰아앙!

“!?”

호텔의 외부에서 폭발음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자신의 방 구석에 주저앉아 몸을 떨던 신서하가 방 밖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다급한 발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자.

쿵쿵쿵!

때마침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서하 씨!! 도망쳐야 해!”

“선... 배님...?”

다들 잘 챙겨주기는 하지만, 특히나 자신을 잘 챙겨주는 한 여성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호텔 밖에서 미친 빌런이 테러를 일으키고 있어!”

“...역시...”

침을 꿀꺽 삼킨 신서하가 부들대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방문을 열었다.

“빨리 대피해! 지금 고객님들도 전부 대피하고 있어. 나는 다른 객실도 돌아봐야 하니까. 너부터 빨리-”

“아...”

꽤나 당찬 목소리로 말하고, 자신까지 챙기는 선배였기에 무섭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문을 열고 보이는 선배의 얼굴은 두려움을 억지로 참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 뭐 하는 거지...?’

하지만, 그럼에도 선배는 먼저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투숙객, 그리고 직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알았지? 후문으로 가서 고객님들부터...”

“아뇨.”

“어어?”

덕분에 눈이 뜨였다.

“제가 시간을 끌게요.”

“뭐?”

자신은 그저 꿈을 꾸고 있었던 것뿐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괜한 소리 하지 말고...”

평화로운 ‘보통’의 일상 때문에 자신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잊고... 아니, 모른 척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선배는 얼른 가서 고객님들부터!”

“서하 씨!?”

신서하는 선배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방 안으로 다시 들어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밖, 저 아래에 보이는 호텔 경비원들이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빌런!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젠장!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라고!!”

콰아앙!! 콰아앙!

“크으윽!! 부상자는 빠져!! 젠장! 요구 사항이라도 말하라고!”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 ‘진짜’ 빌런이 된 사람이다.

자신처럼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되었다가 거칠고 막 나가는 빌런 사회에 물들어 ‘진짜’ 빌런이 된 사람.

“씨이...”

자신과는 달리 다시 세상에 나올 기회를 잡지도 못할. 불쌍한 사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신서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무나도 보통의 일상을 원했기에 더더욱 슬퍼지는 것 같았다.

“서하 씨! 경비원들이 있잖아! 곧 제압대도 올 거야! 굳이 서하 씨가 이럴 필요 없어!”

“...”

“서하 씨!”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더더욱 화가 났다.

이런 보통의 일상을 내던져야 하니 말이다.

“선배는 빨리 대피하세요!”

“서하 씨!!”

후우웅!!

신서하는 그대로 창문에서 뛰어내려 빌런을 향해 내리꽂혔다.

“야이 띠발놈아!”

화르르륵!!!

[육체 강화]+[화염 제어]

-[화염의 정령]

콰아아앙-!!!

그리고 화염이 둘러진 신서하의 주먹이 그대로 빌런의 머리를 후려쳐 굉음이 터져나왔다.

* * *

“씨이... 진짜 괴물이네...”

신서하는 전력을 다한 공격에도 그저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끝인 빌런을 바라보며 입술을 삐쭉였다.

“네가 신서하인가.”

“...역시 내가 목적이었어?”

묵직한 중저음에 상처가 가득한 섬뜩한 얼굴.

범죄라는 단어를 좀 무게감 있게 사람으로 만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외모의 남자.

“흠.”

후우웅!

남자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 공기가 움직이는 느낌과 함께 뭔가가 날아옴을 느꼈다.

“하아압!”

다만 그냥 견제인지 그리 무게감 있는 공격은 아니었기에 신서하는 자세를 잡고 오른쪽을 향해 화염의 정권을 내질렀다.

퍼어엉!

그리고 거대한 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기가 터져나가며 신서하의 화염과 어우러져 화려하게 흩어졌다.

‘공기 조작? 대충 그런 느낌이긴 한데...’

뭔가 기세와 어울리지 않게 물렁이는 느낌에 신서하의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호오, 꽤나 강하군.”

“...?”

“그걸 아무런 대미지도 없이 막을 줄이야.”

“...엥?”

설마 이게 저 빌런에게는 강한 축에 드는 공격이었을까 라고 고민이 드는 말이었다.

그때, 빌런의 고개가 살짝 들리며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는 것이 보였다.

“...헬기?”

두두두두!

그 시선을 따라 하늘을 바라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헬기가 보였다.

“음... 자, 그럼 계속 간다.”

“에? 아니 잠...!”

후웅! 후웅!

이번에는 작정을 한 건지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주먹을 지르는 빌런을 보고 신서하가 이제 진심을 내는 건가 싶어 놀라며 쏘아지는 공기의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내질렀다.

펑!! 퍼엉!! 퍼어엉!!

“...응?”

그리고 손에서 느껴지는 굉장한 가벼움에 다시 얼굴 한가득 의문이 피어올랐다.

“하아압! 합! 흐아압!!”

“어? 어어어?!”

근데 또 어마어마하게 빠른 빌런의 공격속도와 그의 진지한 표정에 원래 이런 공격인가 싶기도 하다.

“자자! 더 간다!!”

“아, 아니 그...!”

그때, 빌런의 공격이 더욱더 많고, 빨라졌다.

때문에 하나하나 요격하지 못하고, 점점 자신의 방어를 뚫고 들어오는 공격이 생기기 시작했다.

퍼엉! 펑펑펑!! 퍼어엉!

“으윽!? ....으?”

그에 공기가 터져나가 머리는 산발이 되고 피부가 빨개지며 말 그대로 봉두난발의 여자가 되고 있지만.

“????”

전혀 아프진 않았다.

“지금 뭐...”

그에 지금 빌런이 자신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싶어서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퍼어엉!!

“억!?”

이번에는 조금 묵직하게 들어온 공격이 신서하의 복부를 밀어내듯 터지며 그녀를 날려버렸다.

콰아앙!

그렇게 날아간 신서하가 금관 호텔의 벽에 충돌하고, 굉음과 함께 금관 호텔의 외관 벽이 조금 무너졌다.

그리고 금이 잔뜩 간 벽에 기댄 신서하의 얼굴에는.

“?????”

여전히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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