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77화 - 리디북스
“하~아암... 목 마르...”
“여기 물 있습니다!”
“어? 어어... 땡큐...?”
“별말씀을!”
회색 마탑 소속의 승무원도 있는데 왜 굳이 직접 물을 가져다주는지 모르겠는 뿔 달린 남자 류천혁. 심지어 최유나는 가져다 달라고 말도 안 했다.
“...”
물컵을 주고 나서 한쪽 구석으로 가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류천혁,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아인, 윤이진과 강대호의 모습에 최유나가 답지 않게 식은땀을 흘렸다.
“보스는 대체 어디서 뭘 주운 거야...?”
건드리면 깨지는 유리 공예품처럼 다뤄지는 기분에 최유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때,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린 세 사람이 각각 음료, 담요, 수건. 등을 들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아니, 그거 아니야...”
최유나가 고개를 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짓자 세 사람은 시무룩하며 들어 올렸던 물건을 내렸다.
“하아...”
진우에게 대략 설명은 들었다.
G.K 신약 연구소 지하에 갇혀 수년 동안 인체실험을 당해온 자들 류천혁, 윤이진, 강대호.
어떻게 이용하든 마음대로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라 들었지만.
“충견이 따로 없네...”
뭘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려도 달려와 필요한 건 없는지, 본인들이 할 건 없는지 물어보는 세 사람이 솔직히 부담되는 최유나였다.
심지어 비행기 안인데 말이다.
-승객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저희 그레이 항공 A227은 곧 러시아 모스크바주에 위치한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슬슬 도착이네...”
창밖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광활한 대륙에 최유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탈옥할 때까지만...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아올 생각은 없었는데...”
천천히 착륙하는 비행기의 창밖. 저 멀리 유난히 높게 치솟아 있는 건축물.
“할배...”
청색 마탑을 바라보던 최유나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보리스 아저씨...”
이제는 다시 붙힐 수 없는 깨져버린 인연을 정리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던 최유나의 귓가에 세 아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내, 내려가는 건가!?”
“가, 갑자기 폭발하거나 하진 않겠지?”
“나, 나도 몰라.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저기 생각 좀 정리하게 조용히...”
“헉!? 죄송합니다!”
“헙!”
“죄송합니다!”
화들짝 놀라며 비행기 바닥에 빠르게 머리를 박는 세 사람.
류천혁의 경우 머리에 달린 뿔이 비행기 바닥에 박힐 정도였다.
“아니! 그럴 것까지는... 하아... 자리에 앉아서 벨트나 해요!”
“““넵!”””
승무원들이 안절부절못하며 세 사람의 뒤에 있는 것을 본 최유나가 일갈하자 세 사람이 순식간에 고개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하아... 진짜 도움이 되려나...?”
최유나는 처음으로 진우가 괜한 짓을 한 건 아닐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초능력자 사회생활 초읽기, 예상되는 문제점은?)
(우 대통령, 수많은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아무런 문제 없을 것이라 확신.)
(초능력자 융화 도시로 선정된 대전광역시 시민들의 불안은?)
3일 후, 미리 선별한 100인의 초능력자가 요식, 서비스, 디자인, 건축 등 70여 개의 업종에 투입된다.
딱히 숨기거나 하는 것 없이 신문, 뉴스, 인터넷 등 꽤나 많은 광고를 넣어서 그런지 꽤나 말이 많은 상황.
“각하, 템페스트 측에서는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음... 우리는?”
“일단 대전 시장과 시의원, 그리고 기업들은 진정시켜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역시 시민들은...”
“하아... 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지겠지. 그건 어쩔 수 없네.”
대놓고 준비하기 전부터 은근히 소문을 흘리고, 여론을 조작도 해보고 꽤나 노력해 봤지만, 사람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불만, 두려움까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우석훈으로서도 걱정이 되긴 했다.
“하지만, 데빌, 그의 말처럼 언제까지고 초능력자들을 전투 기계처럼 대하고 억압할 수는 없는 일. 이제 와서 물러나기는 늦었지.”
“말씀대로입니다.”
우석훈은 고작 100인의 일자리 때문에 수없이 늘어난 서류와 컴퓨터의 파일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 개고생을 헛짓거리로 만들 수도 없고 말이네.”
“...너무나 맞는 말씀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인 그 또한 지난 시간 동안 했던 고생이 떠올랐는지 기운 없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자자, 그럼 3일만 더 고생하자고.”
“...3일로 끝나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흠흠! 그냥 넘어가지?”
“하하하.”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3일 뒤.
대전광역시의 어느 한 호텔의 로비.
긴장이 흘러넘쳐 머리에 김이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한 여성이 완벽한 차렷 자세로 크게 소리쳤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일하게 된 신서하라고 합니다!”
주황빛이 감도는 붉은색의 머리카락, 연한 붉은빛을 띠는 아름다운 눈동자.
한국인의 얼굴이지만, 누가 봐도 한국인 같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머리칼과 눈동자에 호텔의 직원들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쟤지?”
“그런가봐, 오늘부터라더니...”
“하아. 오너는 무슨 생각으로 받아들인 거지?”
“듣자 하니까 정부지원금이 장난이 아니었다는데?”
“일 힘들다고 다 부수는 거 아니야?”
“그럼 어떻게? 초능력자라서 막지도 못하는데.”
수군수군거리며 서로 속닥이던 직원들을 보며 신서하는 더더욱 자신의 몸이 긴장에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포기하긴 싫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신서하의 눈은 굳은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노력해서 얻은 기회인데! 절대로 포기 안 해! 못 해!’
정부가 선정한 길드의 초능력자 50인.
템페스트 선정의 범죄 이력이 없는 자유 빌런 50인.
신서하는 이 중, 템페스트에서 선정된 빌런이었다.
‘숨어 지내는 것도, 싸우는 것도 지긋지긋해. 반드시 인정받을 거야!’
빌런의 사회는 범죄 빌런이든 자유 빌런이든 생활 자체는 똑같다.
가디언과 정부의 눈을 피해 숨고, 걸린다면 싸운다.
뜻이 맞는 동료라고 해도 언제 자신의 뒷통수를 칠지 모르니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
그리고 신서하의 경우 외모가 출중하다 보니 더더욱 힘겨운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자! 다들 뭘 그렇게 떠들고 있나!”
“헉!!”
“흡!”
신서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묵묵히 의지를 다잡고 있을 때, 어느 중년의 남자가 두 손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오며 직원들의 이목을 끌었다.
“휴우, 무겁구만.”
이내 신서하의 앞에 도착해 상자를 내려놓은 중년의 남자 신서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구만. 반갑네, 이 호텔의 오너, 박진권이라 하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박진권의 모습에 신서하는 잠시 멍을 때리다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오, 오, 오너님!”
“하하하, 님은 안 붙여도 괜찮네.”
“시, 시, 신서합니다! 오늘부터 본 호텔, ‘금관’에서 사회 융화과정을 바, 밟게 된 신서합니다!”
“이 친구 참,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시, 시정하겠습다!”
“아, 이 상자는 자네 유니폼 세 벌이랑 몇 가지 도구들, 그리고 몇 가지 생필품이네. 숙식에 필요할 걸세.”
“가, 감사합다!”
갑자기 호텔의 오너가 나온 상황에서 신서하의 긴장이 폭발해버렸는지 이름도 두 번 말하고, 말끝이 이상해져 버렸다.
“음. 이거 괜히 나와본 건가?”
그에 박진권이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신서하의 눈이 크게 확장되며 손사래를 쳐댔다.
“절대 아닙닏! 악!”
결국 대차게 혀까지 씹어버린 신서하를 보며 박진권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이거 장난도 못 치겠구만.”
본인의 입을 부여잡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신서하를 바라보던 박진권이 몸을 돌려 모여있는 직원들을 바라봤다.
“흠.”
신서하의 허당 짓이 나름 분위기를 푸는 데 큰 역할을 했는지 직원들의 얼굴에 미약한 안도감이 담긴 미소가 띄워져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부터 우리 금관 호텔에서 일하게 된 초능력자 신서하 양이네.”
“쟈, 쟐 부탹햡니댜...”
“풋!”
“발음 봐.”
“나쁜 애는 아닌가 보네.”
“다행이다...”
얼얼한 혀를 어떻게든 움직여 말하는 신서하를 보며 직원들이 조금 더 안도하며 미소를 띄웠다.
신서하는 얼굴이 터질 듯이 붉어졌고 말이다.
그것을 본 박진권이 속으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왜 하필 우리 ‘금관’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네.”
““...””
그의 말대로였다. 신서하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초능력자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이 아직은 불안한 자들이 많았다.
“우리 호텔은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세계적으로 봐도 부족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초일류. 굳이 정부의 지원금을 욕심내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나?”
박진권의 담담한 말에 일부의 직원들이 움찔하며 고개를 숙였다.
“미리 말하지만, 정부의 지원금은 전부 우리 금관에서 후원하는 보육원에 기부했네. 내가 손에 쥐거나 호텔에 들어간 건 단 한 푼도 없네.”
그리고 이어지는 박진권의 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정부에서 나온 초능력자 사회 융화 지원금은 그야말로 막대한 거금.
오로지 그 거금을 목적으로 자신의 사업장에 초능력자를 받는 것을 동의한 자들이 대부분일 정도였기에 직원들의 놀람은 작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성인(聖人)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서하 양을 받아들인 건 아니네.”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신서하를 보며 박진권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는 미래에 투자한 거네.”
“미래...?”
“초능력자도 결국은 사람이네.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든, 사람인 건 달라지지 않지.”
그렇게 말하는 박진권의 눈에 어딘가 서글픈 감정이 서렸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초능력자도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닌 보통의 일을 하고, 일반인과 어울리며 살아가겠지.”
재벌도, 정치인의 자식도 아닌, 그저 서민에서 시작해 50의 나이에 한국 제일의 호텔을 만들어낸 사업가.
그런 그가 확신을 가지고 하는 말에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런 미래가 우리 금관을 통해 더욱 빠르게 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라 생각하고 있네.”
“오너...”
뭔가 멋쩍어졌는지 뺨을 긁적거린 박진권이 말을 이었다.
“우리 금관 호텔의 이미지도 좋아질 테고, 선구자라는 단어는 언제나 돈이 되니 말이네.”
박진권은 신서하를 바라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을 위해 나는 정부의 제안을 받아들였지.”
“......”
“물론 그렇다고 마스코트를 하라는 뜻은 아니네. 돈을 받으면 그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게 신조라서. 자네도 그렇게 취급되는 건 바라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하하하, 좋군.”
힘차게 대답하는 신서하를 보며 호탕하게 웃음을 지은 박진권이 다시 호텔 직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들에게 무조건 신서하 양을 받아들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네.”
그리고 신서하를 자신의 앞으로 내밀었다.
“하지만, 건드리면 터지는 폭탄 취급이 아니라,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은 사회 초년생 정도로 봐주는 건 어떻겠나?”
직원들의 눈에 자신들의 정면에 나오게 되어 동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굳어버린 20대 초반의 여성이 보였다.
“푸흣.”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뭘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이거야 원.”
“하하하하! 이거 막내가 들어왔으니 잘 가르쳐 놔야겠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막내라도 일은 확실하게! 알죠?”
“누가 괴롭히면 말해요!”
이제, 시작점에 섰을 뿐임에도 밀려오는 감동에 신서하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리저리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쯧.”
이러한 모습은 대전 곳곳에 선정된 70여 개의 식당, 기업, 호텔, 백화점 등등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