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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76화 (76/109)

가장은 만능 빌런 76화 - 리디북스

송조운은 서로를 노려보는 보리스와 사샤노프를 보며 염화로 연결되어 있는 루비를 불렀다.

‘루비야.’

-냥? 왜?

‘집에 가고 싶다.’

-나도.

현재 루비는 그냥 길고양이인 척하며 청색 마탑의 외부에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만약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외부에서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하하하! 수년 만에 찾아와서 하는 게 고작 떼를 쓰는 거라니. 너도 이제 서른 후반대 아니냐. 마음대로 되는 건 없다는 걸 알아야지.)”

“(후반...? 전 아직 서른다섯이거든요!?)”

“(오, 이런 오랫동안 못 봐서 겉보기로만 생각했군.)”

“(뭐요!?)”

‘겉보기로만 보긴 개뿔이...’

사샤노프는 20대 초반의 외모를 소유했다. 즉 보리스의 말은 그냥 사샤노프를 자극하기 위한 헛소리일 뿐이지만.

“(지금 한번 해보자는 거죠!?)”

쿠구궁!

아무래도 여성의 나이에 관한 건 금기가 맞는지 충분히 분노한 사샤노프가 본인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하하하! 이거야 원. 시작은 내가 아니라 네가 했다만?)”

“(...)”

하지만, 사샤노프는 연구자. 대마법사는 아니라 할지라도 현 청색마탑에서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보리스에게 사샤노프의 한 줌의 마력은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뭐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그러지.)”

그에 낮게 한숨을 쉰 사샤노프가 마력을 갈무리하고는 보리스를 노려봤다.

“(그래서. 극빙은요?)”

“(...)”

“(하. 당신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으니 본인에게 극빙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온 줄 알았는데요?)”

“(쯧.)”

사샤노프의 말에 짧게 혀를 찬 보리스가 팔짱을 끼며 적당한 곳에 앉았다.

“(어머? 그냥 화풀이하러 온 거였어요? 에이~ 설마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츠즈즈즉!

“(윽!)”

아무런 징조도 없이 사샤노프의 발에 서리가 끼며 얼어붙기 시작했다.

“(조금 닥치는 게 좋을 거다.)”

“(하.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힘부터 쓰는 건 변하질 않았네요.)”

“(후우... 너는 지금 내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부터 알아야겠군.)”

쩌저저적.

“꺄아악!”

보리스의 손가락이 까딱함과 동시에 발끝에 서려 있던 얼음이 순식간에 사샤노프의 무릎까지 올라왔다.

“(후, 후후.)”

하지만, 사샤노프는 다리가 얼어붙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을지언정 보리스를 비웃는 건 그만두지 않았다.

“(당신은 어차피 저를 죽이지 못하잖아요? 이딴 무력시위는 적당히 하시죠?)”

“(하. 나는 이 청색의 주인이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한다고 누가...)”

“(슬슬 당신을 지지하는 원로들 중에서도 극빙을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

“(그런 와중에 저를 죽인다고요?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을? 그것도 그 루이샤 발라루스의 술식을 6개나 개량한 저를?)”

도박이 아닌 확신을 가지고 하는 사샤노프의 말에 송조운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확실히 지금 보리스가 사샤노프 님을 죽인다면 얻는 것은 청색 마탑, 모든 마법사의 의심 어린 시선과 불신. 그는 사샤노프 님을 죽일 수 없어.’

심지어 보리스는 이미 청색의 미래라 불리는 최유나를 내친 경력이 있는 자.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자는 청색에 없다.

“(...하아...)”

결국 보리스는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까딱여 사샤노프의 무릎까지 올라간 얼음을 지워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그리고는 차가운 눈으로 사샤노프를 바라봤다.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네가? 나를?)”

“(네.)”

“(하!)”

능력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샤노프는 술식 연구 부분에서 따라올 자가 한 손에 꼽힐 정도의 능력자. 그런 그녀가 자신을 돕는다면 청색을 완벽하게 손에 쥐는 것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사샤노프가 보리스를 도울 이유가 없었다.

“(개소리군. 더 들을 필요도 없겠어.)”

사샤노프가 전 마탑주, 이바노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청색의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

그런 이바노프를 보리스가 강제로 밀어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샤노프라면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보리스는 더 들을 필요도 없다고 판단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연장의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언젠가 이바노프 님을 지지하던 자들과 당신이 충돌할 것은 명확하겠죠.)”

뚝.

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사샤노프의 목소리에 보리스가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당신의 성격이라면 그들을 힘으로 누르려고 할 테고요.)”

“(...)”

“(그럼 그리 길지 않아 청색은 둘, 아니. 그 이상으로 나눠질 거예요.)”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보리스는 등을 돌린 채로 고개만 돌려 사샤를 바라봤다.

“(저는 이바노프 님이 극빙을 보여준 이후부터 극빙에 대해 연구해 왔어요.)”

사샤노프는 한쪽에 놓여있는 커다란 캐리어를 열며 말했다.

“(이바노프 님은 현존하는 술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율적인 마력 운용으로 냉기의 결정체, 극빙을 만들어내셨죠.)”

그리고 캐리어에서 푸르른. 하지만 탁한 색이 섞여 있는 주먹만 한 구체를 꺼내 들었다.

“(그건...!)”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저는 결국 극빙의 술식을 대략적으로나마 해석하고,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약해... 약하지만...! 그건 확실히...!)”

“(네, 맞아요. 이건 이바노프 님의 극빙을 모방한 물건. 빙정(氷晶)이에요.)”

사샤노프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빙정을 바라보고 있는 보리스를 바라봤다.

“(확실히 저는 이바노프 님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그건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기보단 친애하고 존경하는... 그렇네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비슷했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보리스를 향해 빙정을 내밀며 사샤노프가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저는 그분이 은거한 지금, 그분이 만든 청색 마탑이 분열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당신을 확고한 마탑주의 자리에 올려놓는 꼴이 되더라도요.)”

“(오, 오오...!)”

사샤노프의 손에서 빙정을 빼앗듯이 받아 든 보리스가 빙정을 보며 환호했다.

“(비루한 제 마력으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지만... 당신이라면 다르겠죠.)”

“(그래... 그렇군! 네 마력으로 이 정도 완성도라면! 내가 그 술식으로 빙정을 만들면 완벽한 극빙이 만들어지겠어!)”

빈틈이 많은 사샤노프의 말이었지만 빙정의 존재는 확실했기에 보리스는 결국 사샤노프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송조운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처음에... 이건 테러라고... 했지.’

송조운은 사샤가 등 뒤로 손을 돌려 자신만 보이도록 브이를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며 천천히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럼 저건...’

그리고 시선을 돌려 탁한 푸른색을 띠고 있는 구체, 빙정을 바라본 송조운의 눈에 그것은 구체의 모양을 한 폭탄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무섭다...’

이번 일만 끝나면 이번에야말로 휴가를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송조운이었다.

* * *

“...”

진우는 자신의 앞에 있는 세 사람을 보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제발! 은혜를 갚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목숨을 다 바쳐 은인을 모시겠습니다!”

“살려주신 은혜! 몸을 바쳐서라도!”

그냥 있는 것도 아니고 오체투지를 하며 흙바닥에 이마를 비비고 있는 세 아인.

그들은 지금 진우에게 자신들을 거둬달라 애원하는 중이었다.

“하아, 아인 연합 마을에...”

“그곳에 들어가도 저희는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야 합니다!”

“...골치 아프군.”

사실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다.

아인계 초능력은 페널티가 있는 만큼 그 능력이 출중한 경우가 많다.

류천혁이라는 사내는 [용의 핏줄].

윤이진은 [뱀의 여왕].

강대호는 [그리핀].

세 명 다 희귀한 아인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진우가 거둔다면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이클립스에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빌런이다.”

“저희에게는 은인일 뿐입니다.”

암묵적으로 용 사내. 류천혁이 리더를 맡기로 했는지 그가 대표로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봤다.

“은인께서 영웅이고 빌런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곳에서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오랜 시간 동안 고통받았습니다.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은인께 그저 은혜를 갚고 싶은 것뿐이니 부디 거둬주십시오!”

“거둬주십시오!”

“거둬주십시오!”

“...”

연습이라도 한 건지 말이 아주 청산유수로 흘러나왔다.

“하아, 너희가 나에게 은혜를 갚고 싶다 해도 내가 너희를 믿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물론 이해합니다!”

“...”

어떻게 말해도 포기할 것 같지 않은 세 사람의 모습에 진우가 이마를 짚었다.

‘그냥 탈출시켜서 아인 마을에 데려다주고 아인들과 가디언을 완전히 갈라서게 할 생각이었는데...’

이래서야 이들을 아인 마을로 보낸다 해도 아인 마을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이들이 진우의 도움이 되기 위해 아인 마을을 힘으로 제압한다 해도 문제고 말이다.

‘천우(天牛). 그가 있는 이상 힘으로 제압하는 것도 힘들 테고.’

“음?”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진우의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최유나>

“아. 그러고 보니 내일이었던가.”

신약 연구소의 일 때문에 잠시 잊고있었지만, 내일은 최유나가 러시아로 향하는 날이었다.

“무슨 일 있나?”

-보스! 송조운한테 연락이 왔는데 아무래도 일이 좀 빨리 진행될 것 같다고 오늘 출발할 수는 없냐는데?

“...오늘?”

고작 하루 차이의 시간도 못 기다릴 정도로 일이 빠르게 진행되는 건가. 라고 생각한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될 건 없지. 세리나한테 하루만 일찍...”

그때 여전히 흙바닥에 이마를 비비고 있는 세 명의 아인이 진우의 눈에 들어왔다.

-보스?

“...전력은 많을수록 좋겠지.”

-응?

“일단 세리나한테 하루 일찍 김포 쪽에 비행기를 보내라고 해라. 그리고 출발하지 말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으응? 어... 알았어!

진우가 전화를 끊고 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이클립스에 들어오고 싶으면 한 가지 시험을 주지.”

“오오! 시험! 좋습니다!”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저도! 저도요!”

솔직히 왜 이렇게 자신의 부하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는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한 진우가 말을 이었다.

“내 동료 중 한 명인 최유나가 러시아로 가서 청색 마탑주를 치려고 한다.”

번쩍!

뱀 여자 윤이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뭐지?”

“청색 마탑주라고 하면 이... 이... 이놈프? 그 대마법사인가요?”

“...이바노프다. 아무튼 지금의 청색 마탑주는 이바노프가 아니라 그 제자다. 대마법사도 아니고.”

“그렇군요!”

번쩍!

이번에는 류천혁이 손을 들었다.

“저희는 그분을 도와 청색 마탑주를 죽이면 되는 겁니까?”

“꼭 그렇지는 않다. 너희를 같이 보내는 목적이 그녀를 도우라는 것은 맞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윤이진과 류천혁이 질문하는 모습을 본 강대호 또한 뭔가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지만, 딱히 물어볼 건 없었는지 움찔거리기만 했다.

“...아무튼. 이건 시험이다. 최유나를 도와 그녀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첫 번째. 그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두 번째, 마지막으로 살아 돌아오는 것이 세 번째다.”

“넵!”

“옙!”

“네!”

각자 크게 대답한 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대로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활짝 웃으며 90도로 허리를 숙인 세 사람을 보며 해방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괜한 고생을 시키는 건 아닌지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진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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