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74화 - 리디북스
“콜록! 콜록!”
마스크를 벗고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음에도 세 명의 아인들은 유리관의 바닥에 주저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이.”
“히익! 마, 마비약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속액도 전부 빠져나갔고 마스크도 벗겨졌으니 시, 시간만 지나면 얼마든지 움직일 겁니다! 근육 자극도 했고! 가, 가끔 관절운동도!!”
“그런가.”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체가 건강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연구원들도 나름대로 아인들의 육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진우는 부책임자를 연구원들이 모여있는 곳에 던져넣고 아인들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좀 드나?”
“콜록. 네...”
세 명의 아인 중 유일한 여성이 진우의 말에 굉장히 가늘고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일단...”
진우는 그림자를 움직여 알몸인 그들의 육체를 가려줬다.
“가, 감사...”
“알아들을 수 있으면 됐다. 굳이 대답하진 않아도 돼.”
“네...”
그들의 몸을 감싼 그림자에 마력을 부여해 조심스럽게 움직여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고개를 움직여 예와 아니오로 대답하면 된다.”
끄덕. 끄덕. 끄덕.
진우의 말에 세 사람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탈출하기 전에.”
진우는 옹기종기 모여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원들을 바라봤다.
“책임자라는 놈은 내가 죽여버렸다만. 저놈들의 처분은 너희에게 맡기려고 한다.”
“히익!!”
“아, 안 돼!!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주, 죽고 싶지 않아!!”
진우의 말에 곧바로 눈빛이 바뀌는 세 사람을 발견한 연구원들이 하나같이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을 테니...”
“괜... 찮습니다.”
“음?”
그때, 용의 것과 같은 두 개의 뿔을 달고 있는 사내가 천천히 본인의 힘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저... 는 [용의 핏줄]이라... 는 아인계 능력입니다. 이까짓 마비약은 금방... 회복합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마비가 풀려가는지 점점 본래의 목소리가 돌아오는 듯한 사내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알아서 해라. 최대한 빨리.”
딱!
진우는 손가락을 튕겨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그림자를 적당한 의복으로 바꿔주고는 한걸음 물러났다.
“...내가 전부 처리해도 되겠나?”
“...”
“...”
사내의 말에 다른 두 아인은 묵묵히 그의 눈을 바라봤다.
“저... 는 상... 관 없... 어요.”
그리고 뱀의 아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당... 신이... 가장... 고생... 했... 으니... 까...”
“...고맙다.”
용의 사내와는 다르게 회복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은지 갈라지는 목소리에 띄엄띄엄 말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의지가 담겨있는 목소리에 용의 사내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 쉽... 지만... 어쩔... 수 없... 지.”
그리고 양손 양발이 맹금류의 그것과 같은, 아마도 독수리의 아인으로 추정되는 대머리 사내가 샛노란 결막과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움... 직일... 수 있... 는 건... 너... 뿐이... 고...”
슬쩍 눈을 돌려 진우를 바라본 대머리 사내가 말을 이었다.
“은... 인은... 시간... 이... 별로... 없으신... 모양... 이니...”
“고맙다.”
마찬가지로 대머리 사내에게도 고개를 숙인 용 사내가 몸을 돌려 비틀거리며 연구원들을 향해 걸어나갔다.
“오, 오지 마!!”
“괴, 괴물 새끼!! 오지 마!!”
“살려줘!!”
“으아악!! 죽고 싶지 않아!!”
“얼마나 이때를 기다려왔는지... 너희는 모른다.”
드드득!
용 사내의 양손에 견고한 비늘과 날카로운 발톱이 생겨났다.
“마음 같아서는 천천히 찢으며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지만...”
“오, 오지 마아아!!”
콰아앙!
연구원들 중에서도 초능력자가 있었는지 머리통만 한 화구(火球)가 용 사내를 향해 쏘아졌다.
콰아앙!
그리고 팔로 얼굴을 가린 용 사내의 상체와 충돌해 폭발했다.
“해, 해냈다!”
“하지만.”
후웅!
검은 연기에 휩싸여있던 용 사내가 팔을 휘둘러 연기를 날려버리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은인께서 시간이 없다 하셨으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촤아악!
“어?”
그리고 용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화구를 날렸던 연구원의 상체가 넷으로 갈라지며 사방에 피를 흩뿌렸다.
“으아악!!”
“꺄아아악!!”
“살려줘!! 죽이지 마!!”
“살, 살아야 해!!”
그 모습에 공포에 질린 연구원들이 바닥을 기며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고.
“용조(龍爪)”
촤아아아악!!!
보이지 않는 용의 발톱이 그대로 모든 연구원들을 쓸어버렸다.
투두두둑...
흩뿌려지는 고깃덩어리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용 사내가 손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며 몸을 돌렸다.
“은인. 끝났습니다.”
“...”
사방이 붉게 물든 것은 둘째 치고 초강화 콘크리트에 흉흉한 발톱 자국을 남긴 용 사내의 일격.
진우는 그것을 보며 잭팟을 터뜨렸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탈출하지. 비행은?”
“죄송합니다. 비행 능력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염동력으로 세 사람을 단단히 붙잡으며 말했다.
“지금 위쪽에는 상당한 수의 G.K 요원들이 깔려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동에 전력을 다해야 하니 이 두 사람은 네가 보호해라.”
“알겠습니다.”
진우는 곧바로 [비행]을 사용하여 자신과 세 사람을 띄웠다.
“간다.”
[고속 비행]+[가속]+[공기벽]
파아앙!!
그리고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네 사람이 사라졌다.
* * *
“누님! 전부 정리했습니다!”
“그럼 이제 슬슬 후퇴한다! 부상자 챙겨!”
“옙!”
상대하던 요원을 날려버린 도민경이 시간을 확인하며 살짝 삐뚤어진 복면을 고쳐 썼다.
“설마 혼자 쳐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보이는 G.K 신약 연구소를 잠시 바라보던 도민경의 뒤로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동료를 챙겨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뭐 알아서 잘 나오겠...”
콰아아앙!!!
그리고 자신도 빠지기 위해 몸을 돌린 도민경의 뒤로 굉음과 함께 무언가가 연구소를 부수고 나와 하늘 위로 솟구쳤다.
“하...”
마력으로 시력을 강화한 도민경의 눈에 언제나처럼의 검은 정장과 악마의 가면을 쓴 진우가 보였다.
“저걸 또 살려서 구출했어?”
그리고 그런 진우의 곁에 보이는 세 개의 인영을 발견한 도민경이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시선을 끌었다고 해도 저쪽이 훨씬 많았을 텐데...”
퍼어어엉!!!
조금 떨어져 있는 도민경에게까지 느껴지는 소닉붐과 함께 진우를 비롯한 네 사람이 순식간에 어디론가 날아갔다.
긁적긁적.
그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던 도민경이 머리를 긁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유부남이어도 열열하게 어필하면 어찌어찌 되지 않으려나?”
혼자 중얼거리던 도민경이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에이씨, 뭔 생각을 하는 건지. 가서 씻고 밥이나 먹자.”
그리고 걸음을 옮겨 사라진 도민경의 뒤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수십 명의 G.K 요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 *
콰앙!!
“씨X! 어떻게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이제는 멀쩡한 물건이 거의 없는 가디언 코리아 본사, 지부장실.
또 하나의 의자가 발에 차여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던 유차빈이 씩씩거리는 정인태를 보며 입을 열었다.
“템페스트의 정보력이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정부와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래서 뭐!!”
콰아앙!!
듣기도 싫다는 듯이 다른 멀쩡한 의자를 걷어차며 소리를 지른 정인태가 핏줄이 선 눈으로 유차빈을 바라봤다.
“네 능력이 부족한 걸 변명하지 마라!”
“...”
할 말은 참 많았지만, 유차빈은 그저 침묵하며 고개를 숙였다.
“씨X... 씨X...!”
바닥을 기던 벌레 같은 빌런들이 이토록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 어찌 알았을까.
고작 자신에게 빌붙어 있던 것이 전부였던 정부의 인사들이 이렇게 거슬릴 줄 어찌 알았을까.
“다, 죽여버릴 거야. 감히. 감히 이 정인태를 무시해?”
압도적인 무력으로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승승장구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온 정인태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요즘 들어 더 미친 것 같은데...’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분노하는 정인태를 바라보던 유차빈이 자신의 표정을 숨기며 의아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저 책상...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책상은 건드리질 않는 것도...’
슬쩍 고개를 들어 이 난장판에 유일하게 멀쩡한 정인태의 책상을 바라본 유차빈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금 더 긁어볼까...?’
유차빈은 이번 기회에 정인태를 완전히 내려오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 아직은... 아니야.’
아직 가디언 총본부에서도 정인태에 관련된 지침은 그 어떤한 내용도 내려온 적이 없었기에 유차빈이 직접 정인태를 자극하는 것은 위험했다.
‘아직은 정인태를 따르는 자들이 남았으니...’
가디언 코리아를 총본부에 올라가기 위한 길목 정도로 생각하는 유차빈에게 있어서 가디언 코리아가 어떻게 망가지던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진우가 요구한 사항을 자신의 직권으로 허용하기도 하고 정인태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정보를 틀어막는 등, 가디언 코리아에게 해가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 모든 것은 비서실장인 유차빈이 아닌 지사장인 정인태의 실태로 알려질 테니 말이다.
‘좀 더 확실한 사건이 있다면...’
그렇게 유차빈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조금은 진정한 정인태가 그녀를 불렀다.
“유 실장.”
“네.”
유일하게 멀쩡한 책상에 기대 이마를 짚은 정인태가 나가라는 듯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정보부를 어떻게든 다시 살려.”
“노력하겠습니다.”
유차빈이 고개를 숙이고 지사장실을 나갔다.
“하아...”
지사장실에 홀로 남은 정인태가 한숨을 쉬며 책상의 서랍을 열어 작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쯧, 고작 두 개 남은 건가.”
까드득.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손톱만 한 투명한 구슬을 보며 혀를 찬 정인태가 구슬 하나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하아아...”
그리고 한층 가볍게 풀린 표정으로 길게 숨을 내쉰 정인태가 상자를 다시 서랍 안에 넣고 전화를 꺼내 들어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었다.
-욥! 벌써 다 떨어졌어?
“이제 하나 남았다.”
-어디 보자~ 열흘 전에 열 개를 넘겼으니까... 거의 하루에 하나씩? 우수 고객이네~
가벼운. 아니 경박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목소리에 정인태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닥치고. 다음 물건은 언제냐.”
-우수 고객님이 물건이 다~ 떨어졌다는데~ 바로 가져다 드려야지~
똑똑.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옆 창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에 정인태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곳에는 자연스러운 푸른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창문에 딱 달라붙어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창문 좀 열어줄래~?
“열려있다.”
-에이~ 집주인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맘대로 열고 들어가겠어~
“쯧.”
전화를 끊은 정인태가 여성이 붙어있는 창문을 열었다.
“엇차차... 욥! 열흘만!”
어느 날부터 자신에게 ‘마음의 평화’라는 투명한 구슬을 넘기는 여자.
길드의 사람인지, 가디언의 사람인지, 빌런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물건은?”
“여기~!”
정인태가 아는 것이라고는 마음의 평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구슬을 먹으면 순식간에 마음의 안정이 찾아온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이름.
“고맙군. 이렐라인.”
“에이~ 우리 사이에 뭘~”
언제부터 그녀를 알았는지, 왜 그녀에게 마음의 평화를 받고 있는지, 왜 그녀에게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는지.
정인태는 관심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자자~ 그렇게 딱딱하게 있지 말고~ 이거! 먹어볼래?”
“음?”
그때, 이렐라인이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짠짜자잔~”
지금까지와의 투명한 구슬과는 다른 붉은색 구슬.
“이건?”
“이건 말이지~ ‘마음의 평화’를 강화한 ‘마음의 구원’이야~!”
“마음의... 구원...”
사람을 홀리는 듯한 영롱한 붉은 구슬에 시선이 뺏긴 정인태는.
“히히~ 관심 있어?”
이렐라인의 눈이 요사스럽게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