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71화 - 리디북스
뻥 하니 구멍이 뚫려버린 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하지만, 송조운도 루비도 그리고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성도 그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어, 어쩌지?”
“냐앙...”
-몰라...
힘이 남아돈 루비의 불꽃 꼬리 치기로 폭발한 현관의 충격에 휘말려 기절한 스타챠 사샤노프.
“어, 어쩌면 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냥?”
-그게 뭔 소리야?
송조운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그 사샤노프 님은 35살이라며. 근데 이분을 봐!”
“냥...?”
송조운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려 기절한 사샤를 바라본 루비가 다시 송조운을 쳐다보며 말했다.
“냐아앙.”
-지금 고양이보고 사람 나이를 맞추라는 거야?
“어?”
-예쁜 고양이면 모를까 내가 사람 얼굴 구분하는 것도 대단한 거라고.
“그, 그런 거야?”
-우리는 얼굴이 아니라 냄새로 기억하니까.
“그렇구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송조운은 최대한 현실을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
“그냥 봐도 17살? 많아 봐야 스무 살 정도로 보이거든?”
-근데?
“아니, 절대로 35살로는 안 보이니까 그, 이 사람이 사샤노프 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고맙긴 한데 제가 사샤노프가 맞아요.”
“으어어억!?!?”
아름다운 푸른색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사샤노프의 모습에 송조운이 기겁을 하며 후다닥 물러났다.
“어, 언제부터 깨있었습니까!? 아니 그보다 한국어 잘하시네!?”
“정신을 차린 건 방금이고, 한국어는 공부했으니까요.”
스르륵.
상체를 일으키면서 샤르륵 미끄러지는 찬란한 금발에 저절로 눈이 간 송조운이 번뜩 고개를 털고는 흔들리는 눈으로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죠?”
황금의 폭포와 같은 찬란한 금발의 머릿결. 깊고 푸르른 눈동자. 살짝 창백하지만 퇴폐적인 느낌을 주는 피부.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매.
‘이게 어떻게 서른다섯이야...’
연애 한 번 못 해 본 송조운에게 바라볼 곳이라고는 눈 정도뿐이었다.
“저기요?”
“헉! 아! 저는 한국에서 온 송조운입니다!”
“...한국인인 건 보면 알아요.”
“아...”
한국어를 아는 사람 앞에서 신나게 한국어를 했으면서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양심 없는 일이기는 했다.
“송조운... 역시 모르는 이름이에요.”
“아. 저는 최유나 양의 편지를...”
“유나!? (유나가 저한테 편지를 보냈다고요!?)”
“으억!?”
벌떡 일어나 한국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를 뱉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사샤노프의 모습에 송조운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올리며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 사샤노프의 옷은 루비의 불꽃에 조금 타 있는 상태였다.
“그, 옷! 오옷!”
“(편지 어딨어요! 내놔!)”
“오오오옷!!”
“냐앙.”
-참 힘들게 사네. 그까짓 옷 안 입으면 뭐 어때서.
할짝.
만세를 하며 필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는 송조운과 그런 송조운의 주머니를 뒤지는 사샤노프의 모습에 루비는 앞발을 핥고 세수를 하며 하품을 했다.
* * *
“......”
“냐냥.”
-송 인간.
“송 뭐?”
-내 뒤로 와. 살기가 엄청나.
“...그래.”
편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루비가 송조운을 보호하기 위해 살짝 앞으로 나섰다.
“후우우우...”
이내 사샤노프가 편지를 다 읽고 손을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결국은 그렇게 됐구나...)”
그리고 고개를 들어 루비와 송조운을 바라봤다.
“(응?) 왜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아...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냐아아.”
순식간에 사라진 살기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송조운이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
‘살기를 내비쳤다는 자각이 없는 건가? 연구원이라고 했는데 장난 아니잖아...’
사샤노프는 연구원이다. 초능력자도 아니고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마법을 직접 사용하는 것는 재능이 없어 끽해봐야 기초와 하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순간 내비친 그녀의 살기는 비전투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뜩한 무언가가 있었다.
“제가 당신을 공격할 일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네. ...네?”
“챙겨야 할 게 좀 있거든요.”
“...?”
그렇게 말한 사샤노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뭐지?”
예의상, 그리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편지의 내용은 보지 않았던 송조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 뚫려있는 문에서 들어오는 냉기에 송조운의 몸이 조금 떨려오기 시작할 때쯤.
덜컥.
사샤노프가 들어갔던 방문이 열리고 그녀가 거의 자신의 몸만 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끄으으응...!”
“...?”
“좀 도와주지 않을래요!?”
“아!”
도와달라는 사샤노프의 말에 벌떡 일어나 달려간 송조운이 그녀가 끌고 나오는 케리어를 붙잡았다.
“!?”
그리고 꿈쩍도 하지 않는 캐리어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제 비밀 병기예요. 유나가 부탁한 일을 하려면 꼭 필요해서요.”
“부탁한 일...?”
“어머? 편지 내부는 안 봤나 보네요?”
“그야... 제가 보면 안 되는 내용이 있을까봐...”
“흐음~? 성실한 사람이네요.”
작게 미소를 지은 사샤노프가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청색 마탑에 테러를 일으키는 거예요.”
“아하. 그렇...”
어떻게든 케리어를 끌기 위해 힘을 주던 송조운이 그대로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슬쩍 자신의 귀를 후비고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피곤해서 제대로 못 들은 것 같은데... 방금 뭐라고...”
“어머, 쉴 때는 제대로 쉬어야 해요.”
“하하하, 감사합...”
“그리고 청색 마탑에 테러는 제대로 들은 거니까 귀는 이상 없네요.”
“...”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못 하고 멍하니 사샤노프를 바라보던 송조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저도...?”
“네. 당신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써 있던걸요? 아. 거기 귀여운 고양이 씨도요. 루비라 그랬죠?”
“냐아앙.”
슬쩍 앞발을 들어 맞다는 듯이 대답하는 루비를 보며 미소를 지은 사샤노프가 아차 하며 송조운에게 강화 마법을 걸었다.
“무거울 걸 생각 못 했네요. 자자, 다시 힘내요.”
“...”
강화 마법에 의해 힘은 넘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울고 싶은 송조운이었다.
* * *
같은 시각, 이클립스의 본부.
“그... 이상한가요...?”
“아니... 이상... 어... 이상하긴 한데... 그...”
얼마 전 진우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천지인의 능력 개발을 위해 두 가지 숙제를 줬다.
하나는 최소 100미터 밖에서 종이 인형의 강화를 성공하는 것.
이건 고작 3일 만에 성공했다고 전화가 와서 역시 천무진의 딸인 만큼 재능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마력을 사용해 신체 강화를 성공하는 것.
천지인은 천무진에게 무공을 배웠으니 이 또한 쉽게 해결할 줄 알았지만, 의뢰로 일주일이 넘도록 성공했다는 전화가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답답했던 것일까. 천지인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개발했다.
“고오옴!”
“히익! 시끄러! 조용히 해!”
“고옴...”
그게 종이 곰의 배를 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었어도, 일단은 참신한 기분이었다.
“...일단은 나와라.”
“네...”
본인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얼굴을 붉히며 종이 곰의 배 속에서 나온 천지인이 조심스럽게 종이 곰의 배를 다시 복구해 줬다.
자세히 보니 조금 개조를 했는지 배가 열고 닫히기 쉽게 되어 있었다.
“가서 지은이랑 놀아줘.”
“곰곰.”
천지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종이 곰이 터벅터벅 걸어 문을 열고 사라졌다.
“...죄송해요. 잘 안되다 보니 성급했나봐요.”
“음?”
그리고 갑자기 천지인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그걸 본 진우가 의문을 표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냐?”
“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마력으로 강화하면 웬만한 철갑옷 정도의 내구도는 될 거고, 근력, 민첩성도 나쁘진 않을 테니 네 몸이 견딜 수만 있으면 훈련해 볼 가치는 있을 거라 본다.”
“하, 하지만 이상하다고...”
“...곰의 배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안 이상하면 그게 더 문제 아닌가?”
“아! ...그런가요?”
“...”
왜 거기서 의문이 나오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진우가 슬쩍 고개를 젓고는 아공간 팔찌에서 수십 장의 검은 종이를 꺼냈다.
“이건...?”
“카본 종이다.”
“카본...?”
“뭐, 간단히 말해서 그냥 좀 튼튼한 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천지인에게 카본 종이를 넘긴 진우가 말을 이었다.
“그걸로 사람을 만들어봐라.”
“네!? 사람을요!?”
“그래.”
갑옷이나 무기 같은 종류를 만들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천지인의 초능력은 오로지 생명체를 모방할 때만 발동한다.
“종이 곰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말을 하는 인형이 나올 수도 있겠지.”
“아...”
만약 그렇다면 종이 인형이 자아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말이니 천지인의 중요도는 한 단계 더 올라갈 것이다.
“아무튼 열심히 해봐라. 마력 신체 강화도 포기하진 말고.”
“네! 열심히 할게요!”
얼마 전부터 템페스트와 정부에서 이클립스에 활동 지원금이랍시고 돈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걸 월급이라는 형식으로 지급받은 이후로 뭔가 더 열성적으로 변한 천지인이었다.
천지인의 훈련실에서 나온 진우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장 일을 시킬 생각은 없지만... 인력이 부족하긴 하군.”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쉰 진우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했다.
“...하아, 쉴 틈이 없구만.”
한숨을 쉬며 손을 내린 진우의 폰에는 ‘G.K 신약 연구소에서 인체실험 정황 포착.’이라고 써 있었다.
* * *
“끄르르륵...”
죽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IWJ-24번 투약.)
(IWJ-24번 0.4ml 투약합니다.)
저 유리벽 밖의 자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 ...!!”
이 저주스러운 액체 속에 갇힌 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5번 실험체 반응 있음. 추가로 0.1ml 투약.)
(IWJ-24 0.1ml 추가 투약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뭔가를 투약한다는 말이 들릴 때마다.
“...!!! ...!!”
끔찍한 고통이 자신을 덮친다는 것뿐.
그렇게 고통에 허덕이다 드디어 죽을 수 있다 라는 느낌이 들 때마다.
(5번 실험체, 심장박동이 약해집니다.)
(튼튼한 게 장점인 아인 주제에 뭘 이렇게 자주... 아무튼 800줄 차지!)
(800줄 차지. ...완료!)
(샷!)
파지직!
“끄으으...!!!”
강제로 죽음에서 되돌려 놓는 것 또한 대체 몇 번인지.
안 그래도 저주스러운 아인의 능력이 더더욱 싫어질 뿐이다.
‘엄마... 아빠...’
10살의 생일. 초능력을 각성하고 아인이 되었다. 아인은 천대받고, 혐오받는 자들임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두려웠다. 사랑하는 부모에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에게 버림받을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감춰주며 사랑해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1년이 한계.
어떻게 찾았는지 집에만 있던 자신을 끌어낸 것은 정체 모를 초능력자들.
엄마와 아빠를 살해하고, 이곳으로 끌려왔다.
‘다 죽여버린다!! 죽여버릴 거야!!’
(5번 실험체 마력반응! 제압합니다!)
파지지직!!
“끄으으으윽!!!”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곧장 가해지는 전기충격에 정신을 잃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며칠, 몇 개월,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제발... 누군가...’
그리고.
(데, 데빌이다!)
(경비!! 경비원!!!)
그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