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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68화 (68/109)

가장은 만능 빌런 68화 - 리디북스

알렉산드로 아드릭 이바노프.

러시아의 대마법사이자 회색을 제외한 4대 마탑 중 하나인 청색 마탑의 마탑주.

빙결계 마법사 중 최강이라 불리며 시간만 있다면 모스크바의 절반을 얼음으로 뒤덮을 수 있는 괴물.

빙결계 마력 제어의 재능을 타고난 최유나를 입양하여 키운 스승이자 부모인 자.

그리고 최유나가 그의 제자로서 한국에 와서 청색 마탑의 지부를 세우다 정인태의 수작으로 함정에 빠지자 그녀를 버리고 실리를 취한 자.

“...”

8년, 아니 9년 만에 만나는 스승을 기다리며 최유나는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아니, 그래도...”

최유나가 이바노프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 연락한 이후, 진우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일을 하러 자리를 떠났다.

조언도, 만류도, 설득도 하지 않고 떠난 진우의 모습에 최유나는 잠시 서운함을 느꼈지만, 이바노프를 만나고 마무리를 짓는 것은 자신의 일이었기에 서운함은 금방 사라졌다.

“후... 하... 후...”

세리나가 마련해준 자리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는 최유나는 극도의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이상한 상태였다.

“스ㅅ... 아니, 할배는 사과를 하려나?”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사죄를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아니, 그 할배인데? 그럴 리가 없지. 그 인간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무슨 말을 할지 모르겠는 긴장감.

“아으... 언제 오는 거야... 아 진짜 그냥 갈까...?”

일단 홀리듯 오긴 했지만, 아직은 이랬다저랬다 완전히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 최유나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얼마나 보냈을까.

똑똑.

“힉!?”

“손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바로 모셔도 괜찮을까요?”

회색 마탑의 하급 마법사가 이바노프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왔다.

“...후우 ...들여보... 내 줘.”

“알겠습니다.”

심호흡을 하며 간신히 대답한 최유나의 심장이 더욱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으윽.

문이 열리고 작은 체구의, 그럼에도 거대하게 느껴지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들어왔다.

“(오랜만이구나.)”

“(...할배.)”

러시아어로 말한 이바노프에게 맞춰 러시아어로 말한 최유나가 자신의 심장이 급격하게 식어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9년 만인가.)”

“(...)”

알렉산드로 아드릭 이바노프.

그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나도 무감정했기 때문이다.

‘이럴 거라고 예상했잖아... 뭘 바란 거야 최유나...’

러시아의 대마법사, 청색의 이바노프는 원래 이런 남자였다.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실망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오히려 화가 나는 최유나였다.

“(왜 보자고 한 거야?)”

때문에 최유나 또한 자신의 감정을 죽이며 그를 바라봤다.

“(...그래 얘기를 길게 끌 필요는 없겠지.)”

그런 최유나의 모습에 잠시 침묵하던 이바노프는 품속에서 푸른색의 구체를 꺼냈다.

“(...극빙(極氷)?)”

“(그래.)”

그 푸르른 구체를 본 최유나는 눈을 크게 뜨며 이바노프를 바라봤다.

“(이게 왜 여기 있는데?)”

극빙(極氷).

안 그래도 추운 러시아. 그 러시아의 최북단에 위치한 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일 년 내내 얼음이 녹지 않고 까딱 잘못해 피부가 드러나면 순식간에 동상을 입는 그런 극한의 장소.

그리고 그런 곳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아드릭 이바노프가 초능력을 각성하고 마법의 경지에 오르자마자 그 마을 주변의 모든 냉기를 압축시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극빙(極氷)이었다.

“(마탑주 자리를 보리스, 그 사람한테 물려줬다면서. 그럼 그것도 보리스한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후우... 먼저 나는 마탑주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서 물려준 게 아니다.)”

최유나의 물음에 이바노프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보리스 그놈은 실력은 있지만 성정이 너무 잔인하다.)”

“(...)”

“(그래서 너를 차기 마탑주로 생각했던 거였지만...)”

말끝을 흐린 이바노프가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털었다.

“(아니, 이 얘기는 지금은 필요 없겠지.)”

그리고 다시 최유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마탑주 자리에서 밀려났다.)”

“(밀려나...? 할배가 강제로 자리에서 밀려났다고? 그게 말이 돼?)”

“(...나도 늙었다는 거지.)”

“(하!)”

마법의 경지로만 따져도 전 세계에 단 4명, 아니. 이제는 5명뿐인 대마법사.

초능력을 합친다면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가 바로 이 노인, 이바노프다.

그런 이바노프가 고작 나이를 먹었다고 강제로 마탑주 자리에서 밀려났다? 최유나로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였다.

“(헛소리하지 말고 밀려난 이유...)”

때문에 납득이 갈만한 이유를 대라 말하려던 찰나.

‘나는 이제 청색 마탑의 마법사가 아니야. 할배의 제자도...아니야.’

자신이 화를 낼 일이 아니라는 것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고 결국 최유나는 스스로 말을 끊었다.

“(후우... 그래서, 아직 나를 보자고 한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래. 결론만 말하기로 하지.)”

이바노프는 최유나와 자신 사이의 탁자에 극빙을 올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극빙을 네게 주마.)”

“(...뭐?)”

“(극빙은 청색 마탑주의 상징과도 같은 것. 동시에 빙결계 능력자와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보물과도 같은 것이지.)”

“(지금 무슨 소리를...)”

“(보리스는 극빙을 이용해 가디언 러시아와 손을 잡고 러시아 정부를 부술 생각이다.)”

“(뭐...?)”

생각지도 못한 내용에 잠시 귀를 판 최유나가 다시 이바노프를 바라봤다.

“(방금 말한 그대로다. 내가 그것을 반대하니 그놈을 지지하는 원로원의 공작으로 내가 마탑주 자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던 거고.)”

“(하...)”

어이없다는 한숨을 쉰 최유나가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나를 끌어들인다고?)”

“(...)”

“(당신이 나를 버렸으면서?)”

“(그건...)”

최유나의 말에 입을 다물어버린 이바노프가 눈을 감았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회색 마탑주와 너를 제외하면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극빙을 가져도 보리스는 모를 테니 손해 볼 건 없을 거라고?)”

“(...그래. 오히려 큰 이득이겠지.)”

기분이 더러웠다.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사죄의 한마디도 없이 스스로의 용건만을 말하는 것.

손해는 없을 거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

‘괜히 나왔어... 그냥 나오지 말걸...’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저 눈빛이. 최유나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고 있었다.

“(거절할게. 그딴 거 없어도 돼. 이제 됐지? 꺼져.)”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빙결계 마법의 위력을 극대화하는 보물을 거절한 것은 그래서일 거다.

‘이제 이 사람이 주는 건 그 어떤 거라도 받고 싶지 않아.’

최유나는 마지막 남은 미련을 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고자 했다.

“(끌끌끌...)”

뒤에서 들려오는 이바노프의 웃음소리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뭐가 웃긴데?)”

“(9년이라는 세월이 길긴 했나 보구나.)”

“(뭐?)”

쩌저저적!!

그때 유일하게 방을 나갈 수 있는 문이 얼어붙으며 막혀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제자야. 아쉽지만 너에게는 선택권이 없구나.)”

“(뭐?)”

이제 와서 제자라고 부르는 것도 짜증 나는데 선택권이 없다 말하는 이바노프의 말에 최유나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나는 너에게 부탁이나 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통보를 하러 온 거지.)”

“(...)”

차가운 마력이 주변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낀 최유나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미적지근하구나.)”

그리고 곧바로 최유나의 마력이 이바노프의 마력에 잡아먹히고, 마력의 압박이 심해져 최유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크으윽!”

“(제자야. 한숨 자고 일어나거라.)”

“끄으으윽...!”

기술도, 마법도 아닌 그저 압도적인 마력으로 자신을 압박하는 이바노프의 모습에 최유나가 점점 의식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 로...차이가 날 리가...없는...’

“쿨럭.”

‘..피...?’

그리고 흐릿한 시야로 자신의 얼굴과 눈앞에 붉은 피가 튀는 것을 보고 느낀 최유나가 억지로 시선을 올리자.

“(...안하구나...)”

‘뭐...?’

뭐라고 작게 말한 이바노프의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쿠구구궁!!!

“끄으으윽!!”

그리고 더욱 거세게 자신을 압박하는 마력에 결국 최유나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 *

“(이걸로 괜찮은가요?)”

최유나가 완전히 정신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 마탑의 주인, 세리나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회색 탑주께는 미안하구려. 고맙소 이 늙은이의 부탁을 들어줘서.)”

“(...)”

쓰러져있는 최유나의 앞.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최유나의 머리를 매만지는 이바노프를 보며 세리나가 작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냥 유나에게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는 건가요?)”

“(...)”

얼마 전, 청색 마탑의 탑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바노프가 찾아 왔을 때는 자신의 라이벌이자 친구인 최유나를 생각해 그를 제압할 생각까지 한 세리나였다.

“(그래. 이걸로 된... 쿨럭! 쿨럭!)”

하지만, 그의 사정과 9년 전 최유나를 보호하지 않은 진짜 이유를 듣고 나니 차마 그를 탓할 수 없었다.

“(...비밀은 지킬게요. 하지만... 유나가 직접 알아내고자 하는 걸 막을 생각은 없어요.)”

“(끌끌끌... 그거면 되오.)”

입가에 흐르는 피를 천천히 닦아낸 이바노프가 시선을 올려 세리나를 바라봤다.

“(이제 이 늙은이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구려. 조금 도와주겠소?)”

“(하아...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지만...)”

세리나는 곤히 잠든 듯한 최유나의 모습을 한번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알겠어요. 마력만 지원하면 되는 거죠?)”

“(끌끌. 고맙소.)”

그리고 세리나가 이바노프의 등 뒤로 다가가 그의 등에 손을 올리고 속성이 부여되지 않은 순수한 마력을 정제하여 그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끄으읍...!)”

“(...)”

아무리 순수한 마력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마력을 몸에 받아들이는 것은 마력 코어에 극도의 부담을 주는 행위.

마력 코어가 위치한 심장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이바노프가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한 손에 든 극빙을 최유나의 가슴에 가져다 대며 정신을 집중했다.

‘못난 스승이지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건 남아있어서 다행이구나...’

세리나가 공급하고, 이바노프의 몸을 통해 빙속성 마력으로 변화한 마력이 극빙으로 전해지고.

드드드드득!!

그의 마력을 받아들인 극빙에 수천, 수만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아아...”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이바노프의 등에서 손을 뗀 세리나가 입에서 하얀 김을 뿜으며 뒤로 물러났다.

쩌저저저적!!

어느새 구체 전체에 균열이 생긴 극빙은 수많은 조각, 아니, 가루가 되어 최유나의 피부를 통해 흡수되기 시작하고, 동시에 최유나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전신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하아아아...)”

그리고, 그것을 본 이바노프가 자신의 마력 코어에서 모든 마력을 끄집어내어 최유나의 마력과 극빙의 냉기 사이에 끼어들어 균형을 잡기 시작하고.

파아앙!!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최유나의 몸에 생겼던 서리가 터져나가며 그녀의 안색 또한 건강한 색으로 돌아왔다.

“(성공이군...)”

“(...)”

마지막까지 최유나의 안색을 살피던 이바노프가 안심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

올해로 96세의 알렉산드로 아드릭 이바노프.

강대한 마력으로 인해 60세~70세 정도로 보이던 그였지만.

“(아. 이런, 실언을 했구려.)”

지금 그의 모습은 90세 이상의. 20년, 아니 30년은 늙어버린, 그야말로 노인의 모습이었다.

“(...)”

반대로 최유나는 원래도 동안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많게 쳐줘도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세리나가 최유나를 살피는 사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이바노프가 흐릿한 눈으로 세리나를 바라봤다.

“(이... 런, 끌끌... 조금은 남... 길걸 그랬나 보오...)”

“(...유나한테는 적당히 둘러대 놓을게요.)”

세리나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은 이바노프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될 수... 있... 으면... 내가... 죽었다는... 건...)”

그리고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툭!

그의 손에 잡혀있던 지팡이가 쓰러지며 청색의 대마법사, 알렉산드로 아드릭 이바노프의 죽음을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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