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67화 - 리디북스
(할머니!!!)
(아가!! 아가아아!!)
구속되어 끌려가는 여성을 당장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일이 끝나고 며칠이나 흘러도 계속해서 여성과 그 조모의 절규가 귓가에서 사라지질 않았다.
(왜 막았습니까! 형님이 막지만 않았어도 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형님을 찾아가 왜 자신을 멈춰 세웠는지 따졌다.
못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형님이 멈춰 세워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녀를 제압하는 동료를 공격했을 테고, 그럼 나도 빌런이 되어 평생을 도망치거나 감옥섬에 투옥됐을 거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따지기라도 해야 했었다. 아니면 속이 터져 죽을 것 같았으니까.
(후우우...)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묵묵해 못난 아우의 화풀이를 들어주던 형님은 숨을 헐떡이는 자신에게 담배 한 까치를 내밀며 말했다.
(끝났냐? 한 대 피울래?)
(...주십쇼.)
그날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다.
(콜록! 콜록! 으엑! 이딴 걸 왜 피우는 겁니까!?)
(푸흐흐흐, 처음 피우는 놈들은 다 그렇게 말하더라.)
형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성진아. 니가 나를 알게 된 지 얼마나 됐더라?)
(...3년? 그 정도 됐을 겁니다.)
(3년이라... 내가 한창 정보부 말단으로 아등바등하고 있을 때네.)
(네, 지금은 부총괄이시니 뭐 성공한 거 아니겠습니까.)
(성공? 후우우... 성공이라...)
형님은 어딘지 모르게 그늘진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처음으로 가디언 코리아에 입사했을 때, 세상의 정의를 위해 그리고 아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라는 생각이었어.)
형님은 품속에서 폰을 꺼내 화면을 켜니 배가 부른 상태로 환하게 웃고 있는 형수님이 보였다.
(상층부에서 내려오는 더러운 짓을 하나씩 처리할 때마다 합리화를 해. 힘이 없으니까, 가족이 있으니까, 먹고 살아야 하니까, 참아야 한다고.)
(...)
(근데 아이가 생기니까 문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
(...무슨 생각입니까?)
(내가 이 아이에게 떳떳할 수 있겠냐는 생각.)
(...)
형님은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서 하나씩 준비해 보려고.)
(준비...?)
(큭, 뭐 거기까지는 네가 알 필요 없고.)
형님은 재떨이에 필터까지 타버린 담배꽁초를 비비며 말했다.
(너는 지금 그 감정을 잊지 않으면 되는 거야.)
(형님...)
(썩어버린 태양 아래에 있다고, 우리까지 썩어버릴 이유는 없잖냐. 그러니까.)
형님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저 썩은 태양을 깨끗한 태양으로 만들 때까지는 참고 버텨.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 * *
“후우우...”
김성진은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길 안쪽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흩어지는 연기를 바라봤다.
“여전히 왜 피우는지 모르겠구만.”
김성진은 타들어가는 담배의 끝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이후로 벌써 6년인가...”
자신의 손으로 친형이라 생각하던 사람을 죽였다.
마력 중독증의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가디언 코리아의 힘에는 거역할 수 없으니까. 진우가 가디언 코리아의 질서를 흩트리고 있었으니까.
“개소리지. 그냥 내가 병신이었을 뿐인 것을...”
어머니가 의식이 있으셨다면 친형과도 같은 사람을 배신할 바에는 자신을 포기하라고 하셨을 거다.
“결국 나도 썩어버린 건가...”
어느새 필터가 타고 있는 꽁초를 버린 김성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빌...”
만약 그가 진우와 연관이 있는 자라면.
아니. 만약 그가 서진우 그 자신이라면.
“설마 싶기는 하지만...”
김성진은 각종 능력에 의해 검게 타버린 진우의 시체를 직접 확인했다. 애초에 공격 명령을 자신이 내렸다.
일반인이. 아니, [초재생]을 가진 능력자라도 그 상태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
그럼에도 김성진은 티끌과도 같은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를 만나봐야겠어.”
진우가, 자신의 형님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 * *
최근 며칠. 이클립스의 본부는 굉장히 평화롭다.
“심심해~”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 전체가 굉장히 조용했다.
“보스보스~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우석훈 대통령과 도석환이 준비가 끝났다고 할 때까지.”
“그게 언젠데에~”
“그건 나도 모르지.”
“힝...”
도도도!
그때, 조막만 한 손으로 거의 자신의 몸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태블릿을 들고 뛰어온 지은이가 진우에게 태블릿을 내밀었다.
“아빠! 요기요기 아빠가 또 나와요!”
“그래? 어디 한번 볼까?”
최근 한국 전역이 조용한 것과는 별개로 인터넷의 세계는 그야말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여기 아빠! 여기두 아빠! 히히히!”
지은이가 보여준 태블릿의 화면에는 검은 정장에 반쯤 깨져있는 가면을 쓴 데빌, 신명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데빌, 하늘을 날고 있는 데빌.
진우의 얼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이미 데빌의 모습과 아빠의 모습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있는 지은이에게 있어서 이 사진과 영상들은 전부 아빠의 모습이 티비에 나오는 것과 같았다.
-모두 외쳐! 악마 강림!
-웩! 이건 어디서 나온 씹덕이래?
-빌런을 옹호하는 세상이라니 말세로다.
-응~ G.K는 일반 빌런은 꿈도 꾸지 못할 범죄 집단이죠?
-정의라 쓰고 범죄라 읽는다!
-G.K에서 꽂은 정치인들 다 갈려나가는 거 보면 속이 뻥 뚫리는 데 정상인가?
-삐빅! 정상입니다!
G.K 요원과 싸우는 영상, 신명하와 싸우는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오우 쮓~ 이 정도면 S+급은 되는 거 아님?
-나도 그 생각했음.
-지랄 ㄴ S+급은 진짜 말 그대로 급이 다름. 끽해봐야 S급 정도 일 듯.
-S급이 언제부터 끽해봐야라는 말을 붙였냐??
-난 강한 것도 강한 건데 주변에 쓰러져있는 사람들한테 피해 안 주려고 하는 게 보여서 더 멋있는 듯. 좀 잔인하긴 하지만.
-ㅇㄱㄹㅇ. 데빌은 G.K랑 연관돼 있는 사람들 아니면 안 건드린다고 함.
-님이 그걸 어캐 앎?
-저 자리에 내 친구 있었음.
이은선을 구할 당시 분노하여 무리하게 [악마의 그림자]를 사용해 G.K요원들과 정부 요원들을 상대할 때의 사진들도 있었다.
“하하하...”
팔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아주 난리가 난 상태였지만, 사진에 보정이 들어갔는지 아주 못 볼 정도는 아니었다.
“우석훈 대통령이 지시한 건가...?”
“웅?”
진우의 중얼거림에 무릎에 앉아있던 지은이가 고개를 올려 진우를 바라봤다.
“지은이는 아빠가 사람들을 아프게 만드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우웅?”
진우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지은이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아빠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거라고 해써요!”
“...엄마가?”
“웅! 그래서 가끔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구, 사람들이 아빠가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은이는 아빠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댄데요!”
“그렇구나...”
아마 지금의 얘기가 아니라 과거, 정보부에 소속되어 있을 때 얘기한 것일 테지만, 진우는 뭔가 위로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구 그리구.”
“응?”
지은이는 다시 태블릿을 진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머시써요!”
“...”
지은이가 내민 태블릿에는 언제 찍혔는지 가면의 눈구멍에서 황금빛 빛을 뿜으며 온몸에서 검은 기운을 일렁거리는 사진이 있었다.
“이건 좀...”
그림자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숙련도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범용성이 좋기 때문이다.
물리력도 있어 공격과 방어 양쪽 전부 사용할 수 있고, 다른 능력과 결합하여 적의 육체를 조종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각 잡혀 찍힌 사진을 보니 그야말로...
“엄마가 중이중이하다라고 그래써요!”
“쿨럭!”
“근데 중이중이가 뭐예요?”
“그...”
진우가 뭐라 대답해주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어느새 뒤로 다가와 소파에 턱을 올리고 있던 최유나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크크큭. 지은아~ 중이중이하다는 아~주 멋있는 사람을 얘기하는 거야~ 우리 지은이 아빠처럼~”
“최유...!”
“아하! 아빠는 중이중이해요!”
“...고, 고맙... 고마워 우리 딸...”
“녜!”
“끄... 큽... 크크큽... 꺄악! 아파!”
딸이 멋있다는 의미로 말해주는 것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던 진우였기에 진우는 몰래 그림자를 뻗어 최유나의 종아리를 때리고는 그녀를 노려봤다.
‘애한테 잘못된 지식을 알려주지 마라.’
‘뭐! 뭐가! 나쁜 건 아니잖아!’
뭔가 당당한 듯한 최유나의 눈빛에 진우가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다시 지은이를 바라봤다.
“이것두 중이중이해! 이것두! 아빠는 중이중이해! 히히히.”
“...”
아무래도 나중에 최유나가 없을 때 잘못된 지식을 정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진우였다.
삐루루리링~
“어? 세리나네?”
그때, 뭔가 희한한 벨 소리와 함께 최유나가 전화를 받았다.
“응. 왱? ...보스가 갚는다 그랬잖아... 아니 그건 미안한데... 아 갚는다니까!? 자꾸 그러면 확 안 갚는다!?”
최유나의 말만 들어도 세리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만했다.
“문제? 무슨... 어?”
그때, 최유나의 표정이 순식간에 심각해졌다.
“뭐? ...왜? 이유가 뭔데?”
최유나답지 않게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과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진우는 뭔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하고 지은이를 안아 밖으로 나갔다.
“아빠?”
“지은아, 엄마한테 가 있어. 아빠는 유나 언니랑 잠깐 할 얘기가 있을 것 같네.”
“네에~”
그렇게 지은이를 보내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 진우가 아직도 심각한 표정을 유지하며 통화 중인 최유나를 바라봤다.
“하아...”
뭔가 듣기만 하고 있는 건지 때때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최유나의 모습에 진우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고는 기다리기로 하고 벽에 기댔다.
“...그래서. 누가 올라갔는데? ...그 아재가? 하! 그 쓰레기가 무슨 수로... 나? 내가 왜 나와?”
그렇게 한참을 통화하던 최유나가 일단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고 벽에 기대있는 진우를 바라봤다.
“보스.”
“내가 알아도 되는 내용이냐?”
“...응, 보스도 연관된 거야.”
“...뭔데.”
최유나는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청색 마탑주...아니, ‘전’ 마탑주 할배가 나를 보고 싶다네?”
“‘전’ 마탑주?”
“응. 내 스승.”
적, 청, 백, 흑, 회의 5개의 마탑.
그중에서 적색과 청색 마탑은 세워진 이후로 단 한 번도 마탑주이 바뀐 역사가 없다.
“청색 마탑의 탑주가 바뀌었다고?”
“응. 어제... 자리에서 물러났데. 그리고 나를 만나고 싶다고 세리나한테 연락했다고...”
그렇기에 청색 탑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은 놀라는 게 당연한 소식이고 최유나가 심각해질 만한 소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 최유나가 심각해진 이유는.
“나 어떻게 해야 하지...?”
“...”
전 청색 탑주인 자신의 스승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스승... 할배는 나를 버렸어.”
“...”
정인태의 뒷공작으로 빌런으로 몰렸을 때. 사실 청색 마탑의 힘이라면 최유나를 구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G.K와 척을 지긴 하겠지만, 최유나는 탑주의 제자였으니까.
하지만 청색 마탑은 차기 탑주라고까지 불리던 최유나를 외면했다.
그것도 최유나의 스승이자 탑주였던 자의 명령에 의해서.
“내가 그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할배는 알까? 알면서도 나를 보고 싶다고 한 걸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기에 최유나는 감옥섬에서 탈옥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청색 마탑에 대해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
이미 자신을 버린 곳이었고, 모든 연은 그때 끊어진 거라 생각했기에.
“보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거야?”
“...”
그렇기에 최유나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자신의 보스. 진우를 바라보며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