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66화 - 리디북스
“오빠! 괜찮아?!”
“으응?”
“그렇게 피를 토하고 비틀거리고!!”
“어, 어? 어떻게...”
“뉴스에 다 나왔거든!!”
“아, 아니...”
이클립스의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에게 달려들어 이리저리 살피는 이은선의 모습에 진우가 당황하며 말했다.
“그건 그냥 약의 부작용...”
“약!?!? 무슨 약!?”
“어?”
“무슨 이상한 약을 먹은 거야!?”
“아, 아니 이상한 약은 아닌...”
“진짜 아니지?”
“다, 당연히 아니지!!”
약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눈에 불을 켬과 동시에 반쯤 울먹거리며 말하는 이은선을 달래기 위해 일단 빠르게 부정했다.
(아 맞다. 약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성분들도 정제해서 사용했으니 한 번에 하나씩만 먹게. 필요한 성분만 추출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한 번에 두 개 이상은 과부화가 걸릴걸세.)
“...아닐걸...?”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찰리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의문을 뱉어버렸다.
“왜 의문형인데!?”
“아, 아니! 아니야! 절대 아니야!”
“...지은이를 생각해.”
“물론이지!”
반쯤 눈물이 고인 상태로 자신을 노려보는 이은선의 눈빛에 진우가 진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게.”
“으응.”
진우의 대답에 이은선은 소매로 눈가를 찍어내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다녀왔어 오빠?”
“...”
그러고 보니 저번,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천지인의 능력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가긴 했지만, 이은선은 원래 진우가 퇴근할 때마다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그를 맞이해 줬었다.
그리고 진우 또한 환하게 웃으며.
“다녀왔어.”
라고 말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었다.
“아빠아아아~!!”
그리고 지은이가 달려와
“어이쿠! 우리 지은이 잘 놀고 있었어?”
“네에! 있자나요! 곰돌이가요~.”
진우의 품에 안겨 자신이 없었던 시간 동안의 일들을 하나하나 말해주는 것 또한 그들의 일상이었다.
‘역시 신명하를 처리한 것만으로는 부족해.’
그렇기에 진우는 더더욱 갈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은선이랑 지은이에게 완전한 일상을 돌려주고 싶다.’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갈증이 말이다.
“오빠?”
“아빠?”
그 갈증이 자신도 모르게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는지 이은선과 지은이가 진우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어?”
“응! 그래서 그래서~ 곰돌이가 한 손으로 지은이를 들어서어~”
진우는 지은이의 말을 들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어.’
비록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세상에 어제 뉴스 봤어요?”
“그럼요! 그 G.K의 신, 신명아? 하? 그 사람이 차별 주의자였다잖아요. 글쎄!”
“그걸 제압한 사람이 빌런이래요.”
“어머! 진짜요?”
“흥! 그놈의 가디언, 꼬라지를 보라지.”
“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지!”
“정치인 놈들도 하나씩 바뀌는 거 아나?”
“전~ 부 가디언에 뒷돈 받던 놈들일 거 아니여?”
“...”
고기가 구워지는 사이에 수다를 떠는 어느 아줌마, 아저씨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옥윤아가 빈자리를 치우다 말고 고개를 숙였다.
“언니...”
한때 이은선이 일하던 고깃집의 알바생, 옥윤아.
항상 언니가 있음을 바랐기에 이은선을 진짜 언니처럼 따르며 친하게 지내던 옥윤아인 만큼 이은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아... 무사해야 할 텐데.”
데빌이라는 빌런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후로 나름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소식을 알아보려 했지만, 일반인에 불과한 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기 고추장 주물럭 2인분 추가요!”
“아! 네에! 갑니다!”
끔찍이 싫어하는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하길 고민할 정도로 옥윤아는 이은선을 찾기를 바랐다.
“후우. 사장님! 이제 문 닫을게요!”
“그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고 일을 하는 중에 해가 완전히 저물어 식당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어?”
그리고 영업 종료 간판을 걸기 위해 문을 연 옥윤아의 눈에 한 남자가 보였다.
“당신은...”
“...오랜만입니다.”
김성진.
예전, 이은선을 찾아와 그녀를 보호해 주겠다며 제안을 하고 결국은 거절당했던 남자였다.
“무슨 일이죠?”
당시 이은선도 그리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 남자와 만난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은선이 빌런에게 납치당했기에 그리 좋은 인식은 아니었다.
“...아뇨.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김성진은 식당의 간판을 잠시 올려보고는 다시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온 것뿐입니다.”
“아...”
옥윤아 자신도 이 식당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나 이은선이 탈출하면 이곳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기에 김성진의 심정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아... 그쪽 G.K 요원이라고 했죠?”
“예.”
“그 대단한 G.K가 아직 단서도 못 찾은 건가요?”
“...”
옥윤아의 말에 김성진은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상층부에 몇 번이고 형수님을 찾아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하긴 G.K는 겉으로만 정의를 표방하는 위선 조직이라고 하니까요.”
“...”
날카로운 옥윤아의 말에 김성진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빌런한테 납치된 사람 하나 찾지 못하는 참 대~단한 조직이에요. 그쵸?”
“...”
“하긴, 정의랍시고 타 조직과 일반인을 희생시키는 걸 기본으로 움직이니 ‘고작’ 일반인 하나 납치된 일이 뭐가 대수겠어요.”
“그건...!”
순간 언성을 높인 김성진이 인상을 쓰며 이를 악물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상층부 일부가 독단적으로 그런 행동강령을 내린 것일 뿐. 저희 G.K 전체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
하지만, 김성진의 진심 어린 말에도 옥윤아는 차게 식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랍시고 말하는 건가요?”
“...”
“저 같은 일반인은 언제나 가디언이라는 이름을 믿고 지냈어요. 당신들은 그 믿음을 배신한 거고요.”
“...”
“상층부의 일부? 웃기지도 않네요. 그런 사람들의 밑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일하는 당신들은 뭐 다른 것 같나요?”
옥윤아는 이은선을 찾아다니며 꽤나 많은 길드, 그리고 G.K 지부를 찾아다녔다.
“차라리 길드가 나아요. 그 사람들은 제 얘기를 들어주기라도 했으니까.”
비록 데빌. 즉, 특급 빌런 조직, 이클립스를 찾고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난색을 표하며 거절하기는 했지만, 길드의 사람들은 힘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G.K는 제 얘기를 들어주지도 않았어요. 거의 모든 지부가 그랬다고요.”
하지만, G.K는 얘기를 꺼낼 기회조차 준 곳이 별로 없었다.
“얘기를 들어줄 테니 몸을 요구하질 않나. 데빌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미친년 취급을 하질 않나. 그동안 믿고 있었던 제가 병신같더라고요.”
“그건...”
“상층부의 일부? 제 경험으로는 밑에 있는 사람들도 다 똑같은 놈들뿐이었어요.”
“...죄송 ...죄송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님에도 죄책감을 드러내며 표정이 구겨지는 김성진을 본 옥윤아는 자신이 괜한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
그리고 한숨을 쉬며 조금은 풀린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영상 하나를 본 적이 있어요.”
“영상...?”
뜬금없이 인터넷에서 본 영상을 말하는 옥윤아의 말에 김성진이 고개를 들었다.
“데빌이 나오는 영상인데. 예전에 서울 G.K은행이 털린 사건 있죠?”
“아. 예.”
0번 금고에 대한 것은 상층부에서 감췄기에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었지만, 간단하게 기사 정도는 났었다.
“누가 그걸 근처 건물에서 촬영했던 게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요. 금방금방 지워지기는 하는데...”
“...네.”
“은선 언니를 납치한 그 빌런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나니 최소한 거기서 나오는 데빌의 말이 이해는 가더라고요.”
“말...입니까.”
옥윤아는 자신이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문뜩 의문이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썩어버린 태양 아래에 있으면 똑같이 썩어버릴 뿐이라고요.”
“...지금 뭐라고...”
“아무튼 은선 언니 찾으면 연락 주세요! 바로 날아갈 테니까!”
“자, 잠!”
김성진을 무시한 옥윤아가 빠르게 영업 중 간판을 뒤집어 영업 종료로 바꾸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말을 데빌이... 했다고?”
홀로 남겨진 김성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주먹을 꽈 쥐었다.
“영상... 영상이라고 했지...”
그리고 김성진은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뭔가를 검색하던 김성진이 인상을 팍 쓰고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찾았다.”
그리고 김성진은 PC방을 발견하고는 곧장 뛰어들어갔다.
* * *
(너희는 너희가 버림패인 것도 알지 못하는 약자다.)
(썩어버린 정의에 이용당하는 약자. 여기 있는 모든 자들이 그렇지.)
(우리는 ‘이클립스’. 썩어버린 태양을 가리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
(썩은 태양 아래에 있으면 언젠가 너희들도 똑같이 썩어버릴 거다.)
생각보다 오래 걸려 옥윤아가 말한 영상을 찾아본 김성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키야아아! 몇 번을 봐도 안 질리네!
-진지하게 이클립스에 일반인 조직원 안 받나요?
-또 G.K에 걸려 폭발하기 전에 두세 번만 더 봐야지.
-성지 순례... 자리가 매번 바뀌니까 힘들구만.
-변화구 뭐냐? 근데 이건 ㄹㅇ 맨날 지워대서 귀찮긴 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개소리라면서 가디언 물고 빠는 놈들 개많았는데 다 사라졌쥬? 부들부들댈 거 뻔히 보이쥬? 이클립스가 진리쥬?
-쥬쥬 말투 미친ㅋㅋㅋ.
영상 아래 한가득 달린 댓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김성진에게 중요한 것은 딱 하나.
“어째서 데빌이 형님과 똑같은 말을...”
김성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 * *
과거 김성진이 추격대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부의 명령으로 빌런의 뒤를 쫓고 있을 때 진우의 도움을 받아 빌런이 숨어 있는 장소의 정보를 얻었었다.
(성진아. 잠깐 기다려.)
(예? 하하하! 저 김성진입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신을 막는 요원들을 물리치고 꽤나 쉽게 달아난 빌런이라 자신을 걱정해서 멈춰 세운 건 줄 알았다.
(그 빌런, 네가 생각하는 거랑은 좀 다를 거다.)
(예? 하하하! 초신성! 주목받는 루키! 그게 접니다! 문제없습니다!)
(하아... 직접 보고 판단해라.)
그렇기에 정보를 주고 통신기를 통해 어딘가 무거운 음성으로 진우가 말한 내용을 당시에는 그리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빌런의 은신처를 습격했을 때. 진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이, 이 아이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쫓고 있던 빌런은 가디언 4급 요원 둘을 습격하고 달아났다는 자였다.
(이, 이게 무슨...)
(제발, 제발 못 본 척해 주세요! 제발!!)
(할머니!! 뒤로 물러나요!! 할머니는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
(얘, 얘야!!)
하지만, 빌런이라고 하는 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보이는 여성.
빌런을 숨겨주고 있는 자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노파였다.
(혀, 형님! 뭔가 이상합니다!)
(이상할 거 없어. 그녀가... 타깃이 맞아.)
(그, 그런...!)
진우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능력을 각성한 것을 숨겨주는 대신 몸을 요구하던 4급 요원 둘을 공격한 것이었다.
당연한 자기방어였지만, 문제는 공격당한 4급 요원 중 하나가 간부의 친인척이었다는 것.
(그, 그게 뭡니까!!)
(그래서 잠깐 멈추라고 한 건데... 하아. 늦었네.)
(예... 예?!)
(돌입!! 빌런을 제압해라!!)
(아악!! 얘야!!)
(할머니!!!)
김성진이 진실을 듣고 제압을 망설이던 도중. 그의 뒤를 따라온 다른 추격대가 여성을 공격하고, 제압했다.
그걸 본 김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추격대의 동료들을 막아서려 했지만.
(멈춰.)
(형님!!)
진우가 그를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