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62화 - 리디북스
어딘지 모르게 신전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소.
“다아다다~? 다랄라라다~?”
“요 제이든, 뭐 좋은 일 있었어?”
콧노래를 부르며 경쾌하게 걸음을 옮기는 사내, 제이든을 향해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오오? 이거이거 이렐라인 자매님 아닙니다?”
“푸하핫! 그 병신 같은 말투는 그대로네? 오랜만이다?”
“하하하! 오랜만입니다?”
이렐라인은 제이든의 어깨를 퍽퍽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서로 의문으로 끝나면 대화가 안 끝나잖냐! 푸하하핫!”
“하하하! 제 말투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따르는 겁니다?”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닐 텐데!? 푸하하핫!”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웃던 이렐라인이 눈가를 훔치는 것을 본 제이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렐라인이 웬일로 구원전에 오신 겁니다?”
“하아. 재밌다. 응? 아아. 구원자께서 내가 필요하시다네?”
“오오. 역시 이렐라인입니다?”
“글치글치. 그래서 적당히 인계하고 허겁지겁 달려온 거야. 뭐가 됐든 이쪽이 더 재밌을 것 같았거든.”
이렐라인은 씨익 웃으며 푸르른 눈으로 제이든을 바라봤다.
“넌?”
“저 말입니다?”
“엉, 그렇게 기분이 좋은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아아, 하하하! 실로 오랜만에 나락으로 떨어진 분을 구원해드렸기 때문입니다?”
“아. 예의 그걸로?”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구원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그것! 역시 구원자께서 주신 구원의 약답습니다?”
제이든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확실히 그게 완성된 다음부터는 구원이 편해지긴 했지.”
“그렇습니다? 편해진 것뿐만 아니라 구원받으실 분들도 고통 없는 순수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후후, 너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구나?”
“그렇습니다? 칭찬을 들으니 괜히 부끄러워지는 겁니다?”
그때. 이렐라인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는 제이든의 등을 퍽 하고 치며 지나갔다.
“구원자님께서 기다리시겠다! 나는 이만 가볼게!”
“핫!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한 겁니다? 모쪼록 구원이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너도!”
손을 흔들며 신전 안쪽으로 빠르게 달려 들어간 이렐라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본 제이든이 고개를 까딱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슬슬 명하 씨가 구원받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흥흥~ 다다다~?”
* * *
이른 아침, 태양이 얼굴을 비추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간.
“끄으응...”
바(bar)에 엎드려 있던 신명하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여긴...”
굉장히 멍해 보이는 표정으로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신명하가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
그리고 왜 목을 만졌는지 이유를 떠올리지 못한 신명하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굉장히 개운한 느낌인데...”
이것을 무슨 기분이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신명하가 걸음을 옮겨 바를 나섰다.
“아. 그래. 마치 머릿속이 깨끗해진 느낌이야. 그리고...”
신명하가 바를 나와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며 손을 올려 주먹을 쥐었다 피며 중얼거렸다.
“뭔가 힘이 넘치...는? 아니, 힘이 끓어오르는?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리고 손을 내려 팔을 긁적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지금 어딜 가고 있는 거지?”
계속 걸음을 옮기고는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 그래. 가디언 코리아 본사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 근데 왜 가는 중이지?”
술기운 탓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머릿속이 너무 깨끗해져서 일 수도 있고.
“아, 그래.”
그러면서도 이유와 목적은 하나씩 계속해서 떠올랐다.
“나를 인정할 수 있도록 보여줘야지. 어? 왜? 누구한테?”
그리고 그렇게 이유와 목적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머릿속은 점점 더 깨끗하게 비워지고.
“아, 구원. 나는 구원받았으니까. 구원? 구원이 뭐였지?”
혼란스럽던 신명하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저 사람 봐봐. 갑자기 막 웃어.)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에 신명하가 번뜩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말하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도 않고, 자신에게는 신경도 안 쓰며 그저 바삐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그 사람 아니야? G.K 정보 총괄.)
(아! 서진우 총괄님 대타로 운 좋게 올랐다는?)
“아니야!!”
계속해서 들리는 목소리에 신명하가 귀를 막으며 소리치자 걸음을 옮기던 사람들이 미친 사람을 보듯 신명하를 바라봤다.
“뭐야 왜 저래?”
(운으로 올랐으면 조용히 있을 것이지)
“취했나 본데?”
(괜히 일을 만들어서 서진우 총괄의 업적을 무너뜨렸다며?)
“아니라고!! 닥쳐!!”
“아 깜짝이야. 취한 게 아니면 미쳤나 본데?”
(그것만이겠어? 정보부 자체를 무너뜨리기 직전이래.)
“야야 가자, 괜히 엮이면 골치 아파.”
(세상에. 그 정도로 무능력한 주제에 무슨 자신감으로 서진우 총괄님을 죽인 거야?)
“아아악!! 아니야!! 꺼져!! 다 닥쳐!!!”
상식적으로 일반인들이 신명하가 현 G.K 정보 총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서진우도 죽어서야 이름과 얼굴이 발표되었고, 살아있을 당시에는 ‘총괄이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라는 소문 정도만 돌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 정보부의 상황과 신명하가 서진우의 죽음에 가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일반인보다 못한 무능력자.)
(G.K를 망치는 쓰레기.)
(차라리 저 사람이 죽고 서진우님이 살아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즉, 이것은 환청이었다. 비웃는 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전부 환상이었다.
“으아아악!!!”
그리고, 머릿속이 점점 비워지고 있는 신명하는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었다.
(당신은 구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환청과 환상 가운데에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한 존재가 자신을 향해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을 비웃던 목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당신은 다른 이들과는 다릅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얼굴, 목소리, 체형, 그 어느 것에서도 알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당신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딱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목소리가, 분위기가,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를 구원하세요.)
“구... 원...”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이루면 됩니다.)
“원... 하는... 것...”
신명하의 눈은 본래의 색을 잃고 점점 붉은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당신은)
“나... 는...”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선택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신명하의 눈이 완전히 핏빛으로 물들고.
“크하하하하!!!”
광소를 터뜨리며.
콰과과광!!!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 * *
며칠간 이어진 천지인의 초능력 제어 훈련도 이제 막바지.
진우는 천지인에게 마지막 훈련을 겸해 사람보다 커다랗고 전투가 가능한 종이 인형을 만들어 보라고 시켰다.
“곰이군.”
“곰이구나.”
“곰돌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3미터 정도의 애매한 크기의 종이 곰.
“곰치고는 작네.”
“마력이 부족했어요...”
누가 봐도 종이라고 할 만한 질감에 전혀 튼튼해 보이지 않았기에 진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종이 곰의 다리에 매달려 신나 하는 지은이를 바라봤다.
“...찌그러졌네.”
지은이가 매달린 왼쪽 다리가 조금 찌그러져 있었다.
“소, 속이 비어있으니까요. 이틀 만에 만든 것치고는 나름 잘 만든 거라고요.”
“아니, 확실히 잘 만들기는 했다만...”
종이로 만들었음에도 나름대로 털가죽의 질감을 표현해놓기도 했고, 이빨도 만들었으며 발톱까지 있다.
‘누가 봐도 잘 만들었다.’라고 할만한 퀄리티이긴 했지만.
“그래도 전투는 불가능하겠어.”
“네에...”
잘 만들고 어쩌고를 떠나 재료가 종이이니 내구도만 봐도 전투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일단 실험은 해볼까...”
진우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천지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마력 패스는 느껴지지?”
“네.”
조종 계열 능력자에게 가장 중요한 마력 패스.
사물을 조종할 때 거리에 구애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조종하는 사물을 마력으로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숙련된다면 수 킬로미터 밖에서 마력 패스가 이어진 사물을 강화하고 조종할 수 있지만, 바로 얼마 전에 기술을 익힌 천지인은 아직 십 미터 정도가 한계였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네 능력 [종이 인형]은 한번 종이 인형을 만들고 나면 각 개체가 개별활동이 가능하니 필수까지는 아니지만 숙련시켜서 나쁠 건 없을 거다.”
“넵.”
“그럼 슬슬...”
진우는 아직도 곰돌이라고 연발하며 종이 곰의 다리에 붙어있는 지은이를 안아 들고는 다시 천지인에게 말했다.
“마력으로 곰을 강화해라.”
“넵!”
진우의 말에 천지인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스, 그럼 나한테 싸우라는 건가?”
“그럼. 내가 지은이를 안고 싸울까.”
“...딸아이가 만든 거랑 싸우기는 싫은데...”
그것을 바라보던 천무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종이 곰의 앞으로 나섰다.
“크으. 다시 봐도 잘 만들었군. 역시 내 딸이야. 손재주가 참 좋아.”
가까이 가서 이리저리 종이 곰을 살피는 천무진을 보던 진우가 시선을 돌려 천지인을 바라봤다.
“강화는?”
“성공했... 을걸요? 아마?”
“흠...”
보통 조종 계열 능력자가 자신이 조종하는 사물을 강화하면 어떤 식으로든 이펙트가 생기는데. 천지인은 그것이 없었기에 강화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 일단은 네 아빠를 공격해봐라.”
“넵!”
천지인은 종이 곰과 대치? 하고 있는 천무진을 바라봤다.
“아빠! 조심하세요!”
“응? 아 시작하는 거니? 하하하! 이 아빠는 강하단다! 얼마든지 오거라!”
“갑니다!”
그리고 천지인의 명령을 받은 종이 곰이.
“고오옴!”
하고 울며 앞발을 들어 올렸다.
“곰이 곰 하고 울지는 않을 텐데...”
“귀여워!”
그것을 본 진우가 어이없게 웃고 지은이가 종이 곰의 귀여움에 눈을 반짝였다.
“허허허! 와라!”
“고오옴!”
그리고 종이 곰이 힘차게 앞다리를 휘둘러 천무진의 뺨을 후려치고.
퍼어억! 콰아아아앙!!!
종이 곰의 앞다리에 맞은 천무진이 그대로 옆으로 날아가 훈련실의 벽에 처박혔다.
“에?”
“...?”
“곰돌이 짱이다!”
“고오오옴!!!”
천무진이 처박혀 금이 잔뜩 가버린 벽을 바라보던 진우가 입을 벌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렁차게 포효하는 종이 곰을 바라봤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아, 아빠!?”
그사이, 깜짝 놀란 천지인이 휠체어를 움직여 천무진이 날아간 곳으로 다가갔다.
“아빠!”
“...?”
벽에 박혀 멍하게 자신이 왜 날아갔는지 의문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천무진을 보며 천지인이 안심할 찰나.
“으하하하!!”
“엑!?”
천무진이 웃음을 터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보스! 봤나?!”
“그래.”
“으하하하! 역시 내 딸이야! 대단한 능력이다!”
“에에?”
어린아이를 들어 올리는 것처럼 천지인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그녀를 들어 올린 천무진이 빙글빙글 돌며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면 스스로를 지킬 힘으로는 충분하지! 암! 으하하!”
“내, 내려주세요!”
천무진이 종이 곰을 얕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은이가, 여섯 살짜리 아이가 매달렸다고 다리가 찌그러졌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방심했다고는 해도 천무진은 무공을 익힌 육체파 능력자.
그의 마력과 [광휘]는 언제나 그의 몸을 강화하고 있기에 웬만한 공격으로는 천무진을 날릴 수 없다.
“으하하하하! 역시 내 딸이야! 대단하구나!”
“내려달라고요오!”
그렇기에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천지인의 종이 곰이 천무진을 날려버린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비전투계열일 줄 알았더니. 이 정도면 본부의 방어를 맡겨도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에 진우는 천지인의 중요도를 몇 단계 상향시켰다.
그리고 몇 가지 실험을 더 하려던 그때.
띠리링~
“음? 송조운?”
진우의 전화가 울리고, 진우는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보스! 신명하 찾았... 아니 이걸 찾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빨랐군. 그래서 어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뉴스에도 나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