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60화 - 리디북스
“후우... 생각보다 오래 걸렸군.”
진우는 이클립스의 본부가 있는 산속을 걸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동안 계속 걸어 커다란 바위가 있는 장소에 도착해 바위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고 보니 지은이가 천지인과 꽤 친해졌다고 들었는데...”
외동인 지은이는 언니, 혹은 오빠에 관해 뭔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침 이름도 비슷하고 본부 내에서는 꽤나 어린 축에 속하는 천지인을 언니라고 하며 따르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뭐, 최유나는 겉보기나 행동은 그래도 나이가 좀 있으니...”
최유나가 들었으면 꽤나 크게 화냈을 만한 소리를 하며 피식한 진우의 앞에.
그그그긍!
거대한 바위가 문이 열리듯 양쪽으로 열리며 엘리베이터를 보였다.
그리고 진우가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니 한 차례 스캔을 하더니, 이내 엘리베이터가 부드럽게 움직이며 지하의 본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음... 일단 은선이랑 지은이랑 시간을 조금 보내고... 도석환을 찾아간 다음...”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동안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던 진우는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달려나올 지은이를 안기 위해 자세를 조금 숙였고.
“...?”
형형색색, 아주 다채롭게 꾸며져 있는 본부의 복도가 보였다.
“색종이...?”
지은이가 붙여 놓은 건가? 라고 가장 먼저 떠올린 진우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복도를 걸었다.
“강아지, 고양이, 소... 잘 만들었네.”
솔직히 그리 잘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는, 조금은 찌그러지고, 못생긴 동물들의 향연이었지만, 진우의 눈에는 그저 예쁘게만 보일 뿐이었다.
“음? 이건 뭔가 다른데?”
그때, 뭔가 애매하게 생긴 종이 동물들 사이에 격이 다르게 잘 만들어진 종이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건... 루비인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모양인데...”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종이 고양이에 손을 가져다 댔고.
부스럭!
“?!?!?”
갑자기 움직여 빠르게 도망친 종이 루비 때문에 오랜만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어! 아빠 목소리다!”
그때, 복도 저편 코너 부근에서 지은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아!?”
“아빠아아!!”
“지은! ...아?”
복도 코너를 돌아 달려오는 지은이의 몸에는 고양이, 강아지, 나비, 개구리 등등 공통점이 라고는 색종이로 만들어졌다는 것 말고는 없는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아빠아아아!”
순간 누군가의 공격은 아닌지 고민했던 진우였지만, 보안 시스템은 정상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본부에 남아 있을 천무진에게 연락이 온 적이 없었기에 그 생각은 곧장 버리고는 도도도 달려오는 지은이를 안아 들었다.
“다녀오셔써요?”
“하하, 그럼~ 잘 다녀왔지. 아빠 보고 싶었어?”
“네! 엄청 보고 시퍼써요!”
“...?”
뭔가 지은이의 발음이 전보다 새는 느낌에 진우가 의문을 느낄 찰나.
“헤헤헤.”
“어? 우리 지은이 이빨 빠졌네?”
“네! 이빨 요정이 가져가때요!”
지은이의 앞니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아. 맞다. 근데 누가 복도를 이렇게 꾸며놨어?”
“아!”
진우의 질문에 지은이가 자신의 머리에 앉아? 있는 보라색 색종이 나비를 떼어 들었다.
“지인이 언니가 만들어저써요!”
“천지... 지인이 언니가?”
“네! 그리구 지은이도!”
“그렇구나~?”
보아하니 대부분은 지은이가 만들고 부분부분 퀄리티가 격이 다른 것들은 천지인이 만든 것으로 보였다.
“지은이두 움직이는 동물을 만들고 시픈데~ 지인이 언니가 만든 것만 움직여요.”
“그렇구나~”
지은이의 몸에 매달린 색종이 들은 하나같이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눈을 돌려대고 있었다.
‘조종계, 아마 [종이 술사]랑 비슷한 능력이겠군.’
천지인은 초능력을 각성하지 못했다 들었기에 의문은 들었지만, 지은이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기에 일단 진우는 지은이를 안아 든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많이 만들었네...?”
“네! 지은이가 만들면~ 지인이 언니가 만든 애들이 옮겨요!”
“옮겨? 왜?”
“친구들이 바닥에만 있어서 불쌍하데요! 그래서 벽이랑~ 천장이랑~ 유나 언니 방이랑~ 무진 아저씨 방이랑~ 엄마랑 아빠 방에두 이써요. 히히.”
‘천지인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난리를 칠 이유는 없으니...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능력 폭주의 일종인가?’
아무래도 천지인이 능력을 각성하기는 했지만 제어가 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근데 천무진은 뭘 하길래...’
진우는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진 아저씨는 뭐 하는지 아니?”
“무진 아저씨요? 아저씨는...”
그때, 천지인의 방으로 향하던 진우와 지은이의 앞에.
“보, 보스!”
온몸에 각양각색, 수십 종류의 종이 동물로 뒤덮인 무언가가 나타났다.
“...천무진?”
“마, 맞네!”
천무진이 손으로 추정되는 부분을 움직여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종이 생명체들을 떼 내었다.
“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거냐.”
“그, 그게...”
천무진의 [광휘]라면 본부에 피해가 가는 일 없이 색종이만을 태워버릴 수 있다.
하지만.
“지인이가 만든 걸 내가 어떻게 없애버리겠나...”
“...이해는 한다만...”
천무진은 딸이 만든 종이 생명체들을 태워버릴 수 없었고, 결국 온몸에 종이 생명체를 달고 다녔다는 소리였다.
“하아... 지은아, 엄마 어디 있는지 알아?”
“엄마요? 지인이 언니랑 있을 거예요!”
“맞네. 보스의 아내분은 지금 지인이랑 같이 있네.”
“...위험 ...하진 않겠군.”
온몸이 종이 생명체로 뒤덮인 천무진도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지은이도 여기저기 종이 생명체를 달고 있지만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아, 일단은 천지인을 봐야겠군. 지은아 지인이 언니 방이 어딘지 알려줄래?”
“네에~”
결국 진우는 다시 걸음을 옮겨 천지인의 방으로 향했다.
“보, 보스? 일단 나 좀 도와주지 않겠나? 어억! 아, 안 돼! 지인이가 만든 학이! 날개가!”
“...알아서 해라.”
* * *
“...”
“지인이 언니~!”
천지인의 방으로 찾아온 진우는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오빠! 언제 왔어요?”
“어? 아... 방금 오긴 했는데...”
침대에 누워 낯을 가리듯이 이불을 끌어 올린 여자, 천지인의 옆에 앉아 밝게 웃으며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이은선에게 눈이 가기도 잠시.
“생각보다 대단한 능력일지도 모르겠는데...”
수십, 아니 어쩌면 백이 넘을지도 모르는 숫자의 종이 생명체들이 날아다니고, 뛰어다니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광경에 다시 눈이 갔다.
“당신이... 보스예요?”
“음?”
그때, 천지인이 용기를 냈는지 이불을 내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한 질문에 진우가 시선을 돌렸다.
“그래. 내가 이클립스의 보스. 서진우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천지인은 둘째 치고,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몰린 종이 생명체의 시선을 느끼며 진우는 조금 경계를 끌어올렸다.
‘방어기제? 낯선 사람을 배척하는... 최악의 경우에는 전부 태워...’
하지만, 진우가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
우르르르르!
“!?”
땅을 걷는 종이 생명체들이 순식간에 진우의 발밑에, 비행이 가능한 종이 생명체들은 진우의 머리 언저리에 몰려들었다.
“얘, 얘들아! 죄, 죄송해요! 얘들이 제 말을 듣질 않아서!”
“어... 어?”
그리고는 마치 자신을 탐색하듯 이리저리 살피며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는 시늉도 하는 등 난리를 피워댔다.
“처, 처음 보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어요오...”
“...”
초능력 폭주는 능력자의 무의식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발화 능력 하나만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본인의 육체를 태우는 형태의 폭주를, 어떤 자는 주변을, 어떤 자는 옷만을 태우는 등. 각양각색이다.
‘즉, 천지인은 무의식중에 나에게 흥미, 호기심을 가졌고, 이것들은 그런 무의식에 따라 나를 탐색하는... 건가?’
적어도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기에 진우는 경계를 풀고는 다시 천지인을 바라봤다.
“얘, 얘들아? 이리로 오지 않을래? 마, 말 좀 들어줘어...”
안절부절못하며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종이 생명체들을 부르는 천지인의 모습이 귀여운 듯 이은선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지은이도 그런 엄마의 행동을 따라 하는 듯 천지인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하아...”
한숨과 동시에 피식 웃음을 지은 진우가 방 안으로 살짝 들어가 침대와 꽤나 떨어진 바닥에 털썩 앉았다.
‘이걸 전부 없애는 건 쉽지만...’
진우는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와 종이 생명체들을 붙잡고 놀기 시작한 지은이를 바라봤다.
‘그럼 지은이가 슬퍼하겠고... 그럼 어쩐다?’
살짝 볼을 긁은 진우가 다시 시선을 돌려 천지인을 바라봤다.
“얘, 얘들아? 보, 보스인데... 머리에 올라가진 마... 아, 아앗.”
천지인의 말처럼 종이 생명체들은 점점 진우의 몸을 타고 머리까지 올라오는 중이었다.
천무진처럼 되는 것은 사양이었기에 진우는 염동력을 사용해서 종이 생명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떼어냄과 동시에 천지인을 불렀다.
“천지인.”
“네, 넵!?”
빌런 조직의 보스라는 이미지 때문일까. 은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과하게 낯을 가리는 것 같았다.
“일단, 이것들은 네가 만든 게 맞나?”
“오빠? 무서워하니까 부드럽게 말해줄래?”
“맞아! 아빠 부드럽게!”
“...네가 만든 게 맞니?”
살포시 인상을 쓰며 말하는 아내와 딸의 말에 찔끔한 진우가 말투를 바꿔 다시 묻자.
“풋. 흡!”
천지인이 작게 웃고는 숨을 들이키며 입을 가렸다.
“네, 네 맞아요. 움직이는 아이들은 전부 제가 만든 거예요.”
“마법이나 무공을 배운 적은?”
“쓰읍...”
“...배운 적은 있니?”
“큽... 네. 옛날에 어렸을 때 아빠한테 배웠었어요.”
“...”
은인이기는 하지만 빌런 조직의 보스라는 이미지 때문에 조금 두려웠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진 천지인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마력은 거기서 나온 건가...? 그래도 너무 많은 것 같은데...”
진우는 천지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더 큰 종이 생명체를 만들 수는 있니?”
“어... 네. 마력이 조금 많이 들어가긴 할 것 같은데. 아마 사람 정도의 크기는 가능할 것 같아요. 만들면 하루 정도는 꼬박 쉬어야 할 것 같긴 한데...”
“크기에 따라 들어가는 마력의 양이 다른 건가.”
진우는 계속해서 달라붙으려 하는 종이 생명체들을 염동력으로 밀어내며 말을 이었다.
“이것들을 움직이는 데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마력은?”
“어...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건 대단하군.”
초능력 [종이 술사], 혹은 [무생물 조종]과 같은 조종 계열의 능력은 그 물체를 조종하는데 계속해서 마력이 소모된다.
때문에 조종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마력의 총량을 늘리든, 회복 속도를 올리든 하는 것이 보통.
‘하지만, 천지인의 능력은 지속적인 마력 소모가 없다.’
이것은 굉장히 격이 높은 초능력이라는 뜻이 된다.
“대단한... 건가요?”
“그래.”
천무진에게 은혜를 입히고 배신을 생각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거래. 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진우였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거물을 살리게 된 거군.’
아무래도 미래의 S급 이상의 능력자를 살린 셈이 된 것 같다.
그래도 지금처럼 종이 생명체들이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것은 고쳐야 했기에 진우는 능력의 제어를 가르치고자 했다.
“일단 어느 정도 제어는 할 수 있어야겠지.”
“어...”
“이런 현상을 각성 초기의 능력 폭주라고 한다만. 무공을 배웠으면 폭주는 금방 가라앉힐 수 있을 거다. 먼저 정신을 집중해서...”
“저기, 보, 보스? 바로 시작하는 건가요...?”
“음? 그래. 계속 이렇게 둘 수는 없으니까.”
“네, 넵! 노력해볼게요!”
“좋아. 일단 눈을 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