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59화 - 리디북스
“...”
“(발화에 방전, 바람? 오오 경질!)”
“(찰리, 언제까지...)”
“(쉬잇! 조용히 하게! 지금 딱 좋을 때야!)”
“...후우우...”
수술을 앞둔 환자처럼 철제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기를 벌써 수 시간.
촉진을 하듯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곳저곳을 누르고 있는 찰리 때문에 진우는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설은 맞았던 모양이지만, 어느 정도 타협한 건가? 오오, 결합 방식이 희한한 모습을 하고... 오!? 인자가 이 정도로 뒤섞일 수 있다니! 이거라면 조금 방식을 바꿔서...)”
말투 자체는 연구자의 그것이었지만, 표정과 진우의 육체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는 몸짓은 변태의 그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 찰리는 드디어 진우에게서 손을 떼고는 일어나도 좋다 말했다.
“(자, 일단 연구는 끝이네.)”
“(오래도 걸리는군.)”
진우가 찰리의 연구소에 머문 지 벌써 열흘.
그동안 손톱, 머리카락, 피부 조직, 눈물에 타액, 거기에 소변, 심지어는 대변까지. 별의별 것을 전부 연구하던 것이 드디어 끝났다.
“(그래서 뭔가 알아낸 건 있나?)”
그동안은 연구가 끝나면 합쳐서 말해주겠다 했기에 지금까지는 딱히 들은 것이 없는 진우였다.
“(음. 먼저 자네의 기억 말이네만.)”
찰리는 진우가 누워 있던 철제 침대를 낮추고 그곳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 삭제가 아니라 봉인이라 보면 되네. 자네가 얻게 된 힘을 계속해서 사용하면서 약해진 봉인이 꿈이라는 형태로 봉인된 기억을 보여주는 거고 말일세.)”
“(봉인이라...)”
누가, 무슨 이유로, 언제 자신의 기억을 봉인했는지 전혀 짚이는 구석이 없는 진우로서는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봉인된 건지는 알 수 없나?)”
“(내가 천재긴 하다만 신은 아닐세, 몰라.)”
“...”
“(하지만, 예상되는 게 없지는 않네.)”
“(예상?)”
“(자네 한 번 죽었다 살아났지?)”
“...”
진심으로 놀랐지만, 진우는 초인적인 표정 관리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자네의 기억에 걸린 봉인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뇌에 락이 걸렸다고 보면 되네.)”
“(락?)”
“(그래. 근데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외부의 간섭을 배척한다네, 세뇌, 혹은 최면 같은 정신 계열 초능력이 일반인에게도 잘 통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지.)”
물론 능력자 자체가 강하면 통하겠지만 말일세. 라고 덧붙인 찰리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죽은 자의 뇌에 간섭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지, 당연히 죽은 사람은 반응이 없어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그래서 한 번 죽었다 살아났냐고 물어본 건가?)”
“(뭐, 그 이유만은 아니고, 세포나 유전자 같은 것을 확인한 결과로 확신한 거지.)”
손을 들어 올려 열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말하는 찰리의 모습에 진우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튼 봉인은 자네가 죽고 살아나는 그 과정에서 걸렸을 가능성이 높지.)”
“(풀 수 있는 방법은?)”
“(음... 자네가 나에게 뇌를 맡기면 가능이야 하겠다만...?)”
“......”
“(낄낄낄. 그렇겠지.)”
형용할 수 없게 찌그러진 진우의 표정에 찰리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방법은?)”
“(뭐,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는 풀릴 걸세. 지금도 봉인이 약해지면서 꿈이라는 형태로 기억이 새고 있지 않나.)”
“(후우... 결국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거군.)”
“(능력을 다양하게 많이 사용하면 더 빨라질 걸세.)”
“(참고하지.)”
찰리에게 뇌를 맡긴다는 선택지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운 진우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이 있네.)”
“(뭐지?)”
찰리는 자신의 품에서 붉은 알약이 담긴 유리병을 꺼냈다.
“(그건?)”
“(자네 전용의 도핑제? 라고 할 수 있겠군.)”
“(도핑제?)”
“(자네 마법이나 무공으로 마력 코어를 만드는 게 잘 안되지?)”
“(...그래.)”
찰리의 말처럼 시간이 날 때마다 시도해 보고는 있지만, 마력이 모이는 느낌만 있을 뿐, 심장, 혹은 단전에 코어가 생성될 기미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 자네의 몸에는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 가지의 초능력 인자가 융합되어 있네. 그것도 자네에게서 비롯된 인자가 아닌 타인에게서 얻은 인자가 말이지.)”
“(...그래서?)”
“(그 수만 가지의 인자들은 자네와 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결합 상태가 꽤나 불안정하다네.)”
이렇게 말이네. 라고 말하며 찰리는 양손을 사용해 불규칙적이고 엉성한 깍지를 꼈다.
“(그래서 자네가 본래 가지고 있는 마력, 그리고 인자가 품고 있는 마력을 사용할 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외부의 마력으로 능력을 사용하거나 코어를 만들면 인자의 결합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이 크기에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한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렇군.)”
이전, 외부의 마력을 받아들여 억지로 능력을 사용하고 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가 생각난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거기서 이 도핑제네.)”
찰리는 붉은 약이 든 약병을 흔들며 말했다.
“(일시적으로 자네의 유전자와 초능력 인자의 결합을 견고하게 만들어주지. 코어 자체를 만들 수는 없지만, 외부의 마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줄 걸세.)”
“(음...)”
진우는 찰리의 손에 들린 약병을 받아 그것을 살펴보며 말했다.
“(근데 이런 걸 만드는 모습은 못 본 것 같은데?)”
“(응? 자네가 보는 앞에서 만들었다만?)”
“(...?)”
“(왜 그 자네의 피랑 체액을 연구할 때 있지 않나.)”
“(...? 그... 이 약에 들어간 재료가...)”
“(그야 자네의 혈액이 대부분이고 타액도 조금? 아 눈물도 좀 들어갔군.)”
“(...)”
그나마 소변은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는 진우였다.
* * *
“(아 그러고 보니 그 재미있는 게 생각났다는 건 뭔가?)”
그날 저녁, 대충 늦은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찰리가 얘기를 꺼냈다.
“(아 52구역 말인가?)”
“(...그거 내가 말했다고는 말하지 말게. 아무튼. 맞네.)”
진우는 대충 다 먹은 전투식량을 치우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나에게 생긴 능력이 관리 기관에 등록된 초능력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
“(호오. 거기까지는 스스로 알아낸 건가?)”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찰리가 계속하라는 듯이 손짓했다.
“(관리 기관에 초능력을 증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 스스로 초능력을 사용하여 증명하고, 혈액을 뽑아 초능력 인자를 확인하는 것. 내 능력은 그렇게 수집된 초능력 인자를 모아 만들었고 모종의 이유로 나에게 왔다. 라고 추측했다.)”
“(허허허, 계속하게.)”
찰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 진우를 바라봤다.
“(약간의 혈액을 뽑아 그 안에 있는 극소량의 초능력 인자를 통해 내 능력이 만들어졌다면, 나 또한 내 혈액을 통해 타인에게 초능력을 전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호오...?)”
“(비록 그 당시에는 전문가가 없었기에 단순한 실험만 하고 실패했다만...)”
“(지금은 전문가가 있다. 라는 건가?)”
“(그렇지.)”
잠시 침묵하던 찰리가 갑작스레 유쾌하다는 듯이 폭소하기 시작했다.
“(으허허허!! 정답일세! 지금은 자네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연구는 애초에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에게 초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지! 이거 유쾌하구만! 유쾌해! 으허허허허!)”
“...”
뭐가 그리 유쾌한지 식탁을 탕탕 쳐 대며 폭소하던 찰리가 찔끔 흘러나온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그 연구를 맡기겠다. 라는 건가? 그리고 52구역에 전달해서 자네를 살려내고 초능력을 부여한 ‘박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려고?)”
“...”
진우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애초에 대답을 원하고 질문한 것이 아니었던 찰리는 그냥 말을 이어갔다.
“(확실히 재미있는 생각일세. 나도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의 연구를 내가 얼마나 변형시킬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니.)”
“(그럼 하겠다는 건가?)”
“(하지! 해! 말년이 아주 재밌겠어! 으허허허!)”
다시 폭소하는 찰리를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은 진우가 등을 돌려 쓰레기를 정리했다.
‘가디언의 힘은 정의에 대한 대의와 초능력자의 독점에서 나오니. 실험이 성공한다면 가디언 US와 미국 정부를 갈라놓을 수도 있겠지.’
다른 하나의 ‘재미있는’ 목적을 떠올리며 다시 미소를 지은 진우였다.
* * *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차가운 겨울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3월의 어느 날의 이클립스 본부.
티비를 보고 있던 지은이가 엄마, 이은선의 품을 파고들며 말했다.
“아빠 보고 싶다아~”
그런 지은이의 말에 이은선은 지은이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소파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제도~ 그저께도~ 맨날맨날 전화했으면서?”
“전화는 전화! 보고 시픈 건 어쩔 수 업써!”
“후후, 지은이 말이 맞아~ 엄마도 아빠 보고 싶다. 그래도 내일 돌아오신다니까 다행이지?”
“응! 히히... 아!”
그때, 지은이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이은선의 품을 벗어났다.
“엄마엄마! 나 지인이 언니한테 가따 올게요!”
“응? 갑자기?”
“응! 오늘 종이접기 하기로 해써요!”
“그래? 후후. 지인이 언니는 아직 아야 하니까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네에~”
이제 문을 여는 법을 완전히 깨달은 지은이가 문 앞에서 양손을 들고 폴짝폴짝 뛰며 문을 여는 것을 본 이은선이 시선을 돌려 한쪽 구석에 누워 있던 루비를 바라봤다.
“...”
“...”
“...”
“...냐...”
귀찮은 마음에 이은선의 시선을 외면하려던 루비였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이은선의 눈빛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호다닥 뛰어가는 지은이를 뒤쫓아 따라나섰다.
“냐아앙!”
“어? 루비도 같이 갈 거야? 그래!”
“냐아아...”
천지인이 깨어난 이후, 굉장히 활발해진 지은이가 뛰어다니다 넘어지는 경우가 많아졌기에 루비가 꽤나 바빠졌다.
“흥흥흥~”
그렇게 루비와 지은이가 함께 천지인이 있는 방으로 향하고.
“다 와따! 응? 아저씨다!”
때마침 천지인의 방에서 나오는 천무진을 발견했다.
“음? 지은이구나. 지인이를 만나러 온 거니?”
“네! 지인이 언니가 종이접기 알려주기로 해써요!”
“하하, 그렇구나.”
천지인이 깨어난 이후, 예전과는 다르게 그늘진 웃음을 짓지 않게 된 천무진이 밝은 미소를 띠며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는 잠시 할 일이 있으니 지은이가 지인 언니랑 잘 놀고 있으렴.”
“네에~!”
“하하, 착하구나.”
그리고 천무진이 열어준 문으로 들어간 방에는.
“지은이 왔어?”
“언니~!”
잘 꾸며진 방 구석에 놓인 침대에 앉아 있는 천지인이 있었다.
“후후, 지은이는 오늘도 기운이 넘치네?”
“응! 지은이는 맨날 기운이 넘쳐!”
“후후, 부러워라.”
천지인이 중독된 독은 뇌의 활동을 중지시키는 독.
“영차...”
비록 오랜 시간을 누워 있었기에 몸 자체는 약해진 상황이지만. 다행히 뇌의 손상이 없어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참고로 정신과 기억이 온전한 천지인을 보고 천무진은 본부가 떠나가라 오열했었다.
천지인은 자신이 4년 동안 누워 있었다는 것에 한 번, 죽었다 알려진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었지만. 어찌됐든 지금은 많이 안정을 찾은 상태였다.
“오늘 종이접기 하기로 했었지?”
“응!”
“자, 이거 봐라? 아빠... 무진 아저씨가 가져다 줬어.”
“와아아. 이쁘다.”
천지인이 꺼낸 형형색색의 색종이들을 보며 지은이가 눈을 빛냈다.
“자, 옆으로 와.”
“응!”
자신의 말에 냉큼 침대 옆자리에 올라앉는 지은이를 보며 천지인은 미소를 지었다.
“자, 여기를 이렇게 접고. 이렇게... 그렇지 잘하네~”
“히히.”
이름이 비슷하다며 다가와 살갑게 굴어주는 아이를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때 생각난 것이 천예성이 아직 어릴 때 많이 해준 종이접기였다.
손재주가 괜찮은 편이었기에 나름 자신도 있었다.
“자, 완성~”
“와아아! 멍멍이다!”
“그렇... 어?”
“와아아! 멍멍이가 움직여!!”
“어어어!?”
설마 아기자기하게 완성된 강아지가 움직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