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56화 - 리디북스
“끄으응...”
도석환이 비명을 지르는 근육에 신음을 흘렸다.
“형님도 많이 늙었슈, 옛날에는 쇠망치에 맞고도 조용했던 양반이.”
“야야, 형님이 늦장가 가서 그렇지 인마. 아니었으면 아직도 기운이 어? 아주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크하하학 맞지! 늦장가 가서 40에 애를 낳았으니! 크하하! 쿨럭쿨럭!”
동맹의 보스들, 사사롭게는 친한 동생들의 쓸데없는 잡담에 도석환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닥쳐 이것들아!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리고 38에 낳았거든!”
“38이든 40이든 거기서 거기 아니오? 크하핳!”
“그게 뭐 자랑이라고! 아니! 자랑 맞나? 우하하하!”
[혈류 가속]의 반동으로 전신이 찢어질 듯 아파 오는 도석환이었기에 쥐어박지도 못하고 부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리가 멎었네?”
“드디어 끝났나 보네.”
그때, 산 아래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전투 소리가 멎은 것을 깨달은 동맹의 보스들이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괭이 양반, 치료 고맙소.”
“캬옹.”
[생명의 불]로 천천히 아군을 치료하며 정신을 잃은 마튼과 위령대 대원들을 감시하고 있던 루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동맹의 보스들은 루비의 감시하에 쓰러져 있는 마튼을 보며 도석환을 부축했다.
“저놈은 어떻게 할 거요? 그냥 두기에는 많이 위험한 놈인데.”
“일단 데빌은 내가 알아서 해도 좋다고 하긴 했다만...”
작전이 마무리된 이상 마튼과 위령대 대원들은 진우에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총본부에서는 선을 긋기 위해 마튼과 위령대를 버릴 것이 뻔하고, 정인태 또한 이들의 폭주라며 선을 그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아, 일단 구속구 채우고, 최소한의 치료만 해놓은 다음에 애벌랜드 지하에 처박아 놓자. 뒤지든 살든 지들 운이겠지. 그리고 언젠가 쓸데가 있을지도 모르고.”
잠시 고민하던 도석환의 말에 동맹의 보스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이 그렇다면야 전 할 말 없습니다.”
“저도 찬성.”
“개인적으로는 묻어버리는 게 낫지 않나 싶지만... 저도 일단 오케이요.”
다들 한마디씩 던지고는 흩어져 부하들을 챙기는 모습에 슬쩍 미소를 지은 도석환이 하늘을 바라봤다.
“안 그래도 바빴건만, 훨씬 더 바빠지겠구만...”
데빌에게 들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 오는 기분이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기대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도석환이었다.
* * *
G.K의 요원들만이 남아 있던 토벌대도 모습을 감추고, 승리했다며 만세를 부르는 템페스트와 그 동맹의 조직원.
전장을 정리한 다음 부상자와 사망자를 챙겨 다시 어둠 속에 숨어들고 일주일.
“반갑소. 템페스트 동맹의 수장, 도석환이라고 하오.”
“허허허,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부족하게나마 잠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우석훈이라고 합니다.”
급하게 수습해야 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드디어 한자리에 모인 도석환과 우석훈이 악수를 나눴다.
“자자, 일단 앉으시고, 식사부터 하시죠. 좋은 참돔을 구했다고 기대하라고 하더군요.”
“음... 그렇시다.”
앞으로의 일을 조율하고 최대한 잡음이 없도록 하기 위한 자리.
원래는 동맹의 다른 보스들도 함께 올 예정이었지만.
(머리 아픈 건 딱 질색이오.)
(형님만 믿겠습니다!)
(귀찮... 아이고 삭신이야!! 부상이 다 낫질 않아서 못 가겠소!)
(나 초등학교까지만 나온 거 아시는 분이 왜 이럴까?)
(에헤이! 놔! 형님? 이거 놓고 말합시다?)
‘빌어먹을 것들...’
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결국 청와대에 입성한 것은 도석환뿐이었다.
도석환은 도석환 나름대로, 우석훈은 우석훈 나름대로 긴장하며 식사를 마친 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서로 마주보며 앉은 두 사람이 본격적인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데빌에게 들었겠지만, 저희 동맹에서 바라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자유...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먼저 입을 뗀 도석환의 말에 우석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날 이후, 국민분들의 원성은 알고 계시는지요.”
“예. 모를 수가 없지요.”
가디언 코리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위령대의 만행을 유도하고, 가디언 코리아가 경찰과 군인들의 죽음을, 희생을 강요한 것을 폭로한 이후, 데빌, 진우는 템페스트 동맹과 우석훈을 통해 가디언 코리아의 수뇌부와 정치권 인사들의 유착, 대기업과의 거래, 횡령, 민간인 희생 사건 등등 수십 가지의 사건을 더 터뜨렸다.
그로 인해 현재 가디언 코리아에 대한 여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가디언 코리아가 그럴 리 없다. 음모일 것이다.’라고 믿는 쪽.
하나는 ‘선을 넘은 가디언 코리아의 권력을 축소하고 전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라고 외치는 쪽.
아직은 반반 정도지만 G.K의 권력을 축소하자고 말하는 쪽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말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당연히 일어났을 일. 조금 빨리 터졌다고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허허허, 이거 아픈 곳을 찌르시는군요.”
도석환은 가져온 서류를 꺼내 우석훈에게 건넸다.
“이건...?”
“동맹의 모든 보스들과 간부들, 그리고 데빌과 함께 만든 일종의 기획안... 입니다.”
“기획안... 입니까?”
서류를 펼치는 우석훈을 향해 도석환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빌런이라고 모두가 범죄자인 것은 아닙니다.”
“음... 그렇지요. 템페스트만 하더라도 범죄자는 자체적으로 단죄한다 했으니...”
“그중에서도 사회에 미련이 남고, 성정이 유한 자들만을 뽑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계획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의 꿈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군요.”
“그렇습니다.”
도석환이 건넨 서류에는 몇몇 직업과 함께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요리사, 공예가, 댄서에 예능 피디... 그리고 옆에는 희망자들...”
“물론 무조건 자리를 내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들의 노력에 달린 일이죠. 하지만, 언제까지고 초능력자와 일반인을 나누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음...”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 생각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석훈이 걱정하는 것은 간단했다.
한때 세계의 평화를 위협했던 차별 주의 단체 SOE.
그들 또한 초능력자와 일반인의 융화 과정에서 생겨난 단체인 만큼, 이번 일로 인해 제 2의 SOE가 생겨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후우... 어렵군요. 삐끗하는 순간 재앙이 터질 테니...그렇다고 미루면 더욱 커다란 재앙이 올 테고...”
“이해합니다.”
우석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도석환이 손을 뻗어 우석훈이 내려놓은 서류를 넘겼다.
“그렇기에 정부와 저희 동맹이 중요합니다.”
“음...?”
서류의 뒷장에 적혀 있는 것은 미국이 실패한 융화 계획에서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그것을 보완한 계획이었다.
“데빌이 말하길 과거에서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치며 미래를 준비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하더군요.”
“허허...”
“미국의 융화 작업은 그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합니다. 초능력자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하고, 익숙하지도 않은데 다짜고짜 사이좋게 지내라며 밀어 넣은 것이 잘못이라면서 지금은 다르다는 말을 전해달라 했습니다.”
“지금은 다르다라...”
미국이 초능력자와 일반인의 융화 작업을 시작했던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 초능력자가 세상에 나타나고 고작 10년이 조금 넘었을 시기였다.
“확실히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서류를 들어 올려 빠르게, 하지만 꼼꼼하게 쓰여 있는 모든 것을 읽는 우석훈을 보며 도석환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초능력자들이 저지르는 사건은 저희 동맹이 처리하겠습니다.”
“정부는 일반인이 일으키는 사건을 맡으면 되겠군요.”
“낡은 법안을 없애고 새로운 법안을 세우는 것도 필요할 겁니다.”
“허허, 그건 제가 바빠지겠군요.”
오늘을 위해 일정을 완전히 비워둔 두 사람은 날이 새도록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 * *
그 시각. 미국 보스턴.
검은 머스탱을 운전하는 진우를 보며 옆자리에 앉은 최유나가 말을 걸었다.
“보스, 이거 맞아?”
“그래. 더 미룰 수는 없다. 지금이 아니면 시간도 없을 테고.”
“그건 그렇징.”
“정말... 정말로 고맙다 보스...!”
진우의 말에 천무진이 온갖 인상을 다 쓰며 고개를 숙였다.
“아재! 우린 이미 가족이야! 응? 지인이랑 예성이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라고!”
“네가 딸인 건 좀...”
“어?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고맙다고 했다.”
순간 본심이 흘러나와 버린 천무진이었지만, 아무튼 감사를 표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적당히 하고 슬슬 준비해라, 전투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케이~!”
“알겠네 보스.”
현재 세 사람이 향하는 곳은 보스턴의, 아니 어쩌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일명 MIT. 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 연구소였다.
“(Stop. 이곳은 출입 금지 구역이다. 차량을 돌려라.)”
그때, 경비원이 세 사람이 탄 차량을 멈춰 세웠다.
“(223-231. 소장에게 미리 연락했다. 확인해봐라.)”
“(223-231? 잠시 대기.)”
창문을 내리고 영어로 대답한 진우의 말에 험악하게 생긴 경비원이 동료에게 눈짓을 하고는 경비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비원들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총을 들고 있었다.
“보스, 저거 특수 제압용 화기 아니야?”
“맞을 거다.”
“거다? 와본 적 있는 거 아니었어?”
“초대 받았던 적은 있지만, 실제로 와본 건 처음... 윽!?”
그때. 진우의 머릿속에 노이즈가 끼며 순간적으로 이명이 들어왔다.
“보스?”
“...어? 어... 처음이 맞다.”
‘방금 뭐였지?’
수십 가지의 장면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노이즈처럼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
수십 가지의 소리가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이명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도 순간 놀라기는 했지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보스 어디 아파?”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어딘가 이상한 진우의 모습에 최유나가 걱정스레 물었지만, 진우는 별거 아니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머스탱 ME H4828 통과!)”
그때,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와 함께 차단기가 열렸다.
“(안쪽에서 무기를 소지했는지 검사할 거다. 거부하면 출입이 금지되니 알아둬라.)”
“(고맙군. 수고해라.)”
이름도 소속도 묻지 않고 통과시키는 경비원의 모습에 최유나와 천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스, 원래 이런 거야?”
“뭐가.”
“아니 소속이랑 이름 같은 거 안 물어보잖아.”
“여기는 원래 그런 거 안 물어본다. 개인 연구실이라 주인 마음이지.”
“개인 연구소? 여기가!?”
MIT 본관에 비하면 작고 초라한 건물이지만, 그럼에도 개인 연구소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연구소였기에 최유나는 놀라며 자동차 창문에 붙어 주변을 둘러봤다.
“와씨. 마탑주의 공방도 이 절반도 안 되는데! 대체 누구 연구소인 거야?”
“연금술사.”
“헤... 에!? 연금술사!?! 그 연금술사!?”
“그래.”
진우는 방금 전 자신에게 일어났던 현상에 대해 고민하며 대충 대답했다.
“여기는 연금술사, 찰스 로버트의 개인 공방이다.”
“말도 안 돼! 연금술사는 미국 국가 기술 연구소에 감금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적어도 8년 전에는 그랬단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에 아주 잠깐 그런 소문이 돌았었다는 것을 떠올린 진우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내리며 말했다.
“연금술사는 미국에서도 최중요 인물이다. 헛소문이었겠지.”
“(허허허,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네.)”
“누구냐!?”
갑작스레 들려온 노인의 목소리에 천무진이 진우를 따라 차에서 내리다 말고 전투태세를 취했다.
“(음? 자네들 날 찾아온 게 아니었나?)”
“...찰리 로버트?”
“(끌끌. 오랜만이네, 미스터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