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55화 - 리디북스
인생 25년. 은가람.
‘아! 난 죽었구나!’
기자 생활 2년 차, 처음으로 큰일을 맡아 의욕이 넘치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
‘이럴 거면 그냥 집에나 박혀 있을걸!’
눈앞에 가디언 특수 대대 대원을 정리한 두 명의 악마가 눈을 부라리고 있으면 있던 의욕도 땅을 파고들어 사라질 것이다.
“얘 얘 안 잡아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킥킥킥.”
“흐이익!”
상냥한 말투와는 다르게 냄새를 맡듯이 목덜미에 얼굴을 들이밀던 여자 악마가 크앙! 하며 장난을 치는 것에 은가람이 기겁을 하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만해라.”
“네에~”
그때, 여자 악마의 뒤에서 자신들에게 손짓했던 남자 악마가 앞으로 나섰다.
“카메라는 아직 돌아가는 중인가?”
“저는 맛... 네?”
반사적으로 자신은 맛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려던 은가람이 카메라를 언급하는 악마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주저앉아 있는 카메라맨을 바라봤다.
“...”
끄덕.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카메라맨 덕분에 은가람은 자신의 추태가 전국으로 방송된 것을 깨달으며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좋아. 그럼 일어나서 방송을 이어갔으면 하는군.”
“어...”
순간 왜. 라고 물어볼 뻔한 은가람이 섬뜩하게 빛나는 악마의 황금빛 눈동자를 발견하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우는 고개를 돌려 그림자의 실에 꿰여 있는 마튼을 바라봤다.
“많은 자들이 가디언은 정의다. 라고 생각하지.”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토벌대와 템페스트 동맹의 전투 소리가 아련하게 흩어진다.
“실제로 가디언은 정의를 위해 희생해 왔다. 하지만.”
진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카메라의 렌즈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의 가디언은 어떤가. 정의로운가? 희생하는가?”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지만, 적어도 세계를 수호하는 방패이고자 하는 가디언이라면! 정의로워야 한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내 말이 틀린가?”
진우의 분위기에 눌린 은가람과 카메라맨이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진우는 몸을 돌려 완전히 제압된 마튼의 머리를 잡고 끌어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가디언은 정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이 아닌, 타인을 희생시키고 있다.”
“끄으윽...”
진우의 그림자에 의해 이리저리 꿰여 있는 마튼이 신음을 흘렸다.
“이번 토벌에서 가디언의 사망자는 없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자도 없지. 하지만, 경찰과 군인들은 사망자는 물론 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부상자가 적지 않다.”
“가디언이 소집한 토벌대에서 의도적으로 경찰과 군인들을 가장 위험한 곳에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희생을 강요한 거지.”
진우는 카메라 렌즈에 마튼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더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자는 G.K의 지사장, 정인태가 불러온 총본부 특수 대대, 위령대의 부대장이다.”
“현재 공석인 위령대의 대장 자리를 놓고 다른 후보와 경쟁 중인 이자는 자신이 쫓던 빌런이 경찰과 군인 등의 아군을 이용해 시간을 끌자 그들을 처참하게 죽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충격을 줘 기절시키기만 하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 자들을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말이다.”
진우는 마튼을 대충 최유나와 루비를 향해 집어던졌다.
“나는, 우리는 빌런이다. 저 역겨운 정의에 따르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빌런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살인, 강간, 절도, 사기 등등.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을 직접 처벌하기도 한다.”
“그런 우리가 길드와 다른 것은 딱 한 가지.”
“가디언의 아래에 있느냐, 있지 않느냐. 오직 그 한가지다.”
가디언 코리아 관할의 조직을 습격하기는 하지만 굳이 얘기하지는 않는 진우였다.
“썩어가는 G.K의 아래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여 우리는 빌런이 되었고! 사회의 악으로 낙인찍혔다!”
“G.K에게 꿈을 빼앗기고 자유를 박탈당한 우리가! 잘못한 것이 대체 무엇이냐!”
“우리는 굴복하지 않겠다! 자유를 위해! 앞으로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날 모든 아이들의 꿈을 위해!”
한 사람의 투사.
은가람의 눈에 지금의 진우는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 * *
은가람과 카메라맨을 다시 헬기로 올려보내고, 진우는 산 아래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 진우의 뒤를 따르던 최유나가 진우를 향해 물었다.
“보스, 그런 연설로 뭐가 바뀔까?”
“바뀐다라...”
진우는 피식 웃으며 단언했다.
“크게 바뀌는 건 없겠지.”
“그럼 그냥 생고생이잖아.”
“글쎄. 그건 아니다.”
“응?”
진우는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템페스트 동맹의 마지막 방어 라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굳이 이런저런 소리를 하며 방송 앞에 나선 이유는 가디언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놓기 위해서다.”
“일반인한테?”
“그래.”
가디언의 힘은 스스로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방패. 즉, 정의라는 것에서 나온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국가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는 것이 허용되기에 단순한 무력 집단이 아닌 수호자로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선을 넘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
빌런을 쫓는 데 방해가 된다며 아군을 해치고, 전력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며 경찰과 군인을 희생시킨 것.
이건 당연하게도 선을 넘은 행동들이었다.
“아마 가디언 총본부에서는 마튼이 혼자 폭주한 거라며 그를 버릴 거다. 그리고 경찰과 군인의 건은 G.K의 단독 소행이라며 선을 긋겠지.”
“흐음~”
정인태 또한 부하들의 폭주였다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버틸 것이 분명했다.
“이번 일로 G.K의 영향력은 지금까지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거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보스가 그렇다면야~”
대화를 끝낸 두 사람은 이내 템페스트 동맹과 토벌대가 전투를 벌이는 방어 라인이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진우를 발견한 템페스트 동맹의 간부들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이미 전투가 멎은 토벌대와 템페스트 동맹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이번 작전, 그리고 빌런 토벌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우석훈이 일을 제대로 했나 보군. 경찰과 군인 쪽이 어수선해.”
진우의 말대로 토벌대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경찰들과 군인 쪽의 인원이 천천히 빠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저기 잔뜩 모여 있는 빌런 놈들을 토벌하기만 하면 되는데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글쎄 위에서 후퇴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니까!)
(아직 가디언에서는...!)
(우리는 군인이지 가디언 소속이 아니야! 말조심하게!)
(하! 정말로 이럴 겁니까! 가디언에서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지금 군을 협박하는 건가!? 해보자는 거야 뭐야!!)
그리고 후퇴하려는 군과 경찰을 막아서서 잔뜩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 가디언의 요원들이 보였다.
“여차하면 난입하려고 했는데 거기까지는 안 해도 괜찮겠군.”
“에이... 재미없네.”
“가디언 쪽은 아직 빠질 생각이 없어 보이니 잠시 대기하지.”
“옛써!”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흘러.
“어?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가네?”
“음.”
경찰들과 군인들이 남한산을 빠져나가고, 포위망이 얇아졌다.
“어쩔까 보스?”
최유나는 자신들이 있는 템페스트 동맹 진형이 얇아진 포위망을 보며 분위기가 바뀐 것을 느끼며 진우를 바라봤다.
“음...”
진우의 눈에 당장이라도 공격하자는 듯이 강렬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간부들의 시선에 진우는 슬쩍 고개를 저었다.
“에잉...”
그에 최유나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실망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러. 노을이 지고 최유나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저벅, 저벅.
토벌대 쪽에서 여성과 남성 한 명이 진우가 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드디어 왔군.”
“으엥? 쓰읍.”
자리에서 일어난 진우와 최유나가 천천히 다가오는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이내 토벌대와 동맹의 중앙쯤에서 만났다.
“당신이 데빌이군요.”
“그래. 만나서 반갑군. 유차빈 비서실장. 그리고...”
“...오랜만이군.”
“그렇군. 윤무길.”
자신을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는 유차빈과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윤무길을 보며 진우가 담담히 말했다.
“더 일찍 움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늦었군.”
“...이런저런 일이 많았거든요.”
큰 적대감을 보이는 윤무길을 막아서며 대답한 유차빈이 진우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쓸데없는 대화는 필요 없겠죠. 원하는 게 뭐죠?”
“유 실장님!?”
“조용히 하세요.”
“끄응...”
잔뜩 인상을 쓰며 뒤로 물러난 윤무길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은 진우가 다시 유차빈을 바라봤다.
“이쪽이 원하는 건 잘 알 텐데?”
“그런 대외적인 이유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거예요.”
“음...”
가면 아래에서 씨익 입꼬리를 올린 진우가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첫 번째로 신명하의 추방.”
“뭣!?”
“어려울 것 없네요. 첫째라는 건 다른 것도 있는 건가요?”
“아니!? 유 실장님?!”
“두 번째로는 템페스트와 그 동맹에 대한 안전.”
“그건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노력은 해보죠.”
“유 실장!!!”
“마지막으로는 우석훈 대통령의 행보를 방해하지 않는 것.”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죠.”
마지막에 와서 미소가 깨진 유차빈이 무표정한 얼굴로 진우를 바라봤다.
“초능력자는 일반적인 직업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희 가디언이 밀어붙여 만든 법안이지.”
“...”
“우석훈 대통령은 그 법안의 개정을 위해 움직일 거다.”
진지하게 말하는 진우를 가만히 바라보던 유차빈이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초능력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들의 꿈을 위해... 그게 진심이었나요?”
“적어도 거짓은 아니었지.”
“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최악의 경우에는 차별주의자들이 다시...”
“초능력이 세상에 나타나고 수십 년. 이렇게 억압하여 가져온 평화가 몇 년이나 더 갈 것 같지?”
“...”
진우의 물음에 유차빈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진짜 최악의 경우는 오늘의 일은 장난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자유를 원하는 초능력자와 일반인의 전쟁이 될 거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가디언이 있는 거예요.”
“그 가디언이 이미 썩어버렸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건...”
가디언의 내부에서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것은 총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아니, 가디언의 지부가 전 세계에 흩어진 이상, 총본부의 총장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 하지만 전체가 다 썩어 있는 건 아니에요!”
“일부가 썩어버린 과일은 가만히 두면 머지않아 전체가 썩어버리지. 그래서 도려내야 하는 거다.”
“...”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황금의 눈동자에 유차빈은 아무런 반문도 하지 못했다.
자신 또한 야망을 위해 가디언 총본부에 올라 총장을 노리고 있고, 그것을 위해 가디언 코리아의 부정에 눈을 돌리고 묵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지.”
“사회가 바뀌려는 것에 손을 대지 마라.”
그렇기에 유차빈은 눈앞의 이 검은 악마가 말하는 모든 것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축 처진 어깨로 잠시 시간을 달라며 토벌대 쪽으로 향한 유차빈을 바라보던 윤무길이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서진우의 아내와 딸은... 어떻게 됐지?”
“아직은 잘 지내고 있다.”
“아직...”
진우의 대답에 필사적으로 화를 참던 윤무길이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인질은 필요 없겠지. 그러니 인질의 반환을...”
“윤무길.”
그때 진우가 윤무길의 말을 끊으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이은선과 서지은의 반환은 내가 결정한다. 네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야. 신경 꺼라.”
“...”
진우의 눈은 차갑기 그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