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53화 - 리디북스
지금 정인태의 표정을 보는 자들이라면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흉신악살(凶神惡殺)의 얼굴이라고 말이다.
(허허허, 이거 정인태 지사장이 피곤이 쌓인 모양이군. 다시 한번 말해주겠네.)
그리고 정인태가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가 그가 귀에 대고 있는 휴대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국군 장병과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을 해한 위령대. 그들을 구속하라 했네.)
“이익...!!!”
순간 정인태가 욕설을 뱉으려다 참았다.
“그건 빌런의 주장일 뿐입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상은?)
“조작된 게 당연하지 않습...!”
(이미 전문가들이 영상에 조작은 없다고 확인했네.)
“뭣...?!”
일이 일어나고 이제 고작 수 분.
아직도 위령대와 빌런들의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벌써 전문가를 불러 영상의 진위를 확인했다?
이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정인태는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지금 저희 가디언과 척을 지겠다는 겁니까!?”
(척을 진다? 그건 말이 좀 이상하군. 이 나라의 국군과 경찰을 공격한 건 그쪽이 먼저 아닌가!)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착오? 지금 착오라고 했나?!)
그리고 잔뜩 분노한 우석훈의 목소리에 드디어 정인태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 대단한 가디언 코리아의 인원이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중대가 전멸했다는 말일세!)
만들어졌다고는 하나 약점은 약점. 그것도 우석훈의 정치 인생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 우석훈은 이렇게 분노를 터뜨릴 입장이 아니었다.
(그것도 빌런에게 완전히 제압당한 상태에서 자네가 불러온 위령대라는 부대에게 전멸당했다는군! 이걸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느냔 말이야!)
그런데도 우석훈은 자신의 분노를 전혀 숨기지 않고 있었다.
숨기기는커녕.
(내 이 일을 그냥 덮어 두진 않을 것이네! 가디언 코리아라 해도 이번 일은 선을 넘었어!)
가디언을 징벌하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우석훈의 약점이 담긴 자료가 털렸지.’
그에 정인태는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우석훈뿐만이 아니라 그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의 자료까지...’
그것만으로는 딱히 뭘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만약 자료를 통해 약점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정보부가 힘을 잃은 지금, 정보 조작에 구멍이 생겼다면?’
‘그것을 거래 삼아 누군가가 우석훈과 접촉했다면...?’
지금의 가디언 코리아는 이전과는 달랐다.
완벽에 가까웠던 정보부가 그 힘을 잃고 계륵이 된 지금, 가디언 코리아의 정보 조작 능력 또한 더 이상 완벽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정인태가 으르렁 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지금 누군가와 함께 있나?”
(허! 이제는 예의까지 버린...)
“닥치고 대답이나 해.”
(허...)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냉정해지는 정인태가 존대까지 버리고 말했다.
“만약 우석훈, 네놈이 누군가와 거래를 한 거라면... 실수한 거다.”
(허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지금 세상에서 가디언을 등지고 대통령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지금 협박을...)
“아니, 그 이전에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쿠구구구구...
정인태가 분노함에 따라 흘러나온 그의 [염동력]이 가디언 본사 건물을 흔들어 댔다.
“그동안의 정으로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이제 정인태의 얼굴은 흉신악살을 넘어선 그 무언가로 보일 정도였다.
“너. 누구와 거래한 거냐.”
(허허허.)
그냥 대놓고 ‘네놈’과 ‘너’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적대감을 보이는 정인태의 말에 우석훈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거 너무 딱 들어맞아서 무서울 지경이군.’
우석훈의 앞에서 통화하는 것을 보고 있는 데빌이 알려준 그대로 대화가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이자가 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좋겠지.’
다른 때라면 이런 폭언을 듣고도 참아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며 분노를 참고 있었어야 했지만.
(지금 감히 한 나라의 대통령을 협박하고 그냥 넘어갈 것 같나!!)
이번에는 달랐다.
“뭐?”
(분명히 말하지! 자네는 가디언이 아니네!)
“지금 무슨 소리를...”
(나는 가디언이 아닌 가디언 코리아라는 집단과 그 장과 말하고 있는 것이네! 그 알량한 권력을 믿고 스스로를 가디언 그 자체로 생각하지 말게!)
“감히...!”
(가디언 코리아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끊겠네!)
우석훈은 거기까지 후련하게 소리치고는 뚝. 전화를 끊었다.
“...”
그리고 잠시 멍하니 끊어진 전화를 들고 있던 정인태는.
“으아아아아!!!”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 * *
“음. 자네가 말한 것처럼 있는 대로 도발하기는 했다만, 정말 괜찮은 건가?”
“괜찮습니다. 아니, 잘하셨습니다.”
진우는 어딘가 굉장히 후련해 보이는 우석훈을 보며 가면 아래에서 미소를 지었다.
“정인태는 꽤 능력 있는 자입니다. 본신의 힘도 상당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편이죠.”
“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짜놓은 판이 일그러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손안에 있던 패가 변수를 만들어내는 것을 혐오하죠. 있는 대로 도발하기도 했으니 어떤 식으로든 직접 나설 겁니다.”
“정인태 지사장을 꽤 잘 아는구만.”
“...뭐 원한이 있다고 해두죠.”
변수를 혐오하는 정인태였기에 가디언 코리아의 썩은 부분을 건드리던 진우를 죽인 것이니, 원한이라면 원한이었다.
“아무튼 나머지는...”
“허허허, 이 정도로 판이 짜였으면 멍청이라도 할 일을 알아서 찾을 거네. 걱정하지 말게.”
“맡기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뒤에서 대기하던 천무진이 앞으로 나왔다.
“당분간 천무진이 당신의 신변을 보호할 겁니다.”
“허허허, 영웅이 호위라니 이거 영광이군.”
가면을 벗어 자신의 왼쪽 어깨에 걸어둔 천무진이 우석훈의 말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영웅은 무슨. 과거의 일입니다.”
“허허, 존대는 무슨. 이제 한배를 탄 동료 아닌가.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자네가 나보다 나이가 많지 않나?”
“흠흠. 나이는 뭐... 액면가로 따집시다.”
“이거 아픈 곳을 건드리는군.”
나름 잘 맞아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진우가 천무진에게 말했다.
“대통령 앞에서는 상관없지만, 다른 자들에게는 얼굴을 감춰. 이름도.”
“그러지. 보스.”
그리고 진우는 최유나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대통령이 미리 말을 해둔 덕에 진우와 최유나의 앞을 막는 자들은 없었으며. 이내 두 사람은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당당하게 청와대 정문으로 나올 수 있었다.
-루비.
그리고 진우는 도석환의 근처에 있을 루비에게 [염화]를 걸었다.
-응. 주인.
-상황은 어떻지?
위령대 부대장이 폭탄 발언을 하고 난 이후, 인터넷 방송은 중단됐기에 묻는 것이었다.
-그리 좋진 않아. 대부분 많이 다쳐서 쓰러져 있어.
-그렇군.
루비의 말에 이제 슬슬 끝낼 때가 됐음을 확신한 진우가 말을 이었다.
-신호를 보내고 최대한 그들을 지켜라. 나도 곧 가지.
-응!
* * *
프스스스...
1월의 차가운 겨울. 안 그래도 맨몸을 드러낸 남한산의 나무들이 각종 초능력에 의해 태워지고, 잘라지고, 부서지며 전쟁터에 가까운 풍경으로 변하고 있다.
“허억, 허억, 허억.”
“...”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위령대의 16인과 대치하고 있는 8인의 숨결이 거칠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거 죽겠구만...”
“어르신 이거 맞습니까? 죽을 것 같은데요?”
“헥헥, 말이 다르지 않소 형님~”
자신의 뒤를 든든히 받히고 있는 동맹 조직 보스들의 투덜거림에 도석환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친 건 내가 제일 많이 다쳤어. 이것들아.”
“아이고. 많이 다쳐서 좋겠수.”
“그게 뭔 자랑이라고.”
“아니 이것들이?”
큭큭거리면서도 위령대의 16인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는 8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산중왕, 호랑이와 같았다.
“애들도 전부 나가떨어졌고. 이제 어쩔 거요. 형님.”
“뭐 나라고 별수 있겠냐?”
남한산 밑에는 어떻게든 올라오려는 토벌대와 그걸 어떻게든 막으려는 템페스트와 그 동맹의 조직원이 전투를 벌이고 있기에 도망도 불가능에 가깝다.
“어떻게든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봐야지.”
“아이고, 어떻게 옛날이랑 달라진 게 없소?”
“형님이 그렇지 뭐. 에휴.”
애초에 주변에 쓰러져 있는 42인의 부하를, 동료를 버리고 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리고...”
도석환은 위령대 16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한 명 정도는 데려가야 하지 않겠냐?”
“푸흐흐. 그건 맞는 말이제.”
“형님이 오랜만에 맞는 말을 다 하네.”
투지를 끌어올리는 도석환에 맞춰 나머지 7인의 보스들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마튼이 검을 한 바퀴 돌리며 입을 열었다.
“실력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건가. 추하군.”
“거 추하게 싸우는 게 누군데.”
“비겁한 짓거리는 다 해 놓고 실력차란다.”
“카악! 퉤! 에잉 진짜 더러워서라도 한 놈은 데려가야 것수.”
실력 차가 있기는 하지만, 위령대의 비겁한 짓들 때문이라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도석환과 보스들이 한마디씩 던지자, 마튼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버러지들이...”
그리고, 살짝 분노한 마튼이 부하들에게 사살하라 명하려는 그때.
“캬오오옹!!!”
차가운 겨울바람을 지워버리며 거대한 화염의 고양이가 등장했다.
“루비!”
그것이 루비임을 알아본 도석환이 의아함 반, 기쁨 반의 기분을 담아 루비를 불렀다.
“대체 어디 있었던 거냐!?”
“캬오옹...”
조금은 잔인한 이야기지만, 루비는 진우의 지시에 따라 몸을 숨기고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유는 엿 먹이기 부대가 살짝 밀릴 정도로 밸런스를 맞추고 엿 먹이기 부대가 죽지 않도록 뒤를 봐주는 것.
그리고 싸움이 거의 끝나갈 때쯤, 진우가 도착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 힘을 비축하기 위하여.
“하아, 줄줄이 버러지들이 나타나는군.”
마지막으로.
“카오오옹-!!”
휘이이이! 퍼어엉!!
신호를 보내 지원을 부르기 위해서였다.
“...신호탄?”
루비의 입에서 발사된 화염의 구체가 하늘 높이 날아 허공에서 터지는 것을 본 마튼이 그것이 신호탄임을 깨닫고 표정을 구겼다.
“쳐라!”
그리고는 곧장 루비와 8인에게 달려들며 소리쳤고, 이어 위령대의 모든 인원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캬오오오!”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위령대의 인원, 그 절반을 루비가 홀로 막는 모습을 보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본 도석환이 마튼에게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으하하하! 그랬던 건가! 미리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도석환을 포함한 엿 먹이기 부대 50인이 위령대를 상대하며 이상할 정도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반쯤 죽은 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아무튼 죽지는 않았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유쾌하구나!!”
그리고, 그런 자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릿한 백색의 불꽃이 상처 부근에서 일렁거리고 있었다.
[화신] 파생 [생명의 불].
일전 루비가 테러 진압대의 저격을 막아내고 각성한 파생 능력이었다.
아직 완전한 치료는 역부족이지만, 상처의 악화를 막고 목숨을 붙들고 있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도석환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마튼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으하하하! 어차피 나도! 너도! 악마가 만든 인형극의 한낱 인형일 뿐이니! 마지막 춤을 추자꾸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한 거센 태풍이 멎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