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50화 - 리디북스
기자 생활 2년 차. 아직은 열정이 가득한 사회 초년생인 은가람.
그녀는 자신의 인생 25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에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고 입을 벌리고만 있었다.
콰과과광!
“캬오오옹!!”
“막아! 의료품을 노리고 있다!”
“술자를 찾아! 구현계 능력자가 어딘가 있을 거다!”
“아악! 뜨거워!!”
언제 어디서나 위풍당당. 자신들이 인류의 수호자라는 것처럼, 고고하게 행동하던 G.K의 요원들이 어디선가 나타난 화염의 거대한 고양이와 복면인들에 의해 우왕좌왕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앗?!”
그리고 그때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은가람이 번뜩 마이크를 들었다.
“토, 토벌대 사령부가 위험합니다?!”
비록 평소의 유려하고 매끄러운 진행은 아니었지만, 핵심은 확실하게 짚은 한마디였다.
“각 중대가 사령부로 모이고 있는 와중에 빌런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령부를 공격하는 걸까요!”
은가람은 그렇게 말하고는 문뜩 왜 자신은 안전한지 의문이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어?”
그리고 토벌대에서 각 방송국, 신문사의 기자들에게 배정해준 장소는 빌런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 빌런은 저희 기자들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보통 빌런은 일반인을 인질로 잡는 경우가 많다.
뭔가 악행을 저지를 때, 가디언 요원에게 협박할 때, 도주할 때.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은 빌런의 좋은 협상 재료이며 방패.
하물며 이런 전장에서 자신들은 토벌대의 약점이 된다.
때문에 토벌대에서도 기자들의 호위를 위해 요원을 배치했지만.
“어, 어떻게 하지?”
“우리도 참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 하지만 우리는 기자분들을 지켜야...”
지금 그 요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할 정도로 빌런들은 기자들의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컴퓨터는 철저하게 부숴!”
“불을 질러! 이 조잡한 사령부를 전부 부숴버려!”
“끼야아아아호!”
“우롸아아아~!”
그에 반해 임시 사령부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빌런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파괴의 화신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때.
“저 사람은...?”
임시 사령부의 전체적인 상황을 지켜보던 은가람의 눈에 홀로 뒤로 빠져 뒷짐을 지고 여유롭게 난리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카메라, 저쪽! 저 사람이요!”
“네? 아, 네!”
그에 은가람은 본능적으로 저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토벌대 임시 사령부가 빌런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빌런들의 리더로 추정되는 남자가 보입니다.”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꼈는지 남자는 슬쩍 고개를 돌려 은가람과 카메라를 바라봤다.
“어, 얼굴에 악마를 형상화한 듯한 반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입니다.”
입 윗부분을 가리는 반가면을 쓰고 있는 사내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 *
“어렸을 때는 티비에 나오는 게 꿈이었는데 말이야.”
송조운이 가면 아래에 조금 드러나 있는 뺨을 살쩍 긁으며 중얼거렸다.
“설마 가디언과 정부, 길드가 합쳐진 토벌대의 사령부를 치면서 티비에 나오게 될 줄은 몰랐네.”
비록 자신은 전투에 참여하진 않고 있지만, 뭔가 자신을 대장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이 떠들고 있는 기자를 보며 송조운이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정작 습격대의 대장은 저기에서 날뛰고 있는데 말이야.”
콰아아앙-!
송조운이 중얼거리며 바라본 장소에는 템페스트 보스, 도석환의 아들, 도민준이 광소를 터뜨리며 날뛰고 있었다.
“크하하하!!! 이게 다냐 위선자!!”
“막아! 아, 아니 죽여!!”
“적은 하나다! 뭣들 하는 거냐!!”
“크하하하!! 약해!! 약하다!! 좀 더 나를 즐겁게 해봐!!”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도석환의 뒤에 서 있던 남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미친듯한 전투력을 보이고 있는 도민준.
“[전투 고양]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지. 본인한테만 극한까지 발휘되는 저건... 이제 고양 수준이 아니라 버서커겠지.”
전투 중의 아군에게 어느 정도의 버프를 제공하는 능력 [전투 고양(鼓舞)].
그것이 변형되어 자기 자신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명백한 단점이었으나.
덕분에 버프가 말도 안 되게 강력해진다면 그건 더 이상 단점이 아니라 장점일 터.
“크하하!!! 더! 더더더더더!!!”
“미친!”
“아아악!! 괴물!”
그리고 흔하다면 나름 흔한 능력인 [재생력]까지 합쳐진다면 그야말로 버서커가 따로 없었다.
콰아아앙!!!
그때 날뛰는 도민준의 반대 방향에서 거대한 화염이 터져나왔다.
“쟤는 왜 또 저렇게 세냐...?”
꼬리의 끝에 백색의 불꽃을 달고 있는 거대한 화염의 고양이가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며 날뛰고 있었다.
“캬오오오옹-!”
“물! 물 계열!!”
“아악! 내 팔!!!”
겁도 없이 화염 저항력을 믿고 루비에게 접근했던 근접계 능력자들은 이미 육체 곳곳에 심한 화상을 입고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바람 계열은 빠져! 쓰지 마!! 불길이 더 강해진다!!”
“염동! 염동 계열! 움직임이라도 붙잡아!!”
“감지 계열은 당장 저 괴물을 만들어낸 술자를 찾아!!”
원거리 계열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주력은 빌런 조직의 토벌을 위해 전국 각지로 흩어진 상황.
작전을 마친 각 중대가 사령부로 돌아오고는 있지만, 아무튼 지금 사령부에는 정예라고 할 만한 자들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이 겉보기만 그럴듯한 사령부에 있는 자들이라고는.
“히익! 다, 당장 저 새끼들을 죽여!! 내쫓으란 말이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내 형이 바로 가디언 인재 관리부의!!!”
“중대!! 사령부가! 사령부가 공격받고 있다!! 사, 살려줘!!”
능력이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권력만을 탐하는 쓰레기들.
가디언에서 토벌대를 만들며 일종의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자들뿐이었다.
“지금까지 숨기에만 급급했던 빌런들이 이런 대규모 토벌대의 사령부를 급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평화의 폐해라고 할까. 일종의 편견이다.
빌런이 가디언을 먼저 공격할 리 없다는 그런 안일한 편견 말이다.
머릿속으로 작전을 가다듬던 송조운이 슬쩍 시간을 살폈다.
“위령대 놈들 마지막 위치가 문형산 쪽이었지? 슬슬 위험하겠네. 이 정도면 타격도 충분히 줬을 테니...”
사령부 습격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10분이지만, 위령대를 만만하게 볼 수는 없었기에 송조운은 회색 마탑에서 구매한 통신 장비를 통해 도민준에게 후퇴를 제안했다.
“크하하하하!!!”
“...”
물론 [전투 고양] 탓에 가볍게 씹혔지만 말이다.
“하아...”
어쩔 수 없이 송조운은 부대장의 권한으로 습격대 전원에게 다이렉트로 통신을 걸었다.
“위령대 도착 예상 시간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전원 후퇴를 준비하세요. 당연히 부상자도 챙겨서 떠납니다.”
-예!
-넵!
-알겠습니다!
정규 부대도 아니었기에 대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래 대답이라도 해주는 게 낫지.”
송조운은 만족하며 통신을 끊었다.
“자 그럼. 저 정신 나간 대장은 어떻게 데리고 와야 하나...?”
콰과과광! 콰아앙!
신나게 사람을 이리저리 날려대는 도민준을 보며 잠시 머리를 긁적인 송조운이 시선을 돌려 천천히 빠지고 있는 루비를 바라봤다.
“루비! 가서 대장 좀 데려와!”
“캬오?”
-대장?
“어! 저기 저 임시 대장! 진정시키고 후퇴해야지!”
-아. 알았어.
“말 안 들으면 한 대 후려쳐서라도 데려와!”
-응!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 치고는 대사가 안 맞는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루비는 후퇴하던 것을 중단하고 방향을 바꿔 도민준이 있는 사령부 중앙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으아악! 괴물이 괴물과 합류하려 한다!!”
“막아!!”
뭔가 오해한 요원들이 그런 루비의 앞을 막아섰지만.
“캬오오옹!!”
‘귀찮아! 비켜!’
“으아악!”
“뜨거워!!”
토벌 중대에도 끼지 못한 자들이 염왕묘 상태의 루비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손쉽게 도민준의 뒤로 다가간 루비는.
“역시 루비. 보스가 괴물 고양이 하나는 잘 찾았단 말...”
콰아앙!
“이야...?”
그대로 도민준의 뒤통수를 앞발로 후려갈겼다.
아군에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도민준이 그대로 꼬꾸라졌다.
“아니 왜 말도 안 걸고 그냥 후려치는데!?”
-응? 그치만 보스가 이클립스의 동료 말고는 염화 쓰지 말라 그랬단 말이야.
“아...”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송조운이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송조운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일단 진정시킨 건 맞으니까 후퇴나 하자.”
* * *
“...무력시위라도 할 셈인가?”
한동안 태블릿에서 흘러나오는 사령부의 모습을 보던 우석훈이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봤다.
“아니.”
진우는 우석훈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
“뭐?”
“가디언은 항상 승리한다.”
“대체 무슨 소리를...”
뜬금없는 진우의 말에 우석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의문을 표했다.
“수십 년 동안 가디언은 언제나 승리해 왔다.”
“그거야...”
“그렇기에 가디언은 세상 모든 이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지.”
진우는 태블릿을 통해 보이는 초토화 된 사령부의 모습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저곳은 어떻지?”
“...”
“저게 승리의 모습인가? 승리한 정의의 모습인가?”
“하지만, 저 사령부는 겉보기만...”
“겉보기만 번지르르한 곳이지. 나도 안다. 알고 굳이 저 쓸데없는 곳을 습격하라 지시했다.”
“...”
자신을 바라보며 더욱 빛나는 황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우석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사령부에서의 패배를 인정하면 가디언은 더 이상 승리만 해온 정의의 화신이 아니게 된다. 최소한 가디언 코리아는 그렇지.”
“...”
“만약 저 사령부는 빛 좋은 개살구였으니 패배가 아니다 라고 발표하면 사람들은 왜 굳이 저렇게 쓸데없는 사령부를 세워놨는지 의심할 거다.”
“의심...”
우석훈은 어느새 이마에 흐르고 있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저 사령부에 있는 간부들은 대부분 가디언에 뇌물을 주고, 혹은 인맥으로, 혈연으로 들어가, 허울만 좋은 지위를 받은 자들. 그게 밝혀지면 가디언은...”
“깨끗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잃게 되겠지.”
“...외통수겠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획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이후에 어떤 계획이 준비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저 우석훈 대통령은 눈앞에 있는 남자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건... 가디언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는 짤 수 없는 계획이다. 자네는 대체 누구지?”
하지만 그럼에도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이상 두려움을 들킬 수는 없었기에, 우석훈은 생각을 정리하고 눈에 힘을 주며 자세를 바로 했다.
“...”
그리고, 미묘하게 우석훈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챈 진우가 입을 열었다.
“가디언에 받아야 할 게 있는... 가장(家長)이라고 해두지.”
“가장...? 그, 가족을 책임지는 뜻의... 그 가장인가?”
“그래.”
“허...”
어이없는 대답에 우석훈이 실소를 지었다.
“대답해 주기 싫으면 됐네. 어차피 대답을 듣고자 한 질문도 아니었으니.”
“...”
진우로서는 우석훈이 나름 마음에 들었기에 진심을 담아 대답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나.”
“그건 우리 쪽에 붙겠다고 결정한 거라 보면 되나?”
“왜. 더 고민할 것 같았나?”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더 고민할 게 있나.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외통수인 것 같은데.”
“...”
“아마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를 자네의 편으로 끌어들일 계획이 있겠지.”
“...”
우석훈의 말대로였기에 진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가면 아래에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억지로 자네에게 붙을 바에는 내가 스스로 자네의 편에 붙는 게 대우가 더 좋지 않겠나.”
“...그 말대로다. 대통령.”
진우는 다시 태블릿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음 작전이 진행되는 것까지는 보고 결정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결정이 빨랐군. 덕분에 시간이 남아버렸어.”
“다음 작전...?”
“보겠나? 아니,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