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은 만능 빌런 49화 - 리디북스
우석훈, 나이 56.
3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G.K가 밀던 후보를 제치고 기적적으로 당선된 현 대한민국의 대통령.
그 흔하디흔한 정치 스캔들도 없는 사람이라 임기 초반,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나름의 성을 쌓은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G.K가 그런 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지.’
진우는 그 스스로를 포함한 네 명의 약점이 담긴 서류를 읽고 있는 우석훈을 보며 생각했다.
‘우석훈뿐만이 아니라 그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국무총리, 육군 국방부 장관, 그리고 국선당의 당대표. 그 전부의 약점과 만들어진 과정이 담겼으니... 생각할 게 많을 거다.’
진우의 생각대로 우석훈은 진우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고 한 장 한 장 넘기며 서류를 확인하고는.
“후우...”
미간을 주무르며 담배을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다시 처음부터 서류를 확인했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러.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겠지.”
필터 끝까지 타들어가 이미 꺼진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리며 우석훈이 말했다.
“대략은 예상이 가지만... 말해보게.”
“그건 내가 일단은 손님이 됐다고 판단하면 되나?”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그거 다행이군.”
진우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창틀에서 내려와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그럼 비서실장에게 연락해서 감시 체계를 조금 약화하거나 외부로 돌려줬으면 좋겠군. 슬슬 막는 것도 한계라.”
“...? 그거야 어렵지 않네만...”
가끔 가디언의 요원이 몰래 찾아올 때가 있어서 비서실장도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 터였다.
* * *
진우는 대통령과 독대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함께 온 최유나와 천무진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
“아재 더 꽉 잡아봐!”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꽉 잡으라는 거냐? 팔을 쥐어 터뜨리라는 거냐?”
“으읍! 읍! 으으읍!”
“넌 입 다물어 인마!”
-9번. 아까부터 말이 없다만. 이상 없는가?
“입 열어! 아무런 이상 없다고 말해!”
“읍...”
최유나와 천무진은 한 명의 감시 계열 능력자를 사로잡아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아래의 벽에 바짝 붙어 초능력을 통한 감시망을 교란하고 있었다.
“여, 여기는 9번. 집무실 반경 10미터, 이상... 없음.”
-확인. 오늘따라 벌레가 많아 센서 오작동이 많으니 보고 주기를 당기겠음. 5분마다 한 번씩 보고 바람.
-1번 라져.
-2번...
.
.
.
“9번 라져.”
대략 이런 식이었다.
“잘했어! 굿보이! 이제 다시 입 다물어.”
“...”
그리고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통제실에서 알린다. Vip께서 잠시 손님을 만나신다고 한다. 6번부터 10번은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능력의 사용을 중지해라.
삐빅.
그 말을 끝으로 9번 경비의 무전기가 침묵하는 것을 확인한 최유나가 고개를 들어 대통령 집무실의 창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창문에서 진우의 손이 휙휙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아재, 우리도 들어가자.”
“그래. ...어? 얘도?”
“응?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읍?”
“...그런가?”
최유나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여 자신과 더불어 9번 경비까지 띄우는 것을 본 천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몰랑. 일단 갑시다~”
“...그래.”
“읍!?”
그렇게 세 사람이 천천히 허공을 날아 집무실 창문으로 쏙 하고 들어갔다.
“왔... 나? 그 경비는 왜 데려온 거냐?”
“엉? 그야 우리가 간 다음에 침입자다~ 하면 골치 아프니까?”
“...적당히 기절시켜 놓으면 되잖아.”
“아하? 그렇네?”
최유나가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허공에 만들어낸 사람 머리만 한 얼음 덩어리가.
퍼어억!
“억!?”
털썩...
그대로 9번 경비의 뒷통수를 후려쳐 기절시켰다.
“...”
“...”
“...”
“엉? 왜?”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진우와 천무진. 그리고 우석훈 대통령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일단 앉아라.”
“네에~”
“그러지.”
적당히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을 보며, 정확하게는 최유나를 보며 낮게 한숨을 쉰 진우가 다시 우석훈을 바라봤다.
“다시 얘기를 진행시켜서. 이쪽이 해줄 수 있는 건 간단하다. 당신과 당신의 사람 세 명의 약점 제거. 그리고 G.K의 영향력을 축소해 주겠다.”
“...대가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인지 당황하지 않는 우석훈을 보며 가면 아래에서 미소를 지은 진우가 대답했다.
“템페스트를 비롯한 반정부 조직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그건...!”
“템페스트와 그 동맹들이 요구하는 자유는 G.K에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 그놈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놈들이 막고 있는 것뿐... 나라에는 오히려 이득이 될 거다.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
“...확실히 자네의 말대로네.”
지난 수십 년 동안 템페스트를 필두로 한 반정부 조직이 외쳐온 것은 자유. 그것 하나뿐이었다.
현재의 정부와 가디언에 소속되는 것을 제외하면 남은 길은 길드, 딱 하나뿐이다.
하지만 길드는 가디언에 딸랑거리는 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좋은 선택지라고 하기에도 뭐하다.
“하지만 초능력이 사회에서 자유롭게 사용되면 반드시 혼란을 불러올 것이네.”
우석훈은 우려스러운 표정을 굳이 숨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미국이 그 대표적인 예시지.”
“미국이라...”
한때 미국은 자유로운 국가. 라는 슬로건을 걸고 초능력자의 자유로운 사회 활동을 막지 않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일을 쉽게 해낼 수 있는 초능력의 힘을 접한 비능력자들. 즉, 일반인이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초능력자와 일반인의 갈등을 촉진했다.
어느 초능력자에게 밀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그의 뒷통수에 권총을 갈기고.
초능력을 사용해 뛰어난 쇼맨십을 보이며 요리하는 요리사에게 손님을 빼앗긴 식당의 주인이 샷것을 갈기고.
반대로 초능력자임에도 일반인에게 밀린 어느 능력자가 그 일반인의 얼굴을 태워버리고.
일반인의 아들이 자신의 아들을 때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아비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아들을 백치로 만들어 버리는 등.
크고 작은 혼란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초능력자들의 차별주의 집단. 세이비어 오브 엔드였다.
자신들은 진화된 인간이다.
도태된 인간들은 노예로서 봉사해야 한다.
모든 것은 종말의 구원자가 될 자신들, 초능력자들을 위함이다.
진심으로 종말이 옴을 믿고 그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진화한 인간인 자신들에게 일반인들은 봉사해야 한다. 라는 정신나간 사상을 가진 집단은 미국의 혼란을 세계적인 혼란으로 번지게 만들었다.
“그 전철을 다시 밟을 순 없네.”
“음...”
대략 그런 이유로 우석훈이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진우는.
“하하하하.”
“...뭐가 우습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스울 수밖에.”
“...말을 조심...”
“SoE는 이미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SoE의 탄생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거다.”
“뭐라!?”
진심으로 놀란 우석훈이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그의 의자가 우당탕 쓰러졌다.
“천무진.”
“예 보스.”
우석훈의 앞이라 정중하게 대답한 천무진이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우석훈 당신이라면 천무진은 알고 있겠지?”
“...그야 알고는 있네만...”
“그럼 천무진의 가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있나?”
“가족?”
진우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천무진을 바라본 우석훈이 미간을 살짝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 진우가 그와는 반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천무진은 아내와 큰아들이 SoE가 만든 극독에 중독되어 죽었다.”
“...설마 그가 감옥섬에 갇히고 나서의 일인가?”
“그 이전의 일이라면 굳이 말할 이유가 없지.”
“맙소사...”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기분에 우석훈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딸 또한 같은 독에 중독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지.”
“...후우... 그게 SoE의 소행이라는 건...”
“당연히 조사해 봤다. 과정은 둘째 치고. 99퍼센트는 확신하고 있다고만 해두지.”
“하아...”
우석훈은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후우... 그래서. 이미 차별주의자 놈들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능력자에게 자유를 주라는 말인가? 크게 달라질 게 없으니?”
“물론 아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혼란은 반드시 일어나겠지.”
“...”
태연하게 말하는 진우를 보니 열불이 터지는 우석훈이었지만. 뻑뻑 담배를 펴대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큭큭.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우석훈을 가만히 보고 있던 진우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목적은 가디언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는 거다. 그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나든 쿠데타가 일어나든 나는 상관없어.”
“그게 무슨...!”
가족을 데려오고 나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행복이라는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사랑하는 아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사랑하는 딸이 즐거워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디언이고, 복수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목적을 위해서 평범한 시민들의 평화를 부수겠다는 건가!!”
“평화... 평화라...”
하지만, 그럴수록 가끔 친구의 얘기가 나오면 움찔하는 지은이의 모습이. 추억을 떠올리며 가라앉은 눈빛을 애써 숨기는 아내의 모습이. 일을 이렇게 만든 가디언에 대한 분노를 키워갔다.
그리고, 자신답지 않은 한 가지 욕심이 들끓기 시작했다.
“썩어버린 태양을 위에 두고 평화롭다 외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당신이라면 잘 알 텐데. 우석훈 대통령.”
“...”
그렇기에 진우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겸, 빌런답게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망설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뭐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으니까.”
“뭐...?”
의미심장한 진우의 말에 우석훈이 의문을 표하기도 잠시.
아공간 팔찌에서 태블릿을 꺼낸 진우가 말을 이었다.
“이번 빌런 토벌은 가디언 코리아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됐지. 내 손에 사망하고 부상당한 요원들의 복수라는 명분은 이미 저 높으신 분들의 머릿속에는 없을 거다.”
“...”
진우의 말대로라는 생각에 우석훈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만큼 자신들의 용맹하고 압도적인 모습을 알릴 필요가 있겠지.”
(이곳은 청계천입니다. 하수구 아래쪽에 숨어든 빌런을 토벌하기 위해 가디언 코리아의 요원들이...)
잠시 진우가 조작하던 태블릿에서 뉴스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지금 가디언 코리아의 허차범 1급 요원님께서 빌런 조직의 보스를 제압했습니다! 허차범씨는 올해 새롭게 1급...)
(새로운 소식입니다. 경기도 광주시에 숨어있던 빌런 조직, 적송대가 완벽하게 토벌되었다는 소식...)
(이전 G.K은행 울산 본점이 있던 이곳은 정체불명의 빌런들에 의해...)
(울산 시장, 김산울 씨는 이번 기회에 울산의 빌런 조직을 완벽하게 토벌하겠다는 포부를...)
이내 소리를 조금 줄인 진우가 다시 우석훈을 바라봤다.
“만약 이러고 있는 도중에 반대로 토벌대가 크게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될까?”
“!?”
순간 말을 잊고 경악한 우석훈이 진우와 뉴스의 화면을 번갈아 바라봤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네. 토벌대의 각 중대에는 최소 2급 요원이 깔려있어. 이제 소형 조직이 전부 정리된 이상 천천히 모여 그 덩치가 더욱 커지겠지. 아무리 템페스트라고 해도...”
“이길 수 없다. 라는 거겠지?”
“...”
진우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긴다고 한 적 없다. 망신을 당할 거라 했지.”
슬슬 류중현과 매드 크라운의 뒤를 쫓던 위령대가 독이 잔뜩 올랐을 시점이다.
“썩어버린 평화는 한번 부숴져야 한다. 그래야...”
‘나와 은선이, 그리고 지은이가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어.’
그렇기에 진우는 먼저.
(드디어 토벌대의 각 중대가 본진으로 모이고 있는 가운... 어!?)
(소, 속보입니다! 정체불명의 물체가 빠른 속도로 토벌대의 본대를 향해 다가오고... 고, 고양이!?)
사람들이 가디언 코리아에 가진 믿음을 부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