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몰아치는 태풍(1)
콰과과광!
“토벌대다! 전원 움직이지 마!”
“2시 방향 마법사!”
“방패 앞으로!”
토벌은 순조로웠다.
그래. 너무나 순조로웠다.
마치 누군가가 정해놓은 각본을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순조로웠다.
-2중대 작전 완료.
-3중대 작전 완료.
-5중대, 목표 땅굴로 도주. 추적 중. 지원 바람.
“3중대. 부상자는?”
-경상 둘. 전투 속행 가능.
“5중대의 목표가 땅굴을 통해 도주. 위치정보를 보낼 테니...”
작전 통제실에서 울리는 수많은 목소리를 듣고 있던 윤무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손톱을 뜯었다.
“윤무길 대장님.”
“...유 실장님.”
그런 윤무길의 귀에 유차빈의 목소리가 들리고. 자리에서 일어난 윤무길이 간결하게 경례를 올렸다.
“군대도 아니고 경례는 필요없어요.”
“아. 죄송합니다. 습관적인 거라.”
살짝 한숨을 쉰 유차빈이 통제실을 훑어 보며 물었다.
“토벌은 어떻게 되가요?”
“순조롭습니다.”
“근데 윤 대장님은 왜 그렇게 초조해 보이죠?”
“...너무 순조롭습니다.”
“음...더 자세히요.”
“예.”
윤무길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전국의 작전 지도를 가리켰다.
“경험상 이런 대규모 토벌은 어디선가 잡음이 나야 정상입니다.”
“잡음이요?”
“예.”
작전 목표인 수십 개의 붉은 점이 실시간으로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는 전술 지도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 윤무길이 말을 이었다.
“적에 의해서든 아군에 의해서든 잡음이 나야 합니다.”
“...잡음이 없는게 좋지 않나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건 마치 인형극 같지 않은가...’
뒷말은 차마 말하지 못한 윤무길이 말을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대비는 해놓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이미 대비는 되있어요.”
“예?”
유차빈의 말에 윤무길이 의문을 표한 그때.
삐이이!
전술 지도 한군데가 크게 확대되며 비상음이 울렸다.
-여기는 1중대! 템페스트! 템페스트가! 으,으아악!
“1중대! 응답하라! 1중대!”
그리고 곧바로 출력된 1중대 통신병의 바디캠 화면에.
“...광대?”
“환상 광대!”
우스꽝스럽기보다는 섬뜩한 광대의 분장을 한 기괴한 남자가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하~이?
“류중현...!”
수년간 모습을 감췄던 환상 광대, 류중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들리려나~? 헬로우~?
-대장. 인이어를 껴야 들리죠.
-아하~? 너 똑똑하네!
-...
-근데 필요없어~ 어차피 뭘 듣고자 하는건 아니니까~!
낄낄 웃음을 터뜨린 류중현이 다시 카메라에 얼굴을 드리밀며 말했다.
-이거 보이지?
이마에 그려진 비와 구름, 그리고 바람을 형상화한 태풍의 그림. 템페스트의 상징이었다.
“환상 광대가 템페스트에 있었다고?”
그것을 알아본 윤무길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오브코스~ 나 지금은 템페스트의 간부란 말이지~?
그리고 인이어를 끼지 않아 들릴 리가 없음에도 뭔가에 대답하는 듯이 말하는 류중현의 모습에 통제부의 모든 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너희가 우리를 토벌하겠다고 선언한 건 아~주 잘~들었어~! 낄낄낄낄. 그러니까~? 우리가 너희를 토벌해도~? 문제없지~? 아! 대답은 필요없어~!
류중현이 바디캠을 놓았는지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디캠 화면이 류중현의 발을 비췄다.
-어차피 안들리니까! 낄낄낄낄!
콰직!
그것을 끝으로 영상이 끊어졌다.
“움직일 거라 예상은 했지만...”
“다행히 생각보다 거물이 움직였네요.”
“예...?”
표정을 잔뜩 구긴 윤무길과는 반대로 유차빈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
“이번 토벌은 숨어있는 거대 빌런 조직을 끌어내기 위함도 있어요.”
“...처음 듣습니다만.”
“임원 중에서도 일부만 아는 사실이니까요.”
“...”
지휘를 맡고 있는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은건 좀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 윤무길이 한숨을 쉬었다.
“대비가 되있다고 하셨죠.”
“네. 아마 이미 움직였을거에요.”
“...뭘 준비하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준비한건 아니지만... 위령대에요.”
“...네?”
“위령대라고요.”
“허...”
윤무길이 생각보다 커다란 대비책에 놀라고 있을 그때.
“신호다.”
위령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우. 오랜만에 이런 말투로 말하니까 오글거려 죽는줄 알았네.”
“푸하하! 대장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에잉! 시끄러 이놈들아!”
류중현과 그의 직속 부하 ‘매드 크라운’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저놈들은 어쩔겁니까?”
“엥? 아아.”
부하의 말에 류중현이 눈에 초점이 없이 우두커니 서있는 마흔 가량의 요원들을 바라봤다.
“글쎄...”
류중현과 그 부하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환상의 나라]에 갇혀 지금쯤 갖가지 환상을 보며 즐겁게 하하호호 웃고 있을 자들이었다.
“엉? 이 여자 여서림 아니야?”
“엥? 오? 진짜잖아?”
그리고 환상에 빠진 자들 중에는 1중대 중대장인 여서림 또한 당연히 있었다.
“창술사가 여기 중대장이었나보네?”
“생각보다 거물이 있었네.”
류중현의 부하들은 환상에 빠져 멍하니 서있는 여서림을 이리저리 신기한 듯 살펴봤다.
“이것들아. 빨리 후퇴 준비나 해!”
“아! 그랬지?!”
“계획대로 움직여! 무서운 형아들 온다!”
류중현의 팀은 쉽게 말하자면 미끼역.
‘매드 크라운’은 감지 계열, 환상 계열, 이동 계열 등등 시간을 끌기 좋은 자들만이 모여있다.
그렇기에 이번 토벌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인 위령대를 유인하고 시간을 끌기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다.
“오오~ 장비 삐까번쩍한거 보소~”
“이거 블로섬 사에서 만든 마력 증폭기잖아?”
“심봤다아아~!”
낄낄거리며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입에 문 류중현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템페스트의 여러분들이 저희를 구하러 오실줄은 몰랐습니다.”
“아?”
“저희 적송파! 앞으로 템페스트에 충성을...!”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지포라이터를 꺼내 시가에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인 류중현이 허공으로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너희한테는 딱 하나의 선택지가 있어.”
“어...네. 경청하겠...”
“조금 기다렸다가 위령대에 죽는 것.”
“...네?”
적송파는 애초부터 적당한 병력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
인신매매, 살인, 강도, 등등. 이미 선을 넘은지 오래인 쓰레기 조직이었기에 일이 잘 풀려도 정리하고자 했던 놈들이다.
“그,그게 무슨! 저를 구하기 위해 오신게 아니었습니까!?”
“우리가 왜?”
“저,적송파는 빌런 연합에 소속된 조직입니다! 템페스트라고해도 연합이 가,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빌런 연합? 아아. 그 빌런 연합 말이지?”
적송파 보스, 박서광이 소리치는 말에 류중현의 표정이 비틀리며 그를 비웃었다.
“낄낄낄. 쓰레기들 따위가 모여있는 쓰레기장을 무서워하면 쓰나.”
“쓰,쓰레기!?”
“잘 들어 쓰레기.”
류중현은 천천히 박서광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니들이 저 여서림의 중대에 전멸하지 않게 둔 이유는 딱 하나야.”
“뭐,뭣들 하냐! 쳐라!!”
류중현의 압박감에 박서광이 살아남은 조직원들에게 소리쳤지만.
“어,언제!?”
그의 뒤에 있는 조직원들은 이미 환상 속에 빠져 눈에 초점이 사라져있었다.
“후우우... 니들은 1분이라도 길게 위령대의 발을 묶어줘야 하거든. 그놈들은 나도 무서워서 말이지.”
“사,살려...”
딱!
류중현은 박서광의 말을 끊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어차피 죽을거 도움이 되고 죽으면 좋잖아? 낄낄낄.”
치이이익!
낄낄 웃던 류중현이 박서광의 이마에 시가를 문대고 살이 타는 소리가 났지만.
“...”
이미 환상에 빠진 박서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가자 이것들아! 카메라 켜놓는 거 까먹지 말고!”
“예이~!”
그리고, 류중현과 매드 크라운들이 토벌대 1중대와 적송파의 인원을 남겨두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1중대 발견. 전원 생존. 그리고 적송파의 조직원 스물.”
류중현과 매드 크라운들이 자리를 떠나고 고작 1, 2분 정도가 지났을 때. 16명의 위령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환상 광대는 없군. 이미 빠졌나.”
“다른 포인트로 향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하의 말에 마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흔적을 찾아라. 바로 움직...”
그리고 1중대와 적송파를 무시하고 곧장 이동하려는 그때.
콰아앙!
적송파의 보스, 박서광이 위령대 대원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죽기 싫어! 괴물! 꺼져!! 으아아악!! 괴물!! 괴물이다!!”
“이런.”
10명 이상의 인원이 근처로 다가오면 발동하는 결계. [환상의 나라] 파생, [헤어져야 할 시간].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 환상으로 주변 모든 것들을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결계였다.
“부대장. 1중대도 움직입니다.”
“적송파의 나머지도.”
“음.”
적송파는 전원 사살하면 되니 상관없지만 1중대는 달랐다.
같은 총본부 소속은 아니어도 최소한 가디언이라는 이름 아래에 소속된 명백한 아군.
위령대가 아무리 악명이 자자한 자들이어도 이런 공식적인 작전 중에 아군을 죽일 수는 없었다.
그에 마튼은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적송대는 전원 사살. 1중대는 기절, 혹은 사지를 부러뜨려 무력화.”
““라져.””
“GO!”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위령대에 의해 적송대와 1중대의 절반 가량이 순식간에 제압당할 때 쯤.
“데빌...”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던 여서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빌!!!”
“이런! 회피!”
자신의 창에 [성광]을 가득 담아 휘두르는 여서림의 모습에 마튼이 처음으로 표정을 구겼다.
“꽤 강하군. 제압은 시간이 걸리겠어. 차라리 사살을...”
위령대 대원을 버서커처럼 공격하는 여서림의 모습에 마튼이 살기를 내보일 때 쯤.
“...카메라?”
여서림의 바디캠이 붉은 점을 반짝거리며 동작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었다.
“젠장. 떠나기 전에 켜놓고 간건가.”
바디캠을 통해 통제부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터.
시간을 아끼겠다고 아군을 사살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1 중대장은 내가 상대한다!”
““라져!””
여서림에게 달려들며 외친 마튼의 지시에 순식간에 흩어진 위령대가 다시 적송파를 사살하고 1중대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
삑. 삑. 삑.
구름의 바로 밑.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는 장소에서 진우와 최유나, 천무진이 하나의 태블릿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계획대로군. 류중현이 잘해주고 있어.”
“그 지배인 아재 꽤 강한 사람이었구나?”
“아마 천무진과 비슷하거나 조금 약한 정도겠지. 준비할 시간이 있으면 류중현이 더 강할거다.”
“흐응~”
진우의 말에 천무진 또한 긍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 계열의 능력자는 준비할 시간만 넉넉하면 두 단계 위의 능력자도 환상 속에 빠뜨릴 수 있다. 그걸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신 방어] 같은 능력이 있거나 압도적으로 강해야 하지.”
그렇기에 진우가 위령대를 류중현에게 맡긴 것이다.
뭐, 정확하게 말하면 시간을 최대한 끄는 작전을 세워 전해준 것 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도 슬슬 움직이지.”
“네에~”
“알았다.”
진우는 태블릿을 접어 세리나에게 뜯어낸 아공간 팔찌에 집어 넣고는 발아래를 바라봤다.
“눈에 보일 구멍이 커졌어. 생각대로 움직여줘서 다행이군.”
진우의 시선 끝에는 한 국가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관저. 청와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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