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태풍의 눈(3)
(오오! 놀라운 반응이군. 어째서 자네의 피에만 반응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하하하!)
(저는 ■■■ 박사님께서 웃으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웃지 않을 건 또 뭔가! 과학자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절망이네! 그러니 웃어야지! 하하하!)
(절망은 누구나 경계해야... 하아. 뭐 됐습니다. 그보다 정보는요?)
(음. 국제 연구소 놈들 말인가?)
(예. 그쪽에 심어놓으셨다던 제자분... 이름이 뭐더라? 어...)
(빅터 말이군.)
(아 예. 그분.)
(그놈 실력이면 이미 자리를 잡고도 남았을 거네. 슬슬 이것저것 보내오겠지. 오면 알려줄테니 걱정 말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쪽을 억제하려면 반드시 내부 정보가 필요하니까요.)
(하하하! 알고 있네. 그래서 거래를 한거 아닌가!)
(나는 자네의 피가 필요하고.)
(자네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뭔가 박사님도 정상은 아닙니다.)
(하하하! 이제와서 그러긴가? 자자, 여기에 피한방울 더 부탁하네.)
(하아...이러다 제가 없어지면...악! 따갑습니다!)
똑.
(오오! 융합하는군! 더더욱 자네를 포기할 수 없겠어! 자네는 ■■■■ 내 연구를 ■■■ 할 의무■ ■■!)
***
“허억!”
눈을 번쩍 뜬 진우가 숨을 거칠게 헐떡 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오빠...?”
“헉. 헉. 헉...”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진우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 두근. 두근.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꿈...?”
“으음... 악몽이라도 꿨어? 괜찮아?”
덩달아 잠에서 깬 이은선의 물음에 잠시 멍하니 있던 진우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어,어...괜찮아. 그냥 꿈인가봐.”
“지쳐서 그런거 아니야? 조금 쉬는 게...”
“아니. 지금은 쉬면 안되니까.”
“...”
쉬면 안된다는 말을 바로 이해한 이은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미안해. 나 때문에...”
“이게 왜 당신 때문이야. 전부 썩어빠진 놈들이 문제지.”
“하지만...”
진우는 이은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걱정하지마, 큰일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니까.”
“...응.”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위로하며 대화를 나누다 다시 잠자리에 누운 진우가 쉽게 눈을 감지 못하고 생각에 빠졌다.
‘점점 꿈이 구체화 되고 있어.’
진우에게 꿈에 박사에 관련된 기억은 없다.
인체 실험이 일어나고 있는 국제 연구소의 정보를 파냈던 기억도 없다.
‘박사라는 사람의 얼굴에는 노이즈가 껴서 알아 볼 수가 없어. 목소리에 애매하게 노이즈가 끼어있고...’
꿈속에서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박사의 대화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내 피에 반응한다는 그 연구는 또 뭐지?’
당연하게도 어떤 실험, 연구에 참여했던 기억은 없었다.
‘기억상실...?’
진우는 자신이 죽었다 살아남에 따라 기억에 누락이 생겼는지 의심했지만, 애초에 사람의 기억력은 무한하지 않았기에 기억의 누락을 세세하게 확인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저건 언제지?’
꿈속의 배경은 어떠한 연구실로 보였다.
창문 없고 달력, 시계 등도 없다. 대화에서도 날짜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다.
‘후우...모르겠군. 하지만...연구라고 하면 한가지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
진우는 슬쩍 손을 올려 손가락 끝에 그림자를 움직였다.
‘...아니. 일단은 이건 나중이다. 지금은 가디언에 집중해야해.’
잠시 손끝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바라보던 진우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리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
진우의 이클립스. 그리고 템페스트가 힘을 합쳐 가디언 코리아의 대규모 토벌에 대비하기 시작한지 오늘로서 6주.
“길드에 심어놓은 자들에게서 정보가 도착했습니다.”
“슬슬 움직이려는 모양이군.”
송조운의 말에 진우가 자신의 앞에 위치한 화상 화면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준비 끝났다.
“저희도 준비는 끝났습니다.”
화상 화면에는 템페스트의 보스 도석환이 자리해 있었다.
-우리쪽에 준비된 인원은 전부해서 육백 사십명이다.
“생각보다는 많군요.”
-또다시 G.K 놈들에게 뭔가를 빼앗기고 싶은 놈들은 없으니까.
사납게 웃음을 지은 도석환이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가디언에 무언가를 빼앗기기만 했지. 그놈들이 멋대로 정한 규칙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도 집을, 삶을, 꿈을 빼앗겼다.
쾅!
도석환이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그런 가디언 놈들에게 한방 먹일 기회가 왔는데 어찌 빠지겠나! 우리 템페스트의 동맹뿐만이 아니라 적대 관계에 있는 놈들조차 합류하겠다고 한 놈들이 적지 않아! 마음만 먹는다면 전면전쟁도 가능하다!
급발진 하는 도석환을 보던 진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위령대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정보도 있고 G.K의 일급 요원들이 대부분 소집됐다는 정보도 있죠. 전면전쟁은 무리입니다.”
-후우...알고는 있네만. 아쉬워서 그러네.
이쪽이 수는 많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질이 딸린다.
만약 정면으로 붙는다면 잠시 동안은 팽팽할지 몰라도 어느순간 순식간에 밀려 전멸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자네의 작전은 여전한가?
“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네가 말하니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는게 더 무섭군.
“하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진우는 적당히 웃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작전대로만 된다면 G.K의 힘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저들이 빌런이라 정의하는 자들의 일부를 인정받게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템페스트가 있겠지.
“그렇습니다.”
템페스트는 반 정부 조직이지만 그것은 초능력자는 무조건 정부와 가디언에 신고하고 의무 병역을 지내야 하는 것. 그리고 주기적으로 능력의 발전을 신고하고 마법 혹은 무공의 경지를 신고해야 하는 강제적인 법안에 반발한 자들이 모인 것일 뿐.
살인과 같은 중범죄를 일으킨 자들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템페스트 내부에서 처벌하니 그저 거대한 길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뭐, 가디언과 정부는 그런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템페스트를 그저 테러 조직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걸 위해서도 템페스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진우는 옆에 놓여진 태블릿을 조작해 몇몇 자료를 도석환에게 보냈다.
-이건?
“위령대를 끌어내기 위한 작전입니다. 잘만하면 한국에 들어왔다던 16명 중 최소 절반은 제압할 수 있을겁니다.”
-음...완성도가 꽤 높아 보이는데... 위령대의 소식을 안건 일주일도 안되지 않았나?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죠.”
-그것 참 무서운 말이군...
회색 마탑에서 G.K의 비서실장과 위령대가 합류했다는 소식은 그날 바로 진우의 귀에 들어왔다.
그것이 고작 일주일 전이다.
이미 진우의 머릿속에 위령대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었기에 일주일이면 대처 방안을 마련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도석환으로서는 경악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위령대가 참전해도 전체적인 작전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딱 12시간. 12시간만 버텨주시면 됩니다.”
-설득 할 수 있겠나?
“설득이라...”
진우는 송조운과 힘을 합쳐 세운 작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우석훈 대통령은 저희에게 붙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건 설득이 아니라. 저희의 동맹을 늘리는 단순한 일일 뿐입니다.”
-으하하하! 정부를 동맹으로 만들 생각을 하는건 자네뿐이겠지. 믿고 있겠네! 으하하하!
도석환의 호탕한 웃음과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른 조직분들이 불안해 하지 않도록 잘 조율해 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것도 없지. 알겠네.
고개를 끄덕인 도석환이 화상 화면을 끄려는 진우를 보며 뜬금없이 물었다.
-아. 그런데 자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네?”
-뭔가 분위기가 유해진 느낌이군. 경험상 여자가 생기면 그러던데...
“...”
예리하다면 예리한 도석환의 질문에 진우가 순간 말을 잃었다.
-설마 납치했다던 서진우 전 정보총괄의 아내를...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푸하하하! 그냥 해본 소리네. 아니면 아닌거지 뭘 그리 화를 내나! 으하하하!
“...끊겠습니다.”
-으하하하! 다음에 꼭 인사라도 하러오게 아니면 우리 애벌랜드에서 데이트...
픽.
도석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무시하고 연결을 끊은 진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가 생겼다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괜히 머리만 긁는 진우였다.
***
그날 저녁.
“미쳤군.”
“예. 생각도 못했습니다.”
진우와 송조운이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며 입을 벌렸다.
[금일 가디언 코리아에서는 대대적인 빌런 토벌을 선언했습니다.]
뉴스에서는 G.K의 빌런 토벌에 대한 소식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또한 가디언 코리아는 이번 빌런 토벌을 선언하며 이미 경찰과 육군에 협력을 약속 받았다는 내용을 발표했으며 정확한 빌런 토벌의 날짜는 비공식이나,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사전에 전투 예상지역에서 시민들의 대피를 시작...]
“기만 작전?”
“그럴거면 차라리 날짜까지 발표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발표한 거나 마찬가지지, 대피가 끝나고 하루 이틀 사이에 움직일 테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 토벌 시작합니다~!!!’ 라고 크게 떠드는 건지 모르겠는 상황에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는 진우와 송조운이었다.
“그리고 전투 예상지역은 또 뭐지?”
“그러게요...”
군대끼리 싸우는 것도 언제 어디서 기습이 일어나고 매복하고 있을지 모르는데 소수의 각성자끼리의 싸움에 전투 예상지역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무지 모르겠군.”
뉴스를 보며 한참 생각에 빠져있던 진우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뉴스를 껐다.
“작전 변경은 없다. 기만 작전이든, 유인하는 거든 우리는 작전대로 움직이는게 좋겠지.”
“확실히 그게 낫겠습니다.”
진우는 방금 봤던 뉴스를 머릿속에서 지우며 태블릿을 들고 마지막으로 작전에 문제가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
삼일 뒤. 경기도 외각. 광주시 부근.
“정보에 따르면 이곳에는 세 개의 빌런 조직이 존재한다.”
빌런 토벌대. 1중대.
“이곳과 이곳. 마지막으로 이곳.”
그 중대장을 맡은 특수 대응 3팀 팀장 여서림이 중대원을 모아놓고 지도를 가리키며 브리핑을 이어갔다.
“우리 1중대가 상대할 조직은 ‘적송파’ 인신매매, 마약 유통 등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이다. 조직원은 서른 안팎으로 전원이 각성자로 예상된다.”
여서림은 어딘지 모르게 얍삽하게 생긴 사내의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보스의 이름은 박서광. 나이 46. 능력은 강화계열로 추정. 이외의 조직원은 나눠준 자료를 참고해라.”
유서림의 말에 중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배부된 자료를 살폈다.
그 사이 유서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경찰과 육군이 포위와 압박. 그리고 우리가 토벌. 제압이 기본이지만 조금이라도 저항한다면 사살해도 좋다.”
빌런이 저항하지 않을리는 없으니 그냥 사살하라는 말이었다.
“작전 시작은 앞으로 한시간 뒤. 그때까지 대기해라. 이상.”
그 말을 끝으로 여서림이 임시 작전 회의실을 나섰다.
“후우...”
그리고 곧 있을 토벌에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템페스트와 같은 거대 조직도 아니고. 하다못해 중견 조직도 아니야. 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물론 방금 전 브리핑한 ‘적송파’가 극악한 조직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가디언 코리아뿐만이 아니라 경찰과 육군까지 움직여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듣기로는 다른 곳도 거의 비슷하다던데...”
템페스트의 지부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한 중대도 있고, 이외의 거대 조직의 지부, 혹은 중견 조직을 토벌하기 위해 출발한 중대도 있지만. 이번 토벌은 아무래도 찜찜한 곳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너무 조용해.”
며칠 전부터 시민을 대피시키고 토벌을 광고하는 등, 난리를 쳤음에도 빌런들이 조용한 것또한 이상했다.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 같은 그런...”
찜찜한 기분에 유서림이 인상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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