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태풍의 눈(2)
지은이의 하루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직 자네.”
슬쩍 고개를 돌려 엄마와 아빠가 아직 잠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지은이는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엄마와 아빠가 먼저 일어나서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었기 때문이다.
“...영차.”
잠시 엄마와 아빠의 자는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지은이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헤.”
그리고는 실실 웃으며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생각해 뒀던 계획.
이 넓은 집을 홀로 탐험하자는 장대한 계획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냥?”
그때. 침대의 구석에서 자고 있던 루비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쉬이잇.”
“냐...”
가볍게 루비를 조용히 시킨 지은이가 엄마, 아빠가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살폈다.
“...휴우.”
다행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 지은이는 마저 옷을 갈아입고는 짧은 다리로 종종 걸어 방문 앞에 섰다.
“...? 왜 안열려?”
지은이는 문을 열기 위해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휙휙 손을 저어보기도 했지만 문은 아직 작은 지은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이 지하 기지에 어린아이가 올 것을 상정하지 않고 센서를 달았기에 아직은 작디작은 지은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힝...”
출발하기도 전에 계획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에 지은이가 시무룩해 질 때 쯤.
“냥!”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루비가 지은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점프하자.
스으으...
문이 열렸다.
“와아...! 읍!”
그에 감탄을 터뜨리려던 지은이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바라봤다.
“...휴우.”
그리고 두 사람이 깨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허리를 숙여 루비의 등을 쓰다듬었다.
“잘했어. 잘했어.”
“...냥.”
스으으...
“어!?”
그리고 그 사이 문이 닫혀버렸다.
“어쩌지?”
“냐하...”
루비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눈에 다시 한번 높이 점프 할 수 밖에 없었다.
“응! 잘했어. 가자.”
“...냥.”
다시 열린 문에 지은이가 먼저 밖으로 나서고.
그걸 바라보던 루비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냥.”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은이를 따라 방 밖으로 나섰다.
방에 남은 진우와 이은선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 있는 건 비밀이다.
***
“어디부터 갈까~?”
침실의 밖으로 나온 지은이는 양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복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루비에게 의견을 물었다.
“냥. 냥냥.”
“응! 알았어!”
“냥!?”
염화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알아듣는 건가? 하며 놀란 루비가 지은이를 올려다 봤지만.
“왼쪽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냥.”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냥이는 냥냥~ 멍멍이는 멍멍~”
진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지은이의 모습에 루비 또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같이 걷다 보니 어느새 지은이는 들어가 본 적 없는 문 앞에 도착했다.
“루비야, 여기는 뭘까?”
“냐아아.”
루비는 이곳이 훈련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진우가 지은이에게의 염화는 금지했기 때문에 알릴 방법은 없었다.
쿵!쿵!쿵!
마침 천무진이 훈련실을 사용하고 있는지 안쪽에서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루비야...안에 괴물이 있나봐아...”
살짝 겁을 먹은 것일까 지은이는 침을 꼴깍 삼켰다.
“재밌겠다!”
“...냥?”
하지만 그건 루비의 착각이었을 뿐. 이 지하 기지에는 아빠의 친구들뿐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지은이는 그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뿐이었다.
“루비야 오픈!”
“...”
자신이 열쇠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에 루비는 잠시 한숨을 쉬고는 점프했다.
스으으.
그렇게 훈련실의 문이 열리고.
“더워!”
안쪽에서 상당한 열기가 문밖으로 흘러나왔다.
“냐아아.”
“왜 덥지?”
후끈한 열기에 물러날 법도 했지만, 지은이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음?”
그리고. 문이 열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능력의 사용을 멈춘 천무진이 그런 지은이를 발견했다.
“하하, 이게 누구야. 우리 공주님 아닌가!”
“무진 아저씨!”
한복을 개량한 수련복을 입고 있는 천무진을 발견한 지은이가 베시시 웃으며 천무진에게 도도도 달려갔다.
“어이쿠! 공주님은 자고 있을 시간 아닌가?”
“히히 오늘은 아빠랑 엄마보다 빨리 일어났어요!”
“하하하, 그건 대단한데? 우리 공주님 아주 기특하구만.”
지은이의 옆구리를 잡고 들어올리며 슬쩍 루비를 향해 시선을 던진 천무진이 루비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허허허 웃었다.
“그래. 탐험 중이라고?”
“어? 어떻게 알았어요?”
“하하하. 아저씨는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자리에 앉아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는 루비가 알려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지은이가 천무진을 향해 대단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하하하. 그럼 이 아저씨가 신기한거 보여줄까?”
“신기한거요?”
“그럼. 아주 예쁘고 신기한 거란다.”
“보여주세요!”
자신의 솥뚜껑만한 손에 들려 있으면서도 손을 모아 배꼽 인사를 하는 지은이의 모습에 천무진의 표정이 녹아내렸다.
“하하하. 자자 우리 공주님 잘 봐요.”
천무진은 지은이를 내려놓고 몇 발자국 물러나 [광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와아...”
열기를 완전히 없앤 단순한 빛의 알갱이들이 생겨나고, 천무진의 의지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지은이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예쁘다아...”
자신을 중심으로 천천히 춤을 추듯 움직이는 수백, 수천의 은은한 빛의 알갱이는 지은이의 눈을 빼앗기 충분했다.
그리고. 빛의 알갱이들은 한동안 지은이의 곁에서 춤을 추다.
포보보봉,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폭죽이 터지듯 허공에 빛의 입자들이 비산하며 그 끝을 알렸다.
“와아아! 예뻐요! 대단해!”
그 아름다운 마무리에 지은이는 열심히 조막만한 손바닥을 놀려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하,하하... 고맙구나.”
천무진은 땀을 뻘뻘 흘리며 그런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식으로 능력을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상당히 어렵구나...’
열기를 없애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수백의 작은 빛의 알갱이를 일일이 컨트롤하며 춤을 추듯이 움직이고, 마무리로 아름답게 비산하는 빛의 입자를 만들어 내는 것은 천무진의 생각보다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가 심했다.
하물며 천무진은 잡생각을 없애기 위해 밤새도록 자신을 혹사하고 있었기에 이제 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한번만 더 보여주세요!”
“으음...?”
“아저씨. 한번만 더요! 제발요~”
“허.허허허...”
초롱초롱한 눈으로 부탁해오는 지은이의 모습에 힘들다고 쉴 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하,한번만 더다?”
“와아! 아저씨 감사합니다!”
“허,허허허...”
결국 그 이후 같은 쇼를 다섯 번이나 더 해야했고, 결국 천무진은 기절하듯 잠들어버렸다.
***
“흥흥흥~ 근데 아저씨는 왜 갑자기 잠들어 버렸지?”
“...냐아...”
단련이 되어있다고 해도 천무진은 60이 넘은 노년에 가까운 사람.
밤새도록 자신을 혹사하고 사용한 적 없던 방식의 능력 운용으로 인해 기절해 버린 것을 지은이가 알리 없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냐.”
현재시간 오전 7시. 슬슬 진우도 이은선도 깼을 무렵이니 돌아가도 되겠지만.
천무진의 환상적인 쇼를 본 이후라 지은이는 텐션이 극에 달해 있었기에 돌아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응?”
그리고. 그런 지은이의 앞에 또 다시 들어가 본적 없는 문이 나타났다.
“최...유...나... 유나언니 방이다!”
훈련실과는 달리 떡하니 걸려있는 문패를 확인한 지은이가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루비야! 오픈!”
“...냐...”
진우로부터 되도록 지은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라는 말을 들었기에 작게 한숨을 쉰 루비가 점프를 하고.
스으으...
문이 열렸다.
“응? 루비랑 지은이?”
마침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있던 최유나가 자신에게 달려오는 지은이를 안아들었다.
“지은이가 혼자 있는 건 처음이네?”
“혼자 아니에요! 루비도!”
“냐아.”
“아하. 그렇구나~”
옷을 갈아입다 말아서 굉장히 흐트러진 모습이지만 이곳에 그런걸 신경 쓸 사람은 없었기에 최유나는 지은이의 뺨에 자신의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귀여운 지은이가 언니한테는 무슨 일일까~?”
“으응. 탐험 중!”
“탐험?”
“네! 우리 집 탐험 중이에요!”
“집..?”
최유나는 지은이의 말에 잠시 움찔하고는 지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은이는 여기를 집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루비랑~ 무진 아저씨랑~ 유나 언니도! 그러니까 집이에요!”
익숙한 장소를 강제로 떠나게 되고. 친구들이 있는 어린이집을 다시는 가지 못하는 것 정도는 이미 지은이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은이는 이곳을 ‘집’이라 말한다.
“집... 그래. 집이네.”
“유나 언니는 집 아니에요...?”
“음~ 그렇네~”
최유나는 잠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언니도 커~다란 집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했는데~?”
“알고보니까 거기는 언니 집이 아니었더라구?”
“어...그럼요?”
청색 마탑. 한때 최유나는 진심으로 그곳을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었지만, 자신을 지켜주지 않은 그곳은 더이상 집이 아니었다.
“후후후, 언니도 지금은 여기가 집이라고 생각해.”
“지은이랑 똑같다!”
“후후후, 그렇네~”
아마 지은이와는 다른 의미의 집일 것이다.
지은이에게 집은 가족이 함께하는 장소.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소.
그에 반해 최유나에게 집이란 돌아올 장소.
조금 의미가 다르지만, 소중한 장소라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최유나는 활짝 웃는 지은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지은이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비기 시작했다.
“우리 지은이 왜 이렇게 귀여울까~!”
“꺄르르르. 간지러워요!”
“...냐...”
그리고 그런 장면을 슬슬 배가 고파오는 루비가 언제쯤 가나...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최유나와 손을 흔들며 헤어진 후 다시 탐험을 출발한 지은이의 걸음은 지친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냐...”
오히려 루비가 배고프고 졸린 몸을 이끌며 따라다니느라 지쳐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꼬르르륵.
“어? 배에서 소리났다.”
지은이의 배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냐아! 냐냐냐! 냥!”
“응? 그렇네. 밥 먹을 시간인가바.”
“...냐.”
진짜 알아듣는 건가...? 하며 잠시 의문을 가진 루비였지만.
꼬르륵.
“어!? 루비 배에서도 소리났다!”
“냐아!”
급격히 느껴지는 공복감에 의문을 버리고 당장 식당으로 가자는 듯이 지은이의 옷자락을 물고 당기기 시작했다.
“히히히, 알았어 지은이도 배고프니까 빨리 가자. 그리고 탐험을 계속하는 거야!”
“냑!?”
설마 밥을 먹고 나서도 계속할 생각일 줄은 몰랐기에 루비가 잠시 당황했지만, 일단은 밥이 먼저였기에 다시 지은이를 식당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 식당에 도착한 둘.
“루비야. 오픈!”
“냥!”
지은이의 외침에 루비가 이번에는 아무런 불만 없이 곧장 뛰어올랐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아빠~!”
“지은이 왔니?”
먼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우가 들고있던 태블릿를 내려놓으며 도도도 달려오는 지은이를 안아들었다.
“지은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났어!”
“하하하. 배 많이 고픈가보다. 엄마가 준비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렴.”
“네~. 아빠 있잖아요~ 아까 무진 아저씨가~”
진우에게 안겨 행복한 표정으로 방금 전까지의 탐험을 얘기하는 지은이를 보며.
-수고했다.
-특식 기대해도 돼?
피식.
-그래.
“냐앙~”
루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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