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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43화 (43/109)

43화-망설임(3)

“...”

곤히 잠든 이은선과 지은이를 바라보며 진우가 조용히 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최소한 정보부를 완전히 망가뜨리고 한국의 정보망을 완전히 장악 할 때까지는 데려올 생각은 없었는데...’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나름 배려한다고 한 것이지만.

(오빠의 장례식...? 아무튼 그 장례식을 할 때 나랑 지은이의 일상은 이미 무너졌어. 한.마.디.로! 쓸데없는 배려였다는 거지!)

진우는 이은선의 말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자...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그동안 준비해 놓은 모든 것이 쓸모없어지진 않았다.

G.K 정보부는 착실히 힘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고, 반면 이클립스의 정보망은 나날이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이대로 몇 년. 아니, 몇 달만 지난다면 이클립스의 정보력은 과거 진우가 총괄일 당시의 G.K 정보부에 필적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시간인가. 가디언 코리아에서 더 이상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이번 일은 신명하가 공적을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로 벌인 일이긴 하지만, 그 결과 이클립스는 특수 대응팀과 테러 진압대를 반파시켰다.

‘저쪽은 자신들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할 거야.’

‘전 정보 총괄의 가족이 납치당했다는 명분, 가디언 소속 요원의 복수라는 명분...’

‘은선이와 지은이가 내 가족이라는 건 아직 들키지 않았을거야.’

‘G.K는 우리의 위치를 몰라. 그럼 대상은 불특정 다수의 빌런.’

‘남은 수는 결국 대규모 토벌이겠지.’

‘그럼 이쪽에서 취해야 할 수는...’

진우의 고민은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

“빌런 조직, 이클립스. 현재 그 조직원으로 밝혀진 자들은 모두 넷입니다.”

유차빈이 네 장의 사진을 늘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코드네임 데빌. 극지의 마녀, 최유나. 타락 성기사, 천무진. 정보상 송조운.”

“데빌이라는 놈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둘째 치고 전원이 가디언에 원한을 가지고 있을 법한 자들뿐이구나.”

“‘있을 법한’이 아닙니다.”

“그래그래. 전원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들 뿐.”

유차빈의 보고를 듣고 있던 노인이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인태, 그놈은 뭐라던?”

“정인태 지사장님은 현재 일본과 중국의 지사장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쪽보다는 저쪽이 더 급하다 판단한건가...”

자신의 뺨을 긁적인 노인이 한숨을 쉬며 유차빈을 바라봤다.

“차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이클립스. 어느쪽도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은 합니다만...굳이 따지자면 중국과 일본이 아닐까 합니다.”

“하아...보통은 그렇겠지...”

중국과 일본의 눈과 귀를 막고 있던 정보부가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점점 힘을 잃고 있다.

그로인해 가디언 차이나에서는 대한민국의 가장 낮은 곳을. 가디언 재팬에서는 정치권 쪽에 손을 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는데 저들은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훤히 보고 있으니... 상대가 될 리 없지.”

“말씀 대로입니다. 저도 정보부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노력은 해봤지만...”

유차빈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을 이었다.

“신명하 총괄의 무능...도 문제지만, 그 이전에...”

“끌끌끌. 서진우. 그 아이의 뒷길을 따라가려 하니 힘들 수 밖에.”

“...따라가려던게 아닙니다. 재현하려 했던 거죠.”

“그게 더 힘들지 않누? 으허허허!”

“...할아버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노인. 유창연의 모습에 유차빈이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으허허. 아 이거 미안하구나. 은퇴한 다음에야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터지니 조금 안타까워서 말이다. 은퇴를 조금 늦출걸 그랬나? 으허허허!”

“재미...”

가디언 코리아의 전 지부장이자 가디언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이었던 유창연.

그에게 있어 지금의 위기와 사건은 그저 재미있는 일일 뿐이었다.

“할아버님께서야 그리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단순히 재미로 넘길 수가 없습니다.”

“끌끌끌. 그렇겠지. 너는 네 아비와는 달리 꿈이 크니까 말이야.”

“...아버지 얘기는...”

“어이쿠. 미안하구나. 으허허허!”

“끄응...”

의욕도, 욕심도, 야망도 없는 그저 한량과도 같은 사람.

그러면서도 압도적인 재능으로 인해 유창연에 이어 아시아 통괄 무력대의 총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

그것이 유차빈의 아버지, 유자혁이라는 남자였다.

어떻게 보면 자랑스러운 아버지였지만, 딱히 말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기에 유차빈은 한숨을 쉬고는 말을 돌렸다.

“하아..그래서 어떻게 하실건가요?”

“음? 어떻게 하다니?”

당연히 현재의 상황에 뭔가 도움을 주거나 하다 못해 조언이라도 해줄 것이라 생각했던 유차빈이었지만.

“나는 딱히 해줄게 없구나.”

유창연은 그런 유차빈의 기대를 깨버렸다.

“끌끌. 뭐냐 그 표정은.”

“...”

툭.

유창연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있는 유차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은퇴한 노인에 불과하다. 내가 끼어들면 인태 그놈은 자신의 영역이 침범당했다 생각하겠지.”

“그건...!”

정인태 지사장의 성격이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유차빈은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끌끌. 아니면 네가 내 손녀라는 걸 알리기라도 할 셈이냐?”

“...그건 아니지만요...”

유차빈이 유창연의 손녀라는 것은 현재 가디언 코리아의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

단순히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호적까지 조작한 비밀이었다.

“나와 자혁이의 후광 없이 끝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한 것은 너였다. 이제 와서 내가 도움을 주는 것은 그 다짐의 의미가 사라지지 않겠니?”

“...말씀대로입니다.”

짧게 숨을 토해낸 유차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창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전 반드시 저의 힘만으로 가디언 총본부의 총장에 오를거니까요.”

“음. 눈빛이 돌아왔구나.”

“최근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서 조금 초조했던 모양이에요.”

미소를 지은 유창연이 유차빈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문뜩 책상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이클립스라...”

“...할아버지?”

“영 감이 안좋구나. 그 이클립스라는 놈들...”

유창연은 책상에 늘어져 있는 사진 중 데빌의 사진을 들어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데빌...”

보이는 것이라고는 황금색의 눈동자 딱 하나뿐인 악마의 가면을 쓴 사내.

고작 사진임에도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 황금의 눈동자가 소름끼치도록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데빌의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창연이 입을 열었다.

“빛나는 눈은 마안의 특징이지.”

“네?”

“그 중에서도 황금색이 특징인 마안은 딱 잘라 두 개. 알고 있느냐?”

“아... 네. 중국의 천하제일인, 무신의 만천통안(滿天通眼). 그리고...”

“세계 최고의 마법사. 윌리엄 블로섬의 해석안.”

“네...”

“그 두 개의 마안은 발현하면 황금색으로 빛난다는 공통점이 있지.”

“설마 데빌도 만천통안이나 해석안을 보유하고 있다고...?”

“글쎄...”

사진을 내려놓은 유창연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윌리엄 블로섬. 그 사람한테 직접 물을 수 있으면 좋겠지. 그 사람이라면 데빌의 그것이 해석안인지 만천통안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무언가인지 확언해 줄 수 있을테니까.”

“...그게 쉬우면 참 좋았겠지만요.”

“음... 하긴. 윌리엄 블로섬이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긴하지. 하지만, 유빈아.”

“네?”

“윌리엄. 그사람 만큼은 아니더라도 해석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않느냐.”

“...?”

“허허허, 세리나 블로섬 말이다.”

“아!”

윌리엄 블로섬의 손녀인 세리나 블로섬이라면 확실히 해석안에 관한 정보가 있을 법도 했다.

겸사겸사 회색 마탑은 정보력이 뛰어나기도 하니 데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회색 마탑의...”

“한번 물어봐서 나쁠 건 없지 않겠니? 명목상 중립세력이기도 하니 문제 될 건 없을게다.”

“...하긴 그렇네요. 회색마탑을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중립세력이라고는 해도 일단은 조심하거라.”

“네.”

***

한편.

“누구요?”

이클립스 본부에 찾아온 도민경이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내 아내와 딸이다.”

“...아니 그거 말고... 그...”

“아.”

진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멋쩍게 말했다.

“내가 서진우라는 것 말이냐?”

“그래 그거!!”

벌떡 일어난 도민경이 진우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당신이 서진우라고?! 죽은 거 아니었어요!?”

“보다시피.”

“아니! 당신이 죽었다고 막 뉴스에 나오고 당신을 죽인 조직을 토벌한다고 지랄하고 그랬는데!?”

“뭐, 내가 빌런에게 죽었다고 알려지는게 G.K에게는 좋은 일이니까. 애초에 나를 죽이려 했던 것도 가디언의 상층부고.”

“그건 또 무슨...! ...아아악!”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던 도민경이 이내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하아... 아무튼 당신이 진짜 서진우라는 거죠?”

“맞다.”

“하아... 이걸 가족까지 데려와서 말하니 안 믿을 수도 없고...”

도민경은 조금 떨어져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녀를 보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후우...”

도민경이 크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한테 굳이 정체를 알리는 이유가 있겠죠?”

“물론.”

진우는 조금 떨어져 있는 이은선에게 들리지 않게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해 소리를 차단했다.

“일단 이번 일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은선...아내와 딸을 구하기 위해 일단 끼어들긴 했지만. 솔직히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아.”

“...그렇죠.”

진우 개인적으로는 가족을 데려왔고, 다친 곳도 없으며 동료를 잃지도 않은 잘 풀린 상황.

“G.K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신용을 회복하려 들겠지. 그리고 그건 은선이와 지은이의 구출이 아닌 빌런 토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그게 쉬우니까?”

“그게 쉬우니까.”

하지만 빌런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지금의 상황은 그리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빌런이 움직일 때는 보통 가디언의 요원, 정부의 대원 등 마력대와 마주하는 상황은 웬만하면 피한다.

그들이 강해서. 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들을 죽이거나 때려눕히면 뒷감당이 안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클립스는 정면에서 G.K의 특수 대응 2팀과 정부의 테러 진압대의 대원들을 부쉈다.

어떤 식으로든 보복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내외부로 정신이 없다 한들 가만히 있진 않겠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실제로 최근 경찰들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요.”

도민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네게 제안과 함께 부탁이 있다.”

“제안? 부탁?”

“그래.”

진우는 세리나 블로섬에게 받은 명함을 도민경에게 건넸다.

“이건...?”

“회색 마탑주의 명함이다.”

“엑?!”

“나를 구하느라 준비했던 걸 사용했을 테니 새롭게 준비해야겠지.”

“어...그렇긴 한데...”

“그럼 회색 마탑으로 가서 도구를 사. 그 명함이면 못사는 건 없을 거다.”

“이게 진짜면 그렇기야 하겠지만... 설마 당신 전쟁을...?”

뭔가를 깨달은 듯한 도민경의 표정에 진우가 슬쩍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쟁? 아니. 아니지. 이건 방어다. 그리고 일방적인 공격이지.”

“하지만. 우리는 중국 쪽을...”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으니 계획도 바뀌어야지. 그리고 나를 구하느라 준비했던 것도 들키지 않았나.”

“그건...그렇지만...”

“물론 우리도 따로 움직일 거다. 너희에게 모든 걸 맡기진 않아.”

“...”

도민경은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명함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우리에게 오는 이득은?”

“명실상부, 자타공인, 완벽한 최고의 자리. 지금처럼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G.K가 너희 템페스트의 눈치를 보게 만들어주마.”

“...하아...”

도민경이 고민하는 눈치이자 진우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왜 너에게 정체를 밝혔는지 물었지?”

“...네.”

“너의 야망 때문이다.”

“야망...?”

“그래. 너는 템페스트 보스의 자리. 그 이상을 노리고 있지. 그것을 위해서라면 넌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거다.”

“...”

“어떻게 할거냐.”

‘확실히...거절할 수 없는 제안... 아니 거절해서는 안되는 제안이야.’

가면을 쓰지 않고, 얼굴을 바꾸지 않고, 본인의 얼굴을 그대로 보이고 있음에도 진우의 얼굴에 악마의 가면이 씌워져 있다는 착각이 드는 도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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