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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38화 (38/109)

38화-가족(1)

“마력을 분쇄하지만 적당히~ 맞지?”

“큭...”

일곱 쥐의 대장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며 여유롭게 말하는 최유나를 바라봤다.

“본인의 마력~ 플러스, 그...[파쇄]?의 효과. 뭐 상당히 좋은 능력이라고 봐~”

“닥쳐!”

“하지만...”

최유나의 주변에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생겨났다.

방금 전까지 사용하던 것과는 다르게 작지만 그 예기만큼은 더욱 뛰어난 얼음 송곳은 최유나의 손길을 따라 하늘하늘 춤추기 시작했다.

“극도로 압축한 마력을...지울 수 있으려나?”

이내 수많은 얼음 송곳이 일제히 일곱 쥐의 대장에게 쏘아졌다.

“크으윽! [파쇄]! [파쇄]! [파쇄]!!!”

입곱 쥐 대장의 발악에 일부는 그대로 허공에 녹아들 듯 흩어졌지만.

푸부부북!!

“커억!!”

대부분의 얼음 송곳은 회피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사방을 점해 일곱 쥐 대장의 몸에 박혔다.

“끄으윽...이까짓...상처쯤은...”

하지만 마력을 압축하여 그 크기가 작아졌기 때문일까 치명상은 되지 못한 듯 보였다.

“오오~ 남자네~ 아프지 않아?”

“닥쳐...!”

“힝, 무슨 말을 못하게 하네.”

눈물을 찍어내는 시늉을 한 최유나가 말을 이었다.

“이미 죽은 사람 상대로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한가?”

“...뭐?”

자신은 살아있는데도 죽은 사람 취급하는 최유나의 모습에 일곱 쥐의 대장이 분노를 터뜨리기도 전에.

“그치만~ 이미 죽은게 맞는걸~?”

딱!

최유나가 손가락을 튕겼고.

쩌어어어어엉-!

일곱 쥐 대장의 몸에 박혀있던 수많은 얼음송곳에 압축되어 있던 최유나의 마력이 해방되며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생겨났다.

“그치?”

얼음 덩어리 안에 갇혀 즉사한 일곱 쥐의 대장에게서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휴 답답해서 혼났네.”

최유나는 얼굴에 씌워져 있던 가면을 빗겨내 머리의 왼쪽에 걸며 뒤를 돌아봤다.

“...칫, 예쁘네.”

그곳에는 지쳐보이는 루비의 뒤에서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은선이 있었다.

“좀 덜 예쁘면 좋았을걸.”

작게 투덜거리던 최유나는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조금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전투 소리에 집중했다.

“아재도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네. 먼저 보스한테 돌아가 있을까?”

그리고 그때.

“자,잠시만요!”

“응?”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이은선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최유나의 손을 덥썩 잡았다.

“에?”

“먼저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네...”

“그리고 염치없지만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방금 전까지 넋이 나가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한 모습에 최유나가 당황하기도 잠시.

“저쪽에 제 딸이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전투를 벌인 분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부디! 부디 제 딸을 구해주세요!”

루비가 막아서긴 했지만 확실하게 자신을 노리고 있었던 빌런. 자신을 노렸다면 딸인 서지은 또한 위험하다고 판단한 이은선의 부탁에 최유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다.

“어린이집 쪽에는 이미 보스가...”

갔다. 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최유나는 이곳까지 날아오며 진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내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도록 단서를 보내긴 했지만 아직 그녀와는 만나면 안돼.)

(엥? 왜?)

(그녀라면 분명히 지은이를 데리고 나를 따라오겠다고 할테니까.)

(...? 좋은거 아니야?)

(...은선이와 지은이는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기를 원해. 그러니까... 아직은 만나면 안돼.)

굉장히 슬프게 들리는 목소리였기에 최유나는 아무말 없이 그냥 고개를 끄덕였었다.

“보스가...음...아무튼 문제없어!”

결국 최유나는 말끝을 흐리며 플라이를 사용해 도망치기로 결정했다.

“아...”

“아무튼 어린이집 쪽은 문제 없으니까 걱정하지마!”

공중으로 떠오르는 최유나를 바라보며 이은선이 입술을 깨물었다.

“보스...?”

벌써 건물을 넘어 보이지 않게 된 최유나였지만 그 방향은 확실하게 지은이가 있는 어린이집의 방향.

“...”

그 방향을 바라보며 뭔가를 생각하던 이은선이 홱하고 고개를 돌렸다.

“!?”

“...”

그곳에는 슬금슬금 자리를 뜨려고 하던 화염의 짐승이 있었다.

이은선은 그런 루비의 앞으로 다가갔고, 루비는 그런 이은선의 모습에 당황하며 일단 열기를 제어했다.

“너 루비지?”

“...”

“발뺌해도 소용없어. 불이 일렁거려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확실히 루비의 얼굴인걸.”

“!?”

루비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런 루비의 모습에 이은선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 반응. 확실하네.”

“!?”

“사람 얼굴도 아니고 일렁거리는 고양이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속았다는 생각을 하며 루비가 슬쩍 눈을 돌렸다.

“저 사람들 네가 부른거야?”

“...”

자신이 여기서 긍정을 하면 이은선이 보스의 정채가 진우라는 것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았기에.

홱홱홱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루비였다.

그런 루비의 모습에 이은선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루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니라고...? 타이밍이 이렇게 절묘한데...?”

홱홱

“흐음...일단은 됐어. 루비 부탁이 있어.”

“...?”

“어린이집 위치 알지?”

“...!”

“최대한 빨리 거기로 데려다 줘.”

“...”

루비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런 루비의 모습에 이은선이 쌔한 눈초리로 말을 이었다.

“밥 안줄거야.”

“!?”

“그럼 너는 길거리에서 먹을 걸 찾아야겠지?”

“...”

“참치, 고품질 사료. 그런 걸 먹던 네가 길거리 고양이들처럼 쓰레기를 뒤져서 먹을 걸 먹고 다닐 수 있을까?”

“......”

이건 좀 심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던 루비의 귀에 달콤한 유혹이 속삭여졌다.

“대신 데려다주기만 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간식을 줄게.”

“...!?”

“새로운 간식도 사주고.”

“...!”

“원한다면 매일 하나씩.”

“...크으응...”

행복한 상상에 루비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 정도였다.

거의 다 넘어왔다고 판단한 이은선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으면 말고. 나는 그냥 내 발로 뛰어가도 되니까.”

“!?!?”

“아아, 아직 빌런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데 누가 나를 좀 지켜주면 좋겠네...”

“......”

그래. 이건 간식에 넘어간게 아니다.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에서 주인의 마누라를 지키기 위함이다.

결코 유혹에 굴복한 것이 아니다. 주인의 명을 따르기 위함이다.

그렇게 합리화를 마친 루비가.

털썩.

결국 이은선에게 자신의 등을 내주었다.

“역시 루비밖에 없어.”

몸에 두른 화염의 열기를 극한까지 억제하여 따뜻한 온기만이 느껴지는 루비의 등에 올라탄 이은선이 소리쳤다.

“이랴!”

“...”

잠시 이게 맞나...라고 생각한 루비였지만 이내 쏘아지듯 어린이집의 방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

-그렇게 된거야...

-...

결론은 간식에 넘어갔다는 말이었기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진우였다.

“후우...”

진우는 낮게 한숨을 쉬고는 시선을 돌려 지은이를 여기저기 살피고 있는 이은선을 바라봤다.

“역시 많이 말랐군...”

그리고 진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무진과 최유나를 바라봤다.

“빌런들은?”

“내가 간 쪽에는 거의 잔챙이들 뿐이었다. 등급으로 따지면 D에서 C급 정도.”

“나는 일곱의 쥐 대장만 A급. 나머지 셋은 아마 B급 언저리 아니었을까?”

“내가 셋을 처리했으니 일곱의 쥐는 이제 없다고 보면 되겠군.”

십년도 넘게 활동한 빌런 일곱의 쥐치고는 허망한 최후였으나 신경도 쓰지 않는 진우였다.

“그나저나 이상하군.”

“응? 뭐가?”

“슬슬 움직일 때도 됐는데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

“어...누가?”

“가디언 코리아.”

“아...”

진우는 지금의 상황이 가디언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상황이라 판단했다.

일곱의 쥐를 제외하면 이상할 정도로 잔챙이만 움직인 빌런들.

평상시라면 곧장 움직일 특수 대응팀은 감감 무소식에 심지어 경찰조차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일곱의 쥐 부대장이 말했던 ‘의뢰’의 내용.

‘신명하가 이번 일을 꾸민건 틀림없겠지. 아니라면 내 가족을 노릴 이유가 없어. 아마 나에 대한 열등감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아.’

‘신명하는 욕심이 많아. 은선이와 지은이를 노림과 동시에 공적을 챙기려는 수작이었겠지.’

‘하지만 빌런은 우리가 토벌했으니... 신명하에게 남은 수는...’

그때 진우의 [마력 감지]에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음?”

“보스?”

“거기까지다 빌런놈들!!!”

특수 제작된 전투복, 심장 부위에 그려진 은색의 방패.

가디언 코리아의 특수 대응팀과.

군대 특유의 국방색 전투복, 어깨에 그려진 태극기.

한국 육군의 테러 진압대가 이클립스를 포위했다.

“와...많기도 해라.”

“이 부근 전투원은 전부 모인 것 같군...”

아슬아슬할 때까지 마력을 억제하며 포위망을 완성한 그들의 모습에 최유나와 천무진이 감탄을 터뜨렸다.

“...”

그리고 진우는 공간 이동 방해 술식이 깔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쉽게 도망은 못치겠군. 이걸 어쩐다...”

일반적인 길드, 혹은 일반 가디언 요원이었다면 적당히 싸우다 틈을 봐서 후퇴했겠지만 이들은 정예중의 정예로만 이루어진 자들.

아마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신명하가 소집한 것이리라 판단했다.

“여전히 잔머리 하나는 잘 돌아가는군...”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송조운에게 대략적인 상황은 알리고 출발했지만, 자세한 지시는 내리지 않은 상황.

송조운이라면 어떻게든 지원을 보내겠지만 그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후우... 일단은 정면 돌파 밖에 방법이 없나.”

“오케이.”

“나는 준비됐다.”

마력을 끌어올리며 그림자를 일렁거리는 진우의 중얼거림에 최유나는 냉기를 뿜어댔고, 천무진은 열기를 뿜어댔다.

그리고. 그때.

“꺄아아악!!”

“엄마아아!!!”

일행의 뒤쪽에서 이은선과 지은이가 갑작스레 비명을 질러댔다.

“무슨!?”

그에 놀란 진우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고.

“컥! 끄으으윽!”

“엄마! 으아아앙!! 엄마아아!”

숨이 막힌다는 듯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경련을 일으키는 이은선과 그런 이은선을 흔들며 울음을 터뜨린 지은이를 발견했다.

“은...!”

놀란 진우가 눈을 크게 뜨며 이은선에게 달려가려 할 찰나.

“비겁한 빌런 놈!! 일반인에게 능력을 쓰다니 수치심도 없는 거냐!!”

“...”

특수 대응팀에서 나온 외침.

그리고.

깜빡.

“끄으윽!!”

이은선의 윙크에 진우가 어정쩡하게 멈춰섰다.

“...”

“꺄아아아...끄으윽...!”

“엄마!! 엄마 왜 그래!! 엄마! 으아아아앙!”

“하...”

슬쩍슬쩍 윙크를 하며 ‘연기’를 이어가는 자신의 아내.

자신을 슬쩍슬쩍 바라보며 절규하는 연기를 하는 딸.

진우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나. 언제나 나보다 현명한 여자였다는 걸 잊고 있었어.’

***

지은이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잠시.

이은선의 눈에 한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

악마의 가면을 쓰고 피부 하나 보이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지만.

서 있는 자세. 분위기. 동료와 대화를 나누고 생각에 빠진 모습.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익숙한 사람.

‘오빠...’

당장이라도 달려가 껴안고 싶었다.

왜 자신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는지.

왜 석달이나 지나서 고작 펜던트 하나 보낸 것인지 묻고 싶었다.

‘안돼... 오빠가 하는 일이니까... 다 이유가 있을거야...’

하지만 참았다. 참아야 했다.

언제나 의지가 되고 현명한 남편이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다 빌런놈들!!”

하지만, 그런 결심도 잠시. 남편이 위기에 빠졌다.

“...”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하지?

오빠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알리기 싫을 텐데?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지?

“엄마.”

그때, 딸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 사람 아빠 맞지?”

“...!”

딸아이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긴. 고작 5살이긴 하지만 우리의 딸이다.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어떻게 해? 아빠 잡히겠어...”

“...지은아. 잘 들어.”

“응.”

“지금부터 엄마는...”

덕분에 결심이 섰다.

“후우우웁...! 꺄아아아악!!!”

일상을, 평화를 버리는 대신 다시 그와 함께 할 결심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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