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장은 만능 빌런-34화 (34/109)

34화-특별한 경호원(3)

어두운 새벽, 깊게 잠든 지은이를 토닥거리던 이은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와 식탁에 앉았다.

“냥.”

그리고 이은선의 인기척을 느낀 루비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으로 올라와 그녀의 앞에 앉았다.

“하아...”

그런 루비를 바라보던 이은선이 주머니에서 작은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특별한 경호원을 보냅니다.) 라고 적힌 펜던트.

이은선은 물끄러미 그 한문장을 바라보다 자신의 목에 걸려있던 같은 모양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역시 오빠...맞지?”

루비에게 향하는 질문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한 중얼거림에 루비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지은이가...얼마나 마음 아파했는데...”

남편, 서진우가 죽었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파했고,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살아있었어... 오빠가... 살아있었다고...”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살아서 이렇게 그 증거까지 보내줬다.

“후우, 냥이야 오빠가 어디있는지 아니?”

“...냐앙.”

이은선이 작게 한숨을 쉬며 루비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냐냥. 냐아앙.”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루비가 보유한 능력 중 하나인 [염화].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의 머릿속에 직접 전달하는 능력.

이 능력이면 대화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냐앙...미안해 주인마누라. 주인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숨기라고 했어.’

루비는 진우에게 [염화]를 숨기라는 말을 들었다.

지능은 그저 조금 똑똑한 고양이 흉내를 내면 문제없지만, 이은선이 [염화]를 알아챌 경우 어떻게든 루비를 닦달하여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올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염화]는 정신에 직접적으로 의지를 전달하는 능력, 비각성자인 이은선에게는 독이 될 가능성이 있는 능력이었다.

“네가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었으면...”

때문에 이은선은 루비가 고양이라는 것에 크게 아쉬워하고 있었다.

“오빠니까.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를 보낸 이유가 있겠지. 언젠가는 다시 올거야. 그렇지?”

“냐아앙.”

이은선의 말에 루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울자.

“역시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구나?”

“냥!?”

이은선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루비의 코를 톡톡 건드렸다.

“특별한, 은 둘째치고 굳이 경호원이라는 말을 한 걸 보면 너 사이킥 애니멀이구나?”

“...”

“굉장히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말을 알아듣는 걸 보면 지능 관련 능력도 있는 것 같고.”

“...냐아아.”

계속되는 이은선의 말에 루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이외에도 전투 능력도 있겠지. 프로 걱정쟁이인 오빠가 보낸 걸 보면 꽤나 강한.”

“할짝, 할짝.”

루비가 흔히 말하는 고양이 세수를 하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에 이은선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돌아오는 길에 사온 고양이용 참치캔을 꺼냈다.

“냥!?”

“후후, 배고프지?”

“냥!”

“그럼 오빠가 어디있는지 알려줄래?”

“...”

루비는 ‘치사하게 먹는걸로 이러기냐!?’ 라는 눈빛으로 이은선을 바라봤다.

굶어 죽을 뻔한 이후, 루비는 먹이에 있어서는 꽤나 집착하게 되었기 때문에 참치캔을 이리저리 흔드는 이은선의 모습이 악마처럼 보이고 있었다.

“냐아아...”

“후후, 착하네, 지은이가 깰까봐 큰 소리를 못내는거야?”

“냥...!”

그걸 알면 빨리 줘! 착하잖아! 라는 의미의 냥...! 이었다.

“알았어. 장난이야.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걸로 협박하진 않아.”

그런 루비의 모습에 이은선이 참치캔을 따 루비에게 줬고,

“챱!챱!챱!챱!”

신나게 먹는 루비를 바라봤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먹는 걸 보면 초능력자가 변신한 것도 아니네.’

“냥?”

묘한 이은선의 눈빛을 느낀 루비가 순간 움찔하며 그녀를 바라봤지만.

“응? 왜?”

“...냥.”

그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은선의 표정에 루비는 다시 고개를 박고 참치캔을 음미했다.

‘어디선가 능력을 각성해 자신의 능력에 죽어가던 냥이를 구했고 그대로 훈련시켜서 나한테 보냈다는 정도인가?’

‘지능이 높다는 것만으로 믿고 보내진 않았을거야. 뭔가 약속, 혹은 계약을 강제하는 방법이 있었겠지.’

‘오빠는 비각성자니까 얘가 맹세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나?’

‘전투, 지능, 맹세 계열, 최소 트리플이네.’

‘아니, 만약 문제가 생겨서 얘한테 보고를 받을 때는?’

‘동물과 대화하는 능력자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그런 동료가 있는게 아니면 얘가 대화가 가능한 능력이 있겠지.’

‘만약 그렇다면 쿼드라... 오빠가 단순한 고양이를 믿고 우리를 맡겼을 리가 없지. 가능성은 반반인가.’

놀랍도록 진실에 가까운 추리.

6년 전 서진우와 결혼하기 전, 사설 탐정을 목표로 공부하던 사람다웠다.

아니,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 그러고보니까 냥이야.”

“챱챱, 냥?”

“너 이름은 뭐니?”

“...냥.”

“흐음... 말 안해주는거야?”

“냥...”

“그럼 내가 마음대로 이름 지어야 하는데?”

“...냥.”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작게 운 루비의 귀에 경악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타르쿠스? 스파르타?”

“...냐앙?”

진심으로 뭐? 라고 [염화]를 걸뻔한 이름이었다.

“경호원이라 그랬으니까 강한 이름이 좋지 않아?”

“냐...”

“스트롱? 아! 고양이니까 라이언!”

“...?”

고양이인데 왜 라이언이 나오는지 모르겠는 루비였다.

하지만, 이은선은 진심이었다.

“타이거...아니 고양이니까 냐이거..? 어감이 별로인가?”

“...”

어감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고양이인 자신도 아는데 왜 인간인 이은선이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때.

“엄마...”

“어? 지은아. 깼어? 미안 조금 시끄러웠지?”

“으응...”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은 지은이가 눈을 비비며 다가와 이은선의 앞, 루비의 뒤에 있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야옹이 이름...”

“아, 그거 듣고 일어난거구나?”

“응...구려...”

“...”

“냨...!”

순간 웃어버린 루비가 자신에게 고개를 휙하고 돌리며 쳐다보는 이은선을 시선을 피해 눈을 돌렸다.

그때, 여전히 졸린 표정으로 눈을 비비던 지은이가 입을 열었다.

“루비...”

“응?”

“냥!?”

지은이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에 놀란 루비가 지은이를 쳐다봤다.

“눈..예쁜 빨간색이니까...루비.”

“아...예쁜 이름이네. 역시 지은이야~”

“히히히...부르기도 쉬워서 좋아.”

“...”

이번에는 그 아빠에 그 딸이라고 할까.

(눈이 붉은색이네. 루비가 좋겠어.)

(냥?! 그렇게 간단히?)

(뭐 어떻냐. 이름은 부르기 쉽고 간단한게 좋은 이름이다.)

주인의 말과 똑같은 말을 하며 자신을 루비라 부르는 지은이를 보며.

“그래도 역시 강한 이름이...”

“구려. 루비가 불쌍해.”

“윽!”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하는 루비였다.

***

밤 낮 없이 일하기를 수일, 드디어 정보부의 기능을 어느정도 복구하는 것에 성공한 유차빈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몇 달만에 이정도로 망가질 수가 있는거지?”

이 정도로 능력없는 사람이 기존의 정보 부총괄이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니. 능력의 문제가 아닌가...”

유차빈은 책상 위에 놓여진 하나의 파일을 바라봤다.

“서진우...”

정보 총괄의 자리에 올라 단 몇 년만에 전국의 모든 것을 앉은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망을 구축하고 정보부를 완전히 휘어잡은 사내.

“신명하는 너무 욕심이 많아.”

컨트롤 타워였던 서진우가 사라짐과 동시에 신명하, 개인의 욕심이 G.K의 정보망을 망가뜨렸다.

그것을 이해했기에 유차빈이 깊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사장님이 그를 내치는 것이 너무 빨랐어. 최소한 신명하가 아니라 다른 인재를 확보한 뒤에 버렸어야했는데...”

유차빈이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파일 하나를 집어들었다.

“당장의 문제는 아인 연합마을인가.”

안그래도 사회의 배척을 받는 아인은 빌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임을 알고는 있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아인 빌런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다시피 해. 어떻게든 아인 연합마을과 관계를 풀어야하는데...”

아인 빌런은 안 그래도 튀는 외모를 가지고 있고, 빌런이 되는 순간 카드를 사용하기 힘들어지기에 인터넷에서 뭔가를 구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아인 빌런은 어떤 형식으로든 아인 연합마을과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체 어디서 식량을 지원받고 있는건지...”

하지만, 신명하의 탐욕에 의해 아인 연합마을과의 교류가 끊어졌고, 관계를 풀어보려 해도 이미 어디선가 식량 지원을 받고 있는 그들이 다시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은 것이 문제였다.

“후우, 신명하를 정리하는 대로 직접 가봐야겠네.”

그렇게 중얼거린 유차빈이 다시 컴퓨터와 서류더미로 고개를 박았다.

그리고, 그녀가 있는 사무실의 문 앞에서.

‘씨X....’

신명하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었다.

***

‘나를 정리한다고? 정보 총괄인 나를?’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쿵쿵 걷고 있는 신명하 때문에 정보부의 요원들이 식겁하며 자리를 피했지만, 분노한 신명하의 눈에 그런 그들이 보일 리가 없었다.

‘전부 그 새끼가 문제야!’

정보부의 옥상에 도착한 신명하가 어딘가 굉장히 밋밋한 폴더폰을 꺼내들었다.

“씨X 씨X 더는 못참아. 전부! 전부 그 버러지 새끼 때문이야! 전부!!!”

폴더폰에 저장되어 있는 단 하나의 번호에 전화를 건 신명하가 계속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딸깍.

-호오? 당신이 먼저 전화를 할 줄은 몰랐는데.

여성 같기도, 남성 같기도 한 중성적인 목소리가 신명하가 든 폴더폰에서 흘러나왔다.

“일을 하나 맡기겠다.”

-들어보지.

끔찍할 정도의 살기가 담긴 신명하의 눈이 정보부의 건물 아래 수많은 차량을 바라봤다.

“이은선, 서지은. 그 둘을 데려와.”

-서진우의 아내와 딸 말인가?

“맞다.”

-이런. 고작 일반인 둘을 데려오라고? 사이즈가 너무 작은데?

능글맞게 말하는 목소리에 신명하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건 덤이다.”

-난 본론부터 말하는 걸 좋아한다. 벌써 잊었나?

살짝 불쾌한 듯한 목소리에 신명하의 미간이 한번 더 꿈틀거렸다.

‘버러지 새끼가...이놈이고 저놈이고...’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 자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신명하는 억지로 분노를 삭힐 수 밖에 없었다.

“이은선과 서지은을 데려오는 것과 동시에 적당한 조직을 부채질해라.”

-흠. 그리고?

“정보부...아니, 내가 그들의 꼬리를 잡아 퇴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겠다.”

-간단히 말해 공적을 만들어 달라는 거군. 덤으로 소란을 틈타 그 모녀를 납치해달라는 거고.

“맞다.”

-모녀는... 그렇군, 그냥 화풀이인가.

“닥쳐. 알 것 없다.”

잠시 전화의 넘어에서 침묵이 이어지고. 이내.

-크크크큭. 좋아 수락하지.

재미있다는 웃음과 함께 긍정이 들려오자 신명하의 얼굴에 비틀린 미소가 걸렸다.

“큰거 5장 준비하지.”

-오늘따라 통이 크군.

“먼저 한 장. 끝나면 네 장. 언제나처럼.”

-좋아. 준비가 끝나면 다시 연락하지.

뚝.

신명하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지고.

파직!

짧은 스파크 소리와 함께 신명하가 들고 있던 폴더폰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차피 내일쯤이면 다시 오는 물건이기에 신명하는 언제나처럼 망가진 폴더폰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를 정리한다고?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아?”

공적이 있으면 쉽게 자신을 버릴 수 없다. 그런 계산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커다란 공적이 있는 서진우가 버려진 것을 생각하면 계획이 성공한다 해도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올랐는데...간단히 내려갈 것 같아?”

도로를 다니는 수많은 차량. 그리고 사람들. 그 대부분은 비각성자. 그런 사람들을 내려보며 신명하가 말을 이었다.

“저 버러지들을 전부 죽여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정의를 위해 탄생한 가디언의 간부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발언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