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특별한 경호원(2)
시간을 조금 돌려 하루 전. 조직, 이클립스의 신(新) 거점으로 향하던 진우는 잠시 도민경과 떨어져 루비와 대화를 나눴다.
“냐아앙!”
-왜에에! 나도 새집 보고싶어!
투정을 부리는 루비의 모습에 진우가 [성질 변화]를 이용하여 흙을 변화시켜 펜던트가 걸린 목걸이를 만들어내며 대답했다.
“루비.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야?
“그래.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지.”
자신의 장례식 이후에도 진우는 아내, 이은선과 딱, 서지은을 보러 갔다.
굉장히 멀리서, [천리안]을 이용해 조용히 살펴보고 돌아올 뿐이었지만.
‘굉장히...말랐어.’
사랑하는 아내가 점점 말라가는 것과.
‘지은이는... 어딘가 위험해 보였어...’
딸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달라진 것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기에 더 이상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은선이가 굳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유도 그렇고 아마 보상금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겠지. 그리고 그런 같잖은 짓거리를 한 놈은...’
-주인?
“아...”
루비의 부름에 상념에서 벗어난 진우가 루비의 목에 펜던트를 달아주며 말했다.
“나에게 그 누구보다 소중한 두사람을 너에게 맡기는 거다.”
-소중한 사람...?
“그래.”
-가족이야...?
“그래.”
언제나 차갑고 냉정한 눈빛의 주인이었던 진우가 처음으로 차갑지 않은 눈빛을 보였다.
그런 진우의 눈빛과 표정이 루비는 더 이상 투정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주인에게 소중하면 나한테도 소중한거야.
“믿는다.”
-꼭 지킬게.
고양이지만, 그렇기에 경계를 사지 않을 것이고 마력을 은닉하는 법을 배웠으니 쉽게 들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루비를 보냈다.
“은선이라면 바로 알아차릴거다.”
-응. 이걸 보여주면 되는거지?
자신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툭 치며 말하는 루비의 모습에 진우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우는 [사념 전달]을 통해 이은선의 모습과 지은이의 모습, 그리고 그녀들이 있는 위치를 루비에게 보여줬다.
-응. 기억했어.
늠름...하기보다는 귀엽게 고개를 끄덕이는 루비의 모습에도 진우는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믿는다.”
-응!
그리고 루비가 자리를 떠나고 하루 뒤.
“냐아앙!”
-찾았다!
루비는 차가운 밤하늘 아래 홀로 걷고 있는 이은선을 발견했다.
***
살짝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지은이가 있는 어린이집에 도착한 이은선이 벨을 누르기도 전에.
“엄마아아!”
어린이집의 밖에서 선생님과 함께 이은선을 기다리고 있던 지은이가 이은선을 발견하고 도도도 달려와 그녀의 품에 안겼다.
“우리 지은이. 오늘도 재밌게 잘 있었어?”
“응! 있잖아? 선호가 모래성을 만들었는데~”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전부 얘기할 기세로 말하는 지은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듣고 있던 이은선이 지은이를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차~. 지은이 밥 많이 먹었나보네?”
“어!? 어떻게 알았지?”
“히히 엄마는 다~ 아는 수가 있지~”
“대단해!”
이은선도, 지은이도 밝고, 기운차게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모녀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이집의 최고참 선생은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이내 모녀가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을 떠나고. 신입 선생과 최고참 선생만이 남았다.
“어? 이 선생님. 왜 그렇게 눈이 충혈되셨어요?”
“으응? 아...아이고. 주책이지...”
미간을 주무르며 잠시 진정한 최고참 선생이 모녀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은이가 처음 왔을 때 기억나요?”
“네? 아...네. 올해 초였죠? 제가 부임했을 때랑 비슷한 시기여서 기억해요.”
“맞아요.”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쭈뼛쭈뼛 어린이집을 찾아왔던 지은이. 그때만해도 지은이는 이렇게 밝지 않았다.
“지은이는 말이죠? 어린아이답지 않게 쿨했던 것도 기억해요?”
“아...생각해보니 그랬었죠?”
웬만한 어른 못지않게 쿨한 분위기를 풍기던 어린아이.
그러면서도 귀여움을 독차지할 만큼 영리하게 행동하여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던 아이.
“그런데 말이죠? 지금 제 눈에는 지은이는 어딘가 너무나 위태로워 보여요.”
“...네?”
그런 지은이는 석달 전, 어린이집을 며칠정도 쉰 것을 기준으로 너무나 쉽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변해버렸다.
“억지로 밝게, 명량하게, 어린아이답게.”
“...?”
“어머니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자신 또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아...”
말을 하다 보니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기분에 최고참 선생이 고개를 털며 등을 돌렸다.
“후우...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더 가슴이 아파요.”
“이 선생님...”
“자자! 저희도 정리하고 퇴근하죠!”
“...네!”
***
“그래서 엄마 일하는 곳에 윤아 언니라고 엄마 친구가 지은이가 너~무 귀엽다는 거야~”
“진짜? 히히 윤아 언니도 이쁠 것 같아!”
“나중에 한번 놀러오라고 할까?”
“응! 보구시..퍼!”
순간 보고싶다는 말을 하며 움찔한 지은이가 순식간에 그런 기색을 지우며 밝게 소리쳤다.
“...그래. 바로 이번 주말에 놀러오라고 하자.”
“응!”
그런 지은이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이은선이 아니었지만, 이은선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냐아앙.”
“어?”
“응? 냥이 소리다!”
이은선이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을 때 나타났던 고양이가 다시 모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아직도 여기 있었니?”
“냥이다!”
고양이에게 눈을 때지 못하며 눈을 빛내는 지은이의 모습에 이은선이 피식 웃으며 지은이를 내려놨다.
“냥냥냥~ 냥이야~ 어디서 왔니~”
땅을 밟자마자 고양이의 앞으로 가서 살짝 몸을 흔들며 정체불명의 노래를 부르는 지은이의 모습에 이은선이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아...조명이 아쉽네...”
그런 이은선을 뒤로 어느새 노래를 멈춘 지은이는.
“....”
“냐...”
어느새 고양이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
그리고 지은이가 고양이의 목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엄마엄마! 냥이 목걸이 있어!”
“목걸이?”
지은이의 말에 고양이에게로 시선을 돌린 이은선이 고양이의 회색 털 아래에서 빛나는 작은 목걸이를 발견했다.
“저건...”
일반적인 반려동물용 목줄이 아닌, 사람이 낄만한 체인형 목걸이.
“어? 지은이랑 엄마 목걸이랑 같은거다.”
“...”
모녀의 목에 걸려있는 은으로 만들어진 ‘가족’ 목걸이와 비슷한, 아니 똑같은 작은 펜던트가 달려있는 목걸이.
“이,이건...”
“냐아앙...”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에 손을 대는 순간까지 고양이는 그저 가만히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고양이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빼 손에 든 이은선의 눈이 충혈되며.
“엄..마?”
차가운 겨울 공기에도 식지 않는 뜨거운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이은선의 손에 살짝 열려있는 펜던트의 내부에는.
(특별한 경호원을 보냅니다.)
라는 한문장만이 적혀있었다.
***
중간에 합류한 최유나와 천무진과 함께 지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해 새로운 거점으로 들어간 이클립스 일행은 탄성을 내질렀다.
“오와아아아!!”
“이건...대단하군.”
지하 300미터 아래, 과거의 어느 재벌이 만들고 그가 죽으며 버려진 거대한 비밀 금고.
대규모로 개조하여 보온, 환기, 보안. 그 모든 것이 최첨단으로 바뀐 이클립스의 새로운 거점이었다.
“이거 만드느라고 몇 명은 마력 탈진으로 드러누웠어요.”
“고생할만 했군. 이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았는데.”
“에? 아버... 보스한테 요구한 거점 조건이 그렇게나 세세했으면서?”
“제대로 읽질 않았군. 되도록이라고 했잖나. 되도록.”
“...아니...”
뭔가를 따지려 입을 우물거리던 도민경이 결국 포기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됐어요. 아무튼 이곳의 위치를 아는건 보스와 도민준, 저. 그리고 템페스트의 간부들뿐이에요.”
“공사를 한 자들은?”
“위치는 몰라요. 재운 다음에 데려온거라서.”
“좋군.”
신나게 돌아다니며 거점을 살펴보고 있는 최유나를 말리는 천무진을 보며 진우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가 넘겨준 정보는 잘 사용했나?”
“네? 아 비자금 말이죠?”
“그래.”
거점을 준비해주는 대가로서 진우가 템페스트에 넘겼던 검은 돈의 정보.
가디언, 그리고 가디언에 협력하고 있는 정치인, 마지막으로 재벌. 그들의 비자금이 숨겨져 있는 장소 중 템페스트가 털 수 있을 만한 곳은 전부 넘겼었다.
“덕분에 저희 자금이 3배는 많아졌어요. 여길 만드는데 사용한 자금이 아니면 4배는 됐겠지만...”
“나는 이렇게까지 해달라고는 한 적 없다. 되도록이라고 했지.”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도민경은 진우의 악마 가면을 바라보며 역시 말은 잘한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저희가 간 다음에 홍체 등록이랑 지문 등록해서 출입 설정 해놓으면 되고...이제 따로 할 일은 없네요.”
“그래.”
그때. 진우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돌아가려는 도민경을 붙잡았다.
“도민경.”
“네? 왜요?”
“생각보다 좋은 거점을 마련해줬으니 보답을 하지.”
“네?”
뜬금없이 보답이라는 진우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한 도민경이 다시 진우의 앞에 섰다.
“무슨 보답이요?”
“왕바오라는 사람을 찾아라.”
“왕바오? 중국인이에요?”
“그래. 조선족이지.”
“그래서. 그 사람을 왜요?”
도민경의 의문에 진우가 가면 아래에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왕바오는 중국 공안 소속 각성자다.”
“공안? 중국 경찰 말하는 거죠?”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삼합회, 정확히는 삼합회 산하, 청룡회의 연락책이지.”
“...네?”
“자금도 생겼으니 해외로 영향력을 넓힐 때가 되지 않았나?”
“...”
“청룡회는 너희와 마찬가지로 정부에 불만과 원한을 가진 자들이 모인 곳, 잘만 이용하면 중국으로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거다.”
“이런 미친...”
그동안 데빌이 제공한 정보는 그저 동맹의 대가, 거점 마련의 대가, 그래. 단순한 대가인 줄 알았다.
‘전부 설계였어?’
하지만, 도민경은 진우를, 데빌을 얕봤다.
가디언 코리아의 정보부가 제대로 된 기능을 상실하고 부실해진 틈을 타 수많은 빌런 조직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진우의 정보를 얻어 전국 각지에 있는 현물 비자금을 턴 템페스트는 이전보다 훨씬 강대해져 있었다.
하지만 힘이 생겼다고 하여 국내에서 타 조직, 혹은 가디언 코리아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비효율적.
넘쳐나는 자금을 소모하기 위해선 외부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 진우, 데빌의 말대로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결정한 건 고작 이삼일 전이야. 이렇게 간단히 예상했다고? 아니. 유도당한 건가?’
자신의 앞. 악마의 가면 속 얼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도민경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G.K 정보부가 기능을 상실하고 있는 이상 G.C, 그리고 G.J는 반드시 한국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거다.”
“...”
“일본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만, 그쪽은 이전의 G.K 정보부와 비슷한 수준의 정보망을 보유하고 있어. 이쪽과는 다르게 기능을 상실하지도 않았지. 그러니 중국이 적격이다.”
자신의 가면을 톡톡 두드리며 말을 이어가는 진우의 모습에 도민경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시기는...그렇군. G.K 정보부의 현 총괄. 신명하가 죽은 다음이 좋을 거다.”
“...”
“그놈은...이쪽에서 처리해주지. 같잖은 짓거리를 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놈이기도 하니.”
침을 꿀꺽 삼킨 도민경이 멍하니 진우를 바라봤다.
“그러니...”
하지만, 그 무엇도 읽을 수 없는 가면 속 진우의 눈동자는 그저 담담히 도민경을 바라보고 있었고.
“준비를 단단히 하는게 좋을거다.”
도민경은 그런 진우의 눈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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