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의심을 심다(1)
“도,도둑! 예나씨! 겨,경찰에 신고...”
김우준이 자신의 뒤에 있는 천예나에게 신고하라 말하려는 찰나.
“그건...”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사내, 진우의 손에 들린 하나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그게 왜...”
“천무진, 최유나, 변장을 풀어도 좋아. 오늘 이 섬을 떠날거다.”
“오케이~”
“후우. 드디어.”
“어? 어어!?”
천무진과 최유나가 성질이 변화된 그림자에 공급하던 마력을 끊으니 얼굴과 육체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두 사람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대,대체 뭐야!?”
그에 놀란 김우진이 천무진과 최유나를 피해 뒷걸음질 치며 자신도 모르게 진료소 안으로 들어가버리고.
함께 들어간 천무진과 최유나가 문앞에 서서 그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김우준. 약 6년전까지 세이비어 병원에서 인체실험에 가담한 의사중 한명. 맞지?”
“...당신들은 정부 요원이나 가디언 요원쯤 되는 겁니까?”
“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김우준의 모습에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콰악!
“컥!”
김우준의 목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보니 룰을 알려주지 않았군.”
“끄..끅...”
악마의 가면 속에서 황금의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룰은 내가 묻는 것에만 대답한다. 딱 하나다.”
“끄으으으...”
“룰을 어기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게 뭔지 직접 알려주지.”
“끅...끄...”
김우준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것을 본 진우가 그의 목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를 내려다봤다.
“콜록콜록!”
“다시 묻지. 이전, 세이비어 병원에 있던 의사 중 하나 김우준 맞지?”
“맞,맞습니다.”
소름끼치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가면 속의 눈을 피하며 김우준이 겨우겨우 답했다.
진우는 그의 눈앞에 다이어리를 보여주며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여기 적혀 있는 내용은 전부 사실이겠지?”
“네,네...”
어떤 내용이 적혀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김우준이었기에 표정을 찡그렸다.
“7년전 상대의 뇌 활동을 정지시키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병원을 찾았을거다. 기억하나?”
“!?”
진우의 말에 계속 시선을 피하고 있던 김우준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려 진우를 바라봤다.
“그,그걸 어떻게!?”
“아는 모양이군.”
김우준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그의 고개를 잡아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 만들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어디로 데려갔지?”
[정신 불안정화]+[최면].
[꼭두각시의 실]
순식간에 눈이 흐릿해진 김우준이 멍하니 진우의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모..릅니다.”
“그 아이에 관해, 그리고 세이비어 병원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라.”
“네...”
마력 저항력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라도 [최면]에는 잘 걸리지 않지만, [정신 불안정화]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정신이 제압 당한 김우준은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제가...아는 것은...이상..입니다...”
무의식에 잠겨 있건 기억까지 전부 끄집어 내야했던 김우준은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이라니...”
“빌어먹을 자식들 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이 정도일 줄은...”
천무진과 최유나가 각자의 살기를 숨기지 않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리고 진우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김우준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초능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만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진행. 목적은 초능력의 각성 원리, 그리고 [브레인 브레이커]처럼 해독 불가능한 독으로 만들 수 있을 만한 능력의 확보.’
‘그렇다면 세이비어 병원은 [브레인 브레이커]의 능력이 확보했기에 꼬리를 밟히기 전에 없앴다는게 맞겠지.’
‘그리고 그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계속하여 완성한 독을 실험하고 겸사겸사 복수도 할 겸 천무진의 가족에게 사용했다... 정도인가.’
‘하지만...아무리 SOE라고 해도 미국의 내부에서 가디언 USA와 미국 정부에게 몇 년 동안이나 들키지 않았다는 건 이상해.’
‘가디언 USA와 미정부. 둘을 한번에 흔들어볼 필요가 있겠어. 그럼 어떻게든 모션을 보이겠지.’
“미국.”
분노를 터뜨리던 천무진과 최유나가 홀로 중얼거리는 진우의 말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미국?”
“갑자기 미국은 왜?”
진우는 의문을 표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다음 목표다. 우리는 미국으로 가서.”
“응. 아메리카에 가서?”
“SOE의 탈을 쓰고 미국의 자존심. 백악관을 친다.”
“...파든?”
최유나가 진심으로 잘못 들었다는 듯이 귀를 한번 후비적거리고는 다시 진우를 쳐다봤다.
“백악관을 친다고.”
“...알 유 크레이지? 아,아니 나는 못들은 걸로 할래. 아직 죽기 싫어.”
“계획만 잘 세우면 해볼만 할거다.”
“아아아~ 난 몰라~ 못들었어~”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최유나의 모습에 피식 웃은 진우가 말을 이었다.
“당장 친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아아~...엉? 그럼?”
“완전 동결 마법 덕에 시간을 벌기도 했고. 내 예상 대로면 슬슬 움직일 때가 됐거든.”
“누가?”
진우는 적당히 능력을 사용해 자신들의 흔적을 지우며 대답했다.
“가디언 특수 대응팀의 대장. 윤무길.”
***
“끄으응... 헉!?”
엄청난 두통에 신음을 흘리며 깨어난 김우준이 번뜩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꿈?”
자신의 침대.
별 다를 것 없는 약간 허름한 진료소의 수면실.
“...”
김우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다이어리를 바라봤다.
“그래. 꿈일 리가 없지.”
자신이 이 다이어리를 책상 위에 두고 잤을 리가 없었기에 김우준은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대체 그 사람들은 정체가 뭐였던거지?”
천무성이라는 노인은 노인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40대로 보이는 중년이었고, 그 손녀라는 사람은 예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얼굴이 완전히 달랐었다.
자신에게 보여줬던 얼굴이 가짜일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응?”
그때 다이어리를 들고 뒷장을 펼친 김우준의 눈이 커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에게는 기억을 지우거나 바꾸는 능력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더군. 죽일까 말까 고민했지만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섬의 주민들을 위해 살려두기로 했다.)
정갈한 필체로 적힌 자신이 적은 적 없는 내용의 글.
어제의 그 악마 가면이 쓴 것이 분명했다.
(우리에게 관련된 주민들의 모든 기억은 지웠다. 이사온 노인, 그 손녀를 묻고 다니면 너만 이상해지겠지.)
“하,하하하...”
세이비어 병원이 사라질 때처럼 주변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말이었기에 김우준은 절로 헛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우리에 관해 떠들고 다니지 않는게 좋을거다. 너는 물론 섬의 주민들이 위험해 지니.)
“말할 사람도 없습니다.”
작게 중얼거린 김우준이 더 쓰여있는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다이어리를 접었다.
“후우. 대체 뭔일인가 싶네.”
언제나와 같은 아침. 같은 풍경. 임에도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 김우준 이었다.
그리고 그때.
똑똑똑.
“김 선상님~ 일어나셨는가~?”
“아! 죄송해요! 오늘 늦잠을 자서! 금방 진료 시작할게요!”
“허허허. 김 선상님이 왠일로 늦잠을 다 자셨댜.”
“그러고 보니까 우리는 어제 회관에는 왜 모인겨?”
“글시... 나이를 먹으니 기억이 잘 안나서리.”
“건망증이 심해져서 탈이여.”
문 밖에서 들려오는 노인분들의 정겨운 대화소리에 김우준은 안정을 찾기도 전에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몸에 빠르게 진료소의 문을 열 준비를 해나가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살려준다고 했으니까 떠들고 다니지만 않으면 또 오진 않겠지.’
“에구구, 허리야.”
“아! 지금 바로 열어드릴게요! 안에서 기다려주세요!”
***
“또 찾아갈 필요는 없겠군.”
[천리안]과 [천리이]를 통해 잠시 김우준을 살피던 진우가 능력을 거뒀다.
“보스. 그 아재는 왜 살린거야?”
“그건 나도 의문이다. 암시에 의해 묶였다고는 하나 완전히 세뇌된 건 아니지, 암시는 어디까지나 행동의 유도. 그도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음...”
천무진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섬의 노인들에게는 김우준이 필요하다. 그가 사라지면 곤란해 지는 건 선량한 주민들이라는 거지.”
“...그건...그렇지.”
“이클립스가 빌런 조직을 자칭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진짜 빌런은 아니야 굳이 그를 죽일 이유가 없어.”
진우의 말에 천무진이 고개를 숙였다.
“생각이 짧았다.”
“복수의 대상을 틀리지 마.”
“...미안하군.”
김우준의 기억에 따르면 [브레인 브레이커]의 독은 세이비어가 사라진 다음에나 만들어 진 것. 그에게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의 김우준은 천무진의 복수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슬슬 도착이다.”
“오. 역시 날아오니까 빠르네~”
“냐아앙!”
일행의 눈에 이제는 슬슬 정겨워지려고 하는 임시 거점인 폐공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데 보스. 여긴 왜 다시 온거야? 세리나한테 방 좀 달라고 하면 되는거 아니야?”
“회색 마탑은 슬슬 내부적으로 시끄러워 질거다. 우리가 회색 마탑에 있으면 세리나를 도와야 할 가능성이 높아. 괜한 시간낭비다.”
“흐음... 그래도 세리나가 다른 파벌에 져버리면 곤란한거 아니야?”
후우우웅!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착지한 진우가 투명화를 풀고 폐공장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중에면 모를까 지금은 회색 마탑의 일에 끼어들 시간은 없어. 그리고.”
최유나가 세리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진우는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리고 말을 이었다.
“큰 변수가 없다면 세리나 블로섬이 이길거다. 꽤 많은 정보를 줬으니 지면 거기까지인 거겠지.”
“오케이~”
물론 세리나가 질 가능성이 높아지면 진우도 참전할 생각이었지만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는 진우였다.
폐공장 내부로 들어간 진우와 일행의 앞에 꽤나 가격대가 높을 것 같은 정장을 입은 한 남성이 인사를 했다.
“어서오십시오. 보스.”
“...그 옷은 뭐냐?”
“아, 그래도 조직의 정보 수장이라 격을 맞출 겸 한 벌 맞췄습니다.”
송조운은 자랑스레 자신의 정장을 쓰다듬으며 말하고는 말을 돌렸다.
“아. 전병천이 가져온 천지인이 봉인? 된 캡슐은 잘 모셔놨습니다.”
“가져온?”
“아...데려온.”
“흠.”
가져왔다는 말에 순간 발끈한 천무진을 보며 급하게 말을 바꾼 송조운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정보 조직은 어느정도 구색은 갖춰 놨습니다. 각지의 부랑자들을 모아 철저한 점조직으로 만들어놨고 저와의 연결점은 지워놨으니 걱정 안하셔도 될겁니다.”
당당하게 지금까지의 성과를 말하는 송조운의 모습에 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말씀해 주신 가디언의 정보망은 훼방을 놓는다고 놓긴 했습니다만. 이게 제대로 작동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한대로 했으면 어느정도 기능은 할거다. 애초에 그 정보망은 내가 구축해놓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
“역시 전대 ‘가디언의 눈’ 답습니다.”
그때 진우의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천무진이 송조운에게 말을 걸었다.
“예성이는 어떻지?”
소경도로 향하기 전, 송조운에게 천예성을 맡겨 두고 일을 알려달라 요청했던 터라 천무진은 자신의 아들이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예성군은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19살이라고 했던가요? 배우는 속도도 빨라서 벌써 제 일 중 한 개 정도는 맡겨도 될 정도입니다.”
“그런가? 흠흠. 하긴 예성이는 옛날부터 날 닮아서 뭐든지 참 잘했지.”
“...딱히 닮은 것 같진 않...”
“뭐?”
천무진의 주먹이 슬쩍 올라가는 것을 본 송조운이 곧장 말을 바꿨다.
“역시 무진님의 아들입니다.”
“하하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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