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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만능 빌런-27화 (27/109)

27화-소경도(3)

고양이.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

애완용으로 기르는 경우가 많으며 애완용 이외의 다른 용도는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맛있냐?

“냐앙! 냐냐냥!”

-응! 너무 맛있어!

하지만 진우는 눈앞의 고양이를 애완용이 아닌 명백히 다른 목적으로 주웠다.

챱챱챱.

적당히 변장하여 마을 슈퍼에서 사온 참치캔을 허겁지겁 먹어대는 고양이는 퍽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염화]와 [지능 상승]이 있으니 대화는 문제 없고. [서약]도 받았으니 배신할 위험도 없다. 게다가 고양이의 모습...아니 그냥 고양이이니 웬만해서는 경계도 사지 않겠지.’

진우의 눈에는 유용한 부하 정도로 보이고 있었다.

‘조금만 훈련시키면 나름대로 쓸만한 패가 될거다. 일단 건강을 회복시키는 대로 무공이나 마법을...고양이가 배울 수는 있나?’

“냐아앙?”

-주인?

그때. 고양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던 진우에게 고양이가 말을 걸었다.

-왜?

-아니. 뭔가 오싹해져서.

“감도 좋군. 나쁘지 않아.”

“냥?”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다. 마저 먹어라.

-응!

한번 고개를 갸웃거린 고양이가 다시 참치캔에 머리를 박았다.

“그나저나...”

진우는 고양이에게서 시선을 돌려 마을 회관을 바라봤다.

“둘은 잘 하고 있으려나...”

워낙 사람이 적은 섬마을이라 단순이 이사 온 것만으로도 다같이 모인 상황.

큰 의심없이 김우준을 파악하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일단 믿는 수 밖에는 없겠지.”

진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을 본 고양이가 먹던 것을 내버려두고 머리를 들었다.

-어디가?

-그래. 볼일이 있다.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라.

-음..알았어!

-초능력은 사용하지 말고.

-초능력?

-너를 아프게한 네 능력 말이다.

-아. 알았어! 절대로 안쓸게!

“자. 그럼...”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고양이를 두고 진우가 걸음을 옮겨 마을 어딘가에 있을 김우준의 진료소로 향했다.

***

“여긴가.”

잠시후.

조금 낡긴 했지만 나름대로 보수한 흔적이 보이는 작은 진료소 앞에 도착한 진우가 감지 계열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컥.

“잠겼나.”

문은 잠겨있었지만 도어락과 같은 비밀번호식 잠금장치가 아닌 그저 열쇠로 열고 닫는 잠금장치였기에 진우는 그림자를 문틈 사이로 뻗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

그리고 숨죽인 채로 기척을 최대한 죽이며 진료소 안으로 들어간 진우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냥 진료소군.”

별다른 것이 없는 그저 작은 진료소의 내부였다.

“마력도 느껴지지 않고...”

수상한 점은커녕 마력한점 느껴지지 않는 아무것도 이상할 것 없는 시골 진료소의 모습 그 자체.

“숨겨진 장치나...뭐 그런건...”

진우는 감지 계열 능력을 다중으로 사용하며 진료소 내부를 싹 훓었지만.

“...없고.”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뭔가 허탈함까지 느껴진 터라 진우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김우진의 것으로 추정되는 책상을 바라봤다.

“뭐라도 나오는게 있으면 좋겠다만...”

그리고 큰 기대 없이 서랍을 열어보기 위해 손을 댔다.

“음?”

덜컥 덜컥.

하지만, 서랍에는 열쇠가 잠겨있는지 열리지 않았고. 진우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림자를 이용해 서랍의 잠금장치를 열어보려 했지만.

“...이것봐라?”

서랍에는 지문 인식을 사용하는 잠금장치가 달려있었고, 억지로 열면 부서지거나 흔적이 남을 위험이 있었다.

“음...”

하지만, 이 정도로 SOE의 흔적이 없는데 지레 겁먹고 그냥 물러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지하까지 전부 살펴본 건 아니지만... SOE는 이곳에 없을 가능성이 높아.”

갖가지 감지 계열 능력을 사용해 섬 전체를 전부 살폈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얻은 것이라고는 고양이 한 마리 뿐.

“물론 보통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시간을 낭비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결국 진우는 다시 그림자를 움직여.

콰득!

책상 서랍의 잠금장치를 억지로 열었다.

“쯧, 역시 부서졌나.”

내부의 고정대가 부러져 버린 것을 느낀 진우가 짧게 혀를 차고는 서랍을 열었다.

“다이어리? 일지인가?”

오랜시간을 사용했는지 손때가 묻어있는 큼지막한 다이어리를 꺼낸 진우가 그것을 펼쳤다.

“음...”

(이덕만, 74세. Backache. Chest Pain.)

(배선희. 81세. Backache. Headache. Shoulder Pain.)

(정복만. 77세......)

(심수경. 69세.....)

.

.

.

“관리 일지 같은 건가.”

간단한 의학 용어와 이름. 나이, 처방 등이 적혀있는 내용의 아래로 배편을 통해 요청할 약품, 의료 도구등이 적혀있었다.

“후우, 결국 소득은 없는 건가.”

한 장씩 넘기며 다이어리를 살피던 진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질 찰나.

“음?”

(아직도 가끔 그때의 지옥이 생각난다.)

“지옥?”

다이어리의 중간 이상부터 쓰여있는 김우준의 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병원에 들어갔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세이비어 병원을 얘기하는 건가?”

(좋은 의료진, 최신식 마도 의료기구, 비싸지 않은 진료비. 내가 원하는 그대로의 병원이었고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능력을 각성하고 조절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무료 진료를 봐준다는 좋은 시스템에 감동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아이들의 비명이.)

(지옥이다. 그곳을 본 이후 목숨을 버려서라도 외부에 알려야 했을까? 나는 왜 묵인하고 있었지?)

(뭔가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능력에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인체 실험을 진행한다는게 이상하지도 않았나?)

(왜 나는 그걸 그저 묵인하고 방관하고. 심지어는 참여했지?)

(어린아이의 피를 뽑고, 골수를 뽑고, 미쳤다. 그곳은 미친 자들의 실험장소일 뿐이다.)

(꿈을 꾼다. 비명이 들린다. 용서를 받고 싶다. 미안하다. 너무나 미안하고 용서를...)

일기. 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에 불과한 내용이었다.

죄책감, 후회, 분노, 슬픔.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낸. 그저 속죄의 글.

진우는 잠시 미간을 주무르고는 다시 다이어리로 시선을 옮겼다.

(5년. 무려 5년이나 그곳에서 생활하고 일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질 않는다. 그곳이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드디어 해방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해방되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병원이 사라지고 입막음으로 죽임을 당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병원은 아주 조용히 사라졌고 몇몇의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그저 방치되었다.)

(병원에서 실험에 동원되었던 기억이 날아간 것인지 갑작스레 병원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왜 나는 기억이 남아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의문보다는 원망스럽다. 왜 나는 기억을 지우지 않은 거지? 아니, 이미 지워진 건가? 지워져서 남은 기억이 이 정도라는 건가?)

.

.

.

(한국에 도착한 이후 그저 조용히 죽고 싶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 이 섬에 도착하고 참 좋은 곳이라 생각했다.)

.

.

.

(어르신들의 진료를 보는 것으로 속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저...)

다이어리의 내용은 여기서 끝이었다.

“후우...”

진우는 다이어리를 접어 책상 위에 올려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SOE는 이곳에 없는게 확실하군.”

김우준의 다이어리로 추측해 볼 때. 세이비어 병원이 해체될 당시 사라진 몇몇의 의사들이 SOE의 멤버인 듯 했다.

김우준을 포함한 나머지 의사들은 아마도 암시, 혹은 최면에 가까운 무언가로 인해 SOE의 실험에 동원되다 쓸모가 다해 기억이 지워지고 방치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죽이지 않고 기억만을 지운 것은 의문이었지만. 더 이상 정보가 없는 이상 괜한 추측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원래의 계획은 SOE가 잠입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이곳에서 천지인의 해독제. 혹은 해독제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김우준의 다이어리로 인해 적어도 소경도에는 SOE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이곳에서 더 체류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

천무진과 최유나가 김우준에게 접근해 자연스럽게 정보를 빼내는 것 또한 의미없는 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고민을 이어가던 진우가 어느새 완전히 해가 져버린 창밖을 바라봤다.

“고민만 해서는 의미가 없겠군. 일단은...”

진우가 뭔가를 결정한 표정으로 천무진에게 텔레파시를 걸었다.

-천무진. 계획 변경이다. 일단...

***

“왜 그러시죠?”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입을 꾹 다물어 버린 천무성의 모습에 김우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천무성이 이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의사선생 양반.”

“네?”

“내가 오랜 지병이 있소.”

“아. 그건 큰일이네요.”

건장한 체구이긴 하지만 지금 천무성은 80대의 노인.

지병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대였기에 김우준의 얼굴에 걱정이 먼저 떠올랐다.

“무료로 진료소를 운영한다고 했지?”

“아. 네 맞습니다. 뭐 작은 진료소라서 간단한 처치 정도 밖에는 못하지만요.”

“그리 심한 지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오. 다만...”

말끝을 흐리는 천무성의 말에 김우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료소에 내가 먹던 약이 있나 확인해보고 싶소만.”

“어... 약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진료소에 있는 약 종류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 말씀해 주시면...”

“아니.”

“네?”

뭔가 단호하고 심각해보이는 천무성의 표정에 김우준의 의문이 더욱 깊어지고.

“직접 확인하고 싶소.”

“...?”

굳이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말에 꽤나 고집이 있는 노인이라 생각한 김우준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어려운 건 아니니까 내일 아무 때나...”

“아니.”

“...”

단호하게 말하는 아니라는 말만 두 번째. 이쯤되니 김우준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옛사람이라 뭐든지 빠르게 그리고 직접 확인하는 것을 선호하오. 그러니 지금 확인하고 싶소.”

“...”

지금까지 자신과 대화하며 무언가를 참고 억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노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천무성이라는 노인은 방금 전과 동일한 인물이라고 말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예나야.”

“네. 할아버지.”

김우준은 아직 그러겠다고 대답하지도 않았지만 천무성은 이미 손녀인 천예나를 불러 자리를 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사 양반.”

“아, 네.”

최예나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난 천무성이 예의 그 뭔가를 억누르는 듯한 눈으로 김우준을 불렀고, 김우준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리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니 가서 확인해봐도 되겠소?”

“아...그러시죠.”

김우준은 지금까지의 대화로 천무성이 크게 사업을 성공한 사람이라 알고 있었기에 이런 고집이, 행동력이 있어야 성공하는구나, 라고 판단하고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잠겨있으니 같이 가시죠. 그리 멀진 않습니다.”

“그러지.”

주변의 주민들에게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인사를 나눈 김우준은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일단 두사람을 자신의 진료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저쪽으로 꺾으면 바로...어?”

“냐아옹.”

“아, 보스가 말한게 너구나?”

“보스?”

“그런게 있어요.”

그때.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최예나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래그래 가자.”

“그 아는 고양이 입니까?”

“일단은요.”

“...?”

의문은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은 다시 걸음을 옮겨 진료소 앞에 도착한 김우준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며 말했다.

“고양이는 털이 날릴 수도 있으니 밖에... 어라?”

분명 문을 열기위해 열쇠를 돌렸지만 여전히 잠겨 있는 문에 김우준이 고개를 기울였다.

“문을 깜빡하고 안 잠궜었나?”

그리고 이번에는 제대로 잠금을 풀고 문을 열었고.

“으헉!?”

자신의 진료용 책상 위에 앉아있는 악마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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