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소경도(2)
“자자, 이 집이 천무성씨의 집입니다.”
“와...아...”
“...허...꽤...운치가 있소.”
허름하다. 라는 말을 바꿔 운치가 있다는 말로 애써 돌려말한 천무진이 마을 이장이 안내해준 작은 주택을 바라봤다.
“허허허,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그래도 이게 우리 소경도에서 가장 최신식 집입니다.”
“그..렇습니까.”
일거리가 없어 목수가 상주할만한 섬이 아니라 이 정도면 나름대로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 이장이 대문을 열고 천무진과 최유나를 안내했다.
“아, 그러고보니까 짐은 얼마나 됩니까? 도와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사람을 시켜 배에서 옮길 예정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되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적당히 위장용 짐을 챙긴 짐은 세리나가 붙여준 자들이 가져올 터였다.
“아. 그렇습니까. 허허허. 그럼 배타느라 피곤하실테니 저녁에 마을 회관에서 뵙겠습니다. 주민분들을 소개시켜드리죠.”
“...그러도록합시다.”
60대로 그나마 젊어? 보이는 이장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갔다.
그리고. 집 안에 남은 천무진과 최유나가 서로를 바라봤다.
끄덕.
끄덕.
서로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고.
부스럭, 부스럭대며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집안을 수색했다.
그렇게 약 삼십분 정도가 흘러.
“아무것도 없어요.”
“나도 못 찾았다. 감시는 없다고 보면 되겠군.”
온 집안을 전부 수색한 두 사람이 거실에 모였다.
“정말 노인네들 밖에 없네요.”
최유나가 적당히 바닥의 먼지를 마법으로 쓸어내고 앉으며 말하자, 천무진 또한 적당히 않으며 대답했다.
“그 의사놈을 빼면 젊은 사람이 아예 없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어린애들도 없을 줄은 몰랐어요.”
“말 그대로 노인분들 밖에 없으니까.”
고작 140명 정도의 주민.
외지인은 가끔 낚시 정도를 하러 찾아오는 작은 섬.
이런 곳에 SOE소속의 의사가 무슨 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두 사람이었다.
“일단 지금은 쉬자. 보스가 움직이고 있을거야.”
“쉬고 있어요. 할아버지. 저는 간단한 결계라도 쳐놓을게요.”
“......그래.”
진우가 만들어 준 노인 변장 때문인지 최유나 때문인지 진짜 할아버지가 된 느낌을 받는 천무진, 아니. 천무성이었다.
***
“이상하군.”
[투명]을 유지한 채로 한동안 섬을 둘러보던 진우가 교회로 보이는 한 건물 위에 앉아 중얼거렸다.
“전혀 수상한게 없어.”
아직 모든 건물을 전부 살핀 것은 아니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오는 것이 없었다.
“쉽게 찾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나오는게 없을 줄은...”
[투시], [초음파], [탐색] 등등. 꽤나 많은 감지 계열 능력을 사용했지만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평화롭기만 한 작은 마을뿐. SOE는 그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바로 김우준의 진료소를 탐색해야하나?”
다만, 지금까지의 탐색 범위에 김우준의 진료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김우준이 SOE 소속의 멤버인 이상 호위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마을부터 살핀 것이다.
“...아니. 일단은 작전대로 가자. 천무진과 최유나가 김우준과 접촉할 때까지는 철저히 주변만... 음?”
그때 진우가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던 [마력 탐지]에 뭔가가 걸렸다.
“드디어 흔적이.”
교회 지붕에 앉아있던 진우가 순식간에 움직여 마력이 느껴지는 장소로 쏘아지듯 향하고.
“...”
“냐아앙...”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미치겠군. 사이킥 애니멀이라니.”
초능력을 각성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동물. 최소한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존재라면 각성의 가능성은 열려있고. 때문에 개나 고양이등이 초능력을 각성하는 경우도 흔치 않긴 하지만 있긴하다.
“살아있는 사이킥 애니멀을 보는건 처음인데...”
지능이 높은 인간조차 스스로의 초능력에 몸이 상하고 심하면 죽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초능력을 각성한 동물이 자신의 능력에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에 사이킥 애니멀은 굉장히 희소한 존재였다.
“SOE에서 사이킥 애니멀의 실험을 하는건...”
“냐아아...”
“...아니겠지.”
잠시 의심을 했던 진우였지만. 실험이라면 굳이 이렇게 방치해둘 이유가 없었고. 무엇보다.
“냐...”
죽어가게 두지 않았을 터였다.
진우는 힘 없이 우는 고양이를 향해 [해석안]을 사용했다.
“영양 실조, 기생충에 피부병...뭐 전체적으로 문제가 많지만.”
진우의 눈이 고양이의 뒷다리 쪽으로 향했다.
“제일 큰 문제는 양쪽 뒷다리의 심각한 화상인가.”
심한 화상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게 된 고양이가 방치되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한 진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일단 정보를 수집하고 보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는군. 별 소용도 없는 정보인데.”
그리고 진우가 몸을 돌려 고양이를 외면하려던 찰나.
“냐.아아..”
-누구 있어?
“...뭐?”
고양이가 [텔레파시]의 상위 능력 [염화(念話)]를 사용해왔다.
“지금 네가 말한거냐?”
-인...간?
“허...”
[염화] 자체가 꽤 희귀한 능력이긴 하지만 진우가 이렇게 놀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지금 진우가 놀란 이유는.
“설마 [지능 상승]도 있는 건가? 화상은 본인의 능력에 입은 상처일테니, 최소 트리플이라고?”
고양이 주제에 트리플 복합 능력자라는 것 때문이었다.
“멀쩡한 상태에서 봤다면 진짜 SOE의 실험 대상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군.”
-뭐..라그러..는지 잘..모르겠어.
“언어는 익히지 못한건가.”
부상을 입고 방치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지능 상승]을 가지고 있으면서 언어를 익히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고, 고양이가 능력을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 살려..줘.
“이거 진짜 미치겠군.”
-죽..고 싶지 않..아...
“후우...”
언어와 관계없이 생각 그 자체를 전달하는 [염화]였기에 알아 듣는 거지 그냥 [텔레파시]였다면 진우도 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결국 진우는 고양이의 말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 또한 [염화]를 사용했다.
-이봐.
-어...? 말이..통하는 구나?
-...그건 내가 신기해야할 부분이다만.
고양이와 대화를 하는 것에 약간 위화감을 느낀 진우였다.
-아무튼 살고 싶다고 했나?
-응...아파.. 나.. 살려줘. 아프고 싶지 않아.
진우는 고양이의 말에 잠시 고민했다.
‘그냥 트리플 능력자를 포섭할 기회라고 생각하면 치료해 주고 암시를 통해 내 은혜를 각인하면 그만이지만...’
고양이에게도 통상적인 암시가 통할까 라는 의문은 접어두고, 고양이가 지닌 [지능 상승]에는 정신력을 강화시켜 주는 부가 효과가 있었기에 암시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단순히 생각하면 굳이 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진우가 고민하고 있는 이유는 세가지 초능력을 각성한 고양이라는 희귀성.
그리고 그 가치였다.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대화도 통하며 화염 계열 능력을 완벽하게 다루는 고양이라...’
‘가디언 코리아에 있을 때도 그런 사이킥 애니멀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만큼 포섭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비장의 카드가 될 수도 있어.’
‘하지만, 포섭이라... 고양이를? 음...’
진우가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가던 차에 고양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진우를 바라보며 [염화]를 보냈다.
-살려..주면 뭐든지...할게. 주인..으로..모실게..살려..주라...
마치 진우의 고민을 꿰뚫어 본 듯한 말에 진우가 고민을 멈추고 [염화]를 사용했다.
-내가 치료할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만?
-그..럼 그..렇게 고..민을...하지..않을거야...
-하. 이거야 원...
고양이의 말대로 였기에 진우는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널 살려주면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수 있나?
-맹세...응...맹세..할게...
-그걸 어떻게 믿지?
-...조금만 가까이..와 줘...
-...?
가까이 오라는 고양이의 말에 진우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일단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화아아악!
“뭣!?”
고양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사슬의 형태를 취하며 진우의 전신을 휘감고 사라졌다.
“이게 무슨!?”
그에 놀란 진우가 순식간에 뒤로 물러났지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몰..라...근데...알아...이거 충성...증명...
점점 기운이 빠지는지 고양이의 염화가 뚝뚝 끊겨 들려왔다.
-나...이제..배신..못해...주인..살려..
-...설마...[서약]?
“...설마...[서약]?”
당황하여 [염화]와 육성을 동시에 뱉은 진우가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완벽하게 연결 됐어.’
“하,하하하. 트리플이 아니라 쿼드라였다고?”
[서약] 타인을 주군으로 모시며 생사를 함께하고 서약을 맹세한 자의 근처에 있을 때, 혹은 그자의 명을 이행할 때 마력이 증폭되는 마법에 가까운 초능력.
가디언 총본부 총장의 비서장이 가진, 윌리엄 블로섬의 [해석안]과 동일한 유일급 능력이다.
-살..려...
“이런.”
잠시 멍하니 있던 찰나 고양이는 거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살려야지. 너는 내가 반드시 살려준다.”
정신을 차린 진우가 고양이에게 치료 계열 능력을 퍼부으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지도 못한 비장의 카드를 얻었다. [서약]이라니.’
[서약]도 초능력 관리기관에 등록되어 있기에 진우 또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진우로서는 사용하지도 못할 능력이었기에 고양이를 주운 것은 굉장한 패를 손에 넣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서약]은 주인되는 자에게도 [신체 보정]과 [마력 증대]가 걸리지. 너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고양아.”
살릴까 말까를 고민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고양이가 살기를 그 누구보다 바라게 된 진우였다.
‘그나저나 이것도 냥줍...이 되는건가?’
집사 간택이란게 이런건가? 라고 잠깐 머리에 스쳐간 것은 덤이었다.
***
그날 저녁. 소경도의 마을 회관.
“아이고, 박 영감은 어째 점점 젊어져요?”
“허허허, 할매가 못하는 말이 없어.”
“어이구, 이장. 오랜만일세. 잘 지냈는가?”
“허허허 저야 잘 지냈습니다. 영감님은 어디 아프신데는 없고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이 모인 마을 회관이 굉장히 북적거렸다.
그리고, 마을 회관의 열린 문으로 천무진이 최유나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가자.
“아이고, 오셨구만.”
“저 영감이 이사온사람이여?”
“기골이 장대하구만! 젊었을 적에는 더 장대했겠어!”
“저 아기는?”
“손녀라는구만. 에잉. 부러워서 원.”
“내 새끼들은 얼굴 한번을 안 비추는데 에잉 쯧쯧.”
두 사람을 본 주민들이 전원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더욱더 북적거리는 기분이었다.
“허허허, 오늘 이사 온 천무성이라고 하오.”
“손녀인 천예나에요.”
두사람이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적당한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회관의 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두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오, 김선상님 오셨는가?”
“우리 의사 선상님 오셨구만!”
천무진과 최유나가 들어왔을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환영하는 분위기.
그것과는 상반되게 두 사람이 경계심을 살짝 올리는 찰나.
“자자, 선상님 이쪽분들이 오늘 이사온 천 영감님이랑 그 손녀에요.”
천무진과 김우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어...와 굉장히 크시네요. 반갑습니다. 마을에서 작은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우준이라고 합니다.”
허리를 굽혔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덩치가 있었기에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고,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큰 덩치에 김우준이 살짝 놀랐다.
“...반갑소. 천무성이라고 하오.”
“천예나에요.”
“하하하. 반갑습니다. 진료소는 항상 열려있으니까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괜찮습니다.”
“...그..러지...”
“호,호호호, 할아버님을 모시고 자주 뵐게요. 그럼 잠시...”
“...?”
사람 좋게 웃는 김우준의 말에 두 사람도 씨익 미소를 짓고 고개를 돌렸다.
원래라면 천무진, 혹은 최유나가 김우준과 계속 대화를 나누며 친해져야 하겠지만.
‘참아요!’
‘저놈이 선아와 무성이 그리고 지인이를...!’
‘참으라고 아재, 아니 할배야!’
살짝이라도 방심하면 살기를 터뜨릴 것 같은 천무진을 달래기 위해 애쓰느라 그럴 겨를이 없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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