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동결(2)
진우가 최유나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려고 한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진우가 생각한 초능력의 전달이 실패한게 아니라.
“우웨에!”
그냥 먹이는 것을 실패했다.
진우는 헛구역질을 하는 최유나를 보며 와인잔에 반쯤 남은 자신의 피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니 피끼리 섞여야 할 가능성이 높군. 먹이는 것보다는 수혈같은 방식이 좋겠어.”
“이제와서...?”
“다 토해냈으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지.”
“...보통은 토하지 않을까?”
겨우 진정한 최유나가 텅빈 눈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대체 뭘 하려고 나한테 그...걸 마시게 한거야?”
“글쎄... 일단은 가설일 뿐이다만.”
진우는 와인잔에 든 자신의 피를 찰랑거리며 자신이 세운 가설을 설명했다.
자신이 각성한 초능력 [만능]은 자연스러운 각성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
그 초능력의 종류가 초능력 관리기관에 등록된, 즉, 피를 뽑아 수집한 초능력 인자로 만들어졌을 가능성.
그리고 만들어진 과정이 가디언 국제 연구소에서 인체실험을 통해 진행하는 초능력 추출과 비슷한 방식을 가능성.
“만약 그렇다면 내 피를 통해 초능력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
“헤에...?”
굉장히 흥미로운 진우의 가설에 일단은 마법사인 최유나의 눈이 반짝였다.
“하지만...”
진우는 와인잔에 든 피를 싱크대에 버리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마시게 한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군.”
“에?”
“국제 연구소의 초능력 추출이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단순한 건 아닐거다.”
“어...그렇겠지?”
“지금으로서는 방법을 알 수가 없으니 실험은 나중일이 되겠군.”
와인잔을 정리하는 진우를 최유나가 멍하니 바라봤다.
“그럼 나는 왜...?”
“혹시나 했다.”
“...에?”
똑똑.
진우가 자리를 정리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들어와.”
“아니, 보스!?”
덜컥.
최유나가 발끈하는 것을 무시하며 진우가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고.
“아이고~ 잘 지내셨소?”
얼마전 세리나에게 편지를 전달했던 통신 마법사, 술집의 거한이 들어왔다.
“세리나 블로섬이 올 줄 알았다만.”
“으하하하, 그분은 바쁘니까 어쩔 수 없소.”
거한은 진우를 내려다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때는 통성명도 못했잖소. 전병천이라고 하오.”
“데빌이라고 부르면 된다.”
“데빌이라. 요즘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구만.”
간단히 악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온 전병천이 진우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당분간 당신들과 함께 하라는 명을 받았소.”
“일종의 통신병인가?”
“정확하오.”
고개를 끄덕인 전병천이 허공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들었다.
“나는 사물 공간 이동 마법에 특화되어 있소. 선천적으로 마력이 적어 소형 사물을 전송하는 정도지만, 거리 제한이 없고 미리 정해놓은 위치에 있는 사물을 전송해 오는 것도 가능하지.”
“꽤나 희귀한 마법을 익혔군.”
“뭐 초능력과 마법의 콜라보라고 보면 되오.”
전병천이 건내는 편지를 받은 진우가 곧장 편지를 펼쳤다.
“아, 참고로 나는 전송물이 뭔지는 절대로 보지 않는 주의니까 그 점은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하고 싶소.”
“와 진짜 외모랑 하는 일이랑 너무 갭이 심한데...”
“엥? 아 있었소? 너무 작아서 몰랐군.”
“작!? 니가 너무 큰거야! 나 168이거든!?”
“나랑 일미터가 넘게 차이가 나는데?”
“그건 니가 괴물인거고!!”
티격태격하는 최유나와 전병천을 무시하며 편지를 전부 읽은 진우가 편지를 태워 없애며 천무진을 바라봤다.
“천무진. 천지인을 살릴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두가지?”
“그래 원래는 한가지였지만, 너도 아까의 그 가설은 들었지?”
“아...”
“그걸로 천지인에게 해독 능력을 강제 각성시키는게 첫 번째 방법이다. 될지 안될지는 나도 몰라. 그냥 시간만 낭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어.”
“...”
“하지만,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위험부담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두 번째 방법은 뭔가.”
천무진이 진우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세리나 블로섬이 SOE의 흔적을 찾았다. 예의 그 병원에 속해있던 의사가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하는군.”
“그 세이비어 병원의?”
“그래. 그 의사부터 시작해서 SOE의 뒤를 캐고 해독제를 찾는 것이 두 번째 방법이다.”
진우는 시선을 돌려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천지인을 바라봤다.
“다만, 이 경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다. SOE의 뒤를 캐는 동안 천지인이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SOE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이상 위험부담이 커.”
“후우...”
“시간을 벌만한 수단은 있지만. 그래봤자 한달 정도일 거다.”
“한달이라...”
계획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정보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현재의 상황에 진우는 작게 미간을 구겼다.
‘확실한 정보 루트가 필요해. 지금처럼 타 조직의 정보에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아. 아무래도 송조운을 조금 더 굴려야겠어.’
진우가 송조운을 더욱 굴리겠다는 결심을 하는 찰나.
깊은 한숨과 함께 고민을 끝낸 천무진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로 하지.”
“괜찮은거냐?”
“어차피 첫 번째 방법도 가설일 뿐이잖나. 그게 더 오래걸릴 수도 있고 아예 불가능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지.”
“그럼 시간은 걸려도 확실한 방법을 택하겠다.”
“...알았다.”
결심이 완전히 선듯한 천무진의 표정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병천.”
“엉? 아 얘기는 끝났소?”
“세리나 블로섬에게 공간 확장 가방을 3개 달라고 해라.”
“엥? 그거 무지막지하게 비싼...”
“이미 값은 치뤘다.”
“음...뭐 그렇다면야.”
전병천이 진우의 말에 어디선가 꺼낸 볼팬과 종이에 뭔가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최유나.”
“응. 보스.”
“완전 동결 마법. 사용할 수 있나?”
“...뭔 마법?”
“완전 동결. 분명 네 스승인 청탑주가 만든 마법일 텐데.”
“...”
수, 빙결 계열 마법을 주로 연구, 사용하는 청색 마탑.
최유나가 정인태에게 수작을 당해 감옥섬에 투옥될 때 그냥 방관하기만 했던 최유나의 스승이 있는 곳.
최유나는 진우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난 못해. 스승... 아니. 그 작자는 빙결 계열 초능력이랑 합쳐서 그 마법을 만든거야. 그 작자도 초능력이 없으면 사용 못하는 반쪽짜리 마법이라서... 그래도 일단 배워놓긴 했지만.”
“완전 동결이 초능력과 마법의 복합 이었다라...”
최유나의 말에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분명 청탑주는 [온도 조종]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잘 아네?”
“자세한 방법을 얘기해 봐라. [온도 조절]은 내가 사용한다. 너는 마법의 조정만 생각해.”
“...생각해 보니까 그런 방법도 있었네.”
[온도 조절]은 이미 존재를 파악해 놓은 능력 중 하나였기에 사용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일단 연습은 필요해. 완전 동결은 그 작자 이외에는 사용 불가능한 마법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최유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한 염동 마법으로 소파와 탁자등, 스위트룸 중앙을 치우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가능은 할거야. 잊어버리지도 않았고 보스의 능력 컨트롤은 꽤 좋으니까.”
최유나가 묘한 미소를 띄고 말을 이어가며 진우를 쳐다봤다.
“지인이를 동결시킬 생각이지?”
“그래.”
“흐응~ 많이 힘들텐데...?”
“...? 정신력 고갈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뭐 그것도 있으려나?”
“...도?”
SOE의 뒤를 터는 것이 얼마나 걸릴지는 미지수. 때문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천지인의 독을 멈춰야 할 필요가 있다.
진우가 시간을 벌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바로 청탑주가 만든 완전 동결 마법.
그야말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초고도의 마법이지만.
최유나가 저렇게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를 진우는 몰랐다.
어느새 스위트룸의 중앙을 전부 치운 최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무진과 전병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당히 추울 거니까 아재랑 거기 괴물은 나가. 지인이는 생명 유지 능력이 걸려있으니까 괜찮겠지.”
“부탁하겠다. 최유나.”
“괴물? 지금 괴물이라...”
괴물이라는 말에 발끈하려는 전병천을 천무진이 끌고 나가고.
“자, 그럼 연습해볼까?”
“뭐부터 하면 되지?”
“일단은...”
스위트룸의 중앙에 앉은 두 사람이 진우는 [온도 조절]의 능력을. 최유나가 마법을 사용하며 완전 동결의 연습을 하기도 잠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
쩌엉!
재의 호텔이 자랑하던 스위트룸이 있는 최상층이 통째로 얼어버렸다.
“...”
“...”
그것을 본 전병천이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추운 정도가 아니잖아...아니 그보다 우리 호텔이...”
회색탑주 세리나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부터 생각하는 전병천이었다.
***
덜덜덜덜덜
“......훌쩍.”
평소 보스답게 행동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게 온몸을 떨고 코를 훌쩍이며 진우가 계속해서 [온조 조절]을 통해 최유나가 만들어낸 얼음 덩어리의 온도를 계속해서 낮춰갔다.
“추운건 알고 있지만 불 계열 능력은 사용하면 안돼.”
“알,알고...알,,알고...이..있..”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고 머릿속조차 얼어붙는 듯한 감각은 이미 단순히 추운 것을 넘어 고통이었다.
“어,얼..얼마나...?”
“이대로 절대영도가 될 때까지.”
“......”
허공에 띄워진 사람 하나가 딱 들어갈 정도의 얼음 덩어리.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문자 그대로 뼈속까지 시리게 만들고 있었다.
“냉기는 내가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으니까 좀 더 힘내 보스!”
“......훌쩍.”
그나마 최유나가 어느 정도의 냉기를 막아주고 있었기에 진우가 얼어 죽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거였다.
“힘내라~힘! 힘내라~ 힘!”
묘하게 들떠 있는 최유나를 보면 억지로 피를 마시게 한 복수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단 집중하자.’
이미 열 번을 실패하고 열 한번째 시도.
계속 흐르는 콧물 때문에 탈수가 올 지경이었다.
‘발끝, 손끝 감각이 없어. 동상인가.’
대부분의 냉기를 최유나가 막아주고 있다고 해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지금 진우의 체감 온도는 영하 26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살아있는게 이상할 정도의 온도였다.
‘그래도 앞으로 20도만 더 낮추면...’
너무 빠르지도 않게, 너무 느리지도 않게 온도를 낮춰야 하는 일이었기에 추위 때문에 집중이 깨져 실패한 것이 열 번.
실패하면 최유나가 만들어낸 얼음 덜어리가 깨져 내부의 냉기가 한 번에 방출된다.
‘또 눈사람이 될 수는 없어. 집중...집중...’
스으으으...
진우가 깊게 집중함과 함께 얼음 덩어리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갔다.
‘조금만 더...’
그리고. 얼음 덩어리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투명해진 그때.
“그만!”
“허억!”
크게 소리치며 진우를 멈춘 최유나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유지하라, 유지하라, 그 속에 담긴 차가운 숨결을! [온도 고정]!”
쩌저저적!
최유나가 빠르게 주문을 외워 [온도 고정] 마법을 사용하고, 그와 동시에 한쪽에 누워있는 천지인을 염동으로 띄워 얼음의 내부로 집어넣었다.
“끄으으응...”
말이야 쉽지만, 마법을 유지하며 절대 영도의 얼음 덩어리에 천지인의 육체가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집어넣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있어 중요한 부분인 집중력을 타고난 최유나였기에 힘들지언정 실패하진 않았고.
“시간을 얼려 영원을 맞이하라. [프리즈 오브 이터너티(Freeze of eternity)]!”
쩌어엉-!!!
스위트룸 내부의 모든 냉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완전 동결의 마법이 성공했다.
“하아아아... 드디어 성공했다!”
“...죽겠군.”
투명하디 투명한 얼음의 캡슐 안에 들어간 천지인을 보며 진우가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이제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진우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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