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동결(1)
진우가 나름대로 능력을 숨기고 그림자를 주로 사용했다고는 하나, 모든 것을 숨길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 계열의 그림자. 거기에 음성을 통한 암시 계열, 봉인 사슬을 해제할 수 있을 정도의 마법적 능력, 그리고 빛 계열 능력까지...”
가디언 특수 대응팀, 2급 요원 여서림의 앞. 한 명의 산적같이 생긴 중년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를 알고 있고 거기에 나를 찾아온다 했다라...”
그의 이름은 윤무길. 가디언 특수 대응팀의 대장이다.
윤무길은 자신의 앞에 서있는 여서림을 쳐다봤다.
“또 다른 정보는 없나?”
“대외적으로 죽었다 알려진 타락 성기사, 천무진이 데빌과 함께 있었습니다.”
“타락 성기사라...”
타락 성기사라는 말에 피식 실소를 지은 윤무길이 말을 이었다.
“천무진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빛계열 능력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하긴. 천무진의 능력은 자네의 상위호환이니.”
“...”
천무진의 [광휘], 여서림의 [성광]은 같은 빛 계열 능력이기는 하나 빛과 함께 열을 동반하는 [광휘]와는 다르게 여서림의 [성광]은 신체능력의 향상과 빛 계열 능력 특유의 관통의 성질을 가졌다.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잠시 입을 다물었던 여서림이 윤무길을 보며 질문했다.
“천무진은 왜 감옥섬에 투옥되있던 겁니까?”
“...”
“천무진은 S+급 각성자. 가디언의 규칙에 따르면 사살해야하는 등급입니다.”
윌리엄 블로섬이 만든 봉인 도구는 S급 각성자까지는 완벽하게 봉인할 수 있다.
하지만, S+급 각성자부터는 봉인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SS급은 봉인이 거의 먹히지 않고 Ex급은 당연하게도 봉인 불가다.
때문에 가디언의 규칙상 S+급 각성자였던 천무진은 그 자리에서 사살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천무진은 감옥섬에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제가 모르는 사실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여서림의 시선에 윤무길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S+급이라고 하더라도 봉인은 가능하다. 그걸 모르진 않을텐데?”
“거기에 들어가는 봉인 사슬이면 S급 빌런 열명을 봉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왜 가디언 코리아가 총본부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천무진을 사살하지 않았냐 입니다.”
“하아...”
규칙에 한해서는 똥고집도 이런 똥고집이 없는 여서림의 성정을 알기에 윤무길은 점점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일단 하나.”
“...?”
“총본부의 허락없이 천무진 정도 되는 자를 봉인할 수 있었을 것 같냐?”
“...그 말씀은...”
“총본부의 묵인이 있었기에 천무진을 사살하지 않고 봉인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럼 규칙이...!”
“그 규칙을 세운 총본부에서 묵인한거라니까?”
“규칙은 예외가 없어야 합니다!”
“하아... 빌어먹을 똥고집.”
팀내 욕쟁이로 통하는 여서림이 이렇게 룰 덕후의 모습을 보일 때마다 머리가 아파오는 윤무길이었다.
“다 사정이 있는 일이다. 네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야.”
“하지만...!”
“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서림에게 윤무길이 한 장의 서류를 건냈다.
“이건...?”
“훈련소 상위자 목록. 네 팀에 결원이 생겼잖아.”
“아...”
“배에 구멍 뚫린 놈이 완전히 회복하려면 석달은 걸린댄다. 원거리 계열 팀원 하나 받아.”
“...알겠습니다.”
반쯤은 자신의 능력에 의해 부상을 당했던 팀원이기에 유서림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아 그리고.”
“...?”
“이번에 너희가 출동할 때 인원 배정해준 놈 있지?”
“네.”
특수 대응팀에는 빌런의 능력에 맞춰 출동 인원을 맞춰주는 작전 요원이 존재한다.
“그 놈 누구냐?”
“네?”
“평소랑은 다른 놈이 배정해준 거잖아.”
“아...”
윤무길에 말에 3팀의 작전 요원이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예비 작전 요원이 배정했다는 것을 기억해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 이름이... 임기태?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임기태라...일단 알았다.”
“...? 네. 그럼 저는 이만.”
여서림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윤무길의 사무실에서 나간 후.
“임기태라...”
딸깍, 딸깍.
사무실에 홀로 남은 윤무길은 컴퓨터를 이용해 임기태라는 이름을 찾아봤지만.
“역시 없군.”
특수 대응팀 작전 요원 명단을 아무리 찾아봐도 임기태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역시 암부의 사람인가...? 왜 암부에서?”
암부에서 특수 대응팀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미간을 찌뿌린 윤무길이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바라봤다.
“데빌이라... 뭔가 걸린단 말이지...”
윤무길의 얼굴은 한동안 펴지지 않았다.
***
회색 마탑 한국 지부 내부.
이클립스의 멤버는 폐공장에서 천예성과 천지인을 데려와 여전히 재의 호텔 스위트룸에서 머물고 있었다.
“보스. 우리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거야?”
“세리나 블로섬이 SOE의 정보를 가져오기 전까지는 함부로 못 움직인다고 했을텐데?”
“그래도...벌써 이틀째잖아. 지인이는 괜찮을까 해서.”
“음...”
고개를 돌린 진우의 눈에 스위트룸의 거대한 침대에 누워 천무진의 간호를 받고 있는 천지인이 들어왔다.
“단순한 독이 아닌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능력자의 능력 그 자체를 모방, 혹은 사용하여 만든 독이라...”
안 그래도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독이었기에 별 차이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더욱 복잡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보스.”
“응?”
“보스의 능력이 분명 [만능]이라고 했었잖아?”
“편의상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거긴 하다만. 그렇지.”
“그럼 보스도 그 [브레인 브레이크]? 사용할 수 있는거 아니야?”
“...해보긴 했지만. 안되더군.”
그동안 진우는 자신이 각성한 능력 [만능]에 대해 많은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알아낸 것이라고는 대부분의 능력은 사용할 수 있지만 사용하지 못하는 능력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해석안] 같이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이라고 하는 능력도 사용할 수 있는데?”
“나도 내 능력은 잘 모른다. 애초에 내 능력은 기존의 초능력에 비해 예외적인 부분이 너무 많아.”
이론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은 최대 10개.
그 이상의 능력은 뇌가 버티지 못하고 백치가 되거나 각성 즉시 사망한다고 알려져있다.
물론 이것은 이론일 뿐이며 현존하는 최강의 초능력자가 가진 초능력의 개수는 7개다. 세계 유일의 셉터플(septuple) 능력자라고 칭송받으며 현재 가디언 총본부의 무력대. ‘집행자’의 대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우는 현재 스스로 파악한 초능력의 개수만 해도 174개.
명백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능력의 개수인 것이다.
“분명 뭔가 규칙성이 있을텐데... 그걸 잘 모르겠단 말이지.”
자신의 [만능]이 그저 생각하는 바를 실행하는 능력이었다면 그저 유례없이 강력한 초능력이라고 생각했을 터.
하지만, 초능력끼리의 조합까지 되는 것을 보면 [만능]이 단일 초능력일 리가 없었기에 그 생각은 버린지 오래였다.
그때, 최유나가 어디선가 꺼내온 캔맥주를 따며 말했다.
“그러고보니까 아재의 광휘도 사용하지 못했었지?”
“그래.”
“그럼 직접 인지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네?”
“그렇지. 애초에 나는 초능력을 직접 본 건 몇 번 없다.”
진우의 말에 캔맥주를 홀짝이던 최유나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가디언 코리아의 정보 총괄이었는데도?”
“사무직이었으니까.”
“아, 사무직...”
그때. 뭔가가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분에 진우가 고개를 들어 천무진을 바라봤다.
“천무진.”
“음? 왜 그러지?”
“[광휘]는 세계 초능력 관리기관에 등록되어 있나?”
“세계... 뭐?”
“세계 초능력 관리기관. 15년 전에 생긴 가디언의 연구 기관이다.”
“...아, 그러고보니 그런 것도 있었군.”
천지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던 천무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아마 등록은 안돼있을거다. 당시에는 좀 수상쩍은 느낌이 강해서 등록을 거부했거든.”
“음...”
미간을 찌뿌리며 생각에 빠진 진우의 모습에 최유나와 천무진이 의문을 표했다.
“보스?”
“뭔가 문제라도 있는건가?”
“아니, 문제랄 건 없지만...”
‘[광휘]는 현재까지는 천무진을 제외하면 나타난 적 없는 능력. 천무진이 등록을 거부했다면 당연히 관리기록에 없겠지.’
진우가 사무직이었음에도 초능력의 종류, 사용자와 같은 정보에 밝은 이유는 정보 총괄이었던 만큼 초능력의 종류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 때문이다.
때문에 가디언에 공유되는 관리기관에 등록된 초능력 목록을 외워버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사용하는 초능력은 전부 관리기관의 등록 명단에 있던 것들. [해석안]도 그렇고 복합 능력인 [천상의 목소리]도 그렇고.’
생각에 빠진 진우의 미간이 점점 깊어졌다.
‘등록 방법이 어떻게 되더라? 먼저 직접 능력을 사용해서 초능력을 각성했다는 것을 증명하고...그리고 피를 뽑아서 초능력 인자를...? 초능력 인자?’
스윽 스윽.
깊은 생각에 빠진 진우가 무의식 적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가디언 국제 연구소에서 초능력을 추출하는 방법이 초능력 인자를 뽑아 타인에게 이식하는 거라면?’
‘지난 15년 동안 세계 초능력 관리기관에서 뽑은 초능력 인자가 들어있는 피는 전부 어디로 간거지?’
‘만약 내 능력이 관리기관의 기록 내부에 있는 것들만 사용 할 수 있는 거라면?’
‘[광휘], [브레인 브레이크]와 같이 관리기관의 정보에 없는 것은 사용할 수 없다는게 설명이 된다.’
‘누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지만 고작 몇 미리리터의 피에 담긴 초능력 인자로 [만능]처럼 강력한 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건가?’
‘만약 연구소의 초능력 추출과 그 원리가 비슷한 거라면...’
점점 깊어져가는 생각에 머리가 과열되어 뜨거워질 때 쯤.
“후우. 조금 엇나가긴 했지만 소득은 있나.”
“엉?”
“...?”
이내 고개를 든 진우의 중얼거림에 최유나와 천무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가지 실험해볼게 생겼다.”
“실험?”
“실험?”
뜬금없는 진우의 말에 두 사람이 의문을 표했지만, 진우는 가볍게 두 사람의 의문을 넘기며 최유나를 바라봤다.
“어? 왜?”
“말했잖나 실험해볼게 생겼다고.”
“...엉? 나? 나한테!?”
묘한 진우의 표정에 왠지모르게 소름이 돋는 최유나였다.
***
“꺄아악!! 미쳤어!”
“눈 딱 감고 마셔라.”
“싫어! 싫다고!”
스위트룸에 있던 와인잔에 담긴 붉디 붉은 액체.
보통은 그저 진한 레드와인이라 생각 했겠지만. 진우가 저 액체를 담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봤던 최유나였기에 절대로 마시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뱀파이어인줄 알아!? 아무리 보스지만 너무한거 아니야!?”
붉은 액체의 정체는 진우가 직접 자신의 손가락에서 뽑아낸 자신의 혈액. 즉 피였다.
“내가 괜찮다는데 뭔 상관이냐! 빨리 마셔!”
“진짜로 미쳤어!?”
한 걸음씩 다가오는 진우의 모습에 최유나는 똑같이 한 걸음씩 물러나며 기겁했다.
“아재! 보스가 미쳤어! 어떻게 좀 해봐!”
최유나가 조금 떨어져있는 천무진을 향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난 모르겠다.”
“아재에에!”
진우가 자신의 피를 와인잔에 따르며 어쩌면 천지인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해 둔 터라 천무진은 최유나의 간절한 눈망울을 그저 외면할 뿐이었다.
“자, 눈 딱감고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피냄새 쩔어!”
“...코도 막으면 된다.”
“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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