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세리나 블로섬(3)
세리나 블로섬.
윌리엄 블로섬의 손녀.
세계 제일의 재능.
화산의 마법사 등등. 그녀를 지칭하는 말은 수 십가지가 넘었었으나 지금 현재. 그녀를 지칭하는 단어는 단 하나로 정착되었다.
그것이 바로 ‘회색의 대마법사’. 세리나 블로섬이다.
“허어, 한국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아재 시골 촌뜨기 같아.”
“이래 봬도 서울 토박이다.”
천상의 마천루가 이런 느낌일까. 그저 서울 외각에 있는 빌딩 하나에 들어왔을 뿐인데 이곳에는 또 하나의 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예전에 한번 왔을 때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회색 마탑은 세리나 블로섬이 대마법사가 된 이후 급격하게 성장했다. 최유나, 네가 딱 감옥섬에 갇혔을 때 정도부터지.”
“...세리나 걔라면 그럴 수도 있지.”
다시금 8년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최유나가 살짝 시무룩해졌다.
“세리나 블로섬은 화산의 마법사라고도 불리는 화염 계열 마법의 절대자이기도 하다. 뭐라고 하더라...공간 계열 능력에 영감을 받고 열팽창을 응용, 공간 확장 마법을 개발...이었나?”
“...그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일인지 보스는 모를거야.”
“뭐, 굳이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
하나의 도시처럼 꾸며져 있는 회색 마탑 한국지부.
오버테크놀로지라고 할 수 있는 공간 확장 술식이 들어간 건물로 독일, 미국, 그리고 한국에 단 세개 뿐이었다.
지금도 세리나 블로섬에게 수많은 재벌들과 국가가 술식의 구매를 바라고 있지만, 그녀는 묵묵무답.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있다.
“다 왔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도착한 곳은 작은 술집이었다.
“진짜 이곳이 세리나 블로섬과 연결되어 있는 곳인가?”
“그냥 술집 아니야?”
손님도 별로 없고 애초에 자리조차 별로 없는 구석진 자리에 위치한 술집.
분명 마천루의 내부는 최첨단을 자랑하는 신세계의 모습이었는데 이곳만 중세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허름한 모습이었다.
“굳이 사람이 찾아오지 않게 허름하게 지은거다. 뭐, 그래서 오히려 사람이 몰렸을 때도 있었지만.”
진우의 말대로 너무나 허름한 모습의 술집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고 때문에 한때 이곳에는 회색 마탑의 비밀이 있을 거라는 소문까지 돌았었다.
하지만, 그저 싸구려 맥주와 소주, 맛없는 안주만을 파는 술집은 별다른 비밀이랄 것도 없었고 사람들의 관심은 빠르게 사라졌다.
“아무튼 들어가자.”
“네~”
“그러지.”
세 사람이 술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크허어어어~ 푸후우우우... 크허어어어~ 푸후우우...”
“와아...”
“대,대단하군.”
먼지가 가득한 탁자 위에 누워 엄청나게 코를 고는 거한이 보였다.
“이게 사람이야 괴물이야.”
“마법사가 만든 키메라라도 되는건가?”
그야말로 거한(巨漢) 탁자 위에 누워있음에도 거대하다, 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남자를 보며 최유나와 천무진이 입을 벌렸다.
“내가 알기로는 순수 인간이다만... 확실히 인간 같지 않긴 하군.”
대략적인 키만 2미터 50은 되보이고 손은 말 그대로 솥뚜껑만한 크기에 코고는 소리가 무슨 천둥같은 소리가 났다.
“와, 이거 6인용 탁자네?”
“허, 티타임용 탁자인줄 알았군.”
천무진 또한 2미터에 가까운 거한인데 탁자 위의 거한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어린애 같은 느낌이었다.
“일단 깨워야겠네.”
툭툭.
진우가 거한을 깨우기 위해 어깨를 두드리고, 탁자를 발로 슬쩍 차봤지만.
“크허어어어~푸후우우...”
“...”
미동조차 하지 않는 거한의 모습에 진우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결국, 진우가 [신체 강화]를 사용해.
쿠당탕!
거한을 탁자 위에서 밀어버렸다.
“으허어억!? 뭐, 뭐야!?”
“이래야 일어나는 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 거한이 복싱의 파이팅 자세를 취하며 벌떡 일어나자 진우가 고래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손님이다.”
“어엉?”
어정쩡하게 자세를 취하고 진우와 최유나, 천무진을 바라보던 거한이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손님이셨으면 말을 하시지.”
“신사적으로 깨우니 안 일어나더군.”
“...으허허허! 내가 잠이 좀 많소!”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었는지 덩치에 걸맞는 엄청난 목소리로 말하는 거한의 모습에 최유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귀를 막았다.
“진짜 인간 맞아? 당신 키메라나 뭐 그런거 아니야?”
“엉? 으하하하!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했지! 이래 봬도 서울 토박이 순수 인간이오!”
“서울 토박이는 원래 이런가...?”
최유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천무진을 바라보자, 천무진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으하하하! 아무튼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소?”
거한의 물음에 진우가 품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며 말했다.
“편지 전달이다.”
“엥?”
진우의 말에 거한이 의문을 표하며 진우를 바라봤다.
“거 편지는 우체국에...”
“세리나 블로섬한테 직통 연결.”
“...손님 농담이 심하시네.”
거한은 한순간에 표정을 굳히고 은은한 살기까지 더하며 무거운 분위기를 뿜어댔다.
“으음...”
“어우 괴수가 따로 없네.”
그에 진우의 뒤에 있던 천무진과 최유나가 각자 전투 태세를 갖추며 앞으로 나섰지만.
스윽.
“?”
“보스?”
진우는 팔을 뻗어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다 알고 왔으니 적당히 넘어가지?”
“허, 우리 탑주님을 들먹이고 그냥 넘어가자?”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건 네가 더 잘 알텐데?”
“...”
“그리고 싸운다고 네가 이길 수는 있나? 단순한 통신 마법사 주제에.”
여유롭게 말하는 진우의 모습에 거한은 거의 진우의 머리통만한 주먹을 슬며시 내리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는데...”
“몇 없는 사람 중 하나일 뿐이지.”
그때.
“에엑!? 통신 마법사!?”
최유나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그 덩치에? 그 근육에? 그 얼굴에!?”
“뭐요. 뭐 불만이라도 있소?”
“아,아니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오~!”
“아니 잠깐만, 내 얼굴이 뭐 어때서?”
표정을 구기며 말하는 거한의 모습에 최유나가 본능적으로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헉!? 그런 험악, 아니 흉악한 얼굴로 마법사라는 것도 웃긴데 통신이라니!”
“뭐!? 흉악?!”
최유나의 말에 붉어질 대로 붉어진 거한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만 하지. 이러다가 편지 전달 안 해줄라.”
“핫!? 미안, 너무 충격적이라.”
“...이제 와서 사과해도... 아니 뭐 됐소.”
짧게 한숨을 쉰 거한이 다시 진우를 바라봤다.
“알고 있겠지만, 탑주님이 편지를 확인 하실지 안 하실지는 나도 모르오, 내용이 뭐든간에 응할지도 모르겠고.”
“상관없다. 그냥 전해주기만 하면 돼.”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긁적인 거한이 진우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들며 말했다.
“그래서, 뉘시라고 전해드릴까?”
“음...”
거한의 질문에 진우가 잠시 고민하다가 최유나를 바라봤다.
-최유나.
-엉?
그리고 최유나를 향해 [텔레파시]를 사용했다.
-세리나 블로섬과 너만 알고 있는 별명 같은 것 없나?
-별명? 어...있기야 있는데...?
-알려줘.
-그...
최유나와 세리나 블로섬이 라이벌이기 전에 꽤나 가까웠던 사이였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물은 것이지만.
-그, 뭐냐. 그...
-빨리.
“뭐하슈?”
“잠시만 기다려라.”
질질끄는 최유나의 모습에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쯤.
-아,알았어...그러니까...
진우의 텔레파시에 메시지 마법으로 답한 최유나가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
그리고, 별명을 들은 진우 또한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살짝 고민할 정도였다.
“거 숨넘어가겠네. 이름을 말 못하면 적당히 가명도 상관 없...”
“...주.”
“엉? 잘 못들었슈?”
“후우...”
가까이 귀를 대는 거한의 모습에 진우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차디찬 얼음...공주가 따스한 재의 공주에게. 라고 전달하면 된다.”
“아 그려그려. 얼음 공...뭐요?”
***
“아으...”
“왜 그래 얼음 공주?”
“악!! 아재 죽여버린다!”
붉다 못해 용암 같은 색의 얼굴을 한 최유나가 천무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악! 왜 별명을 그렇게 지었지!? 죽여버리고 싶다 과거의 나!”
최유나와 세리나 블로섬은 8살 때 만난 이후,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류를 시작했다.
각자의 재능이 서로에게 있어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 생각한 윌리엄 블로섬과 최유나의 스승이 도운 덕에 그녀들은 꽤나 가깝게 지낼 수 있었고 각자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친우이자 좋은 라이벌로서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살의 마탑 교류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세리나 블러섬과 최유나는 크게 다투게 되고 좋은 라이벌에서 앙숙에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리고 약 1년. 세리나 블로섬이 윌리엄 블로섬이 탑주로 있는 적색 마탑에서 탈주. 회색 마탑에 들어가게 되고, 최유나는 정인태에 의해 감옥섬에 투옥 된 이후 둘의 연락은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다.
‘이유까지는 모르지만 최유나의 반응으로 볼 때 그리 심각한 사연은 아니야. 부디 세리나 블로섬이 거래에 응해주면 좋겠는데...’
머리를 부여잡고 안절부절 못하는 최유나를 보고 있던 진우가 고개를 돌려 회색 마탑이 자랑하는 재의 호텔을 바라봤다.
“남은 건 저곳의 스위트룸을 빌려서 기다리는 건데...”
세리나 블로섬에게 편지를 전달했으니 남은 것은 재의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기다리는 것 뿐이었지만.
“돈이 없군.”
지금 진우, 아니. 이클립스에는 돈이 없었다.
“정보상에라도 가서 적당한 정보를 팔고...”
때문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진우가 잠시 고민 하려던 찰나.
“그럴 필요 없어.”
“음?”
“누구냐!”
진우의 바로 왼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무진이 순식간에 진우를 당겨 자신의 뒤로 옮기며 소리쳤다.
“너희가 불러놓고 이러기야?”
“허.”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눈. 전체적으로 갸날프다 라는 말이 어울리는 몸에 탁한 회색 머리카락. 그리고 다 타버린 재와 같이 무감정한 표정.
“세리나 블로섬?”
“맞아.”
회색의 대마법사 세리나 블로섬이었다.
***
“한국에는 오랜만이네.”
“...”
재의 호텔로 들어와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스위트룸으로 들어가는 세리나를 보며 진우가 살짝 눈을 찡그렸다.
‘너무 빨라. 적어도 몇 시간은 기다릴거라 생각했는데...’
슬쩍 최유나를 바라보니 세리나 블로섬이 나타나면서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굳어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나? [천의 얼굴]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데?’
회색 마탑 한국 지부에 들어오기도 전에 사용했던 환상 계열 능력 [천의 얼굴].
얼굴을 가리고 타인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에 있어서는 A급 이상의 효율을 내는 능력.
‘[천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어. 적어도 우리를 특정할 수 있을 만한 정보는 흘리지 않았다. 그럼 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자, 그럼...”
화르르륵!!!
스위트룸의 중앙 소파에 앉은 세리나 블로섬이 입을 열자. 스위트룸 벽을 가득 채우는 불꽃의 벽이 솟아났다.
“누가 그 빌어먹을 별명을 알려줬는지 얘기해줄래?”
무감각한 표정과는 다르게 뭔가 열 받은 음성으로 말하는 세리나 블로섬의 모습에 최유나가 크게 움찔했다.
“하나만 물어도 되나?”
그에 진우가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하자, 세리나 블로섬이 진우를 바라봤다.
“흐음...먼저 질문한건 난데...뭐 상관없나. 말해봐.”
“먼저 재의 공...”
화르르륵!
진우가 재의 공주라는 단어를 말하려 하자 주변 불의 벽에서 불꽃이 검으로 형상화하며 진우의 목에 겨누어졌다.
“별명은 말하지 말고.”
“...그 별명은 최유나와 당신 둘만 알고 있는게 맞나?”
“그래. 앞에 차디찬, 그리고 따스한을 붙이는 건 걔밖에 없어. 유치해서 원.”
“흠...”
‘역시 최유나 때문에 십분도 안되서 나타난건가?’
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뭐?! 유치!?”
“응?”
“잠...”
“상징적으로 뭘 붙이자고 한건 너거든!?”
가만히 있던 최유나가 세리나 블로섬의 말에 욱하며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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