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세리나 블로섬(2)
마법.
정형화 된 술식을 통해 자신의 마력과 외부의 마나를 공명시켜 특정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
“서클의 이미지는 뭐든 좋아. 그냥 이름만 서클인거지 단적으로 말해서 별 모양도 상관없어.”
그 시작은 심장에 마력을 축적하여 자신만의 속성으로 만드는 것.
“보스는 그림자를 자주 사용하니까 그걸 이미지 삼아도 괜찮겠네.”
속성은 많지만 그만큼 자신과 딱 맞는 속성을 찾기란 어려운 법이다.
“으음...잘 안되는군.”
눈을 감고 집중하던 진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보스가 올해로 서른 하나라고 했지? 나이 때문인가?”
뭐든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것이 빠른 것은 당연한 것.
마법 또한 그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최유나의 말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도 대충 감은 잡았다.”
“진짜?”
“그래. 해석안으로 네가 마력을 운용하는 걸 봤으니까 언젠가는 되겠지.”
“흐음~ 그렇구나~”
그때, 구석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천무진이 다가왔다.
“끝났나?”
“일단은.”
“그럼 이번에는 내 차례군.”
천무진이 진우의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보스는 무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지?”
“음...”
천무진의 말에 진우가 잠시 머릿속을 정리하고는 입을 열었다.
“마법과는 다르게 단전에 축적하는 마력을 이용하여 육체를 강화한다... 정도인가.”
“정말 기초만 알고 있군.”
“현역 때는 바빠서 제대로 알아볼 생각도 안했으니까.”
진우의 말에 머리를 긁적인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무공’이라 하면 사람들은 어떠한 구결, 혈도 같은 것을 따라 마력을 움직이고 축적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그건 완전히 틀린 말이다.”
“음? 하지만 무공의 기본은 구결에서 시작되는 것 아닌가?”
천무진이 진우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무공을 익힐 경우다.”
“음...”
“초능력은 마력을 통해 발현되지. 예를 들어... 보스는 [파이로 키네시스]도 사용할 수 있지?”
“그래.”
화륵!
진우가 손가락 끝에 작은 불꽃을 만들어 냈다.
“[파이로 키네시스]는 정말 많은 초능력자가 가지고 있는 기본 능력이지만, 기본 능력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화염 계열 능력 중 가장 다루기 어려운 능력으로 알려져있지.”
“그래.”
“혹시 왜 그런지는 알고 있나?”
“스스로를 태워 버릴 수도 있으니까.”
“정확해. 각성 초기에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내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음.”
실제로 [파이로 키네시스]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아기들이 본인의 능력에 다치거나 죽는 경우는 매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어른이라 할지라도 후천 각성으로 [파이로 키네시스] 단 하나만 각성하는 경우 화상을 입거나 불타 죽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능력을 사용하다 보면 더 이상 자신의 능력에 다치는 일은 생기지 않지.”
“그러고 보니 그렇군. 1년차 이상의 능력자가 자신의 능력에 다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그 이유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한 내성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본능?”
“그래 본능. 초능력도 마력을 사용하는 능력.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전신에 마력을 돌리며 내성을 기르게 되는 거다. 그게 무공의 기본이 되는 토대를 만들지.”
“음...”
“거기에는 구결도 없고, 혈도도 없어. 그저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본능만 있을 뿐이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자신이 만들어낸 불꽃을 바라보는 것을 본 천무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공은 그것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보다 강력하게 만든 것에 지나지 않아.”
“...꽤나 잘 짜여진 이론이군.”
“아아, 내 무공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이론적으로라도 잘 알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때.
“아버지!!”
약간은 수리된 폐공장의 문을 박차며 천예성이 들어왔다.
“예성이?”
“누나!! 누나가!!”
“지인이가 왜?!”
***
폐공장을 개조하여 만든 임시 병실.
“하아. 하아.”
“지인아...”
그곳에서 은색 막에 쌓여 누워있는 천지인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보스. 어떻게 안되는 건가!? 방법이! 방법이 없나!?”
“...”
진우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은색의 막은 치유, 재생, 멸균 등. 꽤나 많은 효과가 있는 능력. 웬만한 병은 시간만 들이면 치료가 되는 상당히 좋은 능력이었지만.
천지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병 같은 것이 아닌 독이 이유. 그것도 뇌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극독이었다.
“해독 능력은 있지만, 독의 조합식을 모르는 이상, 시간벌이 밖에는...”
그렇기에 진우 또한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천무진이 천지인의 손을 이마에 대며 고개를 숙였다.
“보스. 짐작가는 거라도 없어?”
그 모습을 본 최유나가 진우의 귓가에 속삭이듯 말했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벌떡!!
진우의 말을 들은 천무진이 벌떡 일어나며 진우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왔다.
“정말인가!?”
“하지만...”
“말해주게!! 제발! 뭐든지 하겠네!!”
“...”
절박한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독 계열 능력자는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천무진이 진우의 말을 단 한 개도 놓치지 않겠다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내가 알기로 이 정도 수준의 독을 만들 수 있는 독 계열 능력자는 모두 여섯명. 그 중 셋은 최음제나 미약을 만드는 잔챙이이니 아마 나머지 셋 중 하나가 만든 독이겠지.”
“그게 누군가! 당장 가서 잡아오겠네!!”
“끝까지 들어라.”
“...”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은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단호하게 말하자 천무진이 약간이나마 진정하는 모습이었다.
“후우, 원래라면 조금 더 힘을 기르고 말하려 했지만...”
천지인이 죽으면 천무진이 어떻게 행동할지 뻔하게 보이기에 그럴 수도 없게 되었다.
“하나는 A급으로 가디언 코리아, GK 제약에 소속된 약사다. 독을 약으로 사용하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자이기도 하지.”
“...”
“다른 하나도 A급으로 정인태 지사장의 호위 중 하나다. 해독이 전문이라고는 하지만 아마 독을 만드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을거다.”
“마지막은...!”
“...나머지 하나는 황룡 그룹 직속 길드에 소속된 S급 각성자다.”
“황룡...? 그 황룡 말인가?”
“그래.”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황룡(黃龍) 그룹’
반도체, 차동차, 스마트폰, 거기에 각성자 장비까지 돈이 되는 모든 것을 하는 글로벌 대기업.
가디언 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하고 ‘협력’ 관계에 만족하고 있는 거대 집단.
“황룡 길드의 부길드장이 독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진우가 말한 인물 하나하나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천무진의 표정이 참담하게 변했다.
“보스는...누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나.”
“...확률적으로는 GK 제약에 있는 놈과 정인태 지사장의 호위겠지. 황룡 그룹이 네 딸을 중독시킬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겠지.”
황룡 길드의 부길드장보다는 낫지만 그럼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천지인을 바라보는 천무진의 눈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천무진이 천지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어떻게...방법이 없겠나?”
“...지금 당장은...힘들지. 하지만, 한 달. 한 달 후에는...”
“지인이가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까...?”
“...”
진우의 능력으로 기력을 보급하고 독의 진행을 늦추고는 있지만, 이미 중독된지 수년차인 천지인은 당장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이었다.
“보스. 부탁이네. 죽으라면 죽고 죽이라면 죽이겠네. 내 복수는 이루어 주지 않아도 좋아.”
가라앉은 천무진의 목소리가 울고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내 딸... 지금까지 버텨온 불쌍한 내 딸 지인이 좀 살려주게...”
그리고.
“저도 부탁드립니다!”
“천예성...”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가만히 서있던 천예성이 무릎을 부서질 듯이 꿇으며 소리쳤다.
“누나가 중독된 것도 모르고 그저 유전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도! 형도! 똑같이 돌아가시고 혼자 저를 보살펴 줬던 누나가 쓰러졌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두서없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소리치는 내용이었지만.
“뭐든지 하겠습니다! 제발! 제발 누나와 아버지를 구해주십시오!!”
그럼에도 진심은 담겨있다 못해 넘치고 있었다.
진우가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있는 천지인을 바라보며 자신의 딸 서지은과 아내 이은선을 떠올렸다.
‘지은이나 은선이가 이렇게 된다면... 나는 무슨 선택을 할까.’
“제발...제발 부탁하네!”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천무진 또한 진우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이마를 박고 있었다.
‘위험 부담은 엄청나다. 계획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전부 붙잡히거나 죽겠지. 하지만...’
진우가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천무진의 어깨를 잡아 올렸다.
“일어나.”
“보스...”
“보스이기 전에 같은 조직의 동료다. 동료의 가족을 버리는 짓은 하지 않아. 그리고.”
천무진의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천예성 또한 일으켜 세우며 진우가 말을 이었다.
“나도 딸이 있는 아빠고, 가장이다.”
“그래...그랬지.”
천무진이 감옥섬에서 진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빌런이 되는 것조차 감수하겠다 외친 그의 말을 말이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큰 건 사실이야. 까딱하면 전부 죽을 거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작전을 생각할 필요가 있어.”
“고맙네! 보스와 유나양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 최유나가 씨익 웃는 표정으로 다가와 천무진의 등을 두드렸다.
“에이~ 아재! 내가 죽는 것 따위를 무서워 할 것 같아요?”
“최유나...”
“그리고! 지인이랑 저는 이미 화장품도 나눠 쓴 사이거든요? 얼마든지 목숨을 걸어주겠다 이거에요!”
“하...하하하...”
자신을 위로하는 건지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건지 모를 최유나의 말이었지만.
천무진은 배신 당해 12년이 지나서야 정말 믿고 등을 맡기길 동료를 만났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정말로 고맙네...! 반드시...반드시 이 은혜 잊지 않겠네!”
결국 천무진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진우와 최유나를 끌어안았다.
“악! 수염 따가워! 아재 냄새나!”
“그...이것 좀...”
“고맙네! 정말로! 고마워!!”
천무진은 한동안 두사람을 놓아주지 않으며 눈물을 흘렸다.
***
“마탑에 갈 필요가 있겠어.”
“마탑?”
이틀정도 폐공장 방에 틀어박혀 작전을 세우던 진우가 나오자 마자 한 말에 최유나가 표정을 찡그렸다.
“그래. 마탑 중에서도 회색 마탑.”
“에엑!?”
“회색 마탑? 그게 뭐지?”
회색 마탑이라는 말에 최유나가 기겁을 하자 천무진이 그녀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회색 마탑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 천무진은 모르겠군. 10년 전에 생긴 새로운 마탑이다.”
“호오...”
“뭐, 마탑이라고는 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암시장 같은 곳이다.”
“그런데도 마탑이라고 칭한다고?”
“그래. 자칭이긴 하지만.”
진우는 무언가가 잔뜩 쓰여지고 그려진 종이를 식탁위에 펼치며 말을 이었다.
“회색 마탑은 청, 적, 백, 흑. 이렇게 네 군데의 마탑의 추방자와 낙오자가 모여 만든 곳이야.”
“호오. 그런 곳을 가디언이 그냥 두고 본다고? 잠재적 빌런 집단이지 않나.”
“처음에는 꽤 심하게 탄압 받았지만. 2년도 되지 않아서 탄압이 끝났지.”
“2년? 고작 그 정도 시간만에?”
“그래. 대마법사가 나왔거든.”
“허? 추방자와 낙오자 중에서?”
“정확하게는 낙오자 중에서. 그자는 회색의 대마법사라고 이름 붙혀지고 가디언에서도 주의 깊게 살피기만 하는 존재가 됐지.”
“흥미롭구만.”
청색, 적색, 백색, 흑색의 네 마탑에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나온 자들을 낙오자, 혹은 낙오 마법사라고 부른다.
적응을 하지 못해 나온 만큼 경지가 높지 않고 스승이 없는 만큼 성장이 느리다.
그런 그들 중에서 능력자로 치면 S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마법사가 나왔다는 말에 천무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 회색의 대마법사가 만든게 세계적인 암시장. 회색 경매장이지. 이곳에서 구해야 할 물건이 있다.”
“음...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지 않은가.”
“그래. 그래서 이번에도 정보를 주고 직접 거래를 할 생각이야.”
“누구와?”
진우가 최유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회색의 대마법사. 세리나 블로섬.”
“으에에...”
굉장히 싫어하는 최유나의 모습에 천무진이 의문을 가질 찰나. 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 윌리엄 블로섬의 손녀이자 한때 최유나의 라이벌이었던 사람이지.”
“호오.”
“에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