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세리나 블로섬(1)
당연하게도 정부의 모든 이들이 가디언에 협력하는 것은 아니다.
돈, 명예, 권력.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부가 비슷한 단체인, 아니. 더욱 큰 단체인 가디언을 좋게만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가디언에서는 정치인을 좋게 타이르고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보단 강압적으로 약점을 잡아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걸 선택했지.”
진우가 손에든 서류를 훑어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대통령 우석훈도 비슷한 상황이야.”
“하지만 우석훈 대통령은 청렴하고 일 잘하기로 인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천무진이 아들 천예성이 만들어준 음식들을 먹으며 물었다.
진우는 대충 입에 아무거나 넣으며 대답했다.
“맞아.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어디있겠냐 만은, 가디언 코리아에서도 마땅한 약점을 찾을 수가 없었을 정도의 사람이지.”
“그럼 문제 없는 것 아닌가?”
“아니, 가디언 코리아에서는 약점을 ‘만들’기로 결정했어.”
“만든다?”
진우가 천무진과 최유나를 보며 말했다.
“정보 총괄이었던 내가 이런말 하기는 뭐하지만, 너희도 잘 않지 않나.”
“...정보 조작인가.”
“맞아.”
“..짜증나는군.”
진우가 옆에 둔 각종 서류중에서 일부를 떼어 식탁 위로 올렸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국선당 당대표. 이렇게 네명은 모두 비교적 청렴한 사람들이지. 욕심은 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음...”
“그리고. 모두 가디언 코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약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우석훈 대통령은 선거 투표 조작, 불륜, 국고 횡령.
국무 총리는 수 많은 연예인들과의 마약파티 스캔들.
국방부 장관은 살인, 그리고 군대 내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의 조작.
대통령 소속 정당, 국선당의 현 당대표는 뇌물, 횡령, 투표 조작.
죄질만 보면 정치를 하면 안되는 사람만 모아둔 쓰레기 집단이었다.
“정보 조작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상부에 따지다가 대차게 까였었지.”
진우가 네 개의 서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 지금은 GK의 목을 조를 쇠사슬로 사용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와, 별명이 데빌이라고 악마처럼 웃는 것 봐.”
“소름돋는구만.”
“아재도? 나도!”
“...일단 밥이나 마저 먹자. 맛있네.”
***
콰아앙!
가디언 코리아의 대회의실. 그동안 데미지가 누적되기만 하던 원탁이 가디언 코리아 지사장, 정인태의 주먹에 결국 반으로 쪼개졌다.
“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거야!!!”
원탁을 반으로 쪼개버린 정인태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극히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내가 씨X! 본사랑 지사의 경비를 강화하라고 했지! 다른 곳! 특히 GK은행에서 S급을 이동시키면 어떻게 하자는거야!!!”
본래 GK은행 본점에는 보통 두 명, 최소 한 명의 S급 각성자가 반드시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것은 정보부도 모르고 있는 상층부만의 보험이었다.
하지만, 진우가 일으킨 감옥섬 사건에 의해 가디언 코리아 본사, 지사의 경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S급의 각성자를 본사로 이동시켰고, 그 사이에 GK은행 본점이 털린 것이다.
“솔직히 말해! 어! 니 새끼들 첩자지?”
“...송구합니다.”
“송구고 나발이고 씨X!!!”
0번 금고, 그 내부에 있는 자료들은 절대로 세간에는 알려지면 안되는 것들. 아니, 정확하게는 정치인들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들.
“하아, 하아. 대처 방법.”
“예?”
“씨X! 이미 털린 건 털린 거니까 대처 방법이나 생각하라고!!”
“예,옙!!”
정인태는 이미 일어난 일을 추궁하는 것보다는 이후의 대처법을 마련하는 것을 택했다.
“울산 지점의 금고에서 털린 비자금 때문에 몇몇 정치인들이 불만을...”
“경찰과 서울 시장이 빌런을 막지 못한 책임 추궁을...”
하지만, 정인태가 열을 식힐 틈도 없이 계속해서 갖가지 소식이 들어왔고.
<속보. 서울 GK은행 본점 털리다?!>
<오늘 오후 3시 경, 서울 강남에 위치한 GK은행 본점에서...>
<새로운 특급 빌런 조직. 이클립스. 극지의 마녀, 타락한 성기사가 소속된 극악한 집단?>
<단 다섯명의 인원만을 보낸 가디언 코리아. 직무유기, 이대로 괜찮은가.>
계속해서 뜨는 뉴스의 내용에 결국.
“크아악!! 젠장할!! 빌어먹을 악마 새끼!!!”
“아아악! 막아!!”
“비상! 비상!!”
정인태 지사장이 폭발하며 대회의실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다.
***
“흠...”
에벌랜드 지하, 템페스트 본부.
“4백 74억이라... 우리에게는 피해도 없고... 허허, 이거 화를 낼 수도 없게 해놨구만.”
도민경으로부터 도착한 보고서를 읽은 도석환이 너털 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을 미끼로 이용해 자신들은 GK은행 본점을 털어버린 이클립스.
하지만, 템페스트에는 아무런 피해도 없으며 오히려 가디언 울산 지부가 우왕좌왕한 덕에 더 쉽게 흔적을 지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거...”
도석환은 방금 전 이클립스에서 날아온 전서를 집어들었다.
“종이학이라니 이것 참...”
초능력, [종이 생명체]를 사용해 종이학, 종이말 등을 만들어 미리 설정해놓은 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 편지.
단순한 편지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마법사가 만드는 마법 스크롤을 이용해 테러에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도석환은 진우가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별 말을 안했지만, 사실 도석환이 따진다 해도 진우로서는 딱히 할 말은 없는 일이었다.
“바로 다음 표적이라...”
종이학의 내용은 가디언 코리아와 정치인들이 모아놓은 비자금이 있는 장소 하나.
울산 GK은행을 턴지 하루도 안됐음에도 바로 다음 표적을 보낸 것이었다.
“음...”
<이번 일로 인해 비자금의 은닉장소가 변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양이 상당하고 전국에 퍼져있기에 시간이 걸리겠죠. 저라면 이번 일주일 안에 최소 4군데는 더 털겁니다.>
“말은 쉽지.”
<쉽게 털 수 있는 은닉 장소를 제공, 그리고 상세한 계획을 짜드리는 대신 두가지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도움?”
<하나는 대통령과 연결 될 수 있을 만한 연결고리.>
“허.”
<하나는 저희 조직 이클립스의 은신처 마련입니다.>
“이건 그나마 낫군.”
<은신처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닌가. 이게 더 어려운가?”
진우의 편지를 전부 읽은 도석환이 편지를 내려놓으며 미간을 매만졌다.
“이걸 먹지 않을 수도 없고... 골치 아프군.”
단순히 먹고 사는데에는 에벌랜드의 수익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도석환이 굳이 템페스트라는 거대 단체를 만든 이유 때문에라도 자금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상황.
“자유라...”
도석환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데로. 그렇게 사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지 생각했다.
“거기 누구 있나.”
“예. 보스.”
도석환의 집무실 밖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가서 이 실장이랑 류 지배인 좀 불러와라.”
“예.”
조직원이 멀어지는 소리와 함께 도석환이 정치인 비자금 은닉 장소가 담긴 자료를 바라봤다.
“추정 금액 700억 이상이라...”
보석, 금과 같이 현물로만 채워졌다는 이번 표적지.
경비 인원, 교대 시간, 초능력의 종류까지. 수많은 정보가 담긴 자료에 도석환이 피식하며 웃음을 지었다.
“이게 바로 악마의 농간이라는 건가. 뱉을 수가 없는 제안이구만.”
진우가 만든 판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에도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
“대체 그놈은 뭔 일을 하던 놈이길래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건지...”
얼굴에 씌워진 가면이 가면이 아니라 진짜 얼굴이었다 해도 믿을 정도의 악마 같은 정보력이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는 사람이 한명 있긴하군.”
도석환은 얼마전까지 같은 빌런 조직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가디언의 ‘귀’를 생각했다.
두각을 나타내고 가디언 코리아의 정보 총괄이라는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단 1년. 이후, 3년 만에 가디언 총본부 정보 부총괄에 오르고, 이유는 불명이지만 일년도 안되어 다시 가디언 코리아로 돌아왔다던 사내.
“분명...서진우라는 이름이었지.”
하지만, 사사건건 가디언 최상부의 의견에 반박하고 충돌하던 그는 가디언 코리아에서 호위를 축소한 탓에 빌런의 테러에 의해 사망했다고 알려졌다.
“그가 죽은게 가디언 코리아가 호위를 줄였기 때문이긴 하지만... 이걸 아는 사람은 없겠지.”
자신조차 정말 최선을 다해 숨겨놓은 끄나풀에 의해 알아낸 정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이것도 틀린 정보였으나, 도석환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음... 그가 죽으니 이렇게 틈을 벌리는 자도 나오는 법인가.”
도석환은 가디언의 귀가 정보 총괄로서 활동하던 5년 동안 숨죽이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수많은 조직들을 떠올렸다.
“우리도 지방 지부 몇군데가 들켰었지...”
에벌랜드야 정말 필사적으로 숨겨왔고 마법 계약까지 동원하여 지키고 있기에 들키지 않았지만, 도석환은 만약 서진우가 죽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했다면 또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디언 코리아도 갈 때까지 갔어. 그런 인재를 죽게 내버려 두다니.”
서진우가 죽자마자 그가 구축했던 정보망은 붕괴했다.
애초부터 그렇게 설계된 정보망이었기에 가디언으로서는 일부의 정보망을 살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었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데려왔을 것을. 참 아쉽군.”
진우가 살아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신에게온 편지의 상대가 그 서진우라는 것을 모르는 도석환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아무튼 지금으로서는 그가 죽은 것은 호재. 숨죽이고 있던 다른 빌런 조직 또한 움직이겠지.”
이클립스와의 동맹 덕에 다른 조직보다 한발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템페스트였기에 도석환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똑똑.
“이 실장입니다. 류 지배인도 함께입니다.”
“들어와.”
본격적으로 활동할 생각에 들뜬 도석환의 눈빛은 전성기의 그것과 매우 닯아 있었다.
***
“으음...”
“응? 뭘 그렇게 귀를 긁어?”
집중하지 못하고 귀를 긁는 진우를 보며 최유나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누가 보스 욕하나 보다.”
“나를 욕할 사람은 많겠지. 오래살겠군.”
“보스 죽이면 죽기는 해?”
“...글쎄.”
“아니 농담이었는데 진짜 안 죽는거야?”
실제로 한번 죽었다 살아난 진우였기에 뭐라 대답해 주기가 애매한 부분이었다.
“그것보다 계속하지.”
“아, 응.”
지금 진우는 최유나에게 마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마법 그리고 무공을 배우지 않아 초능력을 사용할 때마다 두통에 시달리는 것은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어...어디까지 했더라...”
“서클까지.”
“아!”
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최유나가 말을 이었다.
“마법사는 심장에, 무인은 단전에 마력을 축적해. 그렇게 축적한 마력을 마법이나 무공을 사용할 때 소모하지. 물론 초능력에도 사용할 수 있고.”
“음.”
“다만 심장이랑 단전에 축적된 마력은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심하면 폭주해서 펑! 그래서 양쪽을 다 익히는 건 불가능해.”
최유나는 허공에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 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특징이랄까? 마법사은 심장의 마력과 외부의 마력을 동조시켜서 어떠한 현상을 만들어내지, 이게 마법이야.”
“외부의 마력이라...”
최유나를 바라보는 진우의 눈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최유나의 말대로 심장에서 시작된 마력이 머리를 통과해 허공의 마력과 동조하고 있어. 비율은...대략 3대 8정도 인가.’
“그... 해석안으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조금 찜찜한데...?”
“아, 미안하군.”
해석안은 마력을 시각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능력 또한 있었기에 사용한 것이지만, 최유나처럼 수준 높은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찝찝한 기분을 들게 한다.
“마법이라...”
해석안을 해제한 진우가 눈을 감고 신체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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