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이클립스(2)
“아재 착지 너무 못하는거 아니야?”
“난 비행 능력이 없다.”
바닥에 균열을 만들어내며 착지한 천무진에 살짝 놀란 최유나가 투덜거렸다.
그에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던 진우가 말했다.
“말싸움은 나중이다. 경비를 제압해.”
“경비?”
“음...꽤 빠져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많군.”
천장에 거대한 고드름이 떨어진 충격으로 꽤 많은 수가 부상을 입거나 정신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아직 많은 숫자가 어정쩡하게 서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웬놈들이냐!!”
그때 정신을 차린 경비 팀장이 허리에서 검과 권총을 뽑으며 소리쳤고.
챠자자장!
그에 다른 경비들 또한 각자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하나, 둘, 셋... 뭐야 뭐가 이렇게 많아?”
“누가보면 은행이 아니라 군부대인줄 알겠군.”
저벅저벅.
또각또각.
천무진과 최유나가 진우를 지키듯이 앞으로 나서며 여유롭게 말하자.
“강도다! 제압해라!”
““예!!!””
무기를 꺼내들고 있던 모든 경비원이 동시에 천무진과 최유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흠.”
천무진이 일사분란한 경비원들을 보며 살짝 감탄하기를 잠시.
“어딜!”
쩌저적!
콰과과광! 채에엥!
최유나가 사용한 아이스 베리어가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보통 공격이 전부 막히면 당황하기 때문에, 최유나가 그 틈을 노리려 했지만.
“빙결계 마법사! 묶인다! 빠져!”
샤샤샥! 쩌저적!!
“에엑?!”
경비 팀장의 빠른 판단에 최유나의 공격은 애꿎은 땅만을 얼려버렸다.
“...상당히 경험이 많은 친구군.”
그걸 바라보던 천무진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경비팀장을 바라봤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로 있는게 많거든.”
“보스?”
그때 진우가 앞으로 나서며 천무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최정예...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꽤 까다로운 상대일거다.”
“뭐. 그렇게 보이긴 하는군.”
화염 계열 능력자에게 발이 묶여 고생하는 최유나를 바라보며 천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옥섬에서는 일시적으로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 수 있었지만. 여기서는 달라. 그때와 똑같이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면 꽤 힘들거다.”
“흠...”
천무진은 12년. 최유나는 8년. 보통의 사람이라면 폐인이 되기에 충분한 그 긴 시간 동안 그들은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구속되어 있었고. 그만큼 천무진과 최유나의 힘은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감옥섬에서야 진우가 봉인 사슬에 수작을 부려 일시적으로 마력 버프를 받아 한계를 넘어섰었지만.
“확실히. 지금의 나는 S급 정도. 최유나는 S-급 정도인가.”
천무진의 전성기는 S+급. 최유나는 S급. 지금의 그들은 한단계씩 실력이 낮아져 있는 상태다.
“이곳의 경비원은 전원 A-급과 A급이지. 최상위는 없다고 하나 팀워크가 좋으니 나름 재활에 도움이 될거다.”
“재활치고는 빡세지만...”
진우의 말에 피식 웃음을 지은 천무진이 고생하고 있는 최유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마음에 드는군.”
“아재!! 빨리 도와줘! 얘네들 연계가 장난이 아니야!”
“간다 가.”
화아아악!
전신에 [광휘]를 둘러 육체를 강화하며 최유나를 공격하는 능력자들을 향해 달려든 천무진을 보며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울 필요는 없겠군. 그럼...”
그리고 그들의 전투는 자신과는 상관 없다는 느낌으로 여유롭게 주변을 살폈다.
딱. 딱. 딱.
진우가 적당히 주운 철 파이프로 바닥을 두드리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여기 어디쯤 일텐데...”
딱. 딱. 땅. 땅.
그리고 잠시후 명백히 소리가 다른 바닥을 찾아냈다.
“여기군.”
파이프를 던져버린 진우가 소리가 다른 바닥 위에 손을 올렸다.
“[악마의 그림자]”
스아아아!
진우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8개의 가시와 같은 형태로 변하고.
콰과곽!
원형을 그리며 바닥에 꽂혔다.
그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홀로 떨어져 있던 진우를 수상하게 보던 경비 팀장이 다급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비상! 저자가 금고를 열려고 한다!! 막아!!!”
서울 GK은행 본사에는 8개의 금고가 있다.
1번부터 8번으로 부르는 금고들에는 금괴, 현금과 같은 것을 포함해 각종 보석, 수표 등 어마어마한 금액의 부(富)가 쌓여있다.
그리고, 1번부터 8번 금고를 제외하고, 정말 일부의 존재밖에 모르는 숨겨진 금고가 존재한다.
‘처음부터 0번 금고를 노리고 습격한건가!?’
그것이 바로 0번 금고였다.
경비 팀장의 말에 진우를 향해 달려들려고 하는 경비들이.
“어딜 가려고!”
“보스에게는 못간다! 우리랑 놀자꾸나!”
“젠장할!!”
최유나와 천무진에게 막혀 나아가지 못하자 경비 팀장이 욕설을 내뱉었다.
콰드드드득!!!
“이게 바로 0번 금고인가.”
뜯겨져 나간 시멘트 바닥, 그 아래에 존재하는 금속의 금고를 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음...”
드드득.
[악마의 그림자]가 0번 금고의 겉면을 긁어댔지만 아주 미약한 흠집밖에 나지 않을 정도의 강도에 진우가 미간을 찌뿌렸다.
“초능력에 마법까지 사용한건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하군.”
단조 계열 능력자가 만들어낸 금속을 사용하고 [내구성 강화]의 마법까지 사용한 엄청난 경도를 자랑하는 금고였다.
“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고개를 든 진우가 최유나, 천무진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경비들을 바라봤다.
경비들은 최유나와 천무진이 잘 막아주고 있고 오히려 밀어 붙이고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슬슬 특수 대응팀이 도착할 때 쯤인가...”
문제는 가디언 특수 대응팀이었다.
빌런을 제압하고 사살하는데 특화된 가디언의 사냥개.
암부와는 다르게 정부에 허가를 받은 반쯤 정부 기관의 부대.
최유나와 천무진, 그리고 자신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진우는 아직 그들을 상대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했다.
“일단 통째로 들고가야겠군.”
콰드드드득-!
그에 결정을 내린 진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림자를 사용해 바닥에서 금고를 뽑아버리기 시작했다.
“미,미친...”
그것을 본 경비 팀장이 경비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잊어버리며 당황했다.
‘뭐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금고 무게만 해도 최소한 수 톤은 나갈텐데...!’
0번 금고내부에 뭐가 들었는지 경비 팀장은 모르지만, 금고의 크기만 해도 가로세로 5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다.
전체가 압축된 금속으로 만들어졌기에, 수톤, 아니, 10톤은 가볍게 넘는 금고일 터인데 힘겨워 보이긴 해도 0번 금고를 공중으로 들어올린 진우의 그림자에 경비 팀장은 사색이 되었다.
‘막아야 해! 0번 금고는 다른 금고가 전부 털리는 한이 있더라도 지키라고 했단 말이다!!’
“전원! 앞의 둘은 무시해라! 금고를 들어올린 저 악마를 죽여서라도 막아!!”
“어어?”
“이 자식들 공격을 몸으로 맞으면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능력. [지휘자의 목소리]을 사용해 경비원들에게 버프를 넣고 강제 명령을 내리자. 강제 명령이 들어간 경비원들이 최유나와 천무진을 향해 자살과도 같이 몸을 던지며 진우를 향해 능력을 쏘아내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경비 팀장 또한 진우를 향해 권총을 쏘아대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순간.
“악마라... 가면 때문인가 자주 듣는군.”
콰앙!
담담히 입을 연 진우가 자신과 경비원들을 향해 5미터의 금고를 방패처럼, 철퇴처럼 휘둘렀다.
“나쁘지 않아.”
콰과과과광!
그리고 0번 금고에 막힌 갖가지 능력들이 폭발하며 사라지고.
콰과과과곽!!! 쾅!쾅!쾅!
진우를 향해 빠르게 접근하던 경비원들이 바닥을 긁으며 휘둘러지는 거대한 금고에 충돌해 사방으로 날아갔다.
“와오.”
“죽이지 말라더니...”
팔다리가 이리저리 꺾여 날아가는 경비원들을 보던 최유나와 천무진이 질린듯한 표정으로 진우에게 다가왔다.
“조절하긴 했으니까. 웬만하면 살아있을거다.”
“...이게?”
“살았어도 병신으로 살아야겠군.”
“그것까지 배려해 줄 필요는 없지.”
진우의 말대로 경비원들은 팔다리가 부러지고 뇌진탕에 기절했을 뿐. 전부 살아있긴 했다.
“그보다. 이제 가자. 특수 대응팀이 올거야.”
“에에...뭐 한 것도 없어서 김빠지는데.”
최유나의 투덜거림에 천무진이 피식하며 비웃었다.
“빨리 도와줘!! 는?”
“아재 싸움 잘해?”
“잘한다만?”
“이익!”
입이 튀어나온 최유나가 쿵쿵거리며 아직도 전장에 박혀있는 거대한 고드름을 지워 없앴다.
그리고 진우가 다시 그림자를 이용해 0번 금고를 들어올리고는 구멍이 뻥뚫린 천장을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내가 회복만 해봐! 아재는 나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될거야!”
“허허, 나는 뭐 회복 안하는줄 아나?”
“나 역대급 재능이라고 하던 년이야!”
“그래그래 기대하고 있으마.”
“입에 얼음을 박아버릴까보다!”
그 뒤를 따라 최유나와 천무진이 투닥거리며 따라갔다.
싸우면서도 자신에게 플라이 마법을 걸어주는 최유나의 모습에 천무진이 미소를 지은 것은 비밀이었다.
그리고, 최유나와 천무진. 두 사람이 진우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움직이지 마라! 너희는 포위됐다!”
수 십명의 일반 경찰을 시작으로.
“방패 앞으로! 최소 S급이라 생각하고 대응해라!”
하급 각성자로 이루어진 경찰 특공대.
“빌런놈들! 얌전히 점수나 되라!”
근처에 길드 하우스를 둔 각성자 길드의 하위 길드원들.
“목표 셋 전부 올라왔습니다. 예의 악마로 추정됩니다.”
손이 남은 가디언 코리아의 하급 요원들까지.
“와...어마어마하네!”
“고작 10분 정도만에 이 정도로 모일 줄은 몰랐군. 한국이 이렇게 대응이 빠른 곳이었나..?”
고작 세사람을 잡기위해 모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인원이 진우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수 대응팀이 보이질 않는군. 아직 도착하지 않은건가? 아니면...”
하지만, 얼마나 모였던지 약자는 약자.
진우와 천무진, 최유나를 막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다.
그에 진우가 눈을 좁히며 주변을 살폈지만.
“...역시 없군.”
가디언 특수 대응팀이나 암부는 보이지 않았다.
“미끼. 혹은 전력 체크인가.”
진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수많은 인원들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찌됐든 돌파할 수밖에 없겠군.”
아무리 진우라 할지라도 십톤이 넘는 금고를 계속해서 들고 있을 수는 없다.
이미 한번 휘두른 것만으로 살짝 두통이 오려고 하는 상황.
저들이 미끼든 뭐든간에 시간을 끌면 불리했다.
쿠우웅...
0번 금고를 적당히 내려놓은 진우가 최유나와 천무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최유나. 너는 경찰쪽을. 천무진은 길드쪽을 맡아라. 나는 가디언 쪽을 맡는다.”
“오케이~”
“그러지.”
“아, 죽이면 안된다. 이놈들은 죄가 없어.”
“음...노력해볼게!”
“최선을 다해보지.”
스으으으...
다시 앞을 바라본 진우의 발밑에서 수십 가닥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올라왔다.
“전원 전투준비!!”
“이클립스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딱좋긴 하군.”
슈아아아악!!
진우의 그림자가 가디언 요원들에게 쇄도함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아아악!!!”
“이러지마!! 제발!!”
지옥, 그래. 이곳은 지옥이다.
우두둑!!
“으아아악!!!”
스스로의 움직임에 자신의 뼈가 부러지고.
서걱!
“아악!”
동료를 벤다.
쩌저저적!!
한쪽에서는 팔다리가 얼어붙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화아아악!!
“눈! 눈이!!”
“앞이 안보여!!”
한쪽에는 강렬한 빛과 열기에 눈을 잃은 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
가디언의 5급 요원, 이대건이 이런 지옥 같은 풍경을 보며 뒷걸음질 쳤다.
“도,도망...”
이대건의 앞에는 팔다리가 부러진 것이 눈에 보임에도 뚜벅뚜벅 걸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같은 5급 요원이자 동기인 친구가 있었다.
“몸...몸이...”
가디언의 앞을 막아선 악마. 그림자를 조종해 육신을 조종하는 기괴한 능력의 주인.
얼마전 데빌이라 알려진 저 빌런은 팔짱을 끼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을 뿐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너희는 너희가 버림패인 것도 알지 못하는 약자다.”
그때. 가만히 서있던 악마의 입이 열렸다.
기괴하게 비틀려 듣기 싫은 소리지만, 왠지 모르게 집중하게 되는 음성.
“썩어버린 정의에 이용당하는 약자. 여기있는 모든 자들이 그렇지. ”
머리, 아니. 마음속에 틀어 박히는 듯한 목소리에 한없이 뒤로 밀려나기만 하던 가디언의 5급, 6급 요원들이 멍하니 악마를 바라봤다.
“우리는 ‘이클립스’. 썩어버린 태양을 가리기 위해 움직이는 자들.”
“이클..립스...”
일식, 혹은 월식의 식(蝕)을 뜻하는 단어.
빛을 가린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
“썩은 태양 아래에 있으면 언젠가 너희들도 똑같이 썩어버릴거다.”
이대건을 비롯한 5, 6급 요원의 의식이 [천상의 목소리]에 의해 거의 사라질 때 쯤.
“엿같은 소리하네!!”
“음?”
콰아아아앙!!!
가디언 특수 대응팀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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