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거래와 동맹(3)
“...”
류중현은 진우 일행을 보스가 있는 장소로 안내했다.
“그림자단은 어때요? 보스 그림자를 자주 쓰잖아요.”
“너무 성의 없는 이름 아닌가? 정의를 위해 활동할테니 정의단은 어떤가?”
“에이~ 그거야 말로 성의 없어 보이잖아요.”
“그런가? 그림자단보다는 좋다고 생각하네만.”
그리고, 접객실에 앉아 템페스트의 보스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는 진우, 최유나, 천무진을 보며 참 허울없는 조직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스보스. 아니면 저희가 지금 세명이니까 삼총사단은 어때요?”
“...나중에 인원이 늘면 어떻게 하려고.”
“어? 어...그럼 그때는 이름 바꾸면...”
“조직명은 그리 쉽게 바꾸면 안된다.”
“그런거에요? 마탑 동아리명은 매월 바뀌던데.”
“...동아리랑 비교하면 안되지...”
그나마 보스인 진우는 무게감을 잡으려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아재는 정의단 같은거 말고 아이디어 없어요?”
“음...아예 보스의 이름을 따서 지...”
“내 이름을 널리 알려서 뭐하려고!”
“아! 그도 그렇군.”
“끄응...”
최유나와 천무진이 그렇게 두지 않고 있었다.
“템페스트의 보스는 언제 오시는 거지?”
“음...아까 전화드렸을 때 출발하신다고 했으니 이제 10분 정도면 오실거다.”
류중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가 얼굴에 그림자로 만들어진 악마 가면을 썼다.
“호오, 그게 소문의 악마 가면이군.”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소문소문 하는데 벌써 감옥섬의 얘기가 퍼졌나?”
“아, 자네는 모를 수도 있겠군. 아직 정보망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을테니.”
류중현은 진우의 악마 가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민간에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뒷면의 조직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고 보면 되네. 로버트 드라이드라는 영국놈이 강압적인 조사를 받았다면서 이리저리 소문을 내뱉은 모양이더군.”
“...”
뭔가 익숙한 이름이 나오자 진우가 잠시 움찔했다.
‘죽일 이유가 없어서 풀어주긴 했지.’
진우가 감옥섬에 잠입하기 위해 납치 후 얼굴을 빌렸던 로버트 드라이드.
감옥섬에서 빠져나온 후 적당히 구속을 풀어주고 골목길에 버려놨었다.
어차피 순식간에 납치했던 터라 진우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고 자신에게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상태라 별로 상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 가디언 코리아에서 조사해본건가.’
자신이 로버트의 신분을 빌려 감옥섬에 잠입했던 만큼 가디언 코리아에서도 로버트에게 뭔가 조사를 할 것이라 생각은 했던 진우였다.
“듣기로는 정신계 능력자를 데려다가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 냈다거나, 참과 거짓을 가리는 능력으로 하루종일 질문을 했다거나, 혹시 모르니 능력을 계속해서 검사한다거나 했다던데.”
“...강압적이긴 하군.”
가디언 UK 소속인 로버트를 이 정도로 강압적으로 대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크크큭. 가디언 코리아 측도 똥줄이 타는 거겠지. 간수 수백에 신입 요원 수백이 몰살당했으니 말이야. 거기에 수감되어 있던 특급 빌런 두 명도...”
류중현은 티격대격대는 최유나와 천무진을 바라봤다.
“이렇게 밖으로 나와버렸으니.”
“음.”
진우가 류중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벌컥!
접객실의 문이 힘차게 열리고, 류중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보스!”
“...”
문을 열고 들어온 템페스트의 보스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진우와 그 일행을 바라봤다.
“자네가 데빌인가.”
“데빌?”
“가디언 코리아에서 지은 임시명이라더군.”
“...그렇군요.”
대놓고 가디언 코리아에 끄나풀이 있다는 소리를 하는 템페스트 보스의 말에 진우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데빌입니다.”
“푸흐... 그래. 만나서 반갑다. 도석환이다.”
190이 넘는 커다란 키. 완벽한 밸런스가 잡힌 육체. 날카로운 눈. 그리고 거대한 단체의 보스다운 분위기.
‘폭풍검객. 도석환. 그리고...’
진우는 도석환의 뒤에 서있는 한명의 남자와 여자를 바라봤다.
“그쪽 분들은?”
“음? 아, 이리 와보거라.”
“네.”
“예.”
도석환의 뒤에 서있던 남자와 여자가 도석환의 옆으로 다가왔다.
“내 아들 도민준. 그리고 딸 도민경이네.”
“도민준입니다.”
“도민경이에요.”
고개를 숙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진우가 살짝 이채를 띄었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숙인다라...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충은 알겠군.’
두 사람은 가디언과 정부를 제외하면 적이 없다시피 한 템페스트의 왕자와 공주다.
도석환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민준과 도민경의 태도는 꽤나 이례적인 것 일터.
실제로 옆쪽에 서있는 류중현이 살짝 당황한 것이 보였다.
“데빌이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이름은...나중을 기약하도록 하죠.”
진우는 일단 예의를 갖춰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도석환이 그런 진우를 보며 실쩍 미소를 짓고는 자리에 앉자고 손짓을 했다.
“자, 그럼 가디언에 싸움을 건 ‘분’이 왜 우리를 찾아왔는지 얘기나 들어보도록 할까.”
“‘분’이라...”
자리에 앉은 도석환과 진우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중 도석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먼저, 근육...아니, 최건을 구출해 줘서 고맙군.”
“겸사겸사였고 저도 바라는 것이 있었으니까요.”
“바라는 것이라...”
태연하게 말하는 진우의 모습에 도석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래.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들어보지. 바라는게 뭔가.”
눈을 좁히며 말하는 도석환의 모습에 진우가 품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들며 입을 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저는, 아니. 우리는 템페스트와 동맹을 맺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동맹이라...”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도석환의 모습에 진우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다만, 템페스트가 지금까지 해온 동맹과는 다른 동맹을 맺고 싶습니다.”
“...음?”
진우는 의문을 표하는 도석환을 보며 말을 이었다.
“템페스트는 현재 동맹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하지만 지금까지 동맹을 요청하는 조직을 거절한 적도 없죠.”
“잘 아는군.”
살짝 날카로워지는 도석환의 눈빛에 뒤에 시립해 있는 도민준과 도민경의 눈빛 또한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템페스트에서 동맹을 맺는 기준은 하나. 이후, 그 조직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가 아닌가.”
“...그걸 내 앞에서 말하고 있는 자네는 그런 동맹은 원하지 않는다는 거겠군.”
“맞습니다. 저는 완전하게 평등한 동맹을 원합니다.”
“평등한 동맹이라...”
진우의 말에 도석환은 그와 그의 뒤에 있는 최유나, 그리고 천무진을 바라봤다.
“자네들을 얕볼 생각은 아니지만, 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나?”
도석환의 말대로 전투원이 단 세명뿐인 진우의 조직은 템페스트와 평등한 동맹을 맺기에는 급이 맞지 않아 보였다.
특급 빌런으로 분류되는 A+급 이상의 능력자도 템페스트에는 많았고 몇몇은 S급 또한 있었으니 말이다.
“이해합니다.”
그건 진우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부분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거고요.”
“다른 부분?”
진우는 미리 준비해놓은 서류를 가리켰다.
“가디언 코리아의 상층부는 숨겨놓은 재산 엄청나게 많습니다.”
“...!”
“이 서류에는 그 숨겨진 재산이 있는 곳 중, 제가 가장 쉽다고 판단한 곳의 위치, 지키고 있는 능력자의 수 등, 온갖 정보가 담겨있습니다.”
“그런 정보를 어떻게...”
“그건... 비밀이라고 해두죠. 그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도석환은 진우의 악마 가면이 씨익하고 웃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먹어야지. 이건...먹을 수 밖에 없지.”
“좋은 선택입니다.”
“단! 이것이 사실이라는 건 어떻게 믿지?”
서로의 사이에 놓여있는 서류를 가리킨 도석환이 진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네의 말이 진실이라는 증거는 무엇 하나도 없지. 막말로 이게 우리를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가디언의 책략일 수도 있지 않나.”
“흠...”
쉽게 넘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신중한 모습에 진우는 오히려 도석환이 마음에 들었다.
“혹시 뉴스를 볼 수 있겠습니까?”
“뉴스?”
“네. 제가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보니 직접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도석환의 의문에도 진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뉴스를 확인하라는 제스쳐를 취하기만 할뿐이었다.
그에, 도석환이 아들 도민준에게 시선을 돌려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그리고, 도민준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기를 잠시.
<충격! 가디언 코리아, 수 억원대의 내부 비리 폭로!>
<(단독) 심 모씨의 비자금 조성 기록!>
<가디언 인재 개발팀의 뇌물 수주 의혹!?>
.
.
뉴스에는 가디언 코리아의 크고 작은 비리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허...”
“저희가 먹기에는 너무 파이가 작은 것들이죠. 그 정도면 저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허허허...”
가디언 코리아에서 움직이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뉴스들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믿음이 가는 도석환이었다.
도석환은 도민준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고는 진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수억원 대의 비리보다 큰 건이라 이거지?”
“적어도 수백억은 됩니다. 이것도 가장 작은 거고요.”
“......”
한동안 고민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던 도석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진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좋아. 넘어가 주도록 하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진우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맞잡았다.
도석환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우리 템페스트와 자네들......”
“...?”
말을 하다말고 말끝을 흐리는 도석환의 모습에 진우가 의문을 표했다.
도석환은 잠시 진우를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러고보니 자네들 조직명은 정했나?”
“아.”
***
완전히 해가 진 이후, 새벽의 에벌랜드.
정기점검을 내세워 손님들을 전부 내보냈기에 관광객도, 놀이공원을 찾은 가족도 그 누구도 없는 이곳에서.
“아그들아!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동맹이 생겼다!”
“...”
“그 이름은 ‘이클립스’!! 세상을 뒤덮을 그림자가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얼큰하게 취해 진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잔을 높이 올린 도석환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우오오오오오~!!!””
“템페스트 만세!! 이클립스 만세!!”
“휘이이익! 멋있다!!”
수백의 에벌랜드 직원. 아니, 템페스트 조직원들도 함께였다.
“우리의 정신이 뭐냐!!”
““자유롭게!!””
“우리의 신념이 뭐냐!!!”
““꼴리는 대로 살자!!!””
“우리의 이념이 뭐냐!!!”
““막는 놈들은 죽여버린다!!!””
“오늘은 좋은 날이다!! 마셔라!!!”
““와아아아아!!!””
“......”
그야말로 광란의 축제, 광기의 혼돈. 놀이공원에 있어서는 안되는 초대량의 술, 그리고 안주.
빰! 빰! 빰빰빰!
“흐흐흥~”
“저기! 혹시 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네? 뭐여?”
“번호요 번호!”
“어머? 헌팅?”
쩌저적!
“네네! 그쪽이 마음... 아악! 얼음!? 극지의 마녀!?”
“에이 뭐야 약골이잖아? 관심 없어! 꺼져!”
“히이익!?”
한쪽에서는 음악이 나오며 다 같이 춤을 추고 있는 클럽같은 분위기고.
“시~작!!!”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꿀꺽! 케엑!”
“천무진 승리!!!”
“으아쌰아!!”
한쪽에서는 술 빨리 마시기 대회를.
“레디! 파이트!!!”
“으랴압!!”
“뒤져라!!”
콰과광!! 퍼억!! 퍽! 퍽!!
한쪽에서는 파이트 클럽을 열고 있는 비현실적인 광경.
‘...이런 축제를 한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어떻게 감추고 있는거지?’
도심 한복판은 아니더라도 주변에 호텔, 민박과 같은 시설과 관광시설은 꽤나 많다. 때문에 이정도의 소란을 감추기는 꽤나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 진우가 슬쩍 주변을 살폈다.
‘[소리 차단]에 [환상 결계]...아, 그렇군 환상 광대가 있었지.’
환상 계열 능력자 중 손에 꼽히는 강자로 판단되는 환상 광대, 류중현. 그의 힘으로 이런 광란의 장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음?”
그렇게 템페스트의 인원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있을 때쯤. 한 명의 여성이 진우에게 다가왔다.
“도민경씨군요.”
“네. 당신과 한번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주변을 살피며 말하는 도민경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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