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거래와 동맹(1)
“꼬맹이, 아재를 많이 닮았네? 근데 뭔가 잘생겨서 맘에 안들어.”
“누,누구...”
조금 떨어진 곳에서 허공에 떠있는 한명의 여성.
11월인 지금, 겨울과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은 검은 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드레스을 입고, 왼쪽 이마에 뿔이 달린 악마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이익! 네년은 뭐야!?”
그때, 발이 얼어붙는 고통에 천예성의 머리카락을 놓친 남자가 여성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년? 뭐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은 곱게써야지.”
쩌저적-
장난스러운 여성의 말과 함께 발만 얼리고 있던 얼음이 남자의 발목을 타고 무릎으로 올라갔다.
“아악!! 씨X럴!! [강철화]!”
그때,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고, 전신의 피부가 강철과도 같이 변했다.
“이딴 얼음따위! 내 능력이면 아무것도 아니다!!”
챙!!
전신이 강철로 변한 남자가 힘을 줌과 동시에 남자의 발을 묶고 있던 얼음이 깨져나갔다.
“하핫.”
와장창 깨져버린 얼음 조각들을 바라보던 여성, 최유나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웃어?”
“강철화라고는 해도 그거, 내장까지 강철이 되는 건 아니잖아?”
“뭐?”
최유나는 사뿐히 땅에 내려오고는 말을 이었다.
“겉 피륙만 강철이 되면 뭐해.”
“무슨 헛소리를...”
“금속은 냉기 전달이 빠르지.”
스아아악!
최유나의 말과 함께 방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냉기와 함께 남자의 강철 피부에 서리가 끼어갔다.
“이,이,이게 무,무,뭐...”
강철이 된 피부를 뚫고 전해지는 냉기에 남자의 말이 떨리며 내부 근육이 얼어 붙고 내장이 얼어붙으며 움직임을 방해했다.
“사,사사사,살려...”
“아, 나와서는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했지... 그래도 뭐...”
쩌저저적.
순식간에 남자의 전신이 얼어 붙으며 얼음 속의 금속 동상처럼 변해버렸다.
“너는 악인인 것 같으니까 괜찮겠지.”
공사장 외각에 만들어진 기괴한 조형물에 주변에 있던 모든 자들의 입이 벌어졌다.
천예성도 바닥에 주저앉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채업자 조직의 남자였던 것을 바라보던 중.
“꼬맹아, 네가 천예성이지?”
“네,네!?”
자신의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아재랑 닮아서 맞는줄 알았는데?”
“아재...요?”
아까도 말했던 아재라는 단어에 천예성이 의문을 표할 때쯤.
웨에에엥~!
“아앗!? 경찰이다!”
“네?”
“아무튼 너 천예성 맞아 아니야!?”
“어,맞,맞는데요...”
“그치? 그럼 가자!”
“네? 어,어딜..어어?”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차 소리에 다급해진 최유나가 다짜고짜 천예성에게 플라이 마법을 걸고는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인비지블 마법에 의해 두 사람의 모습이 투명해졌다.
“으이익!?”
“꽉 잡아! 날아간다~”
“자,잡을게 없는-”
후우우웅!!!
“데요!?!?”
천예성의 처절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공사장과 멀어져갔다.
***
한참을 날아 도착한 어느 폐공장.
“...그래서 아무것도 안 챙겨왔다고...?”
“으응...”
반쯤 정신이 나가있던 천예성이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이나 중요한 짐 같은건 챙겨왔어야지.”
“그,그치만...경찰도 오고 있었고... 그럼 가디언도 움직일 거잖아? 그니까 빨리 와야한다는 생각에...”
“최건은?”
“...몰라.”
“하아...”
만약을 위해 최건까지 함께 보냈는데, 최유나는 최건을 완전히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음? 정신을 차렸군.”
그때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던 천예성을 발견한 진우가 그에게 다가갔다.
“천예성 맞나?”
“그건 확인했는데...?”
“...만약을 위해서다.”
뾰루퉁하게 입을 삐죽이는 최유나를 뒤로한 진우가 천예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천무진의 아들, 천예성이 맞나?”
“...천무진... 아버지에게 원한을 가진 분이신가요?”
천예성은 어렸을 때 몇 번 찾아온 천무진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다짜고짜 자신을 납치하고 천무진의 아들이 맞는지 물어보는 진우가 당연하게도 그런 원한을 가진 자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 작자는 이미 죽었... 뭐라고요?”
감옥섬에나 찾아가라는 말을 하려했던 천예성이 단호하게 부정하는 진우를 바라봤다.
“그럼 대체 누구...”
“예성아...”
“...?”
진우에게 누구냐고 물어보려는 천예성의 귀에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천예성의 몸이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예성아. 진짜..진짜 예성이냐?”
“...아..아빠...?”
한낮임에도 어두운 폐공장의 내부임에도 너무나 잘 보이는 중년 사내의 모습.
“마,말도 안돼...”
원망스러우며 그립고,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던 얼굴에 천예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어떻게...?”
“예성아...!”
천예성의 7살 여름. 영웅이 되겠다며 집을 나선 그의 아버지는 수많은 자들을 학살한 차별주의자가 되었다.
한국, 일본 두 개의 국가가 한입으로 그의 아버지를 최악의 빌런이라 말하며 천무진을 사살했다 말했다.
“예성아!”
그런 아버지가 눈앞에 있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오지마!!”
그렇기에 천예성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천무진에게 다가오지 말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신들 누구야! 누구길래 죽은 아버지를 사칭하는 건데!!!”
“예성아...”
“나를 괴롭히고 싶어도 이건 아니잖아! 내가 흉악한 빌런의 아들이라도 이건 아니잖아!!”
철이 들기도 전부터 빌런의 아들이다. 범죄자의 아들이다. 라며 괴롭힘과 외면, 혐오를 받아왔던 천예성이다.
그렇게 12년을 살아오며 19살이 된, 이제 곧 20살이 되는 청년은 진우의 일행이, 눈앞의 아버지가 진짜라고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다 고소할꺼야! 내가 가진게 없어도!! 너희들은 다 고소할 거라고!!!”
“미안하다... 이 아비가 미안해...”
그런 천예성을 보는 천무진의 표정에 크나큰 고통이 서렸다.
“누가 내 아버진데!! 아버지는 이미 죽었어!!”
“끄으...”
필사적으로 자신을 부정하며 소리치는 천예성의 모습에 천무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흑, 너무 감동적이야.”
“...뭐?”
그런 두사람을 보며 최유나가 눈물을 찍어내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하자 진우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게 감동적이라고?”
“보스는 감정도 없어? 봐봐, 12년 만에 만난 아빠와 아들이잖아.”
“...?”
최유나의 손가락을 따라 다시 천무진과 천예성을 쳐다본 진우의 얼굴에 큰 의문이 서렸다.
“꺼져!! 오지 말라고!!”
“예성아...! 미안하다! 미안해..!”
“오지마!! 가까이 오면 죽여버릴꺼야!!”
사납게 비명에 가까운 천예성의 외침.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어쩔줄 몰라하는 천무진.
“아직 감동을 받을만한 장면은 아닌데...?”
한단계 나아가면 모를까 아직 감동이라고는 1도 없는 장면이었다.
“어차피 아재는 진짜 천무진이니까 감동적이지 않아?”
“...네 감성은 잘 모르겠군.”
“원래 여자의 감성은 섬세하다구~”
“...”
고개를 절레절레 젓은 진우가 최유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천예성과 천무진을 향해 다가갔다.
“오지 말라고!!”
“천예성.”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한테 대체 왜이러는 건데!!!”
“천예성.”
“...”
담담히 천예성의 앞에 서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그를 부르는 진우의 모습에 천예성이 조금씩 진정해 갔다.
“잘 봐라.”
그리고, 진우가 천천히 손을 들어 에매하게 서있는 천무진을 가리켰다.
“정말 가짜로 보이나?”
“...”
붉어진 눈으로 천무진을 바라보는 천예성의 미간이 무언가를 참는 것처럼 구겨졌다.
“네 아비인 천무진은 죽지 않았다. 가디언 코리아와 재팬의 정보 공작으로 인해 죽었다고 알려진 것뿐, 알만한 자들은 천무진이 살아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
언젠가 초능력 추출 기술이 발전하여 천무진의 초능력까지 추출할 수 있을 때를 위해 가디언 코리아와 재팬이 손을 잡고 정보 공작을 펼친 결과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는 최악의 빌런이...”
“방금 못 들었나?”
이제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천예성의 말을 끊은 진우가 말을 이었다.
“멀쩡한 사람을 죽였다 꾸민 놈들이다. 없는 죄를 만들어 빌런을 죽였다 공표하는 것이 편했겠지. 겸사겸사 가디언 재팬의 부총리 아들에게 공을 몰아주기하고 말이지.”
“...”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천무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던 천예성이 눈을 질끈 감으며 진우를 바라봤다.
“그...걸 어떻게 믿어...”
“증거...라고 할만한 건 남아있지 않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자들은 가디언 코리아와 재팬의 몇몇 간부들 뿐이니까.”
“...”
“하지만, 두 개의 나라가 죽었다 말한 천무진이 살아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
“아니면 네 기억속의 천무진은 한국과 일본이 말한 것처럼 극악한 빌런이었나?”
“그건!!!”
추억을 건드리는 진우의 질문에 천예성이 순간 욱하여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진정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니에요.”
천예성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했지만, 기억 속의 아버지는 언제나 다정하고 쾌활한 사람이었다.
따듯한 손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좋았고 커다란 품에 자신과 누나, 그리고 지금은 하늘 나라로 간 형이 함께 안기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아니야...거짓말...그래, 전부 거짓말이야...!”
그렇기에 믿고 싶지 않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해준 아버지를 믿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봐라.”
진우는 그런 천예성의 등을 떠멀었다.
“천예성, 네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을까. 겁에 질린 남자를 봐라.”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만들어 천무진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기에 스스로를 자학하는 남자를 봐라!”
장대한 기골의 천무진이 너무나도 작아보였다.
두려움에 질려 손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천예성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너무나도 따스했다.
“아...”
그리고, 그 눈은 천예성의 기억 속 따스했던 아버지의 눈과 너무나도 똑같았다.
“아빠...”
“예성아...!”
“흐아아앙!”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품에 안긴 천예성이 오열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하고, 천무진 또한 천예성을 품에 앉고 오열하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 모습을 보는 진우의 입가에 작게 미소가 걸렸다.
“후~ 감동적이었다.”
“...”
최유나의 중얼거림을 듣고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너는 빨리 가서 최건이나 찾서 데려와.”
“네에~”
최유나가 최건을 찾기위해 자리를 떠나고, 진우 또한 오열하는 두 사내를 위해 자리를 비워줬다.
***
시간이 조금 지나, 최유나가 최건을 찾아왔다.
“아니 이럴꺼면 저는 왜 간겁니까?”
“그...분업...이야! 네가 꼬맹이 짐을 가져왔으니까 분업! 응!”
“...이래뵈도 특급 빌런인데 이사짐 센터 직원 취급이라니...”
최건은 시무룩하게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꼬우면 나보다 강해지던가!”
“...”
감옥섬에서의 마력 버프가 사라져 S급으로 돌아론 최유나였지만. 그럼에도 최건보다는 강했다.
“최건.”
“음?”
그때 진우가 부르는 소리에 최건이 고개를 돌렸다.
“템페스트 보스를 찾아갈 때가 됐다.”
“아.”
“내일 바로 안내해라.”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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