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조직(3)
가디언 코리아 서울 본부. 대회의실.
그 중앙에 버티고 있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원탁이.
콰앙!!
반으로 갈라졌다.
“언제부터 우리 가디언이 당하는 쪽이었지?!”
“...”
“감옥섬...후우. 그래 감옥섬은 그럴 수 있어. 언젠가 한번 문제가 생길 것 같기도 했고.”
“...”
남색 정장을 입은 거구의 남자가 반으로 갈라진 원탁에 둘러 앉아있는 가디언의 임원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후속 대응에 이틀이나 걸리는게 말이 되나!!!”
“크윽.”
“윽.”
가디언 코리아의 지사장. 정인태의 사자후에 비교적 무력이 약한 임원들의 귀에서 피가 흘렀고 무력이 강한 임원들 또한 인상을 쓰며 사자후를 버티고 있었다.
“덕분에 천무진의 가족을 뺏겼어!!”
“...”
탈옥한 특급 죄수 중 한명, 천무진을 압박할 인질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노한 정인태가 원탁 한 구석에 쳐박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사내를 노려봤다.
“신명하 정보 총괄.”
“네넵!”
“변명이라도 해봐라.”
“그...그것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신명하를 바라보던 정인태의 눈빛이 이내 한심하다는 경멸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아직도 정보망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거냐?”
“...”
“그놈은 총괄 자리에 앉고 단 삼일 만에 전국의 정보망을 장악했어!!”
“큭...”
“근데 넌 뭐야! 그놈을 정리하고 이주가 흘렀는데 아직도 정보망 장악을 못해!?”
“...죄송...”
“반은 장악했나? 어? 내가 알기로는 반도 장악하지 못한걸로 아는데?”
“...현재 40퍼센트를...”
“허이고! 아주 일 잘하는 구만! 그놈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죄송합니다.”
‘그놈’이 누굴 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는 신명하였기에 치욕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놈이 정리해 놓은 길을 취하기만 하면 되는 놈이 아직도 정보망을 장악하지 못하면 어쩌라는 거냐!!”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수치심을 삼키며 겨우 대답한 신명하가 혀를 차며 자신을 외면하는 정인태 지사장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암부 본부장.”
“네.”
그리고, 원탁의 끝 한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존자가 있다며.”
“네. 17조 5번이 살아남았습니다.”
“후우... 아무것도 모르진 않게 됐군. 읊어봐.”
“네.”
암부.
겉으로는 ‘특수 기동대’라는 이름의 독립 본부.
그 곳의 본부장, 한다연 본부장이 각잡힌 자세로 입을 열었다.
“먼저 대상의 임시 코드네임은 데빌. 코드네임처럼 악마의 가면을 쓰고 있기에 얼굴은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음.”
“목소리 또한 변조를 사용했기에 특정 불가. 다만 나이는 분위기와 피지컬로 보아 스물 후반부터 서른 후반까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건 거의 의미 없는 추정이군.”
“죄송합니다.”
“계속해봐.”
“예.”
정인태의 비꼼에도 한다연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능력은 대상, 본인이 말하길 [악마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들어본 적 없는 능력이군.”
“그림자 계열 복합 능력으로 추정합니다. 본인의 입으로 [그림자 조작], [그림자 조종]. 이 두 가지를 조합했다 합니다.”
“흠...”
“또한 그림자를 통해 상대의 육체를 조종하는 것으로 보아 최소 두가지의 능력은 더 사용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소 쿼드라 복합 능력자라...”
“송구하지만, 이외에도 텔레파시를 훔쳐들었다고 하니, [모든 것을 듣는 귀]와 같은 ‘정신 청각’ 계열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
한다연의 말에 대회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최소 펜타!?”
“펜타 복합 능력자는 세명뿐이지 않나?”
“능력이 많다고 강한건 아니라지만...”
“혼자 특급 죄수를 탈옥 시키는 자다. 약할 수가 없지.”
“최소 S급으로 봐야겠군...”
“까딱하면 Ex급 까지도...”
그때, 한 것 인상을 찡그리고 있던 정인태가 입을 열었다.
“그만!”
““...””
그의 음성에 담긴 마력에 임원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Ex급이면 감옥섬에 몰래 숨어들 필요도 없었겠지. 그 정도는 아닐거다.”
정인태의 말에 임원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최소 S급의 강자들이 한데 모였다는 거군.”
“그들이 한 조직으로 뭉치겠습니까?”
한 임원의 말에 정인태가 그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천무진, 최유나, 송조운, 최건. 최건을 제외하고 나머지의 공통점은 우리 가디언에 개인적인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최건도 템페스트에 소속된 이상 우리의 적이고. 그놈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치지 않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최유나와 천무진, 그리고 송조운이 어떤 경위로 감옥섬에 갇혔는지 알고 있는 자들 이었다.
“그리고 17조 5번, 그놈. 자력으로 생존한건가?”
“5번의 증언으로는 데빌이 그냥 놔줬다고 합니다.”
“그럼 확실하군.”
정인태는 사납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데빌이라는 놈은 우리 가디언 코리아에 정면으로 싸움을 걸 생각인거다.”
“헉!?”
“그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아무리 S급 이상의 인원이 3명 모였다고 하나...”
임원들은 정인태의 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정인태는 이미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분간 암부는 은신에 특화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특수 기동대로서 활동한다. 본부를 비롯해 각 지방의 지부들을 호위해라.”
“알겠습니다.”
“초능 개발부는 그림자 계열 초능력자가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악마의 그림자? 그 능력을 재현해 보고.”
“옙!”
“또...”
각 부서에 한참 지시를 내리던 정인태가 마지막으로 신명하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신명하.”
“넵!”
벌떡 일어나며 대답한 신명하를 보며 정인태가 슬쩍 미간을 구겼지만, 별 말은 하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너는 당분간 정보망을 장악해라.”
“...알겠습니다!”
“일주일 주마. 일주일 안에 전국에 펴져있는 정보망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하면... 그때는 네놈의 상상에 맡기지.”
“...명심하겠습니다!”
창백한 안색으로 대답한 신명하가 속으로는 이를 갈았다.
‘이게 다 서진우 그 무능력자 때문이야. 그 놈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런 꼴을 당하지는...’
진우가 감옥섬을 초토화시킨 것이 원인이니,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기도 했다.
***
시간을 조금 돌려 수 시간 전, 서울 외각의 한 공자장.
“천씨 목 좀 축여가면서 혀.”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사채를 갚기 위해 물 한모금 마시는 것조차 어쩌다 한번 꼴. 그렇게 버는 돈은 단 한푼도 남김없이 사채의 이자를 갚는 것과 천지인의 병원비로 들어간다.
때문에 지금의 천예성은 현대판 노예나 다름 없었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격이 밝고 낙천적인 천예성이었지만, 벌써 몇 년이나 지금과 같은 상황 속에서 밝은 성격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차피 나도 같은 병으로 죽을텐데...’
무엇보다 천예성을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어머니와 장남인 형이 전부 같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이제 하나뿐인 가족인 누나까지 같은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 말하고, 누가봐도 유전적인 불치병으로 보이는 상황.
천예성은 자신또한 언젠가 가족과 같은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둘까...”
손에 들린 생수 한통을 바라보던 천예성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천씨 공사장 그만 둘려고?”
그런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한 중년의 남자가 안전모를 벗으며 천예성의 옆에 앉았다.
“잘...모르겠어요.”
“뭐, 천씨처럼 젊은 사람은 뭘 해도 나보다는 나을겨.”
“...”
그만 둘까 고민하던 것은 공사장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이라는 뜻이었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천예성이었다.
“어이! 김씨! 여기 와이어 좀 봐줘봐!!”
“아이고, 겨우 앉았고마...”
큰 뜻없이 그저 오지랖을 떤 것 뿐이었기에 김씨라고 불린 중년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천예성과 멀어졌다.
“젊다라...”
홀로 남은 천예성이 괜히 생수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젊은게 무슨 의미가...”
“욥! 예성씌~”
“...”
그때. 천예성의 앞에 다가온 한 남자가 말을 걸었고, 얼굴을 보지 않고도 누군지 눈치챈 천예성이 표정을 구겼다.
“아직 이번달 이자를 낼때는 아닌데요.”
“에이~ 우리 사이에 서운하게 왜 이럴까~”
차갑기만한 천예성의 음성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남자가 손을 뻗어 천예성의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내 제안은 생각해 봤어?”
“...”
“우리 예성씌의 반반한 몸뚱아리만 팔면 빚을 갚는건 순식간이라니까?”
급조차 없는 빌런 조직. 아니 그냥 단순한 사채업자 무리의 말단에 불과한 남자였지만 아무런 힘도 없는 천예성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두려운 악당이었다.
“빚은...어떻게든 갚을...”
“그 말만 벌써 3년째야 3년! 이제 네 누나도 쓰러져서 의식도 없잖아.”
“...”
“아니면 그 의식없는 네 누이를 인형처럼 팔아넘길까? 그런거 좋아하는 노인네들도 많을텐데?”
“...”
끔찍한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남자였지만 천예성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후우, 그냥 눈 딱 감고 한번만 팔라니까? 뭐 어딜 잘리기를해 죽기를 해?”
“...”
“기냥 아줌마한테 가서 하루밤만 안기면 이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벌게 해준다니까 왜이리 고집이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천예성이 짜증나기 시작한 남자가 윽박을 지르기 시작했다.
“뭔일이래?”
“또 그거겠지.”
“천씨 나이에 참 안됐어.”
그에 공사장 주변에 있던 일꾼들이 웅성이기 시작하고.
“...”
오지랖을 부리던 중년이 시선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씨X! 신사적으로 나오니까 내가 만만하냐? 어? 씌씌 해주니까 니가 뭐라도 된 것 같아!?”
“...”
“넌 씨X 그냥 빚쟁이야! 알아? 그냥 억지로 몸 팔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
그렇게 1분, 2분. 5분.
‘그냥 다 놔버리고 싶다...’
“씌바 망부석이랑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이짓도 하루이틀이지.”
시간이 흘러 제풀에 지친 남자가 머리를 쓸어올렸다.
“됐다. 어차피 오늘은 제안이 아니라 통보를 하러 온거니까.”
“...통보?”
“씨X. 이제야 말을 하네.”
남자는 피식 웃으며 천예성의 머리카락을 잡아 올렸다.
“이제 신사적인 제안은 끝이라는 거야 씹X야.”
“으윽.”
“시간도 없으니까 가자.”
그리고 천예성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악!”
“그러게 곱게 말할 때 들어쳐먹어야지.”
머리 가죽이 뜯겨나갈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천예성.
하지만. 공사장의 그 누구도 그런 천예성을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천예성의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피우며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릴 뿐.
천예성을 안타깝게 보는 이들 또한.
“아재들 이제 없어질 애는 신경 쓰지 말고 눈 깔아.”
남자의 말에 그저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엄마...형...누나...’
그런 현실에 결국 천예성의 마음이 꺾이고.
‘아빠...’
항상 원망했지만, 그럼에도 기억의 저편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이 떠오를 때.
쩌저적!
천예성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며 나아가던 남자의 발이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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