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조직(2)
최유나의 앞에 흩어진 얼음 조각.
천무진의 앞에 타버린 숯덩어리.
최건의 앞에 머리가 터져있는 시체 한구.
그리고.
“악마...”
진우의 앞에 시립해 있는 두 구의 시체.
그저 인형놀음인 것은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악마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목표는 달성했다. 남은 5번을 미끼로 후퇴한다.’
악마 가면(진우)의 얼굴을 확인한다는 목적은 불가능하지만 차선이었던 능력을 확인하는 것은 성공했다.
그렇기에 암부 17조장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도망가는 것을 선택했다.
-5번. 네 능력으로 시간을 벌어라.
-...예.
17조장의 명에 5번 암부는 잠시 움찔하고는 긍정했다.
“[환상 안개]”
스아아악~.
5번이 진우가 CCTV를 속이기 위해 사용한 [거짓된 무도회]와 같이 시각적인 착란을 일으키는 환상 계열 능력을 사용한 것과 동시에 17조장이 전력을 다해 은신하고는 도망쳤다.
“차라리 처음에 이걸 사용하고 기습했으면 조금은 승산이 높아졌을텐데~”
“애초에 전부 버림패였다는 거겠지.”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칼날이 날아다니는 안개를 바라보며 천무진이 고개를 저으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암부라는 놈들은 참 정이 안가.”
그리고, 오른손에 빛을 모아 그대로 내질렀다.
“[대광(大光)]”
화아아아악!!!
간결한 정권에서 시작된 빛무리가 막대한 열기를 뿜어내며 환상 안개를 그대로 증발시켰다.
“...”
그리고 안개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5번이 약간의 화상과 함께 묵묵히 단검을 들고 전투자세를 취했다.
“흠. 한놈만 남기라고 했던가?”
“그래.”
“그게 꼭 조장일 필요는 없는 거지?”
“그래.”
진우의 대답과 함께 조용히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5번 암부를 보던 천무진이 최유나를 불렀다.
“최유나.”
“이미 잡아놨어요~”
“이익!!”
천무진의 눈에 조금 떨어진 곳에 발이 얼어 대지에 고정되너 있는 암부의 조장이 보였다.
“부하를 함부로 버리는건 안되는 일이죠~”
킥킥거리며 웃는 최유나의 모습에 송조운을 지키며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최건의 팔뚝에 소름이 올랐다.
‘대체 언제? 언제 마법을 사용했지? 전혀 못 봤는데?’
최건이 알기로 최유나는 초능력자가 아닌, 순수 마법사다. 재능 각성자라고는 하지만, 재능 각성자는 극단적으로 말해 그냥 재능 있는 일반인. 초능력자처럼 태어나면서부터 힘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유나는 빙결 계열 초능력자와 같이 빙결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다 그냥 괴물이야...’
악마 가면(진우)의 그림자는 어느새 5번의 육체를 속박하고 무릎을 꿇려놓고 있었고.
누가 봐도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암부의 조장은 천천히 다가가는 천무진 때문에 공포에 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보스...미리 죄송함다... 저도 일단은 살고 싶어서요...’
최건은 템페스트의 보스에게 미리 사죄를 올렸다.
“자, 반항은 해보는게 좋지 않겠나?”
그 사이, 17조장의 앞에 도착한 천무진이 주먹에서 뼈소리를 내며 씨익 웃었다.
“조장이나 돼서 조원보다 약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이익!! 괴물새끼들이!! 가디언을 적으로 돌려 너희가 무사할 것 같으냐!!”
“조,조장...”
항상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조원을 이끌고 임무를 수행하던 17조장.
그런 그가 코앞까지 다가온 명확한 죽음의 앞에서 한없이 추해지고 있었다.
“미끼를 줬으면 미끼로 만족하란 말이다 괴물 새끼들아!!!”
“...”
“으...역겨워.”
“암부까지 썩을 만큼 썩었군. 일이 편해지겠어.”
“후우...”
추하게 발버둥 치는 17조장을 가만히 바라보던 천무진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뭐!?”
“강자는 강자의 품격이 있어야 하고.”
“[바람 망치]!!”
콰아아앙!!!
천무진이 방심했다고 판단한 17조장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코앞에 있는 천무진을 후려쳤다.
“하하!! 꼴좋다 괴물!”
“이끄는 자는 그만한 인격을 보여야 한다.”
“어...어떻게...”
하지만, 자신의 육신을 극한까지 강화하는 무공 [광휘신공(光輝身功)]의 공능덕에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은 천무진이 덤덤하게 말하자 17조장의 안색이 공포에 질려 시꺼멓게 변했다.
“넌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바람 망치]!! [바람 망치]!! [바람 망치]!!!!”
쾅! 콰아앙! 콰아아아앙!!!
바람이 뭉쳐진 거대한 망치가 천무진의 육신을 계속해서 두드렸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버둥이었다.
“이이익!! 괴물새끼야!! 꺼져!! 꺼지란 말이다!!!”
“네놈을 보고있으니 아메놈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더럽다.”
“사,살려...!”
“그만 죽어라. [열광(熱光)]”
“아,안-”
화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코앞에서 터져나온 막대한 열기를 가진 빛무리에 휩싸인 17조장이 끔찍한 비명과 함께 탄화하여 재가 됐다.
“헐...”
무공을 익힌 각성자를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버리는 말도 안돼는 위력에 최건이 침을 꿀꺽 삼켰다.
‘깝치지 말아야겠다... 이제 존대라도 할까? 좀 늦었을려나?’
최건이 진지하게 존대를 하는 것을 고민할 때. 바람에 흩날리는 재를 바라보던 천무진이 몸을 돌려 일행에게 돌아왔다.
“보스. 이제 대충 다 정리 된건가?”
“그래. 이제 탈출하기만 하면 된다.”
“이놈은 어떻게 할거야 보스?”
“이놈은...”
5번을 가리키며 말하는 최유나의 물음에 진우가 능력을 거두며 말했다.
“그냥 보낸다.”
“아무것도 안하고?”
“그래.”
“...”
자신을 그냥 살려보낸다는 말에 5번이 눈을 부릅뜨며 진우를 바라봤다.
“가자.”
하지만, 5번이 그러거나 말거나 진우는 일행과 함께 걸음을 옮겨 통신탑에서 사라졌다.
“...”
잠시 멍하니 있던 5번이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널부러진 1번과 2번. 얼어붙어 조각난 3번. 숯덩어리가 된 4번. 머리가 터져 죽은 6번. 그리고 재가 되어 버린 조장이 있던 장소를 바라봤다.
“살았다...?”
어째서 저들이 자신을 죽이지 않은 것인지 모르는 5번이었지만, 살아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
“상..부. 그래. 상부에 알려야...그게 임무...”
죽지 않은 이상 임무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존의 기쁨보다 먼저인 5번이었다.
***
“보스~ 우리 어떻게 탈출해?”
감옥섬 끝자락, 바다를 바라보며 최유나가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천무진 또한 탈출 방법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인지 진우를 바라봤다.
“내 능력을 사용해 해저로 탈출할거다.”
“해저? 바다 밑으로 움직인다고?”
“그래. 지금부터는 인공위성도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하는구나~”
마찬가지로 바다를 바라보던 진우가 대답하자 뒤쪽에 시립해 있던 최건이 슬쩍 손을 들었다.
“뭐냐.”
“그...너, 아니. 당신 능력이 대체 몇 개인 겁니까?”
최건으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알 것 없다.”
하지만, 송조운, 최유나, 천무진과는 다르게 조직의 멤버도 아닌 최건에게 대답해줄 진우가 아니었고 최건은 단호한 진우의 말에 시무룩하며 손을 내렸다.
“후우...”
“괜찮아?”
잠시 숨을 고르는 진우의 옆에 최유나가 다가왔다.
“정신력 고갈이다. 조금 쉬면 나아져.”
“아... 보스는 마법이나 무공을 안 배웠어? 배웠으면 정신력 소비가 많이 줄어들텐데?”
“안 배웠다. 배워보려 했었지만 심각하게 재능이 없어 포기했었지.”
재능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이라도 마법이나 무공을 배울 수는 있다.
다만 엄청나게 비싸고, 일반인은 평생을 배워도 E급이 한계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보스가 재능이 없었다는게 상상이 안가는데...”
“초능력을 각성한 이상 마법이든 무공이든 배울 기회는 있겠지.”
대화를 나누며 지끈거리던 머리가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느낀 진우가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슬슬 가자.”
“드디어 감옥섬을 나가는구나~!”
“12년이라...”
“나가면 할 일이 많겠네.”
“이쪽으로는 오줌도 안눠야지. 퉷!”
최유나, 천무진, 송조운, 최건 순으로 감옥섬을 나가는 감상을 말한 일행은.
“[물 조작], [수류], [공기 생성].”
이내, 진우의 손짓에 만들어진 물방울 속으로 들어갔다.
“트리플 복합 능력을 뭔 밥 먹듯이 쓰네...”
마지막으로 최건까지 들어간 물방울은 이내 허공에 뜨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
이틀 뒤, 아직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체가 굴러다니는 감옥섬.
“미치겠네...”
“선배, 감옥섬에서 이런 난리가 일어난 적 있어요?”
“내가 알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이 참 화려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반쯤 폐허가 된 감옥섬에 도착한 가디언 코리아의 2급 요원, 한태훈과 3급 요원, 예서홍이 표정을 잔뜩 구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요원은 몇이나 죽었지?”
“산 사람을 세는게 빨라요. 파견 400명 중에 34명이 살아남았어요. 그중 10명 정도는 불구가 됐고요.”
“후우...”
가디언의 요원은 1급부터 5급으로 나눠진다. 다만, 급수가 없이 그냥 ‘요원’으로 부르는 자들은 가디언에 들어간지 1년 미만의 신입들이다.
즉,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번 연도, 가디언 코리아에 들어온 신입 요원의 태반이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일단 사정 청취는 하고 있긴 한데... 반 정도는 1급 죄수들에게 죽은 자들이고, 반정도는...”
“특급 죄수 세 명한테 나머지 수 백명이 당했다...라는 거지?”
“네.”
“그 특급 죄수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완전히 모습을 감춰버렸고...”
“저희만 뺑이치게 생겼죠 뭐.”
한태훈이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고는 폐허 가운데 멀쩡한 두 개의 중앙 감옥을 바라봤다.
“그나마 3 감옥이랑 4 감옥은 멀쩡해서 다행이라고 봐야하나...”
“네크로맨서 유지환. 폭식가 다넬 한슨은 봉인된 그대로라네요.”
“대체 보고서에 써있던 악마 가면은 어떻게 봉인 술식을 푼거지?”
더 큰 문제는 특급 죄수 세명보다 그들을 탈옥시킨 악마 가면이다.
이번 단 한 건으로 특급 빌런으로 정해진 악마 가면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그 세계 최고의 마법사. 윌리엄 블로섬이 만들어 완전한 봉인이라 불려지고 있는 마력 봉인 술식을 깬 장본인.
“그자를 잡지 못하면 세계 곳곳에 있는 감옥이 털릴 수도 있다는 소리지.”
“그러니까 이례적으로 하루만에 특급 빌런으로 정해졌잖아요. 곧 잡히겠죠.”
“...그러면 좋을텐데 말이야.”
살아있는 특급 빌런은 몇몇 도망에 특화된 자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감옥섬과 같은 특수 감옥에 봉인되어 갇혀있다.
세계 전체가 그들을 사살하거나 제압하기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것, 단순히 밥을 먹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후우, 먼저 천무진의 가족...딸이랑 아들 하나가 남아있다고 했나? 일단 수배해놔.”
“천무진이 걸릴까요?”
“글쎄...일단은 할 수 있는걸 하는거지.”
“최유나는 어떻게 할까요?”
“청색 마탑장이 최유나의 스승이지?”
“네.”
“최유나가 찾아갈 가능성도 있으니까 일단 협조를 부탁해놔.”
“알겠어요.”
그렇게 조사원으로 파견된 한태훈과 예서홍이 하나하나 조치를 취하고 있을 때 쯤.
“지인아...”
진우와 천무진이 한발 먼저 천무진의 딸, 천지인이 입원해 있는 병실에 찾아왔다.
“많이...많이 컸구나...”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천무진을 배려하여 잠시 물러나 있던 진우가 해석안을 통해 천지인을 바라봤다.
‘확실하군. 독이다. 천천히 뇌 활동을 정지시키는 독... 끔찍하군.’
초능력 혹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독인지 해석안으로도 해독 방법이 보이지 않는 끔직한 극독이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누워있는 천지인을 바라보던 천무진을 보며 시간을 보내던 진우가 이내 앞으로 나섰다.
“천무진. 기분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가디언이 움직일 거야.”
“...그랬지...”
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천무진이 천천히 천지인에게 연결되어있는 생명 유지 장치를 떼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진우가 천지인의 생명 활동을 유지시키기 위해 미리 조합해 놓은 능력을 사용했다.
“[광휘의 가호]”
[신경 조작], [육체 활성화], [치유]의 트리플 복합 능력.
호흡, 근육 활동, 장기 활동, 그 모든 것을 강제로, 그럼에도 부작용 없이 건강히 움직이게 만드는 능력.
병원의 생명 유지 장치보다 월등히 상위에 해당하는 효과였다.
“됐다. 가자.”
“...그래야지. 고맙다...”
안색이 조금이나마 좋아진 천지인을 업은 천무진과 진우가 병원 창문을 통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직후. 고작 몇분 후에 천지인의 병실을 찾아온 가디언의 요원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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