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탈옥(3)
근육맨, 템페스트의 행동대장, 최건.
그가 갇혀있는 중앙 제 5 감옥.
“헬로헬로~”
“...”
“모시모시~?”
“...”
“아, 말 못하지 참.”
언제나 고요하고 조용하던 이곳에 서늘한 냉기와 함께 최유나가 나타났다.
“흐흥흥~”
잠시 이곳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거체의 남자를 바라본 최유나가 콧노래를 부르며 귀마개와 안대, 재갈을 제거했다.
“헬로우~?”
“...넌 뭐냐.”
“어우 무셔라.”
살기어린 눈, 오랜만의 빛에 찡그린 표정이 애초부터 험악한 얼굴과 맛물려 최건을 짐승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보다 너라니! 이게 어디서 선배한테!”
“...?”
“너 언제 투옥됐어!? 응? 난 어? 무려 어? 팔년이나 있었다구!”
“...그거 잘났군.”
“헤헤, 그치?”
“...”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 최유나의 모습에 최건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진동은 네 동료의 짓인가?”
“진동? 아아, 성기사 아재 말하는 거구나?”
“성기사... 설마 천무진을 말하는 건가?”
“어...아마?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잠깐...방금 8년을 갇혀있었다고... 그럼 설마 넌 극지의 마녀?”
“음...그 이름은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일단은 맞아!”
“허...”
중앙 감옥은 제 1 감옥부터 5 감옥까지 존재한다.
숫자가 높아질수록 최근에 투옥된 죄수가 있다는 뜻이며 만약 기존의 1 감옥 죄수가 사망하거나 어디론가 끌려가면 기존의 2 감옥이 1 감옥으로 변경되는 식이다.
“1, 2 감옥의 죄수가 전부 탈옥했다고?”
즉, 지금 진우가 한 일은 감옥섬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죄수 두 명을 한번에 해방시킨 것이었다.
“미친...”
“어허! 말은 곱게 써야지!”
“...”
최건의 눈에 그 중 하나는 그리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보다 이곳에서 저런 드레스는 어디서 얻은 거지?’
“저기다! 저기에 극지의 마녀가 있다!”
“잡아라!!!”
“양강 계열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은 최대한 붙어서...!”
그때, 제 5 감옥의 입구 쪽에서 수십명의 간수들이 나타났다.
각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그들을 보고 최유나가 피식 웃으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시끄러워 쓰레기 새끼들아!!”
‘고운 말은!?’
스아아아악!
쩌저저저적!
그대로 수십인의 간수들이 얼어붙어 얼음 동상이 되어 버렸다.
‘극지의 마녀... 21살의 나이로 마탑주의 자리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의 실력자라더니...’
“음! 역시 조용한게 좋아.”
‘어째 8년 전 소문보다 강한 것 같은데...’
자신이 만들어낸 얼음 동상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최유나가 이내 고개를 돌려 최건을 바라봤다.
“어때? 너도 날뛰고 싶지 않아?”
“...설마 제 3 감옥과 제 4 감옥도 전부 해방시킨 거냐?”
“응? 아니?”
“음?”
“지...로버트가 걔네들은 해방시키지 말라고 했으니까 안해.”
“로버트? 그게 널 해방시킨 자의 이름인가...?”
“맞아~”
실실 웃으며 말하는 최유나의 모습에 묘한 느낌을 받은 최건이었지만, 이내 눈을 깜빡이며 묘한 느낌을 떨쳐냈다.
“그래서, 나는 그자의 조건을 충족한 건가?”
“조건? 그런 건 난 몰라~ 그냥 하라니까 하는 것 뿐이야. 일단은 은인이고, 이제는 보스니까.”
“아, 그렇군. 해방의 조건은 그자의 휘하에 들어가는 건가.”
“어...그게 그렇게 되나?”
특급 빌런 조직, 템페스트의 행동대장치고 최건은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 축에 속한다.
그런 최건이 자신을 해방 조건이 그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근데 그건 아닐걸?”
“...아니라고?”
“응. 너 따로 보스가 있잖아.”
“...그건 그렇다.”
“응. 그래서 너는 자기 조직으로 안 들어올게 뻔하니까 괜히 힘빼지 말라고 하던데?”
“...왜?”
“응? 그건 나도 모르징.”
사실 최건은 로버트라는 자의 휘하에 들어가는 것을 조건으로 해방해 준다고 한다면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눈앞의 최유나에게는 고작 8개월이겠지만, 최건 자신에게는 무려 8개월.
그 기간동안 완전히 구속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양 주사를 놓기 때문에 음식물은 먹지도 못하며 마땅한 자극조차 없었다.
시각, 청각은 완전히 막혀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조차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미쳐버릴 정도의 지옥.
보스에 대한 충성이고 뭐고 일단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는 딱히 조건으로 할만한 것이...”
“응?”
“...응?”
철컥!
촤르르륵!
다만 최건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어?”
“꽤 어렵넹.”
진우는 최유나에게 이미 최건을 풀어주라 말했고. 때문에 최건이 진우의 조직에 들어오는 것과는 상관없이 이미 해방은 결정된 사항이었다는 것이다.
최건은 자신의 몸을 옥죄이던 봉인의 사슬이 완전히 풀린 것을 느끼고 자신의 손을 눈앞으로 가져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멍을 때렸다.
“그럼 파이팅!”
“파이팅?”
그때, 명량하게 외치는 최유나의 응원에 정신을 차린 최건의 귀에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근육맨...아니! 인간 전차의 봉인이 풀렸다!”
“사지를 잘라 다시 봉인해!!”
“마법사 앞으로!!”
“어?”
일반 간수에 선임 간수, 수석 간수 몇몇까지 섞여 있는 수십의 무리가 소리치는 것까지 귀에 들려오자 최건이 멍하게 최유나를 바라봤다.
“빠이빠이~”
하지만, 최유나는 이미 제 5 감옥의 한쪽 벽을 얼려 부수고는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날아오르며 최건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살아남으면 좋겠네~”
“야 이!”
그제서야 자신이 풀려난 이유가 어중간하게 강해서 시간을 끌기에 딱 좋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최건이 최유나가 부순 벽을 향해 달려갔지만.
쩌저저적!
벽에 난 구멍은 순식간에 얼음으로 매꿔져 버렸다.
“이까짓...!”
콰아아앙!!!
그걸 본 최건이 온 힘을 다해 얼음벽을 향해 자신의 강철과도 같은 주먹을 날려 봤지만.
“...미치겠네...”
특수하게 만들어진 중앙 감옥의 벽은 물론, 최유나의 마력이 담긴 얼음 또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찾았다! 인간 전차다!”
“포기해라 인간전차!”
“얌전히 감옥안으로 돌아가라!”
그 사이, 터져나온 굉음에 더욱 빠르게 달려온 간수들이 최건을 발견했다.
“하아...”
자신이 최유나, 나아가 로버트라는 자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은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얌전히 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덤벼 버러지들아.”
최건이 흉악한 본성을 터뜨리고 전신의 근육을 부풀리며 수십의 간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으하하하! 자유! 햇빛! 바람! 힘!”
“뒈려버려! 쒸X롬아!!”
콰아앙!!
감옥섬 외각에 상주하고 있는 가디언 코리아의 요원 중 한명. 호운오가 자신의 능력, [폭발하는 화살]을 사용해 달려드는 죄수 한 명을 날려버렸다.
“어우씨, 놀래라.”
“미친! 폭발하는 화살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하지만, 감옥섬에서 1급 죄수로 분류된 자가 약할 리가 없었다.
“퉷! 쓰읍. 기냥 간수가 아니고마? 가디언?”
가볍게 피를 뱉어낸 죄수가 호운오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내 능력을 맞고 멀쩡하다니! 특급 죄수인가!?”
“아앙? 기냥 모지리였나.”
호운오의 경계어린 외침에 죄수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나가 쪼까 강하기는 해도 특급 놈들은 끕이 다르다 끕이.”
“뭐...?”
사실 감옥섬은 국가 중요 시설중 하나이기는 하나, 오랜시간 사건, 사고가 없어 가디언 내부에서는 적당히 강한 신입이나 보내는 장소로 전락해 있었다.
호운오도 그런 신입 중 하나. 나름대로 강하고,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였으나.
“나가 누군지도, 누가 특급인지도 모르는 아새끼가 가디언의 요원이라니, 가디언도 끝날 때가 되부렀구만.”
1급 죄수들의 고삐가 풀려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는 경험도, 연륜도 없는 그저 ‘약자’일 뿐이었다.
콰아아앙!!
“커어억!!”
“허벌나게 약허네.”
십미터 이상은 떨어져 있는 죄수가 휘두른 주먹이었음에도 호운오가 뒤로 날아갔다.
“끄어...공,공간계...?”
“응? 푸하하하하! 이거 걸작이구마! 진짜 생 초짜일줄은!”
간신히 몸을 일으킨 호운오가 중얼거린 말에 죄수가 폭소를 터뜨렸다.
“공간계? 푸하하하! 이거 높게 쳐줘서 고맙다고 해야허냐?”
“무슨...”
“[공기 압축]이다 초짜 녀석아!”
콰아앙!
폭소를 터뜨리며 죄수가 휘두른 손바닥에 멀리 있던 호운오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나동그라졌다.
‘단순한 공기 압축으로 이런 공격이 가능하다고...?’
가디언과 정부, 길드의 힘에 잡혀온 죄수이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감옥섬에 있는 1급 이상의 죄수는 사회의 중소 길드장 정도는 되는 무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가디언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는 신입이 상대할 만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어쭈? 공기 압축이라니까 해볼만 할 것 가텨?”
“끄으응...”
하지만, 호운오는 부족해도 가디언의 요원. 전의를 잃지 않은 호운오가 터진 입술에서 나오는 피를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참...”
그리고 그걸 본 죄수의 표정이 재미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애의 그것과 같이 변했다.
“너 하나로는 부족하것지만... 뭐 가디언이니 참도록 할까.”
“닥쳐라 빌런...!”
비웃음을 가득 담아 말하는 죄수의 모습에 호운오가 이를 악물며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폭발하는 화살]!”
호운오의 주변에 수십개의 붉은 화살이 생겨나고.
“[폭발!]”
붉은 화살의 뒷부분이 폭발하며 굉장한 속도로 죄수를 향해 날아갔다.
눈으로 보기도 힘들 정도의 가속도를 얻어 날아가는 붉은 화살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지만.
“에잉.”
콰과과과과광!!!
실망스러운 음성과 함께 압축된 공기의 막을 중첩해 세운 공기벽에 막혀 허공에서 의미없이 폭발해 버렸다.
“말도...안돼...”
“말이 안되기는. 그냥...”
그리고, 멀리 있는 이름 모를 죄수의 손날이 그대로 내려쳐지고.
“네가 너무 약한겨.”
촤아악!
호운오의 앞섬이 갈라지며 피를 뿜어댔다.
***
감옥섬의 가장 높은 곳. 통신탑.
파지지직.
그곳에서 진우가 전파 방해를 위해 안테나에 전류를 흘리며 감옥섬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순조롭네.”
“...흉악범들을 저렇게 풀어놔도 괜찮은 거냐?”
그런 진우와 함께 감옥섬을 살피고 있던 송조운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뭐, 괜찮겠지.”
“...”
“어차피 저것들은 청소부가 와서 치울거다.”
“청소부... 가디언의 암부 말이냐?”
“그래.”
지금 그들이 오지 못하도록 전파 방해를 하고 있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송조운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암부는 이딴 전파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아.”
“음?”
그런 송조운의 표정을 읽은 진우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가디언의 암부가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이 필요하지.”
“조건?”
“하나는 가디언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것. 정확히는 모르지만 꽤나 더러운 일이라고 하더군.”
“당연...하다면 당연한 조건이군.”
“그리고, 텔레파시 계열의 능력을 보유한 최소 더블의 복합 능력자일 것.”
“그건... 상당히 어려운 조건 아닌가?”
“그렇지.”
선천적인 초능력을 두 개 이상 가지고 있는 자를 복합 능력자라 부른다.
두 개라면 더블, 세 개라면 트리플.
말은 쉽지만 세상에 알려진 트리플 이상의 복합 능력자의 총합이 천명 안팎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 이건 말이 안돼는 조건이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게 가디언 국제 연구소지.”
“...? 왜 연구소가...”
“인체 실험을 통해 초능력을 추출하고 이식하는 방법을 가진 유일한 곳이니까.”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잠시 생각이 얼어버린 송조운이었지만, 이내 크게 경악하기 시작했다.
“인체 실험!? 분명 일부 차별주의자들이 인체 실험을 하다 걸려서 토벌당하고 그 이후에 가디언에서 금지했다고...!”
“그 이후 차별주의자의 인체 실험 데이터가 어디로 갔을 것 같지?”
“...설마...?”
“그래, 인체 실험의 데이터에서 쓸모 있음을 발견한 가디언 최상부가 세상에 인체 실험을 금지하고는 자신들만 이용하고 있는거다.”
“말도 안돼...”
입을 벌리고 경악하는 송조운에게서 시선을 돌린 진우가 다시 감옥섬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가 생각하기에도 썩어버린 놈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 치워버려야 할 놈들이 너무 많아.”
“...”
그런 진우의 중얼거림에 송조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진우와 같이 감옥섬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