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탈옥(2)
“허억, 허억.”
“음?”
죄수들이 몰려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숨을 고르던 진우가 부서진 철창 내부에서 헐떡이고 있는 송조운을 발견했다.
다른 죄수들과는 다르게 두려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송조운의 모습에 진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1급 감옥에 423번 죄수. 어두운 갈색머리에 177정도 되는 키. 오른뺨의 흉터. 정보상 송조운이군.’
순식간에 송조운을 알아챈 진우가 아직도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송조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정신 보호]인가.”
“넌, 넌 누구냐...!”
“설마 [천상의 목소리]까지 막아낼 수 있을 정도의 정신 보호라...”
송조운은 공격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우는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정보상 송조운.”
“날...알아?”
“그래. 알다마다.”
죄수들의 내놓아도 되는 정보를 직접 분류하고 결정하던 진우였기에 감옥섬에 있는 죄수의 정보는 대부분 알고 있는 진우였다.
“투옥 1년 3개월차. 마땅한 공격 능력은 없으나 꽤나 훌륭한 탈출 능력, 생존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1급으로 분류.”
“...”
“가디언 코리아 최상부의 비리를 캐내다 체포.”
“그걸 알고 있는 자는...”
“대부분 죽었지.”
정보상, 송조운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않았다.
항상 팀으로 움직이며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유명한 부류였다.
하지만, 음지에서 잘나가던 송조운의 팀은 가디언 코리아의 최상부에 손을 대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쳐박혔다.
대부분의 팀원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가 몇 없을 정도로 해체당한 송조운의 팀이지만.
송조운이 죽지 않고 이곳에 쳐박히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죽었다고...?”
“음? 아. 거기까지는 몰랐던 모양이군.”
“지,지금 내 동료들이 죽었다는 거냐!?”
“...허, 설마 네가 배신당했다는 것도 몰랐나?”
“배신...?”
“이건 좀 실망이군.”
진우가 자세를 낮춰 송조운과 눈을 마주쳤다.
“너는 꽤 높은 등급의 [정신 보호]를 가지고 있지.”
“그게 뭐...”
“즉, 네 머릿속에 있는, 돈이 되는 정보들을 억지로 빼내는 것은 꽤 어렵다는 거다.”
“대체 무슨 소리를...”
뜬금없이 돈이 되는 정보를 말하는 진우의 모습에 송조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서 네 동료 중 하나인 임기태는 생각했지.”
“기태...?”
“어차피 대장인 네가 진짜 돈이 되는 정보를 꽉 잡고 놓고 있질 않고 있고, 오만에 차서 가디언까지 건드리려 하니, 차라리 가디언에 붙자고.”
“...뭐?”
“참 탐욕이 많은 놈이지, 네가 주는 적당한 돈과 정보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가디언에 홀랑 넘어가 버렸으니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기태가 그럴 리가...”
“...훗. 짐작가는 곳이 있는 모양이군.”
“그,그럴 리가...”
가디언 코리아에 잠입할 때, 주변인물을 포섭할 때, 탈출로를 확보할 때, 주 목표를 미행할 때.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항상 성공만 했던 자신의 ‘팀’이었기에 정보 수집을 속행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가디언 코리아는 자신과 팀의 목줄을 틀어잡고 눈앞에 칼날을 드리밀고 있었다.
그동안 왜, 어째서, 뭣 때문에, 그리 쉽게 팀이 발각되고 가디언 코리아에 의해 산산히 부숴졌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기태...그래 기태가 배신했던 거라면... 앞뒤가 맞아.’
송조운이 가장 믿고 많은 것을 줬던 임기태. 그가 배신했던 거라면 자신의 팀이 분해되던, 이해가 가지 않던 그 너무나도 수월하게 흘러갔던 과정이 전부 설명이 된다.
“하지만...왜? 기태 그놈이 부족할 건 아무것도...”
“말했잖나. 탐욕이라고.”
송조운이 멍하게 황금빛으로 빛나는 악마 가면의 눈을 바라봤다.
“그 증거로 지금 임기태는 가디언 코리아의 암부에 속해있다.”
“암부...라고?”
“은신이 특기인 임기태이니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지.”
“다른...다른 팀원은...”
“이미 말했잖나.”
송조운은 악마 가면이 씨익하고 웃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죽었다고.”
“...”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뻥긋하고 있는 송조운의 보며 진우가 허리를 피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진우를 멍하니 보고있던 송조운이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런 것을 전부 알려주는거지?”
“음...왜라...”
“네 정보가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모르지만, 정보에 공짜는 없다. 그게 내...아니, 우리의 신념이지.”
“훗, 신념이라 거창하군.”
비웃는 듯한 진우의 음성에도 송조운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판단했다.”
“...”
“그리고 그건 이 감옥섬에서 난리를 일으킨 일과 무관하지 않겠지.”
“썩어도 정보상이라는 건가? 눈치가 좋군.”
“말해라. 내게 원하는게 뭐냐.”
진우는 복수심에 타오르는 송조운의 눈을 보며 가면 아래에서 흡족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지금 조직을 꾸리는 중이다.”
“조직?”
“멤버는 대충 정했는데 마땅한 참모역이 없더군. 내가 해도 좋지만,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판단을 그르칠 때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참모역을 맡아달라는 건가?”
“얘기가 빠르군.”
진우가 부서진 철창 밖으로 나서며 말을 이었다.
“내가 조직원을 모으는 기준은 간단하다. 바로 가디언에 대한 원망이지.”
“설마...”
“그래, 가디언에 싸움을 걸 예정이다.”
“...미쳤군.”
“딱히 미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충분한 가능성을 따져보고 움직이는 중이다.”
“신생 조직이 가디언에 들이박는다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미쳤다고 생각할거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
발을 멈춘 진우가 몸을 돌려 아직 철창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송조운을 바라봤다.
“하지만, 정보에 관한 중요성, 그 힘을 알고 있는 너라면, 지금 나의 말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임을 알 수 있을 거다.”
“...? 그게 무슨 소리지?”
진우가 [그림자 조작]을 사용해 그림자로 만들어진 악마 가면을 없앴다.
“...서진우 정보 총괄?”
“역시 내 얼굴도 알고 있었나.”
“아,아니 어떻게...”
“뭐 뻔한 얘기다. 나는 아는 것이 많음에도 상부에 반항하는 반골이었으니.”
“...버려졌다는 얘기군.”
“역시 눈치가 빨라.”
다시 악마 가면을 만들어낸 진우가 뒤를 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나 하나의 목숨으로 가족을 지키고 부하들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
“하지만, 내가 죽었음에도 내 가족을 노리고 움직이는 더러운 놈이 있었지.”
“죽었음에도?”
“그놈만 처리하면 내 가족은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
“아니, 그렇지 않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썩어있어. 정부, 기업, 길드 그리고 가디언. 겉으로는 세상을 위한답시고 움직이는 놈들이지만 선민의식에 쩔어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치부하고 일반인은 덜떨어진 노예 정도로 생각하는 썩어버린 놈들이 너무나 많다.”
송조운은 진우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날카롭고 무거워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직을 만드는 목적은 단 하나. 세상의 썩은 부위를 모조리 도려내어 내 아내가! 내 딸이! 아무런 위협도 없이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
“...”
“세상을 모조리 적으로 만들어도. 나는 오로지 ‘가장’의 의무를 위해 움직인다.”
“가장... 가장이라...”
가족을 위한 마음이 신념이, 광기가 되어 움직이는 자.
송조운은 진우를 그렇게 판단했다.
“세상에 이런 가장이 두 명 있었다가는 3차 대전까지 일어나겠네.”
“필요하다면...”
“농담은 농담으로 들어라...”
“흠.”
피식 웃은 송조운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부서진 철창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참모역이라는 거. 맡겨 주면 실망은 안시키지.”
“...”
“가지고 있는 정보의 질은 서진우, 네가 더 뛰어나겠지만, 정보 조직을 꾸리는 건 내가 더 뛰어날거다.”
피식.
“그래. 앞으로 잘부탁하지.”
“그래, 잘부탁해 보스.”
콰과과과광!!
감옥섬 곳곳에 울리는 폭음과 비명 속에서 두 명의 남자가 손을 잡았다.
***
“꺄하하하! 전부 얼어버려!!”
“끄아아악!”
“다리가아악!! 내 다리이이!”
중앙 제 3 감옥으로 향하는 최유나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얼려버리며 전진했다.
“막아! 다른 죄수를 탈옥시키려는 속셈이다!!”
“어쭈, 눈치빠른데? 정답이야~”
전원이 B급 각성자 이상으로만 이루어진 감옥섬의 간수, 그중 선임 간수와 수석 간수들은 A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도 뭐 상은 없지만.”
쩌저저적!
그럼에도 단 한명의 능력자를 막지 못하는 상황에 일부 간수들이 공포에 질렸다.
“파이어 불릿!”
“아이스 불릿.”
콰광!
얼음에 우위를 가지는 불꽃의 탄환이 얼음의 탄환에 의해 허공에서 폭발하고.
“플레임 익스플로젼!”
“아이스 임펙트.”
쩌저적!
피어오르려는 주홍빛 폭발의 불꽃이 얼음의 폭발 속에 그대로 얼어 붙는다.
“대체 저년은 뭐냐고!!”
감옥섬이 만들어지고 무려 23년.
그동안 탈옥에 성공한 자는 물론 봉인에서 풀려난 죄수조차 없다. 대부분이 죽고, 일부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어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리고 이 감옥섬의 모든 간수들은 만약 특급 죄수가 풀려난다고 해도 자신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제압하여 다시 철창 안에 쳐박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뒈져라!!! [홍염의 파도]!!”
“흐응~”
하지만.
“[빙백의 숨결]”
쩌저저적-!
그 자신감은 오만이었고, 교만이었다.
“홍염이...얼어붙다니...”
“조금은 괜찮은 공격이네. 초능력?”
“빌어먹을...”
불꽃이 얼어 붙었다는 비상식적인 장면에 A급 초능력자이자 수석 간수인 정종일의 이마에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초능력은 참 치사한 능력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홍염ㄹ...] 읍!”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최유나를 향해 다시 능력을 사용하려는 그때.
쩌적!
“그러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줄래?”
정종일의 입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끄으읍!!”
차가운 냉기에 입술과 그 주변의 피부가 떨어져나갈 것만 같은 고통에 정종일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마법이랑은 다르게 영창이 필요 없는 것도 치사하지만, 뭣보다!”
최유나의 말대로 초능력을 사용할 때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정종일은 고통을 참으며 오른손에 자신의 능력인 홍염을 모았지만.
쩌저적!!
“끄으으읍!!”
이번에는 최유나가 바라보지도 않았는데 정종일의 오른손이 얼어붙었다.
“태어날 때부터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게 무엇보다 치사한 것 같아!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끄으으으...”
“뭐 딱히 부럽지는 않지만. 나도 일단은 재능 각성자고.”
재능 각성자란 마법, 그리고 무공에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을 말한다. 그냥 일반적인 재능이 아닌 초능력에 분류될 정도의 재능을 말이다.
최유나의 경우 ‘얼음 속성 마력 제어’라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때문에 마탑의 그 어떤 마법사도 빙결 마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최유나를 능가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어...무슨 말을 하고 싶었더라?”
“끄브브븝!”
얼어 붙은 입과 오른손으로 비명을 지르며 자신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정종일을 천천히 따라가며 최유나가 고민에 빠졌다.
“아! 그래. 그렇게 치사한 초능력이지만 나한테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어!”
“끄으읍!!”
드드드득.
최유나와 가까운 부분부터, 즉, 발끝부터 얼어가는 끔찍한 감각에 정종일이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읍!”
멀쩡한 왼손에 홍염을 모아 얼어붙어 가는 다리를 녹여보려했지만.
쩌저적!
“끄으으읍!!!”
왼손이 먼저 얼어버렸다.
“아, 맞다 말을 안 해줬네? 지금 내 주변에 걸린 마법은 내 오리지널 마법, [정지하는 세계]라는 마법이거든?”
“...”
“간단히 설명하면~ 내 의지가 없어도 일정 온도 이상의 모든 걸 자동으로 얼려버리는 마법인데~ 뭐 너희가 불을 마음대로 사용해줘서 편했어~”
“끄읍!! 으읍!!!”
“그럼 잘가~”
“으으으읍!!!”
쩌저저적!!
머지않아 고통어린 표정 그대로 정종일의 전신이 얼어 붙었다.
“자~ 그럼 근육맨을 해방하러 가보실까~”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최유나가 자리를 떠나고, 최유나가 지나온 길에는 수많은 얼음 동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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