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영입 활동(3)
“충성!”
“충성!”
뜬금없이 찾아온 간수장의 모습에 성기사의 감옥을 감시하고 있던 간수들이 급히 경례를 올렸다.
“음. 일하는데 불편함은 없나?”
“간수장님의 배려 덕에 아무런 불편함도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수장, 아니. 간수장으로 [의태]한 진우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다행이군.”
“그,그나저나 이곳에는 무슨 일로...”
“음? 내가 못 올 곳에라도 온건가?”
“헉!? 아,아닙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하는 진우의 모습에 간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하하! 그리 겁먹을 것 없네. 업무가 쌓여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온 것이니까.”
“스트레스...입니까?”
너털웃음을 지으며 날카로운 눈으로 간수를 바라보는 진우의 모습에 의문을 표한 간수의 동료가 팔꿈치로 옆 간수를 툭툭 쳤다.
“아! 하하하, 방패놈에 때리는 맛은 찰지죠! 암요!”
그제서야 간수장이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린 간수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들어가시죠.”
“음.”
간수가 연 철창 안으로 들어가던 진우가 뒤를 돌았다.
“자네들은 한시간정도 쉬다 오게.”
“예?”
“네?”
“쯧, 꽤 걸릴 것 같으니까 쉬다 오라고.”
“아! 알겠습니다!”
“배려 감사합니다!”
간수장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본 간수 두명이 화들짝 놀라며 경례를 올리고 사라졌다.
“...후우...이거 힘드네.”
초능력 [의태]는 사용자가 알고 있는 사람의 육체적인 것을 흉내내는 능력이다.
딱히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아도 얼굴을 알고 있다면 얼굴을, 육체 정보를 알고 있다면 육체까지 ‘의태’한다.
“근육이 불편한 건 처음이야.”
다만, 육체적 스펙까지 따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서 지금 진우는 간수장의 진짜 근육을 모방한 근육 껍데기가 불편해서 미칠 것 같았다.
마치 전신에 고기덩어리를 매달고 있는 듯한 기분에 인상을 찡그린 진우가 고개를 돌려 감옥 내부의 감시 카메라를 바라봤다.
“일단...[거짓된 무도회]로...”
후웅~
감옥 내부에 가볍게 바람이 스쳐가고, 감시 카메라 렌즈 바로 앞에 노이즈가 생겨났다.
“됐고...”
진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최유나 이상으로 봉인 쇠사슬에 칭칭 감겨있는 남자, 성기사 천무진을 바라봤다.
“역시 S+급 능력자인가...최유나보다 배 이상으로 구속이 심하군.”
성기사, 천무진은 무공과 초능력의 복합 능력자다.
무공은 그저 그런 기본공뿐이지만, 그의 진면목은 초능력.
S+급으로 분류된 그의 [광휘]는 그저그런 기본공을 최상위 무공으로 탈바꿈시킬 정도의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스슥.
진우가 봉인을 살펴보는 것을 멈추고 천무진의 안대와 재갈, 귀마개를 제거했다.
“...”
“...?”
하지만, 시각과 청각이 돌아왔음에도 천무진은 그저 눈을 감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천무진?”
“...”
“백치라도 되버린 건가?”
“...”
“이건 곤란한데...”
12년 동안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구속되어 있으면 정신을 놓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천무진정도 되는 능력자가 정신을 놓았을리는 없다고 판단한 진우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상정외의 상황이었다.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던 진우가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천무진에게 말을 걸었다.
“천무진.”
“...”
“‘아메 유이치’가 원망스럽지 않나?”
움찔.
“...너를 이곳에 가둔 가디언이 원망스럽지 않나?”
움찔.
‘반응이 있긴 하군.’
아메 유이치, 그리고 가디언.
이 두 이름에 살짝이나마 반응을 보이는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메 유이치는 지금 가디언 재팬의 본부장이다.”
움찔.
“그 아비, 아메 고토는 가디언 아시아의 부총리지.”
까드드득.
아메 고토라는 이름에 천무진이 이빨이 부서질 듯이 이를 갈았다.
“넌...간수장이 아니군. 누구냐.”
“다행히 백치가 되진 않았군.”
“누구냐...물었다.”
살기가 담긴 중후한 중저음이 감옥 내부를 울렸다.
꾸드드득.
살기를 비치는 천무진의 모습을 바라보던 진우가 의태를 풀었다.
“서진우라고 한다.”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다.”
“그렇겠지. 나는 당신이 이곳에 갇힐 때 쯤 가디언에 입사했으니까.”
자세를 숙여 천무진과 눈높이를 맞춘 진우가 말을 이었다.
“얼마전까지 가디언 총본부 정보부 부총괄자리에 있었다.”
“허...대단하신 분이었군.”
진우는 가디언 한국지부, 정보 총괄에서 총본부까지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비록 상부와 충돌하여 고작 일년만에 다시 한국 지부로 돌아오고 바로 얼마 뒤 처리당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대단하신 분이 원한을 헤집으면서까지 나에게 무슨 일이지?”
“네가 이곳에 갇히고, 지난 12년간 가디언 재팬은 아메 가문의 왕국이나 다름없었지. 아니 지금도 그렇다.”
“...”
“그 왕국을 무너뜨려주마.”
“...무슨 헛소리를...”
허언으로 치부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공이 흔들리는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씨익하고 웃음을 지었다.
“나는 내 목적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있다.”
“...”
“빌런 조직에 가깝고, 실제로 그렇게 불리겠지.”
“허...”
“하지만, 그렇기에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길드는 가디언과 정부 산하의 조직. 아무리 강해도 법과 기득권에 묶여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빌런은 다르다.
“10년. 10년안에 가디언 재팬과 아메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게 해주마.”
“하...크하하하하!”
진우의 말을 듣고 있던 천무진이 광소를 내질렀다.
“지금 네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알고 있는 거겠지?”
“물론.”
“크크크큭. 그나저나 12년이라...내가 이곳에 갇힌지 벌써 12년이 지났단 말이지...?”
“...?”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음? 뭐지?”
“혹시 내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있나?”
“...”
뜬금없이 나온 질문이었지만, 진우 자신 또한 한 사람의 가장이었기에 천무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총본부 정보부 부총괄이라는 자리에 있었다면 알고 있을...”
“물론...알고있다.”
“그럼...”
당장 알려달라는 말을 하기위해 진우의 눈을 바라본 천무진이 말끝을 흐렸다.
“...설마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후우...”
“말해라!!”
“아내, 딸, 아들 둘. 맞지?”
“그래!”
진우는 잠시 길게 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네 아내와 장남은...사망했다.”
“...이유...”
“원인 불명의 불치병...이라고 들었지만, 내가 판단하기로는 독살이다.”
“독...”
“그리고...네 딸과 막내아들은 살아는 있지만...”
“끄으윽...드,듣겠다. 말해!”
실제로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는 듯한 감각을 참으며 천무진이 피를 토하듯이 소리쳤다.
“솔직히 말하지.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네 딸, 천지인은 아마도 같은 독에 중독되어 3년째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고, 네 아들 천예성은 천지인의 병원비와 갖가지 빚으로 인해 한 폭력 조직의 노예처럼 일하고 있는 중이다.”
“끄흐흐흑...”
사랑하는 아내와 장남의 사망.
딸, 천지인과 천예성의 좋지 않은 상황.
“끄아아아!! 풀어!! 이거 당장 풀란말이다!!!”
“진정해라!”
“끄아아아아!!!!”
그 모든 것을 들은 천무진이 꿈쩍도 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발버둥쳤다.
우득! 우드득!
완전히 고정된 육체를 움직이려 하니 온몸의 뼈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후우...”
파지지직!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진우가 왼손에 미약한 전류를 모아 천무진의 머리를 짚었다.
“끄으으윽!!!”
“진정해라. 성기사.”
“크흐흐흑...”
“후우...”
발광은 멈췄지만, 도무지 대화를 나눌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진우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딸이 있다.”
“크흐흐흑.”
“이제 조금 있으면 5살이 되는 아이지.”
피눈물이 씻겨가도록 눈물을 흘리는 천무진의 앞에 털썩 앉은 진우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나는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조직이 자리 잡고 가족을 데려오기 전에 내가 살아 있는 것이 알려지면 가디언에 의해 인질이 되거나 죽임을 당하겠지.”
“크흐흑...”
“아까 내가 목적를 위해 조직을 세우고 있다고 했지?”
“...그래.”
조금 진정이 됐는지 천무진이 완전히 충혈된 눈으로 진우를 바라봤다.
“난 내 아내와 딸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썩어빠진 것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싫다.”
“...”
“네 가족도 그 썩어빠진 것들에 의해 희생됐고, 내 아내와 딸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지.”
“...”
“그렇기에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치워버릴 거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서!”
진우의 눈에 차갑게 정련된 신념과 광기가 차올랐다.
“썩은 자들을 도려내고 도려내고 도려내다보면! 네 가족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세상이 되겠지.”
“너는...”
“그로인해 빌런이라 불리던 테러리스트라 불리던 뭐든 상관없다!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
“난, 그저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니까.”
“하...”
가족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광기.
신명하라는 작은 적으로 시작해 동료를 모을수록, 계획을 세울수록 거대해진 적을 모조리 도려내겠다는 의지.
그런 진우의 광기를 앞에 둔 천무진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한가지...조건이 있다.”
“말해라.”
“내 딸과 아들 또한 자네가 만들 썩은 것이 없는 미래에 속하게 해다오.”
“...”
어느새 다시 눈을 뜨고 진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천무진의 모습에 진우가 씨익 미소을 지었다.
“환영한다. 성기사.”
또 하나의 가장, 성기사, 천무진이 진우의 손에 들어왔다.
***
극지의 마녀, 최유나가 갇혀있는 감옥.
스으으...
‘느껴진다...’
진우가 지정한 시간이 다가오자 한없이 빨려나가기만 하던 마력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8년간 텅 비어있던 최유나의 서클에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빗줄기처럼 마력이 스며든다.
‘한번에 역류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이구나.’
봉인의 사슬이 8년간 흡수한 마력은 그야말로 방대한 양일터.
그것이 한번에 역류하면 아무리 사기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최유나라 할지라도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은근히 배려가 있단 말이지...’
스으으으...
“어우, 오늘따라 뭔가 춥네.”
“이제 겨울이잖냐. 슬슬 내복 같은 것도 준비해야겠어.”
소리 차단 술식이 걸려있는 귀마개가 무력화되며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간수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천천히...’
드드드득.
최유나의 서클에 마력이 돌아옴에 따라 감옥 내부의 온도가 점차 내려가고. 봉인의 사슬이 천천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돌리고...확립한다...’
8년간 마력을 잃었으나 찬란히 빛나는 재능이 녹슬 일은 없었다.
최유나의 서클이 8년만의 마력에 기뻐하며 목을 축이고 있을 때.
‘들어오는 양이 많아졌어. 이제 슬슬...’
콰아아아아!!
‘으윽!’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봉인의 사슬을 역류하여 최유나에게 쏟아졌다.
순간의 고통도 잠시.
‘아아..아아아아!!!’
쩌저저저적!!!
환희에 가까운 감각에 최유나의 전신에서 극한의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어우. 야 이건 너무 추운데?”
“그,그러게? 난방이 완전이 꺼졌...”
급속도로 내려간 온도에 몸을 떨던 두 간수가 문뜩 최유나가 있는 철창 내부를 바라봤고.
“헉!?”
“쇠,쇠사슬이!?!?”
“비,비상!!!”
챙그랑!!!
그들의 경악과 동시에 최유나를 구속하고 있던 텅스턴 쇠사슬이 유리조각처럼 깨져나갔다.
“하아아아...”
“보,봉인이 깨졌다!!!”
“지,지휘부! 여기는 중심 제 2 감옥! 극지의 마녀의 봉인이-!”
“시끄러워 더러운 놈들.”
쩌저저저적!!!
재갈과 안대를 벗은 최유나의 손짓과 함께 철창과 두 명의 간수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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