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영입 활동(1)
“끄으응. 아 머리 아파.”
폐공장의 한 켠에서 두통을 호소하는 진우의 모습이 처량하게 보인다.
“그래도 실전을 해보니까 대충 알 것 같군.”
갖가지 능력을 사용해보며 진우는 자신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하나하나의 출력은 B급 정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 A급. 중위까지는 상대할 수 있겠어.”
진우는 B급 초능력자의 출력이 낮다, 라고 평가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틀린 판단이다.
매년 늘어가는 각성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D~C급. B급은 상위 20%에 해당하는 강자로 분류된다.
다만, 세계 제일의 국제기구, [가디언]의 정보 총괄이었던 서진우가 매일 접했던 자들의 정보 대부분이 A급, 혹은 S급 그 이상의 존재들이었기에 진우의 체감상 B급이 낮아 보일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하아...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한다...”
두통이 어느정도 가시자 폐공장의 벽에 기댄 진우가 중얼거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은 그렇다 치고...”
마도 핵이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고 일단 제압하긴 했지만, 그것에 기폭장치는 없었다.
즉, 이건 단순한 위협용.
이미 죽은 것으로 되어 있는 자신을 위협할 필요는 없으니 이건 자신의 장례식을 이용해 가디언 코리아를 위협하기 위한 공작이라 판단한 진우였다.
“신명하... 그 더러운 자식이 감히 은선이를 노려...?”
아내, 이은선과 딸, 서지은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였던 진우였기에 신명하가 자신의 아내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가디언 내부에 나름대로 수를 써놓기는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디언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진우도 알 수 없었다.
“정보가 필요하다.”
현대에 초능력, 마법, 무공과 같은 비현실적인 힘이 나타난지 벌써 수 십년,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정글과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여전히 현대다.
물리적인 힘보다는 정보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
“음...”
그런 현대에서 가디언 정보 총괄이라는 자리는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고.
“혼자서는 힘들겠군. 팀을 꾸려야겠어.”
그 말인 즉슨, 서진우라는 인물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만으로도 세상을 격동시킬 수 있을 정도라는 의미였다.
“후우... 편히 쉬나 했더니 그러지도 못하겠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들을 위협하는 모든 것을 치워놔야 ‘가장’이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슬슬 감옥섬에 인원이 충원 될 시기군.”
진우의 눈에 약간의 광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
범국제적 기구, 가디언.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디언을 전세계에 지부를 두고 빌런을 토벌하는 히어로 조직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그 인식은 그리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
다만...
“마녀년이 또 한명 거시기를 잘라버렸다며?”
“키키킥. 엉, 신입 한 명이 멋도 모르고 아랫도리를 휘두르다가 마녀년 이빨에 잘려버렸댄다.”
“어이고, 간만에 신입하나 들어왔다고 좋아했더니.”
‘빌어먹을 새끼들...’
가디언 한국 지부, 남해의 한 인공섬.
빌런 중에서도 강자를 모아 투옥시켜 놓은 감옥섬.
그 중심부에 위치한 완전 구속형 감옥의 내부에는 단 5명의 빌런만이 존재한다.
그 중 한명. 극지의 마녀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봉인 술식이 담신 구속복, 텅스턴으로 만들어진 쇠사슬.
몸의 자유는 물론 시각과 청각까지 제한당해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장소에 투옥된 마녀는 오늘도 속으로 눈물을 흘린다.
“야, 그러고보니까 오늘도 신입한명 온다는데?”
“어? 진짜? 어제 거시기 잘린 신입이 마지막 아니었어?”
“나도 그런줄 알았는데 한명 더 있데. 뭐라더라? 영국 지부에서 파견한 놈이라는데?”
“아이고 양놈이네. 야, 그 양놈 거시기는 얼마나 갈까?”
“킥킥킥. 난 하루 본다.”
“에이씨 나도 하룬데, 내기가 안되잖아.”
손끝하나 움직일 수 없게 구속된 마녀를 감시하는 자들이 낄낄거리면서 음담패설을 이어갔다.
‘빌어먹을 정인태 본부장...’
하지만 청각이 제한되어 그런 음담패설을 듣지 못하는 마녀였기에 그저 자신의 원수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
자신을 취하려다 실패해 굴욕을 받자, 자신이 고아원을 습격해 인체실험을 진행한 마녀로 만들어버린 원수.
가디언 한국 지부의 정인태 본부장에 대한 증오를 말이다.
“...그래서 그년이 글쎄”
“어? 야 신입이 왔다.”
“엉?”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기척이 둘 늘었어. 하나는 간수장...하나는...모르는 기척이야. 신입인가?’
마녀의 기감에 자신을 감시하는 간수 두 놈을 제외하고 둘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충! 간수장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충!”
“뭘 그렇게 각을 잡나. 편하게 해 편하게.”
“넵!”
“넵!”
그 근육을 보면 편하게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두 간수였다.
“자, 여기 영국 지부에서 파견된 신입이다. 이름이...뭐였지?”
“넵! 로버트 드라이드입니다! 편하게 로버트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아, 그래 로버트였지. 아무튼 마녀 담당 신입 간수니까 너희 둘이 잘 가르쳐. 또 잘리지 않게 조심하고.”
“예! 알겠습니다!”
“옙!”
로버트라 말한 금발의 미청년이 어색한 표정으로 의문을 드러냈다.
그 사이, 간수장은 자리를 떠났다.
“여, 양놈.”
“어...넵!?”
“어...넵? 이거 웃긴놈일세?”
로버트에게 어깨동무를 한 간수가 마녀가 구속되어 있는 철창 앞으로 로버트를 안내했다.
“네가 영국 지부에서 뭘 하다 온 놈인지는 몰라도 여기서는 딱 하나만 명심하면 돼.”
“경청하겠습니다!”
“자세는 좋네. 아무튼. 자 저 마녀년 보이지?”
간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긴 로버트의 눈에 쇠사슬과 구속복으로 완전히 구속되어 있는 한명의 여성이 보였다.
“극지의 마녀라고 해서 빙결계열 마도사야.”
“아...이름은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저년이 고아들을 데리고 인체실험을 한건 한동안 난리였으니까.”
“이야, 신입이 눈돌아가는 것 봐라. 하긴 저년이 몸매 하나는 끝내주지.”
“그,그게...”
다른 간수의 말에 흠칫하며 시선을 돌린 로버트가 눈을 굴렸다.
“키키킥 야 됐어 편하게 해. 어차피 몇 개월 있다가 영국으로 돌아가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뭐, 여기는 간수끼리의 선후배 관계는 그리 크게 따지지는 않으니까 편하게 있다가 가면 돼. 아, 그래도 상사분들한테는 편하게 하면 너 우리한테 죽는다?”
“명심하겠습니다!”
조금 안심하는 로버트가 귀여워보였는지 간수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리고 저년 몸매 보고 눈돌아가서 얼굴 한번 볼까 하는...”
“그,그럴 일은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돼.”
“...예?”
“그래도 된다고. 어차피 저년 안대랑 재갈은 그냥 괴롭히기 용이거든.”
“아...”
“윗선분들한테 뭘 잘못보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러라고 하더라고.”
“그렇군요...”
안대와 재갈 때문에 코만 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로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저년 얼굴도 끝내주거든?”
“예...예?”
“근데 얼굴 보고 꼴려서 거시기 함부로 놀리지 마라? 어제도 신입 한명이 저년한테 거시기 물릴려고 하다가 싹뚝! 하고 잘려서 사회로 다시 나갔거든.”
“킥킥킥. 난 그런놈들 볼때마다 웃겨서 못참겠더라.”
“그건 나도 그래.”
“허...”
낄낄거리는 두 간수와는 다르게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마녀를 보던 로버트가 흠칫하며 표정을 바꾸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무튼 환영한다 신입.”
“아!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들!”
그때, 뭔가 생각났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간수 하나가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우리는 신입오면 야간 근무는 신입한테 맡기니까 오늘은 잘부탁한다? 무슨 문제 있으면 무전기로 알리면 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날 저녁이 되었다.
***
‘답답해...’
시각도, 청각도, 입까지 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마녀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응?’
그때. 누군가가 철창 앞에 선 것이 느껴졌다.
‘아까 그 모르는 기척...신입인가...’
그 기척이 잠시 철창 밖에서 서성이다 이내 철창이 열리고 들어오는 것 또한 느껴졌다.
‘또...’
매번 자신에게 흉물을 물리려 하는 자들의 물건을 잘라버렸음에도 이런 놈들이 있었다. 심지어 바로 얼마전에 잘라버렸는데 말이다.
스슥. 스슥.
잠시 자신을 감상하듯이 바로 앞에 멈춰있던 기척이 움직이며 자신의 안대를 벗겼다.
‘외국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공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찬란한 금발이었다.
그리고 이국적인 이목구비, 누가봐도 잘생겼다 생각할 만한 외모의 미청년이었다.
‘그래도 얌전히 있을 생각은 없지만.’
잠시 서로의 눈을 노려보던 두 사람.
이내 로버트가 다시 움직여 마녀의 재갈을 풀었다.
“하아...”
마녀의 입에서 매혹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잠시 입을 움직이던 마녀가 갑자기 자신을 향해 입을 뻐끔뻐끔거리는 사내를 발견했다.
“나 청각도 막혀있거든?”
아...하며 고개를 끄덕인 로버트가 잠시 양 옆을 확인하더니 이내 청각 차단 귀마개까지 제거했다.
“이제 들리나?”
“...그래. 넌 또 뭔짓을 할려고 귀까지 열어줬니?”
자신을 앞에 두고 별에 별짓을 다하는 놈들을 많이 봐왔기에 로버트 또한 그런 이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 마녀가 비꼬듯이 말했다.
“빌어먹을 흉물을 보는 것도 지겨우니까 적당히 하고 가지 않으련? 귀까지 열린 건 오랜만이라 기분이 좋으니까 하지 말라고는 안 해줄게 꼬마야.”
“...아, 그런건가.”
마녀의 말에 피식하고 웃은 로버트가 마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극지의 마녀, 최유나.”
“어머, 이름이 불린 건 얼마만이...”
“이곳을 나가고 싶지 않나?”
“......”
로버트의 말에 마녀, 최유나의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를...”
“농담이 아니다.”
“...”
의심과 적의가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최유나의 눈빛에도 꿈쩍하지 않은 로버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최유나 올해로 29세. 강원도 속초 태생.”
“29살...”
이곳에서는 정확한 시간개념을 잡고 있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최유나는 자신이 올해로 29살이라는 것도, 이곳에 투옥된지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가디언 한국 지부 정인태 본부장에 의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이곳 감옥섬에 투옥 된 지 8년째.”
“그걸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갇힌 이유가 정인태에 의한 누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진실을 아는 자는 모두 정인태 본부장의 측근이고, 측근이 아닌 자는 모두 죽거나 이곳 감옥섬에 투옥되었기 때문이다.
“넌 대체 뭐야.”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이 금발의 외국인은 자신이 누명을 썼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음...지금은 로버트 드라이드라는 이름이지.”
“지금은...?”
“아무튼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나갈건지, 이곳에 계속 있을 건지 선택해라.”
“...”
로버트의 말에 최유나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당연히 나가고 싶어. 하지만, 조건이 있겠지?”
“음. 잘 아는군.”
“말해. 어지간하면 들어줄테니.”
최유나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다.
빙결에 관한 마법에 관해서는 마탑의 노친네들도 자신을 따라올 수 없고 8년간 갇혀 있었다고 한들 그 재능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먼저, 탈옥에 대한 조건은 이곳, 감옥섬을 초토화 시키는 거다.”
“...그런 조건이라면 대환영이지.”
오히려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가. 그리고 하나 더. 이번에는 제안이다.”
“제안?”
“내가 만들 조직에 들어와라.”
“조직?”
뜬금없는 제안은 아니다.
오히려 이걸 탈옥에 대한 조건으로 걸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하지만, 최유나의 이런 의문은 로버트의 다음 말을 들음과 동시에 사라졌다.
“대신. 정인태 본부장. 아니 지금은 지사장이군. 정인태 지사장을 죽일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겠다.”
“...”
매일, 매 시간, 매 분마다 증오를 키워갔다. 원망은 활활 불타올랐지만 재가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사내의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했고, 당장이라도 입에 쑤셔넣고 싶은 충동이 드는 제안이었다.
“최소 5년안에 복수의 자리를 마련해주겠다 약속하지.”
그리고, 마녀는 그 충동을 거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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