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좋은 날, 나쁜 날.
“엄마, 아빠는?”
“지은아...”
아직 죽음이라는 개념이 정착하지 않은 어린 딸의 물음에 은선이 조용히 무릎을 굽혀 지은이를 끌어안았다.
“아빠는 많이 바쁘잖아...”
“웅. 아빠 맨날 바빠.”
은선의 말에 지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많이 보구시픈데...”
“지은아...”
그런 딸의 말에 은선이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떨었다.
“엄마?”
가디언, 한국 지부, 정보 총괄 서 진우.
두개의 검은 줄이 그려진 사진 속 활짝 웃고 있는 진우의 모습에 은선이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왜 울어어...”
그런 은선의 모습에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자리인지를 모르던 지은이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빠...아빠 어디있어!!”
“지은아...”
그리고,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꼈을까.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모르는 4살의 어린아이가 아빠를, 진우를 찾기 시작했다.
“아빠! 아빠아아!! 흐아아앙!”
“흐윽...”
그 모습을 보며 진우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이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
까드득.
잇몸에서 피가 베어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고 오열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던 성진이 등을 돌려 장례식을 빠져나왔다.
“빌어먹을...”
작전 지휘부의 지시로 인해 시체조차 챙겨오지 못했다.
지금 장례식에 존재하는 관 속에는 연고를 모르는 시체 한구가 진우처럼 꾸며져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성진에게 있어서 이곳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뭐가 테러리스트에 의한 순직...후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성진이 흠칫하며 주변을 둘려봤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장...”
가족을, 부하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받아들린 진우를 떠올린 성진이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저는..대장처럼 강하질 못해요...”
성진에게도 선택의 기회는 있었다.
굴복할 것인지, 죽음을 택할 것인지.
그 단순한 기로에서 성진이 선택한 것은 굴복이었고. 그것은 성진에게 믿고 따르던 진우를 죽여야하는 상황으로 돌아왔고, 진우는 그런 성진을 단 한번도 원망하지 않으며 그저 조용히 아무도 없는 곳으로 자신들을 유인해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하지만...이럴 줄 알았으면...”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성진이 결국 눈물을 흘렸다.
“적어도...형수님과 지은이는...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성진은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다.
***
“녀석도...”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성진의 먼발치에서 그를 지켜보던 진우가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천리안(千里眼)과 천리이(千里耳), 투시. 세가지를 동시에 사용해 자신의 장례식장 내부를 바라봤다.
“은서야...지은아...”
그리고, 세상이 무너져라 오열하는, 자신의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미안하다...미안해...”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
직접 만나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현실이 진우를 덮쳤다.
“흐윽...”
그리고 그때. 눈물을 흘리던 진우의 눈에 아내와 딸에게 접근하는 한 남자가 보였다.
“저놈은...!?”
***
“형수님.”
“흑흑... 신명하씨?”
지은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던 은선의 앞에 진우의 동료이자 부하였던 가디언 정보부 부총괄, 신명하가 나타났다.
“정말...죄송합니다.”
“흐으윽...”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신명하의 모습에 은선의 눈에서 다시 눈물을 흘러나왔다.
“어째서..어째서 오빠가...!”
“가디언 정보부의 실책입니다...할 말이 없습니다.”
비각성자, 일반인으로서 젊은 나이에 가디언 한국 지부 정보부 총괄의 자리에 오른 신화적인 인물. 그것이 서진우라는 인물이었기에, 음지에 숨어 있는 빌런 연합과 각성 우월주의자 같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자주 표적이 되어왔던터라 그의 경호는 항상 만전에 만전을 기해왔다.
“고작 빌런들의 교란 작전에 저희 정보부가 흔들릴 줄은...”
“흐으윽...”
하지만, 진우를 죽이기 위해 빌런의 공격을 일부로 유인해 성동격서를 의도적으로 연출한 가디언 정보부.
그리고, 이번 작전을 직접 계획하고 지휘한 자가 바로 신명하였다.
그 현실은 은선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형수님과 지은이는 저희가. 아니,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흑,흑...”
“부디 저를 믿고...”
“가세요.”
“형수님.”
“가시라고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거에요. 지은이도! 저도! 그러니...가세요.”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단호한 은선의 말과 표정에 뒤를 돌아 은선과 멀어지는 신명하의 얼굴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든 아내던 똑같군. 하지만...네년은 결국 내 밑에서 허덕이게 될거다. 그 새끼의 딸은... 대충 버리면 되겠지. 흐흐흐...’
***
“...”
쿠구구구구...
“꺄아아악!”
“지,지진이다!”
“테,테러!!?”
“아차.”
스으으...
한순간의 감정 조절 실패로 인해 진우의 주변 건물이 진동하다 정신을 차린 진우로 인해 진동이 가라앉았다.
“후우...저 새끼가 감히 은선이를 노려?”
예전부터 더러운 짓이란 짓은 다 했던 놈이었지만 일처리는 항상 깔끔했기에 부총괄의 자리까지 올렸던 놈이었다.
하지만, 신명하가 자신의 아내를 탐내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
진우가 차가운 눈으로 장례식장에서 벗어나는 신명하의 모습을 쫓았다.
“...죽일까?”
신명하 주위에 있는 다수의 경호원의 모습에 진우가 혀를 찼다.
“여전히 빌어먹게도 안전을 챙기는 놈이군.”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신명하 본인 또한 마법을 익힌 마법사였기에 진우는 들키지 않고 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후우...일단은 성진이 놈을 믿어보는 수밖에.”
다시 은선과 지은이에게 시선을 돌린 진우가 안타까운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봤다.
“음?”
그때.
(조심히 옮겨.)
끄덕.
“뭐야 저놈들은.”
장례식장 주변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무언가를 옮기는 무리가 진우의 눈에 들어왔다.
“저건...”
천리안과 투시를 이용해 그들이 옮기는 물건을 확인한 진우가 경악했다.
“마도 핵?!”
마법을 사용해 만든, 폭발반경 50m의 소형 폭탄.
그럼에도 폭발반경 내부의 모든 것을 깔끔하게 지워버리기에 핵(Nuclear)이라 불리는 물건.
마도 핵이었다.
“미친! 저건 생산 금지된 물건일텐데!!”
진우의 장례식장으로 저 끔찍한 물건을 옮기는 것은 당연하게도 장례식 도중에 마도 핵을 이용해 테러를 일으키겠다는 것일터.
막지 않으면 은선과 지은이가 폭발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순간이동!”
그것을 생각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진우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공간이동 반응!”
“젠장! 가디언에서 눈치챘나!?”
화악!
마도 핵을 옮기던 빌런 무리가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취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3시 방향입니다!”
“파이어볼!”
퍼엉!
감지 능력자에게 방향을 듣자마자 빌런 한명이 다짜고짜 공격 마법인 파이어볼을 날렸다.
투콰아앙!
“꺄아악!”
“폭발이다!”
“테러다!!”
순간이동으로 이동해온 진우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날아오는 파이어볼에 의해 폭발했다.
“뭐지?”
“해치웠나?”
너무나도 기초적인 순간이동 대응에 그대로 맞아버린 진우를 보며 빌런 일당이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폭발 연기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서걱!
“어?”
뭔가가 썰려나가는 소리와 함께 파이어볼을 던졌던 마법사 빌런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젠장! 밀집대형! 공간계열과 공격계열! 아마도 바람의 복합 능력자다!”
순식간에 상대를 파악한 빌런 무리의 대장이 대응 지시를 내리고.
“니들 뭐냐.”
“공격!”
연기 속을 빠져나오는 진우를 향해 바로 공격 지시를 내렸다.
콰과과광!
마법, 초능력, 검기. 갖가지 공격이 순식간에 진우를 덮쳤다.
“공간이동 반응!”
하지만, 공격이 닿기전 진우는 순간이동을 사용해 그 자리를 벗어났고.
“니가 제일 거슬리네.”
“헉!?”
빌런측의 감지 능력자의 머리 위쪽에 나타났다.
“젠장! 막아!”
“쿨타임도 없나!”
감지 능력자를 가장 먼저 처리하려는 진우의 노림을 알아챈 나머지 빌런들이 허공에 나타난 진우를 향해 자신들의 능력을 쏘아댔지만.
“아니! 이건 가짜입니다!”
“뭣!?”
그것은 진우의 분신이었다.
“정답.”
“커억!?”
빌런들이 분신에 시선이 끌린 그 잠깐의 틈에 빌런의 대장격으로 보이던 사내의 등 뒤에서 나타난 진우가 얼음 송곳을 만들어내 그의 심장을 찔렀다.
“부,분신에 빙결...까지...끄으윽...대체 넌...”
“그건 알 것 없고.”
푸욱!
“컥!”
진우가 더욱 깊게 송곳을 질러넣자 빌런 대장이 그대로 즉사했다.
“자, 그럼...”
진우의 손에 죽은 자가 대장이었던만큼 가장 강했던 자였기에 빌런측 인원들의 사기가 바닥을 기었고.
“정보를 말할 입은 하나면 족해. 누가 살래?”
““...””
그 분위기를 놓칠 리가 없는 진우였다.
***
“제,제가 아는 정보는 여기까지 입니다! 정말입니다!!”
“흠...”
진우의 순간이동을 감지했던 감지 능력자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치는 내용에 진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진짜입니다!”
진우는 자신이 앉아있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고작 4급 빌런 조직이 마도 핵을 옮기고 있었는데?”
“마,마도 핵?!”
“음...”
감지 능력자가 말한 내용에 따르면 본인들이 속한 조직은 4급 빌런 조직에 속하는 퍼플 바이퍼.
불법 무기, 마약, 장물 등 들키면 곤란한 물건의 운송을 주로하는 잔챙이 빌런 조직이었다.
어느날 거금과 함께 이 상자를 어느 장례식장 옆으로 옮겨 달라는 의뢰를 받고 움직이던 도중 진우를 만났다는 것이 끝이었다.
‘운반인 놈들도 상자 속의 물건이 마도 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던 상태라... 쯧, 골치아프네.’
“지,진짜 마도 핵입니까!?”
“하아... 좀 다물어.”
“...”
이마를 부여잡고 고개를 젓는 진우의 모습에 감지 능력자가 입을 닫았다.
‘다행히 마도 핵은 원격 격발장치는 아니야. 시한 폭탄? 대충 그런 구조 같은데...’
투시로 상자 내부를 살피던 진우가 눈을 찡그렸다.
‘이상한건 시간 설정이 안 되있다는 거지.’
시한 폭탄인 것은 분명한데 작동이 안되고 있다.
그렇다고 원격에서 격발 할 만한 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마도 핵만 보냈다고? 폭발시킬 의도는 없이?’
에에에에에엥!!!
“아, 이런.”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던 진우의 귀에 경찰차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의 소리에 진우가 자리를 떠나려는 모습을 보이자 무릎을 꿇고 있던 감지 능력자가 화들짝 놀라며 진우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저는 이만 가봐도 될까요...”
“아, 깜빡하고 있었네. 가봐도 좋아.”
“가,감사합니다!!”
진우의 말에 안색이 살아난 감지 능력자가 벌떡 일어나 진우에게 허리를 숙이고는 허겁지겁 골목의 출구를 향해 달려나갔고.
서걱!
“어?”
그대로 목이 잘려 꼬구라졌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진우가 중얼거렸다.
“아내와 딸의 목숨을 위협하던 놈을 살려둘 리가 없잖아.”
진우의 말과 함께 잘린 목과 몸뚱이가 둥실 떠올라 진우가 있는 상자의 옆으로 날아와 놓여졌다.
“이건 경찰이 알아서 하겠고. 문제는 의뢰인인데... 이걸 어떻게 찾아야 할까...”
중얼거림과 함께 진우가 그 자리에서 훅하고 사라졌다.
사람들이 모조리 도망간 골목에 남은 것은 마도 핵이 담긴 상자와 목이 살리고 심장이 뚫린 7구의 시체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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